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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영화 관객이 있습니다.

좀비영화를 좋아하는 관객과 좀비영화를 못 보는 관객.


좀비라면 새벽에도 벌떡 일어나는 좀비마니아 Z양과

강풀의 좀비 로맨스 웹툰마저도 눈가리고 볼 정도로 좀비를 무서워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팬을 자처하는 A군이

<부산행>을 함께 봤습니다.


극장을 나서는 두 사람의 가상 대화를 들어볼까요?

(아주 약간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어요.)



Z양: 영화 완전 재밌더라. 드디어 한국에도 제대로 된 좀비영화가 나왔어.


A군: 나는 손에 땀이 흠뻑 젖었어. 재밌긴 했는데 앞으로 KTX는 절대 못 탈 것 같아. 너는 어떤 부분이 좋았어?


Z양: 일단 물량공세지. 좀비는 한두 명 나와서 서성거리는 것보다 이렇게 대규모로 쫓아올 때 짜릿하거든. <월드워Z>에서 벽을 기어오르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좀비들 같은 장면은 좀비가 아니면 그런 스펙터클이 나올 수 없지. <부산행> 후반부에 좀비들이 기차선로에서 떼거지로 쫓아와 기차에 매달릴 때 흥분되더라고.



A군: 어휴, 그 장면 생각만해도 소름끼친다. 그냥 거기서 영화가 끝났으면 했다니까. 나는 그 전에 기차라는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좀비들을 역동적으로 잡아낸 게 좋더라.


Z양: 맞아. <28일후…> 이후에 스피드가 빠른 좀비가 대세가 됐는데 <부산행> 좀비들은 사실 움직임 자체는 별로 빠르지 않지만 공간이 워낙 좁다보니 속도감이 대단하게 느껴져. 기차 안을 배경으로 설정한 게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인 것 같아. 영화에는 기차가 아닌 다른 배경은 거의 등장하지 않아. 기껏해야 방송 화면으로 잠깐 나올 뿐이지. 기차 안에서 정면승부를 펼치겠다는 전략 덕분에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돼. 화장실, 복도, 선반 등 기차 구석구석 알뜰하게 활용하고 있지. 물론 좀비들이 약점 많고 한 방 맞고 픽픽 쓰러지는 것은 실망스럽지만 뭐, 한국영화에서 좀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게 처음이라는 것을 감안해야겠지. 앞으로도 비행기, 버스, 터널 속에서 좀비영화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흐흐.



A군: 나는 사실 이 영화 보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어. 연상호 감독의 전작 <돼지의 왕> <사이비> 같은 애니메이션이 되게 세잖아. B급 정서를 기반으로 현실의 폐부를 강력하게 푹 찌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부산행>은 B급 영화가 아니라 1000만 관객을 노리는 여름 대작이니까 그런게 다 사라지지 않았을까 우려했지. 그런데 보고 나니까 기우였어. 연상호 감독만의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여전히 살아 있는 거야.


Z양: 어떤 부분에서?


A군: 예를 들어 분명히 좀비가 맞는데 방송에서는 계속 ‘폭력 시위’라고만 표현 해. 그리고 정부에서는 곧 안정을 되찾을테니 걱정 말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또 어른들 대부분은 자기 살 궁리만 하고 있어. 사투 끝에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고등학생 영국(최우식)이 갑자기 울면서 자책하는 장면을 보는데 문득 세월호 참사가 떠오르더라. 영화 속에 그 과정들이 고스란히 함축돼 있는 것 같아.



Z양: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래도 이 영화에서 기관사는 매번 충실하게 안내방송을 해준다는 것이 인상적이야.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잖아. 아마도 감독이 세월호에도 이런 기관사가 있었기를 바라면서 만든 캐릭터가 아닌가 싶어.


A군: 인간이 원래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평상시에는 모르다가 이렇게 위기에 처해야만 본모습을 알게 되잖아. 나는 좀비가 무서울 거라고 긴장하면서 봤는데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어. 인간의 이기심 말야.


Z양: 영화 시작하자마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원인이 등장하잖아. 바이오업체 공장에서 화학약품 누출 사고. 사실 좀비영화로서는 참 뻔한 클리셰라서 실망스럽긴 한데 거기에도 사회비판 의식은 담겨 있더라. 결국 이 사단이 날 거라는 걸 예측하고 주식을 모두 팔아버린 사람이 있다는 거 아냐. 다시 생각하면 참 무서운 오프닝인 것 같아. 좀비 마니아인 나도 이게 더 무섭다.


