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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지내던 어느 토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1박2일 동안 더블린을 여행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날이었는데도 비행기를 타는 강행군을 한 것은 더블린은 예전부터 꼭 가고 싶은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더블린 공항에 내려 입국심사를 하는데 런던으로 들어갈 때보다 훨씬 까다롭습니다. “여기 왜 왔니, 며칠 있을 거니, 어디에서 묵을 거니, UK로는 언제 돌아갈 거니, 너네 나라로는 언제 갈 거니” 등등 비슷한 질문을 하고 또 합니다. 조금이라도 대답이 이상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표정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다음날 오후 여행을 마치고 런던 사우스엔드 공항으로 입국할 때는 입국심사 자체가 없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아일랜드는 잉글랜드를 아주 먼 외국 취급하고, 잉글랜드는 아일랜드를 자기 나라 취급합니다.


더블린 공항의 표지판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갑니다.

더블린 시내

메리 스트리트를 걷는 사람들

레인보우 깃발

리피 강변에 모인 네 사람

스모키 앨리 극장에서 열쇠를 받았어요.


어쨌든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표지판에 낯선 언어와 영어가 나란히 표기돼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영어는 두 번째 언어네요. 게일어가 첫 번째 언어입니다. 잠시 잊고 있었어요.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내렸습니다. 더블린 시내의 첫 인상은 작고 낡았지만 사람들은 활기차다는 것이었습니다. 날씨는 환상적이었어요.


백팩을 멘 채 메리 스트리트를 걸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한국의 명동 거리처럼 북적북적한데 스모키 화장을 한 젊은 여자부터 레인보우 망토를 둘러 멘 남자까지 활기가 넘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더블린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리는 날이네요. 더블린 어디에서나 무지개 깃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싶었습니다.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한 집의 주인 코너(Conor)가 메신저를 보내왔는데 자기가 일하는 극장에 집 열쇠를 맡겨놨다고 합니다. 극장은 시내에 있고 집은 시내에서 버스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네요. 저는 리피 강을 건너 스모크 앨리 시어터로 갔습니다. 공연은 저녁에만 열리는지 낮 2시에 극장은 한산합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자 예쁜 아이리쉬 여성이 제 이름이 적힌 봉투를 하나 건네줍니다. 봉투에는 열쇠가 들어 있었고요.


코너가 이곳에서 일한다면 그는 배우인 걸까요? 혹은 극장 직원인 걸까요? 직업은 잘 모르겠지만 코너가 게이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의 집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굉장히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진 예쁜 집이었거든요. 곳곳에 게이임을 암시하는 그림들도 걸려 있었고요.


아일랜드 중앙은행

더블린 시내

우산이 걸린 하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꽃

앤디 워홀스러운 표지판


열쇠를 받아들고 숙소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네요. 버스 안내 전광판에는 5분 후 도착이라고 표시돼 있었는데 정작 5분 후엔 7분 10분으로 막 늘어나기만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프라이드 퍼레이드 때문에 일부 구간이 통제돼서 버스가 아예 운행하지 않는 거였습니다.


오지 않는 버스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일단 백팩을 든 채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트립 어드바이저를 검색해보니 1순위로 추천해주는 곳이 다키 켈리(Darkey Kelley)라는 식당 겸 펍이었습니다. 걸어서 2분 거리에 있었고, 밖에는 캐나다, 미국, 유럽, 아일랜드 국기가 걸려 있네요. 이름처럼 실내는 어두웠습니다. 저는 해산물 차우더와 더블린 블론드 맥주를 시켰습니다. 아주 특별한 맛까지는 아니었습니다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다키 켈리 펍

다키 켈리 펍 입구에 적힌 역사

다키 켈리 펍 내부

더블린 블론드 맥주와 해산물 차우더

펍에서 축구를 보는 사람들


마침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 대 아르헨티나의 16강전이 시작되어서 펍 안은 축구를 보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저도 곁눈질로 축구를 보면서 밥을 먹었습니다. 프랑스의 음바페가 엄청난 드리블로 페널티킥을 얻어내 프랑스가 1:0으로 앞서갔습니다. 전반전 30분 정도를 본 뒤 저는 펍을 나왔습니다. 축구보다는 더블린을 더 보고 싶었거든요. 나중에 결과를 보니 프랑스가 4:3으로 이겼더라고요. 엄청난 경기였을텐데 놓쳐서 아쉬웠냐고요? 아니요. 저는 더 재미있는 구경을 했거든요.


