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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에 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리마를 거쳐간다. 그러면서 궁금해한다. 리마에서 머무를지 말지를. 나도 그랬다. 가기 전엔 리마에 과연 볼거리가 얼마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다녀온 입장에서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리마는 또 가고 싶은 도시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리마에서만 5일째 머물고 있다는 미국인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리마를 정말 좋아했다. 여기저기 볼거리가 많고 무엇보다 미라플로레스의 해변이 멋지다는 거였다.
내가 리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다르다. 리마는 다양해서 좋다. 부촌 미라플로레스에는 여유가 넘쳐흐르고, 센트로 지구에는 역사유적들이 많고, 시내 중심가는 시끌벅적하고,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길은 개발도상국 특유의 활기가 느껴지고, 푸에블로 리브레 지역은 한적해서 좋다.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건축물과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빈민촌이 있는 리막지구에 들어가는 것은 두렵지만 그래도 차를 타고 한 번쯤 둘러볼 만은 하다.
물론 일정이 짧다면 리마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을 것이다. 또 에스파니아가 세운 수도 리마보다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가 더 정이 가는 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미 여정에서 리마를 빼놓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다.
리마의 관문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더니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남자가 나를 마중나와 있다.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잡았는데 그곳 호스트인 그레이스가 택시를 불러준 것이다.
리마에는 페루 인구의 3분의 1이 거주한다. 리마에는 일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개가 낀 날이 많다고 한다. 다행히 오늘 날씨는 참 좋다. 쿠스코에서는 쌀쌀했는데 여기선 생활하기 좋은 20도 정도다. 대신 햇볕은 뜨겁다. 반팔을 입고 있으면 금세 팔이 거뭇해진다. 나도 리마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닌 탓에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목덜미와 팔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목엔 온통 프란치스코 교황 환영 문구 일색이다. 교황은 며칠 전 리마를 다녀갔다. 그때 붙여놓은 플래카드가 아직도 붙어 있는 것이다. 과연 국민 90%가 카톨릭 신자인 나라답다. 요즘 카톨릭은 남미의 신앙심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마에서 택시를 많이 탔는데 그때마다 라디오를 듣게 됐다. 물론 스페인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DJ 목소리가 참 시끌벅적하다. 그렇게 밝고 경쾌할 수가 없다. 혀를 굴리는 R 발음에는 혀를 내두른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다. 과연 이 나라에도 우울증이 있을까 싶다. 특히 만담을 하는 남자 콤비의 개그는 택시기사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듯 탈 때마다 그걸 듣고 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숙소는 미라플로레스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아파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면 바로 집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거실에선 경치가 끝내준다. 파도가 치는 모습도 보이고 해변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려 숙소를 나왔다. 그레이스가 말해준대로 해변을 걸어 라르코마르(Larcomar)라는 복합쇼핑몰로 갔다. 라르코마르로 가는 해변에는 늦은 저녁인데도 조깅하는 사람과 운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라르코마르 쇼핑몰
포퓰러(Popular)라는 식당 바에 앉아 세비체와 리조또를 먹었다. 페루 솔이 떨어져서 미국 달러로 결제했는데 종업원이 내가 추가로 낸 10달러를 거의 반강제로 팁으로 가져가서 짜증나긴 했지만 해변을 걷다보니 마음이 풀렸다.
다음날 거실로 나왔더니 그레이스와 가정부 아줌마, 그녀의 아들 리카르도가 있었다. 그레이스는 갈 데가 있다며 일찍 외출했다. 아줌마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거실에서 리카르도와 놀았다. 천진난만한 소년이다. 소방차 두 대와 소방관 네 명을 갖고 싸움도 해보고 긴급출동도 해본다. 리카르도가 좋아하는 건 충돌이다. 소방차를 의자에 부딪치고 소방관들을 내동댕이칠 때 꺄르르 웃는다. 윗잇몸이 보이도록 웃는 게 귀여운 녀석이다.
귀여운 리카르도
여유 있게 9시 반쯤 밖으로 나와 무작정 걸었다. 문화역사지구인 센트로에 간다는 계획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이 그냥 걸었다. 와이파이가 안 되니 구글지도를 봐도 어딘지 알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플라자 데 산마르탱이 어디냐고 물어봤다. 스페인어로 한참을 설명해주는데 당연히 못 알아듣지만 그래도 대충 감은 온다. 아무 버스나 타도 그쪽으로 간다는 거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곳에서 내릴 참이었다. 30분쯤 갔을까. 차가 막혀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내렸다.
차가 막히는 이유를 알았다. 멀리 거대한 경찰차가 보이더니 곧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무슨 시위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형 시위와 행진이 벌어지고 있다. 시위는 꽤 평화로웠다. 경찰는 그들을 보조하는 정도로 질서유지만 했다. 일부 경찰은 나처럼 비디오를 찍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가다가 또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다른 길로 갔다. 하지만 결국 어느 광장에서 시위대와 다시 마주쳤다.
