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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소확행’ ‘워라밸’ 등 신조어를 만들어 유행시킨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최근 2019년 트렌드를 예측한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는 2007년부터 13년 연속으로 트렌드 예측 발표를 해오고 있는데요. 그해의 띠동물을 소재로 10개의 키워드를 만들어 붙이는 방식입니다. 올해는 개띠여서 ‘WAG THE DOGS’을 발표했었고요(http://rayspace.tistory.com/1043 참조). 황금돼지해인 내년의 키워드는 ‘돼지꿈 PIGGY DREAM’ 입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


트렌드 예측은 김 교수 혼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학생들과 젊은층으로 구성된 '트렌드 헌터'들이 한 달에 한 번 트렌드를 조사하고, 이것들을 취합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조사한다고 합니다. 올해는 8월 경에 10개의 트렌드를 만들었고 이를 보강해 10월 말경에 발표했습니다.


이 글은 김 교수가 최근 한 강연에서 한 이야기에 제 나름대로 살을 붙인 것입니다. 그는 소확행이나 워라밸 같은 단어는 어려워서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빨리 퍼져서 놀랐다고 하네요. 확실히 한국사회는 빠르게 변합니다. 2019년 한국사회를 보여줄 10개의 키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컨셉팅 (Concepting)


마케팅이 아닌 컨셉팅 시대입니다. 가성비나 품질보다 이젠 컨셉이 중요해졌습니다. 여행을 예로 들면 예전에는 어디를 가느냐가 중요했는데 이젠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투어에서 내놓은 ‘엄마와 딸의 사랑의 여행’ 시리즈가 인기를 얻었고요. 역사기행, 인문기행 등 테마여행 상품에 사람이 몰립니다.


전시회도 컨셉이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웨딩드레스 전시회, 날씨를 주제로 한 전시회 등 컨셉을 잘 잡으면 젊은 사람들이 옵니다. 스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컨셉이 더 중요합니다. 요즘 뜨는 영화나 TV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죠.


‘갬성’ 즉 개인화된 감성을 자극시켜주는 컨셉이 먹힙니다. 컨셉을 연출하는 ‘컨셉턴트’가 중요해진 시대입니다.



세포마켓 (Cell Market)


1인 미디어 시대가 확장하고 있습니다. 단지 홍보수단을 넘어 이젠 직접 판매까지 나선 인스타그래머들이 많습니다. 김 교수는 생산자가 곧 소비자가 된다는 앨빈 토플러의 ‘프로슈머(Pro-sumer)’ 개념을 차용해 직접 판매하는 개인을 ‘셀슈머(Sell-sumer)’라고 정의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더 고상한 단어가 있긴 하죠. ‘팔이피플’


유통의 측면에서 보면 1인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백화점이나 쇼핑몰 같은 대형몰이 아닌 ‘세포마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포마켓이 커지는 배경이 있습니다. 1인 미디어의 확산, 그리고 경제불황과 취업난입니다.



고용한파에 소위 ‘N잡러’가 늘어나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판매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영어, 요가 등 자신만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레슨 공지를 올립니다. 그러면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신청을 합니다. 기존에는 학원이라는 중개업소에 가야만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역시 세포마켓입니다.


옷 잘 입고 화장 예쁘게 하는 여성들이 인스타그램에서 뜨면 어김없이 협찬이 들어오고 이들 중 다수는 옷 판매, 화장품 판매를 시작합니다.


파워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닙니다만, 이들이 단지 홍보를 넘어 유통 기능까지 갖게 되었다는 것이 달라진 트렌드입니다. 상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아예 기획단계부터 파워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합니다.



뉴트로 (New-tro)


카세트 테이프, 80년대 나이키 신발, 50년전 기계식 시계 등 옛날 제품들이 돌아왔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레트로’입니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중장년층의 향수의 호소하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 레트로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젊은 사람들을 겨냥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카세트 테이프를 처음 보기 때문에 새롭다고 느낍니다. ‘뉴니스(Newness)’에 호소하기 때문에 ‘뉴트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뉴트로 제품들은 복고처럼 똑같이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롭게 만듭니다. 재현보다 재해석이 훨씬 중요합니다. 촌스러움을 넘어 멋스러워야 하고, 불편함이 쿨함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과거를 빌려 현재를 파는 것이 ‘뉴트로’입니다.



필환경 (Green Survival)


친환경을 넘어 필환경입니다. 과거 친환경은 하면 좋고 폼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필환경은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미세먼지 마스크처럼 말이죠.


무심코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떠 다니다가 바다거북이 코에 꽂힌 한 영상이 기폭제가 됐습니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돌고 돌아 다른 생명을 파괴하고 또 다시 우리의 몸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에 대해 자각하게 된 거죠.


쓰레기 없는 삶을 지향하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재활용을 사전에 고려하는 ‘프리사이클링(Precycling)’ 등이 운동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한 슈퍼마켓은 400여 개의 식료품을 포장 없이 진열합니다. 한국에서 커피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높은 것 역시 이런 트렌드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폐기물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의류, 염색과정에서 버려지는 방대한 물을 줄인 청바지 등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과정으로 생산된 제품을 구매하는 '컨셔스 패션(Conscious Fashion)'에 신경 쓰는 소비자도 많습니다.


반려인구 천만 시대가 되면서 동물의 복지가 곧 나의 복지라는 생각이 늘었고, 동물에 대한 배려가 달라진 것도 이런 트렌드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북극곰이 동물원에서 죽었을 때 애도 물결이 일어난 것도 과거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현상이죠.