펍 밖으로 나와 조금 걸었더니 화려한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지나갑니다.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한창인 도로였습니다. 성당 앞 도로에서 행진하는 무리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습니다. 저도 군중 틈에 끼어서 박수를 치며 지켜봤습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게이와 레즈비언만 참가하는 게 아니라 축제의 취지인 'Equality'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무지개 옷이나 망토를 걸치고 행진을 하는 대형 이벤트였습니다. LGBTQ 축제는 일주일간 이어졌고, 오늘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행사로 시내를 활보하는 퍼레이드를 2시간 동안 여는 것이었습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


아마존, 트위터, 페이팔 같은 진보적인 테크 기업들과 교사, 적십자, 노조 등 각종 단체들이 그들의 로고가 적힌 버스를 몰고 행진에 참가했습니다. 키다리, 삼바, 드랙퀸 등 다양한 코스튬을 입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구분없이 어울려 행진합니다. 사람들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행진 행렬이 구름처럼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날씨와 어울리는 뜨거운 이벤트였습니다.


더블린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본 자세한 이야기는 이전 포스트에 적었으니 참고해 주세요.

>>런던, 더블린, 뮌헨 LGBTQ 프라이드 퍼레이드 가보니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오후 2시에 시작해 오후 4시에 끝났습니다. 퍼레이드가 끝나자 드디어 버스가 하나둘 운행을 시작합니다. 이제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갈 수 있습니다. 숙소를 다소 먼 곳에 잡아 매번 버스를 타고 나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물가 비싼 더블린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숙소는 복층 구조의 작고 예쁜 집이었습니다. 코너가 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네요. 제가 쓸 방은 2층 코너의 방 바로 옆에 있습니다. 휴대폰을 충전하는 동안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낯선 여행지 첫날, 숙소에 도착해 침대에 눕는 순간만큼 편안한 시간이 또 있을까요? 밖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설레는 한편, 침대는 아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최대한 오랫동안 버텨보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워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계속 있고 싶은 마음과 나가고 싶은 마음이 타협점을 찾을 때까지 저는 누워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창밖에 예쁜 화분이 놓여 있고 그 안에 붉은색 꽃이 피어 있네요.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세심한 코너의 취향이 느껴집니다.


토종 코스타 커피와 스타벅스 커피

더블린의 흔한 벽화

아이리쉬 커피


오후 6시가 되어서 집 밖으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 비용은 (정기권을 사면 더 싸지만) 현금을 내고 타면 2.85유로입니다. 거스름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꼭 정확히 내고 타야 합니다. 한 번은 버스기사가 거스름돈 없으니 정확한 현금을 준비하라며 소리를 지르네요. 제가 낸 돈을 받더니 10센트짜리가 유로가 아닌 파운드라서 안 된다며 돌려줍니다. 굳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될텐데, 짜증이 나서 그냥 3유로를 던져버리고 탔습니다.


템플 바에서 내렸습니다. 트리니티 대학과 그리프턴 거리 등 더블린의 주요 관광지가 이곳에 몰려 있습니다. 일단 트리니티 대학으로 들어갔는데 내부는 문을 닫아서 캠퍼스에서 건물만 구경하고 나왔습니다(그래서 다음날 또 갔습니다). 그리프턴 거리는 버스킹이 많은 거리라고 하는데 이날은 그저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다음날 오전에 그리프턴 거리를 다시 갔을 땐 수준급의 버스킹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프턴 거리의 버스커

그리프턴 거리의 버스커

금발의 버스커

그녀가 부른 노래는 Love Yourself

그리프턴 거리

그리프턴 거리의 버스커와 꼬마 아가씨

그리프턴 거리의 버스커


그리프턴 거리 옆골목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길래 저도 줄을 섰습니다. 가게 이름이 머피(Murphy’s)네요. 기다리는 동안 종업원이 돌아다니면서 “어떤 거 맛볼래?”라고 물어보며 조금씩 갖다줍니다. 아이리시 브라운 브레드와 키어런스 쿠키를 맛봤는데 둘 다 맛있더라고요. 여러가지 다 먹어보고 싶어서 주문할 때는 일부러 다른 메뉴를 시켰습니다. 라스베리 소르벳과 버터스카치를 먹었는데 이것도 정말 맛있네요. 더블린에서 먹어본 음식들 중 이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었습니다. 역시 여행지에서 아이스크림은 진리입니다.


머피의 아이스크림 가게

정말 맛있었던 투 스쿱 콘

와우버거와 기네스


저녁은 와우버거와 기네스 맥주를 먹었는데요. 와우버거는 고기가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기네스 맥주는 런던에서 마셨던 것과 똑같았습니다. 아일랜드에서 기대한 것 중 하나가 기네스였는데 조금 아쉽더라고요. 스코틀랜드 글렌코에서 맛본 달달한 흑맥주가 그립습니다.