광장에서 시위대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볼수록 이곳은 축제 같다. 사람들은 날이 더우니 아이스셔벳 같은 것을 사먹는다. 나도 하나 사먹었다. 경찰도 쭈쭈바 같은 것을 하나씩 입에 물고 있다. 아예 노점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그 옆에서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의 시선은 중앙에서 마이크를 들고 신나게 떠들고 있는 사람을 주목하는 중이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광장을 떠났다.
산마르탱 광장을 찾으려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다들 스페인어로 하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중 한 중년남자가 굉장히 친절하게 길을 알려준다. 그런데 걸어서 한참을 가야한다. 햇볕은 따갑고 12시가 다 되어 간다.
겨우겨우 산마르탱 광장에 도착했지만 대성당을 못찾겠다. 또 걸었다. 리마의 명동이라는 라유니온 거리를 막 헤매고 다녔다. 와이파이만 되면 참 좋겠는데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 없다. 걷다보니 강이 나왔다. 건너면 빈민촌인 리막지구다. 건널까 말까 고민하다가 돌아왔다. 너무 더웠고 또 멀리 가면 돌아올 대책이 없으니까.
리마에선 반드시 데이터를 구입해서 돌아다니는 게 여러모로 좋다.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조차 찾기 힘들다. 인터넷 카페는 있지만 PC가 너무 느리다.
어쨌든 걷고 또 걷고 뙤약볕에서 한참을 걷다가 와이파이가 되는 쥬스집을 발견했다. 파파야 쥬스를 시켰더니 엄청난 양을 준다. 그래도 목이 말라서 물처럼 마셨다. 인터넷이 된 김에 갈 곳들의 위치를 구글지도에서 찾아 모조리 사진 찍어놓았다. 이젠 걱정이 없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이 정도로 인터넷 하기가 힘들 줄 몰랐다. 시간이 없으니 이젠 모든 이동을 택시로 해야겠다.
택시를 타고 대성당으로 갔다. 아르마스 광장에 대성당부터 피사로 저택, 대통령궁까지 다 모여 있다. 대성당과 피사로 거주지 입장권은 30솔이다.
대성당
대성당 내부
대통령궁
에스파니아의 주교이자 페루를 정복한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5~1541)의 저택에는 십자가에서 피흘리는 예수상 등 카톨릭 상징물이 가득하고 그 자신의 초상화도 여러 점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이때의 트라우마가 훗날 그를 미지의 땅으로 모험을 떠날만큼 강하게 단련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생아로 태어나 글도 배우지 못했던 피사로는 용병생활을 마친 뒤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파나마와 콜롬비아를 탐험한 피사로는 남쪽에 황금이 많은 잉카제국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이곳으로 들어갈 방법을 모색한다.
피사로 거주지 내부
에스파냐로 일시 귀국한 그는 왕실의 원조를 받아 1531년 200명가량의 부하를 거느리고 중남미로 떠난다. 이듬해 잉카제국에서 내란이 발생하자 그는 잉카의 황제 아타왈파와의 회견장에서 황제를 납치한다.
아타왈파는 일정 규모의 방에서 손을 들어 닿는 높이만큼 황금을 주겠다며 풀어줄 것을 제한한다. 피사로는 이를 받아들여 엄청난 양의 황금을 받았지만 잉카의 반격이 두려워 아타왈파를 죽여버린다.
피사로 거주지에 걸린 피사로 초상화
잉카는 고작 200명의 에스파니아 군대에게 멸망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전설 속 자신들의 신이 하얀 피부를 지녔다고 믿었기에 처음 에스파니아인들을 봤을 때 그들을 신의 계시라고 믿었지만 결국 신은 자비를 허락하지 않았다.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수도인 쿠스코를 에스파니아왕에게 바치고 1535년부터 새로운 수도 리마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사로도 결국 내부 권력다툼 끝에 암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피사로 거주지 내부
잉카인들의 피로 세운 에스파니아 주교의 집인 피사로의 거주지를 둘러볼수록 아이러니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는 신의 뜻이라는 명목 하에 잉카인들을 잡아 개종하지 않으면 다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는 예수 그림을 보면서 경건한 기분에 사로잡혔겠지. 이토록 역겨운 자가 살던 집은 참으로 대단해 수백년 후에 이렇게 낯선 나라 관광객으로부터도 돈을 뜯어간다. 역사라는 건 알면 알수록 참 냉정하다.
은퇴자들의 오케스트라 거리공연
에스파니아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이 즐비한 센트로 광장에는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많아 보인다. 관광객들도 많고 참 여유로운 공간이다. 퇴직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공연하길래 잠깐 지켜보고는 다시 택시를 탔다.
미라플로레스로 돌아왔다. 해변에서 패러글라이딩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동해 택시기사에게 내려달라고 했다. 택시기사가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달리는 바람에 우리는 빙글빙글 돌아 결국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서야 내릴 수 있었다. 중간에 택시기사가 구글번역 앱을 설치하면서 나와 어떻게든 대화해보려고 노력했다. 참 단순해 보이는 일도 이렇게 다른 언어로 소통하는 게 어렵다는 걸 느낀 시간이었다. 그는 택시비를 더 달라고 했지만 적정선에서 합의하고 내렸다.
