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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입소문은 힘이 세다. 개봉 첫 주, 영화 한 편에게 전체 스크린 2500여개 중 무려 2000개 이상을 몰아주는 괴력을 발휘하더니 개봉 다음 주엔 이 숫자를 800여개로 떨어뜨리며 이젠 프라임타임이 아닌 시간에만 상영하는 지경으로 내몰아버렸다. 영화를 기대하던 사람들이 쏟아낸 ‘입소문의 힘’이 영화에 실망한 사람들이 쏟아낸 ‘악소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영화 한 편을 끝내 주저앉힌 것이다.
영화 <군함도>는 개봉 첫 날인 7월 26일 무려 97만명을 동원하며 신기록을 세웠고, 이후 500만명 돌파까지 매일 100만명 가까운 관객을 추가하며 쾌속순항했지만, <택시운전사>가 개봉한 8월 2일부터 관객을 빼앗기더니, 8월 5일엔 하루 관객 스코어가 27만명으로 떨어지며 흥행세가 주춤해졌다. 현재까지 누적 관객 584만명을 기록 중인데 이 정도의 감속 추세라면 최종 스코어 700만명 정도에서 마감할 듯하다. 손익분기점이 약 80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흥행 실패다. <마이웨이> <미스터 고>에 이어 제작비 200억원대 영화의 저주가 계속되는 셈이다.
과연 어떤 ‘입소문’이 <군함도>를 침몰시켰을까? 그리고 그 입소문은 얼마나 정당한 것일까? 차분하게 따져보자.
우선, 논란의 시작은 스크린 독과점이었다. <군함도>가 개봉 첫 날 확보한 스크린 2000개(정확히 2027개)라는 숫자는 상징적으로 압도적이었다. 그전까지 최고 수치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의 1991개였다. 영화평론가들에 민병훈, 정윤철 같은 영화감독들까지 비판 대열에 가세해 <군함도>는 스크린을 독식한 대기업(CJ) 영화로 매도당했다.
그런데 사실 <군함도>가 먹은 욕에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스크린 숫자로는 가장 많지만 상영횟수 점유율로 따지면 56%로 최고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체 스크린 수가 늘었기 때문에 벌어진 착시현상이다. 지금까지 상영횟수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로 무려 68%에 달한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블록버스터 시즌마다 계속돼온 문제이기 때문에 한두 영화를 매장시키기보다는 공론화 과정과 법률 개정 등으로 차근차근 풀 필요가 있다.
<군함도>가 주춤한 사이 <택시운전사>가 <군함도>의 스크린 수를 넘겨받았다. 8월 6일 <택시운전사>가 확보한 스크린 수는 무려 1906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큰 욕을 먹고 있지 않은 것에 비하면 <군함도>는 무척 억울할 듯하다. <군함도>는 스크린 독과점의 최전방에서 혼자 욕을 뒤집어 쓴 셈이다.
그러나 잘 나가던 영화 흥행에 폭탄을 터뜨린 결정적인 한 방은 '역사왜곡 논란'이었다. 처음엔 영화 속에서 군중이 촛불을 들고 회의하는 장면이 ‘촛불시위’을 연상시킨다며 일베 등 극우집단에서 보이콧했다. 하지만 이는 다가올 '친일영화 논란'에 비하면 잽에 불과했다. <군함도> 관련 기사의 댓글에는 어김없이 역사왜곡에 관한 비판이 따라붙는다. 댓글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명량>에서 했던 애국마케팅 따라해 역사학자 나와서 강의 같은거 하고 대단한 역사물로 소개했는데 막상 뚜껑 여니 이상해서 역반응 나온거다.”
“기대했던 영화인데 실망. 역사영화도 아니고 왜 군함도에 가게되었는지 설명없이 그냥 군함도에 갇힌 사람들이 섬 탈출한다는것, 그것밖에 기억이 안난다.”
“일제강제징용 영화에서 나쁜 일본인만도 없고 좋은 조선인만도 없다? 세월호도 이런 식으로 그릴 건지 진짜 궁금하다.”
“변절자와의 싸움이 포커스였다면 군함도를 가져다 쓸 이유가 전혀 없었지 않나? 내가 아는 군함도가 이따위 스토리에 이용되었다는게 영화를 보는 내내 화가났다.”
아픈 역사를 조명하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양비론을 펼치는 영화라는 게 비판의 주요 내용이다. 필자 역시 <군함도>를 볼 때 윤학철로 대표되는 친일파 이야기가 전체 이야기 구조에서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당혹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관객의 댓글들은 이런 감정을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군함도>가 친일영화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관객의 이런 시각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군함도라는 소재를 배경으로 너무 이야기를 꼬아버렸기 때문에 역사왜곡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감독이야 군함도를 오랫동안 조사하다보니 익숙해졌을 수 있지만, 관객에게 군함도는 아직 미지의 섬이다. 그런 곳을 한국 역사의 축소판으로 담으려고 한 것 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관객 다수가 오해하는 상황이라면 분명 기획 자체의 문제다.
