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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혹은 휴가 시즌을 맞아 다들 떠날 준비 하고 계신가요? 올 여름에는 큰마음 먹고 유럽여행 계획 잡아 놓으신 분도 계시겠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미리 분위기 슬쩍 보고 가시라고요. 영화로 떠나는 가상 유럽여행입니다. 서유럽 투어의 황금코스인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로 떠납니다. 안전벨트 매셨죠? 비행기 출발합니다.
<로스트 인 파리> - 파리에서 노숙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다
사랑의 도시 파리, 한여름 센 강변을 따라 걷노라면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죠. 설레는 만남을 기대하면서요. 운명의 남자가 노숙자면 뭐 어때요. 여긴 파리잖아요!
피오나(피오나 고든)는 캐나다의 아주 추운 지방에 사는 여자입니다. 어느 날 파리에서 30년을 산 마르타 이모에게 편지가 옵니다. 요양원에 가게 생겼으니 파리로 와서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피오나는 자신의 키만큼 커다란 빨간 배낭을 메고 비행기에 오릅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파리에 도착한 피오나. 이곳은 캐나다와 달리 눈보라도 치지 않는 한여름입니다. 피오나는 지하철에서 몇 번이나 헤맨 끝에 이모의 집에 도착하지만 이게 웬걸, 이모가 집에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센 강 다리 위에 섰는데 배낭이 휘청거리더니 강물에 빠지고 맙니다.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된 피오나는 오갈 데 없는 국제미아 신세가 됩니다. 무료 식권을 얻어 식당 구석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춤을 추자고 하네요. 괴로워 죽겠는데 무슨 춤? 그런데 이 남자, 피오나를 잡아끕니다. 생긴 건 마음에 안 드는 데 의외로 꽤 다정한 스타일이네요. 신나게 스텝을 밟고 나서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어라, 이 남자가 입고 있는 옷과 지갑이 굉장히 낯익습니다. 모두 잃어버린 배낭 안에 들어있던 물건인 것입니다. 피오나는 노숙자인 이 남자 돔(도미니크 아벨)을 쫓아가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다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배낭을 되찾은 피오나는 이모를 찾아 나서고 돔 역시 미안한 마음에 피오나를 돕습니다. 이모와 비슷한 댄서였던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에 혹시나 싶어 장례식을 찾아간 두 사람은 그곳에서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에펠탑 꼭대기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사랑을 확인합니다. <퐁네프의 연인들>에 이어 또 한 번 파리 노숙자 커플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피오나와 돔은 호흡이 척척 맞습니다. 때론 만담 콤비처럼, 때론 과장된 동작의 슬랩스틱으로 춤추듯 연기해 영화 내내 미소가 지어집니다. 알고 보니 피오나와 돔을 연기한 두 배우는 영화의 공동 감독이자 실제 부부라고 하네요. 두 사람은 <룸바>(2009), <페어리>(2012) 등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를 함께 만들어 왔습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그림처럼 예쁘고 밝은 분위기로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입니다. 피오나와 돔의 여정을 따라 센 강 주변의 파리를 둘러볼 수도 있고요.
두 사람은 결국 마르타 이모를 찾게 될까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마르타로 등장하는 할머니는 <히로시마 내 사랑>(1959)으로 한때 ‘누벨바그의 여신’으로 불렸던 엠마누엘 리바입니다. 그는 <아무르>(2012)에서 병들어 가는 아내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리바는 올해 1월 세상을 떠나 <로스트 인 파리>는 그의 유작이 되었습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바르셀로나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랑
바르셀로나만큼 매혹적인 도시도 없을 겁니다. 감탄사가 튀어나오는 가우디의 멋진 건축물, 가로수가 늘어선 람블라스 시가지, 간판이나 가로등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디자인, 지중해를 바라보며 맞는 시원한 바람까지. 발견하는 재미에 떠나기가 아쉬운 도시입니다.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와 비키(레베카 홀) 역시 바르셀로나에 푹 빠진 여성입니다. 미국인인 두 사람은 여름휴가차 들른 바르셀로나에서 카사밀라, 구엘공원, 펠립 네리 광장, 스페인 광장을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매력적인 화가 후안 안토니오(하비에르 바르뎀)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 후안의 전처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가 합세하면서 이야기는 한 남자와 세 여자 사이의 복잡한 연애 이야기로 흐릅니다.
먼저 이 영화의 한국 제목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삼류 불륜 영화 같은 느끼함부터 바로 잡고 시작할게요. 영화의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입니다. 전혀 느끼함이 없죠? 영화 수입사는 대체 왜 제목을 저렇게 바꿨는지 짜증이 날 지경입니다. 아, 물론 하비에르 바르뎀이 조금 느끼하게 생긴 남자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제목은 심했습니다.
단짝 친구인 비키와 크리스티나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비키는 낭만보다는 이성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이고, 크리스티나는 사랑 앞에 용감한 여성입니다. 대학원생인 비키는 능력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반면, 아마추어 영화감독인 크리스티나는 자유를 즐기는 솔로입니다.