해 저무는 해변에서 바라보는 낙하산은 근사하다. 절벽을 가로지르며 사뿐히 내려가는데 그 뒤로 늙은 태양이 붉은 빛을 내뿜는다. 그걸 보고 있으려니 얼른 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260솔이란다. 8만원에 가까운 금액이다. 자격증이 있으면 직접 운전할 수도 있고 오토파일럿을 이용해 뒤에 탈 수도 있다. 직접 운전하면 130솔이니 더 싸다. 하지만 낙하산 자격증을 언제 딴단 말인가. 관광객 모드로 뒤에 타는 수밖에.
결국 낙하산 타는 데 실패했다. 바람이 별로 안 불어서 오토파일럿으로는 60킬로그램까지만 탈 수 있다는 거다. 내 뒤에 줄 섰던 여자들만 차례대로 타고 나는 구경만 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파블로 리브레 지역에 있는 라르코 뮤지엄으로 갔다. 1926년 라파엘 라르코 호일이라는 사람이 모은 다양한 시대의 페루 유물들이 전시된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 박물관이라고 한다. 2층으로 구성돼 아래층에는 재미있는 에로틱 토기들도 있다.
이 박물관이 특이한 것은 전시되지 않은 보관 창고를 개방해 놓았다는 것이다. 창고에 쌓인 유물들도 엄청나게 많다. 박물관 자체도 예술 작품 같다. 가운데 하늘을 보이게 지붕을 없애 낮에는 해가 보이고 저녁엔 달이 보인다.
저녁을 먹고 9시에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리마를 떠나야 할 시간이다. 택시기사가 걸어가는 남녀를 보고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와!” 하며 소리를 지른다. 참 뻔뻔한 아저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기선 이게 일반적이야. 소년이 소녀랑 데이트하고 있으면 다들 이렇게 해.” 처음엔 문화 차이로 이해하려 했으나 생각해볼수록 이건 문화 차이라기보다는 아저씨의 시대착오적 습관인 듯하다.
숙소로 돌아오니 리카르도는 자고 있다. 그레이스는 친구와 화상통화를 한다. 첫 인상과 달리 꽤 자상한 할머니인 듯하다. 공항 가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대화를 나눴다.
그녀의 친한 친구가 어제 친구가 죽었단다. 내일이 장례식이라고 한다. 7개월 전 자기 차에 치인 뒤 고생하다가 바로 어제가 마지막이었다고. 자신도 그때 사고 때 허리를 다쳤다고.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세상에. 놀랐지만 위로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낯선 이방인이 해줄 수 있는 건 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나중에 서울로 돌아와 그녀가 나에 대해 에어비앤비에 남긴 후기를 보니 내가 ‘polite’한 사람이라고 썼다. 그 후기를 보면서 그때 그녀와 함께 있던 저녁이 떠올랐다.
호르헤 차베스 국제공항
우버를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호르헤 차베스 공항은 벌써 세번째라 낯익다. 우버 기사 마르코는 키예프 출신 페루인이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43살이고 12살난 딸이 있다. 대학에서 섬유공학 연구실 엔지니어로 일하고 저녁엔 우버 부업을 한다. 엄마는 이혼해 키예프에 산다. 작년에 키예프의 엄마 집에 갔는데 리마-아바나-모스크바-키예프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해 꼬박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여정이다.
그는 페루 원주민 언어인 께추아어가 프랑스어만큼이나 로맨틱한 언어라며 자신은 께추아어를 할 줄 모르지만 이 언어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께추아어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들어보니 나에게는 프랑스어보다는 일본어처럼 들린다. 일본어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이랄까.
마르코와 헤어지고 공항으로 들어갔다. 목이 너무 말라서 던킨도너츠에서 아이스 쥬스를 사마셨다. 여행의 끝이자 긴 여정의 출발이다. 작은 비행기 안에 또다시 나를 맞춰야 한다.
댈러스로 가는 기내에서 옆자리에 앉은 미국인 여자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그녀는 6주 동안 쿠스코의 성스러운 계곡에서 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채식주의자인 그녀는 거기서 자급자족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남편은 정글을 여행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부부다. 도대체 어떻게 6주 동안이나 시간을 낼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비영리재단에서 일한다면서 이번에 특별휴가를 얻었단다. 그러면서 이 정도의 다음 여행은 10년 후에나 가능할 거라고 덧붙였다.
10년 후라… 나에게도 감이 잡히지 않는 시간이다. 그 사이에 나는 남미를 몇 번 더 가게 될까. 페루에서의 시간은 참 좋았다. 아시아, 북미, 유럽, 중동, 오세아니아 등 지금껏 가본 어떤 대륙과도 다른 열정과 친절함이 있는 곳이었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란 이런 것 같다. 비록 일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낯선 그들의 삶을 슬쩍 곁눈질하면서 내 삶의 자극을 얻는다. 이제 다음 일정은 어디일까. 나는 남미 지도를 다시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일주일간 페루 (5) 뜨거운 도시 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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