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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천만영화'를 노리는 <군함도>가 개봉 첫날부터 무려 97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질주하고 있다. 스크린 독과점, 수상한 평점 테러 등 논란 속에서도 예매율 70%, 좌석점유율 50%를 웃돌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260억원의 총제작비를 들인 <군함도>는 한국영화에서 나오기 힘든 규모의 영화다. 역대 한국영화 중 다섯 번째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됐는데(<옥자> <설국열차> <디워> 등 다국적 영화를 제외하면 <마이웨이>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손익분기점이 무려 관객 800만명에 달한다. <군함도> 정도 사이즈의 영화 제작이 가능해진 이유로는 관객 1700만명을 동원한 <명량>(2014)이 증명한 한국영화 시장의 확장 가능성, <베테랑>(2015)으로 1300만명 기록을 세운 류승완 감독(과 제작자 강혜정 대표)에 대한 믿음 등이 꼽힌다.



지금까지 200억대 예산을 들인 한국영화 <마이웨이>(280억원)와 <미스터 고>(225억원)는 일본과 중국 등 해외 시장을 동시에 겨냥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두 토끼를 모두 놓치고 흥행에서 참패했다. <군함도>는 민감한 소재와 중국의 사드보복 때문에 딱히 수출에 기대를 걸기도 힘들어 온전히 국내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래서일까? <군함도>는 절실함이 눈에 보이는 영화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흥행 잘 되는 요소들을 모아서 132분이라는 러닝타임에 꾹꾹 눌러담았다. 당초 영화의 의도가 숨겨진 역사를 고증하겠다는 것이었는지 혹은 군함도를 알카트라즈 같은 지옥 섬으로 보고 탈출극을 그리겠다는 것이었는지, 뭐가 우선인지 헷갈릴 정도로 영화는 리얼리티에는 관심 없이 익숙한 '흥행영화'의 길을 간다. <군함도>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을 살펴보자.



우선 잃은 것. 군함도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무한도전'이었다. 이 오락 프로그램은 2년 전 일제강점기에 지하 1000미터 탄광에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해야 했던 조선인 징용자들을 조명하고 방치된 위령비를 찾아 헌화하는 것으로 인공섬 하시마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비록 류승완 감독은 '무한도전' 이전부터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영화 <군함도>에 대한 개봉 전 높은 관심은 그 프로그램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영화는 군함도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던 진실을 알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군함도를 단지 폐쇄된 공간의 무대로 활용하는데 그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더 록> <영광의 탈출> <알카트라즈 탈출> 등의 영화가 연상되는데 이는 애초 <군함도>에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또 소모되는 배우들도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다. 배우들은 원래 갖고 있던 이미지를 답습한 배역을 연기한다.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이강옥 역의 황정민은 까불거리면서 딸을 끔찍하게 아끼는 모습이 <국제시장> 등에서 보여준 평소 황정민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무영 역의 송중기는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와 판박이로 어떤 장면에선 거의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다. 종로를 주름잡는 주먹 칠성 역의 소지섭은 <회사원> <영화는 영화다>에서 보여준 터프가이를 연상시킨다. 위안부로 온갖 고초를 겪는 말년 역의 이정현은 강인함과 로맨스 사이를 오가는 여성으로 평소 이정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영화가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관객이 캐릭터에 쉽게 동화되도록 돕기 위함이다. 덕분에 감독은 캐릭터 설명에 할애할 시간을 덜어 러닝타임을 알뜰하게 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선 배우들의 새로운 이미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 하나를 잃는 것이다. 오히려 이 영화의 신선한 연기 담당은 이미지 소비가 많지 않았던 아역배우 김수안이 맡는다.



하지만 잃은 게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 군함도라는 소재의 리얼리티에서 한 걸음 떨어지면, 재미와 의미를 적절하게 추구하는 상업영화로서 의도가 드러난다.


우선, 강렬한 스펙터클. 군함도와 탄광 내부를 재현한 춘천의 6만6000㎡ 규모 초대형 세트는 낭비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영화 속 군함도는 고립돼 있지만 곳곳에 다양한 시설을 갖춘 섬이다. 지하 1000미터 아래 탄광뿐만 아니라 계산식 선착장, 유곽, 아파트, 식당, 운동장, 석탄수송선 등 영화는 계속 무대를 바꿔가며 군함도라는 섬의 다양한 면모를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둘째, 롤러코스터 플롯. 영화는 소위 '국뽕'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순히 '일본인=나쁜놈' 공식만이 아니라 조선인들 내부의 갈등을 더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스토리를 풀었다. 덕분에 자칫 단순할 수 있었던 플롯은 흥미진진해졌다. 욱일승천기를 찢는 등 애국심에 호소하는 자극적인 장면도 없지 않지만 극의 흐름을 깰 정도는 아니다.


셋째, 강렬한 메시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베테랑>까지 류승완 감독이 즐겨 써온 메시지는 한결같다.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부러짐을 각오하고 맞서 싸우라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군함도>에서 절정에 달한다.




영화는 전반부에 조선인들 내부의 반목과 갈등을 담고 후반부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합해 싸우는 과정을 그리는데 슈퍼히어로 같은 개인보다 민중의 힘을 강조한다. 서로 의심하고 감시하고 싸우고 배신하던 조선인들은 함께 뭉칠 때 더 강해진다. 촛불을 들고 한 자리에 모인 조선인들은 난상토론 끝에 합의에 이르고, 총알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다함께 무거운 철제 사다리를 들어올려 탈출 희망을 되살린다. 군함도를 허구의 무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잠식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렬한 메시지다.


<군함도>는 역사영화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뜯어보면 익숙한 상업영화의 요소를 두루 갖춘 영리한 영화다. 거대한 세트를 꼼꼼하게 활용하는 스펙터클, 롤러코스터 플롯, 공감가는 메시지 등이 역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살아 있다. 사실 이는 명량, 암살, 광해 등 기존 천만영화가 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과연 <군함도>가 200억원대 영화의 저주를 깨고 천만영화에 안착할 수 있을지 지금 한국 영화계의 이목은 온통 이 영화에 쏠려 있다.


군함도 ★★★☆

의외의 탈주극. 역사는 거들뿐. 부러져도 맞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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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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