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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순실을 패러디한 그림 ‘더러운 잠’ 국회 전시 논란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꽉 막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9년 간 사회가 지나치게 보수화된 나머지 이 정도의 패러디도 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랄까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점점 개방화되던 사회가 어느 순간 문을 걸어 잠그더니 모든 것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바라보게 된 듯합니다.
‘더러운 잠’이 정말 여성을 비하하는 그림인지, 또 정작 이 논란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될 진짜 문제점은 뭔지 살펴보겠습니다.
'더러운 잠'
1. ‘더러운 잠’은 정말 여성 비하일까?
‘더러운 잠’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합성한 그림에 박근혜, 최순실, 세월호 등을 콜라주해 만든 그림입니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1510)는 누워 있는 여인의 나체를 그린 최초의 작품이고, 마네의 ‘올랭피아’(1865)는 여성 모델로 귀족이 아닌 창녀를 택한 첫 작품이자 여성의 시선이 당당하게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을 향한 첫 작품으로 미술사적 의의를 가집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1865)
조르조네 '잠자는 비너스'(1510)
이런 배경을 생각하며 ‘더러운 잠’이 여성을 비하하고 있는지 따져봅시다. 여러 정당의 여성의원들과 각종 여성단체에서 제기한 문제점은 누드화에 박근혜 얼굴을 합성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박근혜의 온갖 실정은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닌데 이 패러디는 여성성을 부각하고 있어 문제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그림이 창녀인 올랭피아 몸에 박근혜 얼굴을 합성했다면 여성비하라고 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대통령을 창녀에 비견한 것은 심했고 또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더러운 잠’의 작가는 ‘올랭피아’가 아닌 ‘잠자는 비너스’의 몸을 떼와서 박근혜의 얼굴과 합성했습니다. 박근혜의 얼굴 역시 올랭피아처럼 정면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잠자는 비너스처럼 잠들어 있습니다.
작가는 창녀가 아닌 비너스를 오브제로 활용했고 여기서 가져온 코드는 ‘잠을 자는 행위’ 그리고 비너스가 상징하는 ‘미모’입니다. 즉, 세월호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박근혜는 잠을 자고 있었고 비너스처럼 미모에만 신경 썼다는 것을 강조한 패러디입니다. 이것을 여성 비하라고 볼 수 있을까요?
박근혜가 세월호 당일인지는 모르겠으나 2014년 4월 16일 전후로 피부 미용 시술한 것은 상당 부분 이미 밝혀진 거의 팩트이고, 이는 비너스처럼 예뻐지기 위함이었을테니 ‘잠자는 비너스’의 얼굴에 박근혜를 대입한 것은 정도를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작가는 애초 그림에는 드러나 있던 여성의 성기 부분을 강아지로 가리고 있기까지 합니다.
비너스가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듯 이 그림 역시 비하가 아니라 한 사람을 조롱하기 위한 그림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더러운 잠’이 여성 비하 혹은 여성 혐오라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주장입니다.
국회에서 열린 '곧, BYE 展'에 출품된 '더러운 잠'
2. 전시 장소가 국회여서는 안 됐나?
‘더러운 잠’이 국회에 전시되기 시작한 것은 1월 19일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된 것은 23일부터입니다. 전시된 여러 작품들 중 한 보수신문에서 이 작품을 콕 집어서 문제를 제기했고 그러자 사건이 커졌습니다.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견제하는 여러 당에서 “때는 이때다” 하며 들고 일어났고, 유력 대선 주자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맞물려 전시회 장소를 지원해준 표창원 의원은 떠밀리듯 사과했습니다.
모두가 불을 켜고 우리 편이 실수하지 않기를, 또 상대편이 헛발질 하기를 기다리는 시대, 편가르기가 일상이 된 시대의 씁쓸한 단면입니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는 “표창원 네 마누라도 벗겨주마”라는 푯말을 들고 나타났는데 이분들은 ‘여혐’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분들 같습니다.
새누리당 전국여성의원협의회 기자회견
표창원 의원은 서울민미협으로부터 전시회를 할 수 있도록 국회에 장소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문제가 커진 이유 중 하나는 ‘여혐’ 논란과 더불어 이 그림이 걸린 장소가 국회이기 때문입니다. 국회의원이 나서서 국회에 걸었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국회의원이 왜 상대편 당의 당원인 대통령을 그림으로 공격하느냐는 것이죠. 그것도 점잖지 못한 방식으로요.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마네의 '올랭피아'에 부시 대통령과 하퍼 총리의 얼굴을 합성한 그림이 공개된 적 있지만 별 일 없었습니다. 당사자들은 기분은 나빠도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국회에서 전시됐다고 해서 반응이 달랐을까요? 글쎄요.
