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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디지털 미디어.

누구도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그래서 누구도 함부로 정의할 수 없는 단어. 이 거대한 코끼리를 놓고 수많은 사람들이 팔과 다리를 만지고 있지만 누구도 코끼리의 형체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나름대로의 코끼리를 상상만 할 뿐이다.


지난 30일 한국언론재단이 프레스센터에서 저널리즘 컨퍼런스를 열었기에 다녀왔다. 미국, 노르웨이, 프랑스 등에서 온 미디어 전문가들이 각기 자신의 관점에서 새로운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발표했다. 필자는 이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필자 개인의 관점에서 뉴미디어라는 코끼리를 그려보고자 한다.



올드미디어는 죽었다. 이 말은 반쯤 맞고 반쯤은 틀렸다. 반세기 전 TV가 나올 때 신문은 사라질 거라고 했지만 반쯤은 살아 있듯이,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지 못했듯이, 월드와이드웹도 신문을 반쯤은 죽여놨지만 아예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분명 큰 타격이 있었다. 미국에서 신문사의 광고 수입과 저널리스트의 숫자는 1980년대 초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신문산업은 2000년에서 2006년 사이가 정점이었다. 당시 광고 수입은 500억 달러였고 저널리스트는 6만명이었다. 지금은 170억 달러, 3만명 대로 쪼그라들었다.



기업의 현금 창출 능력을 뜻하는 EBITDA는 1990년 13에서 10년 전엔 5, 이젠 3까지 줄었다. 신문사가 헐값이 되면서 종종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언론사주는 헤지펀드가 돈을 주면 언제라도 회사를 매각할 준비를 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에게 판 것은 한 예다. 실제로 2004년 이후 미국 언론사의 20%가 문을 닫았다.


신문산업이 쪼그라들면서 미디어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미국에선 지역신문이 사라지면서 언론 감시를 받지 않는 미디어 사막 지역이 급속히 늘고 있다. 그동안 미국에서 신문은 지역의 보안관 역할을 해왔는데 광역을 커버하는 디지털 미디어로는 이 역할을 대체하는데 한계가 있다. 영화 ‘로스트 인 더스트’를 보면 지역 경제가 망가지면서 범법자를 잡는 과정도 노쇠해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신문이 없으니 사건을 보도해야 할 기자도 보이지 않는다.


지역신문의 폐업으로 미디어 사막이 늘어가는 미국


신문을 보지 않는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간다. 지난 10년 동안 신문산업이 추락하는 급격한 변화가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에서 성공하는 몇 가지 미디어 모델이 탄생했다. 이들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보면 첫째, 뉴욕타임스 같은 정기구독 모델, 둘째, 프로퍼블리카 같은 비영리 기부 모델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뉴욕타임스는 2014년 혁신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미디어의 새 지형도를 개척했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디지털 퍼스트 전략, 편집국 내 전략팀 구성, 저널리즘 원칙 강화, 독자와 소통하기 위한 이벤트 개최 등이다.


그들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에 따라 신문은 온리 미디어에서 여러 미디어 중 하나로 가치가 축소됐고, 온라인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 포맷이 시도됐다. 텍스트와 비주얼을 혼합해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로젠탈 알브스 텍사스 대학교 교수가 테크놀로지에 따른 저널리즘의 변화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텍사스 대학교의 로젠탈 알브스 교수에 따르면 뉴욕타임스의 변화 중 하나는 연성 뉴스를 강화한 것이다. 푸드, 트래블 등이 뉴욕타임스의 주요 콘텐츠 중 하나로 올라왔다. 뉴욕타임스는 와인을 판매하고, 관광 패키지 사업을 하고, 독자의 집으로 음식을 배달해주는 사업도 한다. 이 사업들의 기반에는 뉴욕타임스의 뉴스 서비스가 있다. 그러니까 뉴스가 비즈니스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온라인 유료 독자는 2014년 1분기 80만명에서 2018년 2분기 240만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수입 중 구독료 비중이 60%에 달한다. 수입원 중 광고의 비중은 줄고, 독자의 정기구독 수입은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구독자 수 증가 현황


