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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가 좋아, 케임브리지가 좋아?"


바보같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바보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케임브리지? 거긴 학교도 아냐.”


이 대답을 한 톰은 옥스퍼드대 졸업생입니다.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옥스퍼드는 영국에서도 중상류층이 다니는 학교고, 케임브리지는 저소득층과 다인종도 많이 다닌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톰의 말에 따르면 요새는 케임브리지도 비슷하답니다. 상위권 대학은 그들만의 리그래요. 한국도 해마다 서울대 입학생 중 강남권 학생 비중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는데 영국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제가 옥스퍼드를 다시 찾은 것은 17년 만입니다. 당시에는 대학생이었고 어학연수 기간에 잠깐 들른 것이었지요. 이번에는 언론인 연수 기간 중 5일 동안 수업을 받기 위해 왔습니다. 그때보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것을 옥스퍼드에서 보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옥스퍼드는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8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인구 20만명 정도가 살고 있고요. 자동차 부품 산업도 있지만 사실상 옥스퍼드 대학이 이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최근에는 해리포터의 촬영지가 된 덕분에 해리포터 투어를 위해서도 많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옥스퍼드 브룩스대학교

옥스퍼드 브룩스대학교 캠퍼스

브룩스대학교 내 스타벅스


톰의 안내에 따라 브룩스 대학교의 졸업생 기숙사에 들어가 짐을 풀었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지내게 될 기숙사입니다. 옥스퍼드 브룩스 대학교는 150년 역사를 가진 대학으로 비즈니스와 테크놀로지 과정이 강점인 곳입니다. 기숙사는 침대와 책상, 화장실, 옷장이 단출하게 있는 정도였습니다.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기숙사에는 공용 주방이 있어서 저희 학생들은 한인 마트에서 사온 라면, 김밥, 짜장면, 잡채, 삼겹살 등을 주방에서 함께 요리해 먹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너무 떠들었는지 경비 아저씨가 오더니 신고가 들어왔다면서 조용히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흐음. 그런데 왜 경비 아저씨들은 죄다 흑인인지 모르겠네요.


브룩스대학교 졸업생 기숙사

브룩스대학교 졸업생 기숙사

기숙사 내부

기숙사에서 소주로 건배

한국 식재료를 판매하는 서울 플라자.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식재료가 다 있더라고요.


기숙사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립니다. 여느 대학처럼 캠퍼스 잔디밭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혼자 태닝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있던 기간 내내 날씨가 참 좋았거든요. 저는 캠퍼스를 걷다가 그중 몇몇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 봤습니다.


“요즘 학교 이슈요? 글쎄.. 생각나는 게 없는데. (레게 머리를 한 친구에게) 넌 뭐 알고 있어?”

“아니, 나도 없어. 월드컵 정도? 아, 한국이 2패한 건 안됐어.”


제가 인터뷰한 날이 스웨덴과 멕시코에게 2연패한 뒤였거든요. 이들이 나중에 독일전을 봤기를 바랍니다. 혹시 고민 같은 건 없는지 더 물어봤습니다.


“딱히 고민은 없고요. 지금 대학 생활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고민이 없고 행복하다는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어서 약간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제가 살면서 이런 사람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나 봅니다. 아무 고민도 없고 행복하다니요… 두 남학생을 보내고 이번에는 저 멀리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예쁜 백인 여학생 세 명에게 접근해 봤어요. 세 명 다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요. 모두 1학년이고 다른 캠퍼스 학생인데 여기서 점심 먹고 쉬고 있는 거래요. 그들 역시 밝은 표정이었고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대요.


나중에 톰에게 물어보니 옥스퍼드 졸업생의 취업률은 80% 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꼭 취업률이 행복과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만 참고자료 정도는 될 수 있겠죠.


17세기 옥스퍼드는 역마차 교차점이었어요. 그때의 여관이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탄식의 다리


옥스퍼드는 참 변하지 않는 도시입니다. 17년 전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은 두 가지였어요. 2층버스가 전자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또 하나는 공용 대여 자전거가 많아졌다는 것.


공용 자전거는 Mobike와 Pony Bikes 두 개가 많았는데요. 저는 둘 중 가격이 더 저렴한 Pony Bikes 앱에서 결제하고 수업이 끝난 뒤 자전거를 타고 옥스퍼드 시내를 달렸습니다. 30분에 50펜스니까 천원이 안 되는 금액이에요. 정말 저렴하죠.


퀸스 칼리지

퀸스 칼리지 학생식당

퀸스 칼리지 도서관


옥스퍼드에는 고딕 양식으로 뾰족하게 솟은 첨탑 건물들이 많습니다. 옥스퍼드 대학교는 13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했는데요.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합쳐 35개의 칼리지가 속해 있습니다. 각각 칼리지마다 2~3개의 사각형 안뜰을 중심으로 예배당·강당·도서관·벽을 두른 정원이 있고요.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대학이자 중세 박물관인 셈이죠.


워체스터 칼리지

워체스터 칼리지 캠퍼스

워체스터 칼리지 캠퍼스


저는 캠퍼스가 가장 아름답다는 워체스터 칼리지(Worcester College)에 들어가 봤는데요. 아담한 정원을 둘러싸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있는데 왼쪽에는 식당으로 쓰이는 넓고 높은 홀이 보이더라고요. 마치 해리포터에 나올 것 같은 그런 마법 같은 공간이었어요. 거기 나무로 만든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있으려니 여기는 정말 다른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들리언 도서관

래드클리프 카메라를 바라보며


옥스퍼드에서 제가 가본 곳은 보들리언 도서관, 크라이스트 교회, 영국 최초의 돔형 도서관 래드클리프 카메라(보들리언 도서관의 열람실), 퀸스 칼리지 도서관 등입니다.


