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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 여름시장 구도는 2014년을 연상시킨다. <군도> <명량> <해적>이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해 최고 기대작이던 <군도>가 주춤하고, <명량>이 예상보다 더 질주하고, <해적>이 최대한 힘을 뺀 코미디를 강점으로 의외의 성공을 거둔 그 해 여름 말이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승부는 <군도>와 <명량>의 데자뷔처럼 보인다. 처음엔 <군함도>에 눈길이 쏠렸지만 이젠 <택시운전사>가 오히려 ‘천만영화’가 될 기세로 관객 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해적> 역할을 맡은 영화는 무엇일까? 단연 <청년경찰>이다. 둘 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배급작이고, 또 무거운 역사 영화 사이에서 최대한 가벼운 코믹함으로 승부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청년경찰>에는 나쁜 경찰, 위장잠입, 배신하는 첩자, 연쇄살인범, 갑질하는 부유층 등 기존 경찰영화의 단골소재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격투신은 많지만 죽는 사람도 없다. 대신 이제 막 경찰이라는 직업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청춘의 열정, 집념, 진심이 있다.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기 힘들다는 말이 있지만, 때로 물이 너무 혼탁해지면 갈아줄 필요도 있다. <청년경찰>은 그런 영화다. 한국영화의 단골 장르 중 하나인 '경찰영화'를 리부트하는 듯한 영화다.



꿈을 저당잡힌 채 술에 취해 '꽐라'가 되는 청년들을 맑은 터치로 그린 인디영화 <코알라>(2013)의 김주환 감독은 박서준과 강하늘이라는 두 톱스타를 캐스팅한 <청년경찰>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한다. "돈도 못 버는 경찰 뭐하러 해?" 옥타곤 클럽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 모욕에 가까운 핀잔을 들으면서도 두 경찰 지망생들은 러닝타임 내내 있는 힘을 다해 동분서주하며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스토리는 거의 진공상태와 다름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경찰>은 오히려 낭만적일만큼 순수해서 더 신선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영화는 경찰대학 입학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메두사라는 별명의 교관 주희(박하선)의 구령에 맞춰 학생들은 제식훈련을 받고, 체력을 기르고, 협동심을 배운다. 흙수저 집안의 대범한 기준(박서준)과 서울과학고 출신의 꼼꼼한 희열(강하늘)은 룸메이트에서 단짝 친구가 된다. 서로 누가 잘생겼나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PC방에서 오버워치 슈팅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여자 앞에선 한없이 어리바리해지는 모습 등은 이 시대 평범한 남자 대학생의 모습 그대로다. 두 사람은 청춘사업을 위해 외박을 나갔다가 납치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학교에서 배운대로 사건을 추적해가기 시작한다.


<코알라>가 비현실적으로 밝은 분위기 속에서도 청춘이 공감할 현실을 담아낸 비결 중 하나는 구체적인 현실 묘사에 있었다. 영화에는 알바생들의 시급부터 햄버거 패티 원가, 임대료 협상 범위 등 구체적인 금액이 오갔고, 덕분에 영화는 실제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청년경찰>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두 청년을 (비현실적인 외모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학생으로 묘사하는 것과 더불어, 경찰대학 생활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기준과 희열은 입학 첫날 이발하고, 배식 받아 밥을 먹고, 양교수(성동일)로부터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는데 영화는 이러한 일상적 장면들을 무리하게 과장하지 않아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기준과 희열이 찾아간 경찰서에선 사건이 접수돼도 인력이 부족해 곧바로 처리되지 못하고, 대포차량은 차량조회가 불가능해 당직자가 CCTV를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등 경찰 수사의 현주소가 여과없이 드러나기도 한다.




기준과 희열은 납치사건의 '크리티컬 아워(피해자가 살해될 확률이 높은 시간)'인 7시간(세월호 7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안에 어린 소녀들을 구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아직 어린 소녀들이라고요. 우리가 구하게 해주세요." 두 사람은 절규하며 양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희는 학교로 돌아가"이다. 아무리 급해도 지켜야 할 절차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청년은 물러서지 않는다. 납치된 소녀들이 눈에 아른거려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서다. 그전까지 왜 경찰이 돼야 하는지, 경찰대학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던 두 청년은 비로소 경찰이 되려는 이유를 깨달아간다. (어쩌면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자들이 인권에 대한 공감 능력을 요구받고 있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대변한다.)


영화는 세월호를 모티프로 쓰면서까지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질타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고발 영화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시스템은 문제가 있지만, 무능하지는 않다는 게 이유다. 그 대신 영화는 (보수적인 방식으로)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화해를 시도한다. 기준과 희열은 "학교에서 배운 게 쓸모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양교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양교수도 이에 화답한다. 눈 앞의 증거와 범인을 보고도 아무 것도 못할 정도로 시스템은 일견 불합리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스템은 수많은 이해관계 조정의 산물이다. 기성세대의 생활방식에는 쌓인 시간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청년경찰>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모두를 배려하는 영화다. 그래서 젊은 세대도, 기성 세대도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 1980년대 인기 시리즈인 <폴리스 아카데미>처럼 학교 안에서 사나운 교관과 학생 사이에 벌어지는 코믹함을 강조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리쎌 웨폰> <잠복근무>처럼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우정을 쌓는 경찰 버디영화의 요소도 있다. 홍콩영화 <영웅본색> <무간도> 등에서 잠깐 등장한 적 있는 경찰학교의 낭만과 <블루스 브라더스> <엑설런트 어드벤처> 등을 연상시키는 두 남자의 코믹한 액션이 영화를 끌고가는 두 추력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있다. 영화의 범죄 소재가 어울리지 않게 꽤나 자극적이라는 것이다. 기준과 희열은 지나가는 여성인 윤정(이호정)에게 한밤중에 작업을 걸기 위해 접근하려다가(스토킹을 연상시키는!) 그녀가 납치되는 것을 목격한다. 윤정이 끌려간 곳은 납치해온 여성들에게 과배란 주사를 놓고 강제로 난자를 추출하는 범죄집단의 은신처다.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되는데 그곳은 영등포구 대림동이고, 범인들은 어김없이 조선족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여성을 노린 '묻지마 범죄'가 기승하고 있는데, 영화는 이를 너무 안일한 방식으로 자극적인 소재로만 이용한 것 같아 안타깝다. 남자들의 순수한 우정을 강조하는 영화에 굳이 여성들의 고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소재를 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청년경찰 ★★★☆

백투더 순수, 한국 경찰영화의 리부트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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