감정대리인 (Proxy Emotion)


김 교수는 관찰예능과 카카오톡을 보다가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나혼자 산다’ ‘하트 시그널’ 등 관찰예능은 액자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패널이 있습니다. 패널의 역할은 단순 리액션 뿐입니다. 또 카카오톡에는 이모티콘이 넘쳐납니다. 예능의 패널과 이모티콘의 역할은 같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감정조차 외주를 주고 있습니다. 감정에 확신히 없고 감정 표현에 서투르기 때문에 이를 대신해줄 대리자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이를 ‘감정의 맥도날드화’ 혹은 ‘Emotion on demand’라고 표현하고 있네요.



감정대리인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자라면서 폭넓은 감정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컬링 부모들이 스위퍼처럼 앞길을 닦아주기 때문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감정들을 느낄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회에 나온 이들이 작은 일에도 쉽게 좌절하고 분노하고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핫플레이스의 힙한 카페나 바에 가면 네온사인으로 이런 문장을 볼 수 있습니다. ‘수고했어 오늘도’ ‘넌 회 먹을 때 제일 예뻐’ ‘잘 될 거야 걱정마’ 등등. 또 베스트셀러 에세이는 점점 감성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때론 유치할 정도로 감성적인 문장이 잘 팔립니다. 쉽게 상처받기 때문에 수시로 위로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은지 나쁜지를 떠나서 ‘대리감정’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데 서툴기 때문에 대리인이 필요합니다. 실생활에서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감성적인 문구에 쉽게 반응합니다.



데이터지능 (Data Intelligence)


인공지능을 넘어 데이터지능의 시대입니다. 의사결정의 패러다임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선 콘서트장에 나타난 한 지명수배자를 인공지능이 CCTV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포착해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30분 만에 검거돼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뺨치는 데이터 지능이 나타난 것이죠.


노르웨이의 양식장에선 연어에 안면인식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덕분에 어떤 연어가 먹이를 먹지 않았는지, 어떤 연어가 아픈지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돼 폐사율이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중국의 한 보험사에선 보험 가입할 때 안면인식 카메라가 촬영한다고 합니다. 데이터 인공 지능과 연결된 이 카메라는 얼굴의 표정을 보고 거짓말인지 아닌지 밝혀내는데 거짓말을 많이 하면 보험 할증료가 올라가고, 거짓말을 안 하면 보험료를 깎아주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고 하네요.



카멜레존 (Chamelezone)


낮에 옷가게였던 곳이 밤에는 펍으로 변신합니다. 사라진 줄 알았던 도서관이 다시 곳곳에 생겨나고 있습니다. 유동인구가 줄어 울상이던 코엑스는 별마당 도서관을 중심에 놓고 리모델링한 뒤 살아났습니다. 여전히 책은 안 팔리지만 도서관은 뜨고 있는 역설적인 현상이죠. 부산에 오픈한 한 호텔이 강점으로 내세운 것이 1층의 도서관일 정도였으니까요.


사람들은 곧잘 “갈 데가 없어”라고 푸념합니다. 근무시간이 줄고 여가시간이 늘어나면서 이런 경향은 더 확산될 것입니다. 진짜 죽은 것은 재미없고 변화하지 않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공간들은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가족 (Millennial Family)


1인 가구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족은 소비의 중심 축입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가 부부를 이뤄 만든 ‘밀레니얼 가족’은 기존 가정과 여러 측면에서 다릅니다. 이들은 가정을 ‘적정행복’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요즘 엄마를 드라마 제목에 빗대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라고 말합니다.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는 게 아니라 사주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남는 시간을 필라테스 등 자기계발 하면서 보내는 예쁜 엄마라는 것이죠.



라면 매출이 줄고 있고 가정간편식(Home Meal Replacement) 매출이 늘고 있습니다. 신선식품을 새벽 배송해주는 마켓컬리는 최근 급성장한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HMR을 많이 사는 계층은 1인 가구일 것 같지만 그보다는 주부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들이 요리를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당히 합니다. 그래서 ‘적정행복’입니다. 적당히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밀레니얼 가족은 가정 내 민주적이고 평등한 권력관계를 지향하면서도 이기적일 정도로 실리를 추구합니다. 가사일에서도 가성비를 신경 씁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요즘 초등학생들 일기장에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아빠’입니다. 그 전에는 모두 엄마와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적었는데 요즘 초등학생들은 아빠와의 일을 적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그만큼 아빠들이 시간이 많아졌다는 뜻이고, 또 아빠들도 ‘적정행복’을 가정에서 찾는 경우가 늘었다는 뜻이겠죠.



나나랜드 (Na Na Land)


‘욜로’ ‘소확행’에서 이어지는 내년의 트렌드는 ‘나나랜드’입니다. 영화 제목 ‘라라랜드’를 패러디한 이 단어는 ‘나’를 중시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못생겼지만 개성 있는 옷을 입는 ‘어글리 패션’, 나를 위한 소비 ‘미코노미’,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는 옷이 아닌 내게 맞는 옷을 찾아 입는 ‘탈코르셋’, 나는 씨발 나의 길을 간다 ‘나씨나길’,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복세편살’ 등이 ‘나나랜드’를 상징하는 단어들입니다.



매너소비자 (Manners Maketh the Consumer)


올해 노동의 이슈가 노동시간이라는 양적 이슈였다면 내년에는 이것이 질적 이슈로 확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하는데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감정적인 트러블입니다.


예전에는 손님이 무조건 옳았다면, 이젠 ‘고객 갑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비단 고객과 대면하는 서비스업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직종에 감정노동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모두 감정 소비자이자 감정노동자이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죠.



“변화란 단지 삶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삶 자체다.” - 앨빈 토플러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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