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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845명.
<비밀은 없다>를 극장에서 본 관객 숫자입니다.
6월 23일 개봉 이후 1,246회 상영돼 20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올해 극장 총매출액의 0.2%에 불과한 수치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굿바이 싱글>이 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매출액 164억원을 벌어들인 것에 비하면 얼마나 흥행에서 참패했는지 알 수 있죠. 결국 2주만에 VOD 시장으로 직행하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뿐 아니라 평론가들도 극과 극으로 나뉘었는데요.
몇 개만 살펴볼까요?
이화정 - 이상한 여자가 아닌, 그렇게 보는 우리의 시선 ★★★☆
박평식 - 지나치면 독이 되느니 ★★
송경원 - 장르에 담을 수 없는 개성. 다르고 낯선 것을 앞둔 기분 좋은 당혹 ★★★★
이동진 - 모두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참석한 행사처럼 ★★
그러나 평론가들의 평가는 흥행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닌지 이미 오래됐고,
관객들의 호불호도 때론 논란거리가 되며 흥행요소로 작용하기도 하니 직접적인 흥행실패 원인은 아닐 겁니다.
스릴러라는 장르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5월 개봉한 <곡성>이 680만 관객을 불러모은 적 있고,
과격한 복수가 불편했다고 하기엔 박찬욱 영화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의 흥행 성공 선례가 있으며,
손예진의 티켓파워로 말하자면 기복이 있긴 하지만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타워> 단 두 편만으로 도합 1,37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한 흥행 퀸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죠.
사실 잘 된 이유를 꼽는 건 쉽지만 안 된 이유를 꼽기는 힘듭니다.
대중의 마음을 어느 누가 알겠어요?
그저 추측하고 짐작할 뿐입니다.
영화 마케팅하는 사람도 비슷한 심정일 겁니다.
물량공세를 퍼부으면 어느 정도는 관객이 들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은 전적으로 하늘에 달렸습니다.
그러니 <부산행> 배급사가 무리수를 둬가며 개봉 전 유료시사라는 명목으로 스크린을 1,253개나 잡은 것 아니겠어요?
<터널>은 이 영화 저 영화 눈치보며 아직도 개봉일을 잡지 않고 있고요.
한국영화의 홍보비는 대략 15억원으로 거의 모든 영화가 동일하기까지 합니다.
비슷한 돈으로 더 나은 효과를 내려니 머리를 싸맬 수밖에요.
어떤 영화도 안심할 수 없는 겁니다.
영화판은 결국 흥행이라는 결과로 말하는 법이니까요.
'안나 카레니나 법칙'처럼 흥행하면 다 묻히고 좋은 이유만 기억에 남게 됩니다.
<검은 사제들>이 대박을 치니까 제작과정의 불화가 온데간데 없고 결국 강동원 찬양만 남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문학계' '음악계'와 달리 '영화계'라고 하지 않고 '영화판'이라고 더 많이 쓰는 지도 모릅니다.
판돈이 걸린 도박이거든요.
그러면 이 판에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은 패배자로 사라져야만 할까요?
물론 작품이 형편없으면 그래도 마땅합니다.
<엽기적인 그녀 2> 같은 영화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라지기엔 분명 뭔가 더 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관객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혹시 관객이 오해해서 선택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싶은 영화들이죠.
올해 상반기에는 <비밀은 없다>가 단연 그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비밀은 없다>를 다시 보면서 이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한 이유를 제 나름대로 세 가지로 꼽아봤습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은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1. 영화의 내용과 마케팅의 부조화
이 영화를 소개하는 문구는 "유력한 후보, 사라진 딸, 15일간의 미스터리. 선거 D-15, 딸이 사라졌다!"입니다.
이 문구와 포스터를 통해 예상되는 이 영화의 장르는 '정치 스릴러'입니다.
정치적인 음모가 등장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로 긴장감을 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반부까지는 그런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딸의 죽음이 밝혀진 뒤로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됩니다.
<비밀은 없다>는 영화를 보기 전의 기대와 영화를 보고난 후 생각이 전혀 다른 영화입니다.