박물관과 극장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대부분 오후 5시에 문을 닫더라고요. 수업이 4시 30분에 끝나는 저로서는 언감생심이죠. 그나마 딱 한 곳 애쉬몰리언(Ashmolean) 박물관에 갔는데요. 수업시간에 견학 과정이 있어서였습니다.


애쉬몰리언 박물관

애쉬몰리언 박물관 내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이 박물관은 런던의 유명한 박물관들에 전시되지 않은 유물들을 모아놓은 곳 같았어요. 음악 관련 전시관이 따로 있어서 거기에 그 유명한 스트라디바디우스의 바이올린이 전시되어 있다는 것 빼고는 그냥 그랬어요. 마침 아메리카 쿨 모더니즘이라는 에드워드 호퍼와 조지아 오키프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제가 갔을 땐 10분 밖에 안남았다며 입장이 안 되더라고요.


맥주가 생각나는 강둑

쇼퍼를 고용하면 30파운드. 직접 운전하면 22파운드.

저렇게 고요하게 운전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제가 한 번 노를 잡아봤습니다.


낮 시간에는 강의를 들어야 했지만 저녁 시간은 자유로웠습니다. 하루는 처웰강에 펀팅(Punting)을 하러 갔습니다. 4~5인용 작은 카누를 타는 건데요. 노 젓는 게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처음에는 방향을 조정하지 못해 쩔쩔 맸어요. 강둑에 앉아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다들 저를 보고 웃는 것 같았는데요. 제가 봐도 웃겼을 것 같긴 해요.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혼자서 오른쪽으로 빙빙 돌고 있으니까요.



나중에 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는데요. 노를 바닥까지 내리지 않고 물에 살짝 담가서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주기만 해도 방향 전환이 되더라고요. 이렇게 쉬운 걸 그동안 왜 몰라서 그 고생을 했는지. 휴…


배를 함께 탄 일행들이 한 번씩 노를 잡아봤어요. 그때마다 강은 고요한데 배 안에는 작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혹시나 배가 뒤집어질까봐 다들 조마조마했는데요. 한 시간만에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는 그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들더라고요.


스리랑카 식당에서 와인을 마셨어요.

스리랑카 음식은 타파스처럼 조금씩 나와요. 인도랑 비슷하면서 또 전혀 다른 독특한 맛이에요.


6월 27일 수요일 오후 3시, 강사인 존은 우리에게 특별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월드컵 한국 대 독일 전을 펍에 가서 다함께 보게 해준 것이죠. 경기가 있기 전에 우리는 모두 스코어 맞히기 내기를 했는데요. 한국이 이긴다는 쪽에 돈을 건 사람은 12명 중 2명밖에 없었어요. 그중 존이 유일하게 2:0으로 한국이 이긴다에 걸었습니다. 지금이야 결과를 알기 때문에 놀랍지 않게 보이지만 그때만 해도 다들 기부천사라고 했어요. 한국이 독일을 꺾을 줄은 사실 누구도 예상 못했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전반전은 조금 지루했습니다. 잉글랜드 경기가 아니니까 펍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요. 마침 독일 남자가 저희 옆자리에 앉아 있더라고요. 그는 계속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해하고 있더군요. 스웨덴이 멕시코를 상대로 한 골을 넣었기 때문에 독일 입장에서는 무조건 이기지 않으면 탈락하는 경기였어요.


펍에서 한국 대 독일전 관람


후반전은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특히 인저리타임에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소리를 질러서 독일 남자는 어쩌면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우리가 양해를 구하자 그는 축하한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잉글랜드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존은 판돈을 두둑히 챙겼고요(그는 이날 딴 돈으로 다음날 잉글랜드 대 벨기에 경기 관람때 우리에게 맥주를 쐈습니다).


강사 존 마스트리니와 함께


한국이 독일을 이긴 결과는 옥스퍼드에서도 화제였습니다. 다음 날 일행들과 함께 펍에 갔는데 한국 손님이 들어온 것을 안 펍 주인이 구글 번역기를 돌렸는지 한국말로 펍에 안내방송을 해주었습니다.

“독일을 격파한 것을 축하합니다.”

그러자 펍 안은 또다시 요란한 함성으로 가득찼습니다.


갈대숲 산책길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가봤습니다.


옥스퍼드에서 좋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루는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다음날 아침에 먹을 빵과 과일을 사려고 세인즈버리 마트에 들렀습니다. 자전거를 밖에 세워놓고 장을 보고 나왔는데 자전거가 사라진 거예요. 황당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오더니 “네 자전거 어떤 꼬마가 훔쳐가는 거 내가 잡아서 건너편에 세워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고 따라갔는데 그 남자가 저에게 돈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조금 황당해서 대답하지 않고 있었더니 그냥 동전 몇 개라도 달라는 겁니다. 다행히 거기 자전거는 그의 말대로 주차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동전 주고 자전거 반납처리하고 돌아왔습니다. 오면서 보니 거리에 노숙자들이 꽤 많이 보이더라고요.


맥주 한 잔의 여유


그래도 5일 간의 옥스퍼드 생활은 런던의 번잡함을 피해 조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에는 마땅히 할 게 없어서 우리 일행끼리 더 많이 어울린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의 펍은 런던의 펍과 달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야외 가든이 있어서 더 한적하고 여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한 상태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에일맥주를 마셨습니다. 아무 고민없이 행복하다던 그 대학생들의 마음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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