미국에서 줄어드는 신문산업 종사자 수



둘째, 디지털 혁신으로 인해 기존 언론 지형이 파괴되면서 오히려 프로퍼블리카, 텍사스 트리뷴 같은 비영리 언론이 늘고 있다. 비영리 언론은 미국에만 180개사가 있고, 2000명 이상의 저널리스트가 활동 중이다. 총 수입은 연간 3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디지털의 낮은 문턱은 저널리즘이 소규모로도 고유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이로 인해 자생적 비영리 언론이 생겨났다. 이들은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줄리아 카제 파리정치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신문의 광고수입 급감 그래프를 설명하고 있다.


‘미디어 구하기’의 저자 줄리아 카제 파리정치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미디어는 점점 개인 펀딩으로 운영되어 가고 있다”며 “100% 기부로 운영되는 프로퍼블리카처럼 수익이 뉴스의 품질로 재투자 될 때 언론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제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퍼블리카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 아리아나 토빈에 따르면 프로퍼블리카의 모토는 “언제나 나쁜 권력자에 대해 다루는 비영리 스토리 아울렛”이다. 그러니까 프로퍼블리카는 나쁜 놈(안티타고니스트)을 주인공으로 하는 스토리를 발굴해 소개한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공분을 사는 이야기가 많고, 그래서 시민들의 호응도 높다.


토빈에 따르면 기자들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그는 “우리는 후원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고 말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프로퍼블리카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프로퍼블리카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 아리아나 토빈이 Lost Mothers 기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프로퍼블리카는 취재 과정에서 이 같은 시민들의 신뢰를 적극 활용해 그들을 더욱 참여시키려 한다. 더 많은 사람이 스토리에 공헌할수록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스토리가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토빈은 이를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프로퍼블리카의 ‘Lost Mothers’ 기획은 시민들의 참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기사다. 아이를 낳다가 죽는 엄마들이 곳곳에 있는데 누구도 원인을 몰랐다. 기자들은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민들로부터 제보를 받는 페이지를 만들었다. 주변에 죽은 산모가 있거나 혹은 산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수백 명의 데이터가 모였고 이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프로퍼블리카는 IBM에서 강제 퇴직당했다고 주장하는 시니어 직원들에게 제보를 받아 IBM이 젊은 직원으로 대체하기 위해 나이 든 직원을 해고하고 있다는 내용의 ‘Cutting Old Head at IBM’라는 기획 기사를 만들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소스를 강화하고, 이것이 더 나은 스토리를 만들고, 기사 발표 후에 커뮤니티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추가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 과정을 통해 신뢰가 쌓이는 선순환으로 프로퍼블리카는 독보적인 탐사보도 전문매체로 자리잡았다.



올드미디어가 죽어간다는 것은 눈에 보인다. 당장 공공장소에서 신문을 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텔레비전의 시청률도 하루가 다르게 내려가고 있다. ‘본방사수’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성공사례는 아직 드물다. 특히 한국에서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그나마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프로퍼블리카 같은 성공사례가 있어서 가로등 불빛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돈이 되지 않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 낚시(클릭베이트) 기사들이 판친다. 다행인 것은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저널리즘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혼돈이 지나고 나면 진짜 언론과 가짜 언론이 구분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로젠탈 알브스 교수는 “사막화하는 미디어는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 것이고 이후 저널리즘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공룡 같은 언론은 사라지거나 혹은 살아남기 위해 저널리즘을 포기하고 비즈니스 영역으로 손을 뻗을 것이고, 그 빈 자리에서 진짜 저널리즘은 비영리 언론이 채울 것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아직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 어떤 코끼리가 맞는 코끼리인지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날 내가 그려 본 코끼리는 생김새야 어쨌든 뚜렷하게 만져지는 코끼리였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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