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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능이 끝났습니다. 무사히 시험을 치른 여러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지난 15일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갑작스럽게 연기되자 소셜미디어에선 "99년생은 비운의 세대"라는 글이 화제로 떠올랐습니다. 세기말에 태어난 여러분은 밀레니엄 베이비에 밀려 주목을 덜 받았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신종플루, 중3 때 세월호 참사, 고1 때 메르스가 유행해 수학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유례없는 수능 연기로 불운에 화룡점정을 찍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99년생은 61만 4000명가량입니다. 이들은 고3이 되기까지 교육과정이 네 차례나 개정됐고 초등학교에선 한국사를 배우지 않았는데 수능에는 한국사 과정이 포함돼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해야 했던, 제도 변경의 사각지대에 놓인 세대이다 보니 여러분의 넋두리에 공감이 갑니다.
23일 서울 여의도 여의도여고에서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이 활짝 웃으며 시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초에 만들어진 달력을 지금 보면 맞지 않는 날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대통령 선거일이고 또 하나는 수학능력시험일입니다. 최근 한 세대 동안 바뀐 적 없는 두 개의 날이 올해는 동시에 바뀌었습니다. 부정부패를 막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선거는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고 수능은 개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날이기에 두 개의 날이 동시에 바뀐 사건은 곱씹어볼 만합니다.
여러분이 중3이었을 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때 우리 사회에서 '세월호'는 한동안 금기어였습니다. 극심한 대립이 이어졌고 어떤 이는 진상규명을 위한 단식투쟁을 하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을 하는 비인간적인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효율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키고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심지어 희생자를 놀려대는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고3이 된 여러분에게 또다시 시련이 닥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는 여론의 변화 흐름을 보면서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처음엔 "왜 포항 때문에 서울에 사는 우리가 시험을 미뤄야 하느냐"며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 소리는 점점 묻히고 "포항의 친구들을 위해 일주일 더 기다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다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머지않아 여러분은 수능 결과를 놓고 희비가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겠지요. 수능은 여러분의 인생에 큰 분기점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에 이제 막 첫 발을 내딛는 여러분이 잠깐이나마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경험해볼 시간을 가졌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은 점점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여러분은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라면 대통령 선거일과 수능일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대에 세상에 나오게 될 첫 세대입니다. 여러분이 비운이라고 느낀 그 시간은 앞으로 닥칠 변화의 한가운데서 여러분을 더 강하게 해줄 것입니다. 부디 어떤 고정관념도 버리고 자유로워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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