기네스를 마실 때 식당에선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이 우루과이에게 1:2로 졌네요. 오후엔 메시가, 저녁엔 호날두가 월드컵에서 퇴장하는 날입니다. 그 대신 음바페와 카바니가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한 세대가 바뀌고 있나봅니다.


거리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

좁은 골목에서 맥주 한 잔 들고 어울리는 사람들

좁은 골목이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The Bankers Lounge

더블린의 명소 템플 바까지 이어진 골목길

템플 바 앞의 관광객들

템플 바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마친 사람들이 템플 바 앞에 모였습니다.


식당을 나와 거리를 걸었습니다. 토요일 밤에, 프라이드 퍼레이드 여파까지 겹쳐서인지, 거리의 펍마다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좁은 골목은 술잔을 든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 속을 헤치고 들어가 봤는데요. 와! 이렇게 술 좋아하고 떠들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금껏 본 적이 없습니다. 다들 신나게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눕니다.


한 골목에선 일렉트로닉 음악을 크게 틀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골목이 클럽이 되었습니다. 저도 한참동안 몸을 흔들며 서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이네요.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곳이 더블린입니다.



골목을 계속 걸었더니 더블린의 유서 깊은 명소인 템플 바가 나옵니다. 이곳은 또다른 장관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에 관광객이 섞여서 엄청나게 혼잡하고 엄청나게 시끄럽고 엄청나게 활발합니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술 취한 사람들이 앵글에 나타나 포즈를 취합니다. 거리에는 랩댄스 광고판을 멘 남자들이 지나가는 남자들을 붙잡고 있고요. 여자들은 자유분방하게 돌아다닙니다.


템플 바에서 한 블럭 더 가면 리피 강입니다. 밤의 리피 강은 소박한 운치가 있습니다. 하페니 다리(Ha’penny bridge)를 건너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강북쪽은 축제 분위기가 덜하네요. 펍들은 남쪽에 몰려있나 봅니다.


밤의 하페니 다리

하페니 다리에서 본 리피 강 야경


밤 11시, 이제 막 해가 져서 가로등이 강물을 비춥니다. 축제 분위기를 좀더 맛보고 싶어서 다리를 건너 리피 강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다리 위 반대편에서 한 젊은 백인 여자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게 보이네요. 짙은 갈색 머리, 파란 눈동자를 가진 여자였는데요. 그녀는 저를 향해 걸어오더니 제 입술에 키스하고는 웃으며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적당히 취했고 저는 맥주 두 잔에도 거의 취하지 않았는데요. 장난스런 키스에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이 웃으면서 박수를 칩니다.


저는 많은 곳을 다녀봤지만 더블린만큼 개방적이고, 거리에서 마음껏 자기 감정을 표출하고,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리고, 신나게 웃는 도시는 처음입니다. 어쩌면 제가 간 날이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열린 날이어서 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네요. 그날 미드나잇 인 더블린은 정말 놀랍도록 술에 취해 있는 도시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드디어 코너를 만났습니다. 키가 크고 마른 청년입니다. 어젯밤 늦게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긴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그를 깨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떠나기 전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서 그를 불렀습니다.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참가했냐고 물었더니 일 끝나고 봤다고 하더라고요. 아마도 펍에서 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있었겠죠. 더블린에서 펍에 가지 않는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흥청망청 술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사뮤엘 베케트는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심오한 글을 썼을까요? 미스터리입니다.


코너의 집 내부

코너의 취향

코너의 집 2층 계단에 걸린 그림

코너의 집에 놓인 달리 스타일 시계


코너와 헤어진 뒤 짐을 챙겨 버스를 타고 다시 트리니티 대학으로 갔습니다. ‘켈스의 서’와 ‘해리포터’에 나온 멋진 도서관을 갖춘 대학입니다. 이번에는 어제 오후와 달리 문을 열어서 훨씬 활기차더라고요. 그런데 도서관 입장료가 무려 14유로나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대학이 이래도 되는 걸까요?


하지만 ‘켈스의 서’ 원본은 감동적이었습니다. 12세기에 만든 라틴 성경 해석을 담은 책인데 삽화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가느다란 선을 당시에 어떻게 그렸는지 모를 정도로 섬세합니다. 대단한 정성이 담긴 필사의 작업이었을 듯합니다.