예상을 깨는 전개라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흥행 실패한 지금에서는 오히려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담지 못한 홍보라고 볼 여지가 다분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홍보했어야 할까요?
저도 모릅니다.
다 끝난 마당에 가정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생각을 말해본다면
모성애에 중점을 두고 홍보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딸을 잃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손예진의 감정을 따라가기 힘드니까요.
'딸이 사라졌다. 정신 차리자.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이런 문장을 카피로 썼다면 어땠을까요?
이 영화 속 손예진의 절절한 마음을 미리 느껴볼 수 있지 않았을지요.
2.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언밸런스
이경미 감독은 고집불통인 감독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해야만 오케이를 주는 감독입니다.
<비밀은 없다>에 감독의 인장이 강하게 묻어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많은 것을 지켜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여학생이 키스하는 동성애 장면 같은 경우 저라면 절대 넣지 않았을 겁니다.
이야기의 초점을 흐리니까요.
하지만 감독은 그것까지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대단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뭐, 감독의 욕심이 흥행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고집불통인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대박을 치는 걸 보면
능력있는 감독이 영화를 자기 스타일대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심은 흥행과 큰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입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흐름이 급격하게 다릅니다.
물론 감독이 의도했겠습니다만,
전반부에 보좌관과 운전기사와 경쟁하는 후보 등을 보여주면서 정치 스릴러처럼 보이게 만들더니
후반부에는 급격하게 커브를 돌려 학교 이야기로 바뀝니다.
그 과정에서 전반부에 딸 실종과 관련해 용의선상에 올라 있던 사람들이 후반부에는 별다른 비중 없이 사라집니다.
이럴거면 뭐하러 전반부를 그렇게 길게 보여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 버리고 러닝타임 10분 내에 딸이 실종된 지 며칠 만에 죽는 것으로 처리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손예진이 끈질기게 범인을 추적하는 후반부가 전반부보다 훨씬 생동감있고 재미있거든요.
3. 믿고 싶지 않은 엔딩
뒤통수를 친 것은 맞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김주혁이 '갑'으로 등장할 때 깜짝 놀랐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반전이 성공하는 경우는 그 반전으로 인한 놀람이 그 전에 깔아두었던 복선과 잘 맞아떨어질 때뿐입니다.
그 사람이 결국 범인이어서 그동안 미심쩍었던 부분이 깔끔하게 해소되는 경우(<유주얼 서스펙트>),
이 모든 것이 결국 유령의 이야기여서 과거에 두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는 경우(<식스 센스>)처럼 말이죠.
반전은 관객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속고도 즐거운 사람은 없습니다.
단, 그 속았다는 느낌이 감독이 정교하게 짜놓은 플롯 때문에 내가 몰랐던 거구나 라고 여겨질 때
한 수 위인 감독을 인정하는 경우만 있을 뿐입니다.
그때 관객은 비로소 기분 좋은 배신감을 느끼고, 이는 카타르시스로 이어집니다.
김주혁이 딸의 선생님과 바람을 피고, 협박하는 사람을 죽이라고 지시할 만큼 파렴치한 사람이라는 것을 반전으로 제시하려면,
그 전에 김주혁의 캐릭터에서 여자를 쳐다보는 눈빛이라든지, 누구를 죽이는 것에 거리낌 없는 냉혈한이라든지 이런 장면들이 충분히 있었어야 합니다.
물론 선거를 위해 아내와 싸우고 가정을 버리는 모습이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로 이런 무시무시한 반전을 납득하기는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도 관객은 이 반전에서 카타르시스까지 가지 못하고 배신감에만 머물렀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제가 이 영화를 혹평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하지만 저는 <비밀은 없다>가 올해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입니다.
글을 마치기 전에 이 영화의 장점을 간략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실종사건의 주변이 아닌 주체가 되는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
2. 증오와 모성애가 섞인 손예진의 전율스런 연기
3. 낯선 스타일을 스릴러에 과감하게 접목
4. 다음 장면을 예측하기 힘든 긴장감
5. 관습적이지 않은 카메라 앵글과 음악의 사용
결론은?
흥행은 영화의 단두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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