<군함도>의 역사의식에 대한 비판은 <택시운전사>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졌다. <택시운전사>의 댓글은 이례적으로 호평 일색이다. 영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는 글에도 오히려 글쓴이를 비판하는 댓글이 따라붙는다. 이는 <택시운전사>에 공감하는 관객이 대다수라는 뜻이다. <택시운전사>가 공감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군함도>와 정반대로, 5.18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아픔을 묘사하는데 논란이 될 만한 드라마를 전혀 집어넣지 않고 철저하게 관찰자적 시점을 유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서 힌츠페터 기자는 광주를 찾아가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는 왜 이런 사건이 벌어졌는지, 도대체 상층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취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건너 뛴 이 부분에서 어쩌면 논쟁거리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영화는 철저하게 시민들의 순수함과 희생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힌츠페터 기자가 시민들과 나누는 대화라고는 고작 매운 김치 먹고 구멍난 양말이 들통나 웃는 것뿐이다. “두유 노우 김치?”급 드라마가 사실상 <택시운전사>의 현주소지만, 관객은 심각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이러한 가벼움에 만족으로 화답했다.
이러한 관대함은 관객이 <군함도>에서 느낀 실망감을 <택시운전사>를 대안으로 선택함으로써 극복하려 한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군함도>가 일본군에 들러붙은 조선인도 일본군과 똑같이 욕해야 하는 상황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선악이 뚜렷한 <택시운전사>의 단순함이 오히려 각광받은 것이다.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가 역사를 오히려 꼼꼼하게 고증했고 거기에 픽션을 가미했다고 반박한다. 당연히 그에게 역사왜곡 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전작들의 기류만 봐도 그가 정의 구현에 목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군함도>가 오해받은 것은 관객이 잘못 이해한 탓일까? 무작정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관객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은 없다. 관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영화는 변덕스런 관객을 상대하는 상업예술이다. 의도를 몰라준다고 탓해봐야 소용없다. 창작자라면 알아서 잘했어야 한다.
<박열>의 다테마스 가이세이(왼쪽)와 박열
여기서 지난 6월 28일 개봉해 관객과 평단 모두로부터 호평받고 흥행도 성공한 <박열>을 떠올려 보자. 이 영화는 <군함도>의 반면교사가 되어줄 수 있다. 이 영화에는 <군함도>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단순히 악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박열을 심문하는 예심판사 다테마스 가이세이는 아주 너그럽고 착한 인물이다. 그는 박열과 후미코에게 친절을 베풀고 영화는 그를 사려깊은 남자로 그린다. 덕분에 박열은 큰 소리 치면서 형무소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박열>과 <군함도>의 차이점이 있다면, <박열>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차분해서 관객이 일본 제국주의과 일본인을 나눠서 생각해볼 여유가 있었던 반면, <군함도>의 친일파 묘사는 시종일관 자극적이어서 깊게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영화의 ‘온도차’가 두 영화에 대한 평가를 극단적으로 나눈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당초 <군함도>의 기세는 놀라웠다. 개봉 전 인지도는 압도적인 1위였고, 예매점유율은 70%에 달했다. 손익분기점인 관객 800만명은 물론 <명량>의 1700만명 기록도 깰 기세였다. 그러나 ‘입소문’이 모든 것을 주저앉혔다. 관객은 영민했다. 아닌 영화는 아니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일정 부분은 오해에 근거한 것이어서 <군함도> 입장에선 무척 억울한 측면도 있겠으나 관객이 그렇게 평가한 데에 나름대로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결국 <군함도>가 악소문에 주저앉은 이유는, 군함도라는 예민한 소재를 지나치게 상업적인 ‘천만영화 공식’에 집어넣으려고 한 기획의 실패이고, 픽션이 강한 장르영화이면서도 ‘역사영화’로 포장해 “군함도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며 애국심을 강조해 홍보한 마케팅의 패착이다. 군함도를 탈출영화로 ‘즐기기’엔 아직 그때의 상처가 온전히 아물지 않은 것이다. 적어도 <택시운전사>가 5.18이라는 역사적 비극에 대한 예의는 지킨 것과 대비된다.
그러나 <택시운전사>도 좋아할 것은 없다. 지금의 놀라운 흥행 스코어는 <군함도>의 반사이익으로 인해 얻은 측면이 크다는 것이 곧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는 <군함도>와 정반대로 지나치게 안이하다. 힌츠페터 기자의 회고록이라는 소재로 이처럼 평면적이고 단조로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스카우트> <26년> 같은 영화가 그리울 정도였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 올 여름 무거운 역사를 소재로 놓고 진검승부를 벌인 두 편의 흥행 대전은 이처럼 관객의 ‘입소문’에 의해 판가름났다. 영화를 띄우고 또 가라앉힐 수 있는, 관객의 힘을 증명한 여름이다.
>> 군함도 vs 택시운전사, 역사를 마주하는 두 방식
>> 37년전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지나친 안전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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