트리니티 대학으로 들어가는 입구

트리니티 대학 캠퍼스

트리니티 대학 버클리 도서관 앞 조형물

사람이 없을 땐 이런 모습

12세기 '켈스의 서'의 정교한 삽화

켈스의 서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

고풍스런 사다리

도서관은 빛이 잘 들어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 흉상

뉴튼 흉상

존 로크 흉상

트리니티 대학 도서관 소장품을 둘러보는 사람들


도서관에는 2층 구조의 고풍스런 서고가 양옆으로 늘어서 있고, 그 앞에 뉴튼, 로크 등 위대한 거인들의 흉상이 진열돼 있습니다.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곳입니다. 기념품 숍에서 후드티, 모자, 목걸이, 팔찌 등을 사는데 97유로를 썼네요.


더블린에서 마지막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레몬 앤 듀크 바(Lemon and the Duke Bar)에 갔습니다. 트립 어드바이저에 5위로 오른 곳입니다. 12시 10분쯤 들어갔더니 서빙하는 소피가 저에게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그녀는 아직 식사 준비가 안됐다며 커피를 공짜로 주네요.


Lemon and the Duke Bar

The Duke 식당의 메뉴

Sunday Roast

애플 크럼블과 아이스크림


메뉴 중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가 있길래 소피에게 뭐냐고 물어보니 일한지 얼마 안돼 잘 모른다며 웃습니다. 그녀는 알아오겠다며 주방에 다녀와서는 그냥 소고기라는 답을 가져왔습니다. 일요일에만 나오는 메뉴는 아니라고 하네요.


소피의 말대로 선데이 로스트는 그냥 소고기 스테이크였습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카베르네 쇼비뇽 레드 와인 한 잔을 마시고, 디저트는 애플 파이와 아이스크림을 시켰습니다. 팟에 담긴 뜨거운 파이와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이 디저트가 이날 점심 식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낮의 템플 바

템플 바를 세운 윌리엄 템플

영화 '원스'의 악기상점 왈튼이 있던 자리

역사가 오래된 하페니 다리 여관

낮의 하페니 다리

낮의 리피 강


영화 ‘원스’에 나온 악기 상점 ‘Walton’에 가봤습니다. 이미 폐점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가보고 싶었습니다. 옆에 작은 악기 상점이 영업 중이었고, Walton이 있던 자리는 카페로 바뀌었습니다. 그나마도 일요일이라 영업은 하지 않고 문이 닫혀 있더라고요.


다시 돌아와서 템플 바를 지나 하페니 다리를 건넙니다. 더블린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첨탑(The Spire)을 보고 싶었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뾰족하게 솟아오른 탑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바닥은 뭉툭하네요. 19세기 아일랜드 언론인이자 정치인 존 그레이(John Gray) 동상이 있길래 그의 머리에서 뾰족한 첨탑이 솟아오른 것처럼 보이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더블린 시내 트램이 있는 풍경

존 그레이 동상과 첨탑

존 그레이 동상과 첨탑

첨탑 바로 아래


이제 더블린을 떠날 시간입니다. 7유로를 내고 공항가는 2층버스를 탔습니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내려보니 터미널2에서 잘못 내렸네요. 터미널1을 찾아가느라, 또 항공사인 플라이비(flybe) 앱이 먹통이어서 창구에 가서 줄 서서 보딩패스를 받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습니다. 4시 35분 비행기인데 3시 55분에 겨우 보딩패스를 받았거든요. 허겁지겁 뛰어가 검색대 줄을 섰는데 어찌나 줄이 안 줄어드는지, 또 옆 줄은 왜 내 줄보다 빨리 줄어드는지 조마조마해 하면서 검색대를 통과해 게이트를 향해 뛰었습니다.



막상 게이트에 도착하고 보니 비행기는 이번에도 연착되었네요. 유럽에 있으면서 오후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제시간에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듯합니다. 최소 30분에서 최대 2시간까지 연착됐습니다. 이번에는 게이트 앞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도 이러니 날씨가 나쁜 겨울에는 얼마나 연착이 잦을까요.


공항에 도착한 버스

플라이비를 타고 플라이!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려 더블린 공항을 이륙합니다. 놀기 좋아하는 개방적인 사람들이 낮에도 밤에도 기네스를 마시는 도시, 더블린을 저는 그렇게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제대로 놀 줄 아는 사람들을 보고 싶을 때 다시 오고 싶은 도시입니다.


한국에도 아일랜드인들의 커뮤니티가 있는데 이들은 사순절 때 서울에 모여서 파티를 하더라고요. 지난 봄 우연히 영등포역 광장을 지나가다가 이들의 축제를 목격한 적 있었거든요. 녹색 옷을 보면 당분간 아일랜드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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