A군: 그 작전세력은 전화통화만 하고 끝내 나오지도 않지. <설국열차>도 그랬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이런 끔찍한 사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해.



Z양: 원래 좀비영화는 사회 비판에서 시작했어. 1968년 조지 로메로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을 찍을 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온갖 사회적인 터부를 집어넣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찍었잖아. 당시 사회 변혁의 분위기와 맞물려서 컬트 클래식이 됐고 말야. 이후로도 좀비영화 걸작들 보면 다들 체제 전복의 서사야. <시체들의 새벽>은 백화점에서 대놓고 자본주의를 조롱하고 있고. 좀비 자체가 무정부주의가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소재기도 해. 주인공은 아무도 믿지 못하고 ‘독고다이’로 싸우잖아.


A군: 맞아. 방금 전까지 친구였던 사람이 좀비에 물렸다는 이유로 갑자기 적이 되어버리지.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곳이 좀비영화의 세계야. 내 편 네 편 나누다가 결국 주위엔 아무도 없게 돼. 그런데 이런 영화를 대체 왜 좋아하는 거야?


Z양: 글세, 나의 경우엔… 통쾌해서? 현대인의 군중 속 고독을 정확하게 드러내 준 것이 좀비라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 있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냉혹한 경쟁사회에서 정신 번쩍 들게 하잖아. 요즘엔 좀비영화 스케일이 블록버스터가 되면서 무정부주의가 보수주의와 결합했어. 그래서 결국 지켜야 할 건 가족뿐이라는 뻔한 결론에 도달하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A군: <부산행>도 가족을 지키려는 이야기지. 아빠가 딸 데리고 엄마 만나러 가는 영화라는 점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과 닮았더라.



Z양: 정말 기존 흥행 대작들을 많이 참고한 것 같아. <괴물> <월드워Z> 등의 흔적도 느껴지고 말야. 그래도 가족 이야기가 이 정도면 아주 신파는 아니야. 계산기 꼼꼼이 두드려서 과하지 않게 부성애 코드를 집어 넣었어. 극장에서 보니 관객들이 많이 울더라. 너도 울었어?


A군: 눈물이 조금 났지. 많이는 아니야.


Z양: 배우들 연기는 어땠어?


A군: 정유미 표정이 좋았어. 마동석 액션도 시원시원했고.



Z양: 다른 배우는?


A군: 공유는 그다지 임팩트가…


Z양: 무슨 소리야? 우리 공유가… 공유에 대한 의견은 공유하지 말자.



A군: 이 영화 올해 첫 1000만 관객 노리는 한국영화인데 통할까?


Z양: 초반 흥행몰이가 대단해. 지금 기세로 봐선 1000만 우습게 돌파할 것처럼 보여. 좀비영화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 걱정해서 재난영화로 홍보전략을 짰던데 한국 사람들 새로운 거 빨리 받아들이잖아. 장르야 어쨌든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1500만 관객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


A군: 나는 한계가 있다고 보는 편이야. 엔딩이 아주 밝지만은 않잖아. <설국열차> 스코어인 900만 정도를 예상해 본다.


Z양: 전국 유료시사회라는 명목으로 변칙 개봉해서 공식 개봉도 전에 50만 관객을 쓸어 담았어. 주말도 안됐는데 벌써 200만 명이야. 최단 기간 1000만 관객 기록 쓸 기세로 달리고 있어. 지금까지 기록은 <명량>의 12일이야. 이 속도면 <부산행>은 10일만에도 가능할 것 같아.


A군: 영화 속 사회 비판과 달리 영화 자체가 변칙 개봉하면서 반칙하고 있는 건 아쉬워. 마치 영화 속 이기적 어른의 행동 같아.



Z양: 그러게. 원래대로 수요일 개봉했어도 충분히 흥행에 문제 없었을텐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마동석이 좀비가 돼서 쫓아오기라도 하나.


A군: 그러지마 무섭다.


Z양: 내 눈을 봐. 꺄아~ 내가 아직도 사람으로 보여?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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