케이티 디드렉센 '레저남, 킹 조지'(2004)
마가렛 서덜랜드 '스티븐 하퍼 누드'(2012)
'더러운 잠'을 이야기할 때 누드 합성이 지나치다는 지적과 더불어 사람들이 국회라는 전시 장소를 문제 삼는 이유는 이것이 한국의 문화 중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지켜야 할 선,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 요구되는 선을 넘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이죠.
국회라는 장소가 신성한 곳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0여년 전엔 넥타이 안 매고 면바지 입고 국회 출석한 한 국회의원에게 "여기가 어딘줄 아느냐"고 사퇴하라며 한 바탕 난리를 피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번 전시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합니다. 박근혜가 엄청난 비리 백화점이었다는 것이 알려진 요즘에는 특히 그 정도가 더 커졌죠. 적어도 우리가 뽑은 사람은 우리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한국인의 문화 중 이런 게 있습니다. 성에 대한 엄격함, 튀지 않는 회색 선호, 체면 중시 등이요. 한국인은 성에 대해 엄격합니다. 남녀7세부동석으로 상징되는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오래 남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성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매우 터부시됩니다. 금기를 깨려는 선구자들이 있어왔지만 별로 바뀌지 않았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금기를 깨려고 해봤자 튄다고 하며 배척해왔습니다. 러브호텔과 등산 동호회에서 수없이 불륜과 일탈을 저지를지언정 체면을 중시해 다른 사람의 성생활에는 유교시대처럼 엄격합니다. 마찬가지로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도덕군자이길 바라죠.
이런 문화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아왔는데 비판만 하면 누워서 침 뱉기 밖에 안 되겠지요. 다만 이 사건에서는 우리 안의 이런 의식이 작용해 ‘더러운 잠’의 국회 전시는 논란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는 신성한 곳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남사스런 그림은 안 된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에둘러 국회를 전시 장소로 택한 것을 비판하는 것이죠. 하지만 국회는 국민의 대표가 모여서 갑론을박을 벌이는 '아고라'이지 결코 '신성한 곳'은 아닙니다. 무슨 주장이든 여기서 나오고 공론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3. 표창원의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표창원 의원에게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표창원 의원은 한국의 국회의원입니다. 한국인이 선출해 권력을 위임한 헌법기관입니다. 그는 미국이나 캐나다의 의원이 아니라 한국의 의원이자 한국인의 대표입니다. 그는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성에 억압적인 한국인의 문화가 문제이고, 이를 표현의 자유를 통해 바꾸자는 주장은 개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기관은 신중해야 합니다.
정치인은 문화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개선할지 방법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중 국회의원은 그 일을 잘 하라고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헌법기관입니다.
표창원의 이번 전시는 한국의 국회의원으로서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떤 전시를 도와주는 ‘개인’이 아니라 만약 전시가 어떤 불합리한 제도에 의해 막혀 있다면 이를 공론화해서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헌법기관’이니까요. 국회의원은 법을 만들고 없애기 때문에 막강한 힘이 있습니다. 개인의 역할과 헌법기관으로서 역할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전시회를 지원함으로써 자신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것을 알려 자신의 정치적인 자산으로 삼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의도가 실제로 있든 없든 정치인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으로 해석됩니다.) 이는 법제도 개정의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궁여지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으로써는 가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충분히 제도적인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1당이기까지 합니다.
그림이 전시 장소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이 민원 해결하듯 나서서 그의 정치적 자산으로 삼으려 할 것이 아니라 국회 내에서 전시하는 것이 옳은지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수단체에 의해 뜯겨나간 '더러운 잠'
이 글의 결론입니다.
‘더러운 잠’은 애초에 문제가 될 그림은 아닙니다. 여성 비하나 여성 혐오로 보기 힘듭니다. 겨냥하는 대상과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러운 잠’은 정치적인 이익을 노리는 특정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커다란 사건이 되었습니다. 토론은 실종되고 고함만 난무합니다. 사건을 키우려는 쪽이나 덮으려는 쪽이나 모두 오로지 지지율과 표만 생각하다보니 나온 진행과정입니다.
한국의 문화는 성에 대해 엄격합니다. 보수정권에 억눌려 표현의 자유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아직 이 그림의 수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문화를 바꾸고 표현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을 개인은 주장할 수 있지만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공론화와 토론, 그리고 법제도 개정을 통해 풀어야 합니다. 표창원 의원은 더 이상 개인이 아닌 한국인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입니다. 헌법기관은 사사로이 권력을 특정 단체를 위해 사용해선 안 됩니다. 전시회를 열도록 장소를 지원해줄 것이 아니라 어떤 제도상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고치도록 공론화하는 것이 더 올바른 조치였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든 싫든 ‘문화’는 정치의 영역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화가 정치를 바꾸면 바꿨지 그 역을 시도하면 역풍을 맞지요. 앞으로도 정치 신인 표창원 의원은 자신이 개인이 아닌 헌법기관이라는 것을 혼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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