후안은 비키와 크리스티나 모두에게 데이트를 청합니다. 비키는 후안이 바람둥이라며 거부하지만 크리스티나는 그에게 끌립니다. 비키가 남자친구와 결혼하러 간 사이 크리스티나는 후안과 동거를 시작합니다. 비키 역시 남자친구보다 매력적인 후안이 자꾸만 눈에 밟히기 시작하는데 크리스티나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후안에게 동거하는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이죠.
후안의 동거녀는 그의 전처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자기 내면의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툭하면 집을 나가 방황하는 여성입니다. 후안은 당황하는 기색 없이 크리스티나에게 마리아를 소개시켜줍니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크리스티나 역시 마리아가 꽤 멋져 보여 그녀와도 사랑에 빠집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꼭 한 사람만을 향해야 할까요? 영화는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사회적 규범이 한 사람만을 사랑하도록 억누르고 있다는 것이죠. 사회적 규범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바로 비키입니다. 반면 자유분방한 크리스티나는 후안과 마리아를 동시에 사랑하게 됩니다. 후안은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함께 살면서 예전에 마리아와 단둘이 살 때는 맛볼 수 없던 평화로운 감정을 만끽합니다. 크리스티나와 마리아의 관계가 위태로웠던 양극 구도를 '삼각균형'으로 바꿔준 것이죠.
자극적일 수도 있는 소재입니다만 영화는 꽤 차분하고 지적이어서 설득력이 있습니다. 적어도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라는 제목처럼 막나가는 영화는 아닙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유럽 시리즈 중 하나로 2009년 작입니다. 하비에르 바르뎀과 페넬로페 크루즈는 이 영화를 찍으며 사랑을 키워 2010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스칼렛 요한슨은 영화와 달리 당시 라이언 레이놀즈와 결혼해 있던 시기였고요.
<로마 위드 러브> - 로마의 그 오페라는 희극일까 비극일까
아마도 유럽에서 가성비 뛰어난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로마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줄리아 로버츠는 마음껏 먹기 위해 사표를 내고 아예 이탈리아로 떠나기까지 했을까요. 게다가 로마에는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다양한 유적들도 즐비합니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인 곳이죠. 먹고, 마시고, 눈도 호강하고 게다가 잘생긴 남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곳이 로마입니다. 당장 떠나지 않을 이유가 더 남아 있나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네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코미디입니다.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등 로마의 관광 명소들이 소개되고 있어서 로마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후에 보면 좋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에서 휴가를 보내던 미국인 건축가 존(알렉 볼드윈)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은 건축학도 잭(제시 아이젠버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잭은 여자 친구가 있지만 이탈리아에서 새로 만난 모니카(엘렌 페이지)에게 끌리고 있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털어놓는데 존은 잭의 이야기가 자신의 옛날 고민과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존과 잭이 만나는 장소는 트라스 테베레, 잭과 모니카가 사랑을 나누는 곳은 보르게세 공원, 이들이 야간 산책을 즐기는 곳은 나보나 광장, 파스타 재료를 구입하는 곳은 캄포 데이 피오리 광장이니 적어놓고 이들의 데이트 코스를 따라가 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두 번째 에피소드는 어느 날 눈 떠보니 스타가 된 평범한 로마 시민 레오폴도(로베르토 베니니)의 이야기이고, 세 번째 에피소드는 갓 결혼한 안토니오가 사라진 신부 밀리를 찾아 로마 골목길을 헤매는 이야기입니다. 안토니오는 우연히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나 첫날밤을 아내가 아닌 낯선 여자와 보낼 위기(?)에 빠집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네 번째 에피소드입니다. 이야기는 미국인 오페라 감독 제리(우디 앨런)가 딸의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위 될 남자의 아버지는 평생 장의사로 살아왔다는데 알고 보니 그의 노래 솜씨가 수준급입니다. 제리는 직감으로 그를 오페라 무대에 세우면 놀라운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노래 솜씨가 단지 샤워실에서 샤워할 때만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제리는 이 놀라운 신인 가수를 무대에 세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짭니다. 영화는 깜짝 놀랄 만한 엔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는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입니다. 현실과 연극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내를 찔러 죽이는 광대의 비극을 그린 오페라입니다. 광대는 다른 남자에게 아내를 빼앗기고도 무대에 올라 웃어야 하는 자신의 삶을 노래하며 절규합니다. “의상을 입어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울려 퍼지는 아리아가 바로 이 아리아입니다.
광대의 사연이 맞물려서인지 이 에피소드는 왠지 우디 앨런 감독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은 코미디인데 이 오페라가 나오는 장면만큼은 꽤 슬픕니다.
파리, 바르셀로나, 로마로의 가상 여행 어떠셨나요? 모쪼록 즐거운 여행이셨기를 바랍니다. 바로 떠나고 싶어졌다고요? 가이드로서 뿌듯하네요. 마지막으로 팁을 하나 드릴게요. 파리로 가신다면 센 강변을 따라서 걷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왜 예술가들이 그토록 그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지 느낄 수 있으니까요. 바르셀로나로 가신다면 비키와 후안이 보던 클래식 기타 공연을 놓치지 마세요. 철벽같던 비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정도로 로맨틱하니까요. 혹시 로마로 가신다면 구슬픈 오페라 ‘팔리아치’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SK하이닉스 하이라이트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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