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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과일로 아침을 해결하고 9시쯤 숙소를 나섰습니다. 오늘은 차를 타고 갈 거리가 길지 않습니다. 글렌코에서 스카이섬까지 2시간 정도만 가면 되거든요.


포트 윌리엄을 지나 스카이섬으로 들어가기 전 에일린 도넌 캐슬로 먼저 갔어요. 한 여행 사이트에서 꼭 가봐야 할 곳 1위로 뽑혔다고 해서 들르기로 한 것이죠. 에일린(Eilean)은 '아일랜드'라는 뜻의 고어입니다. 이 성은 맥래(MacRae) 가문의 저택이에요. 1천년 전에 지어졌다가 여러 전투에 의해 파괴된 뒤 1912년부터 1930년대 사이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성 곳곳에 그들의 문장과 살아온 흔적들이 남아 있더라고요. 하지만 내부보다는 밖에서 보는 것이 훨씬 더 멋진 성입니다.


스코틀랜드 최고의 여행지 투표에서 1위를 했다는 에일린 도넌 캐슬.

성 앞은 마치 1천년 동안 방치된 것 같은 풍경입니다.

성은 돌담 뒤로 나뭇가지가 앙상해요.

성 안에서 해자를 내려다봅니다.

성 안에서 잠시 휴식 중.


성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기념품도 산 뒤 스카이섬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리를 건널 때 탄성을 질렀는데 확실히 섬으로 들어가니 더 고립된 기분이 듭니다. 넓은 평야에 완만하게 솟아오른 산들, 풀을 뜯어먹는 양들이 한가롭게 노닐고 있습니다. 날씨는 어제만큼 좋지 않습니다만, 적당히 먹구름이 끼어서인지 더 스코틀랜드답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멋진 폭포가 보여서 무작정 내렸습니다.

덕분에 이런 사진도 찍었어요.


스카이섬 초입의 포트리(Portlee) 항구에 내렸습니다. 바닷가의 작은 마을이에요. 스코틀랜드는 어딜 가나 인적이 드문데 그나마 이 마을에 오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중국 사람들도 본 것 같습니다.



바닷가에 형형색색으로 칠한 시그니처 건물이 포토제닉하게 서 있습니다.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걸리는 건물인데요. 노랑, 핑크, 초록, 파랑 등 파스텔톤 건물이 밋밋할 뻔했던 항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그 건물들 중 하나인 노란색으로 칠한 곳에 시 브리즈(Sea Breeze)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포트리 항구.

저녁을 먹기 위해 시 브리즈 식당에 들어갑니다.

정말 맛있는 오이스터.

새우, 홍합, 연어, 올리브... 아름다워요.

오늘의 특선요리는 대구 코드필레!


물이 맛있는 곳은 음식이 맛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멋진 식사였습니다. 농어(sea bass), 홍합, 새우, 연어, 대구 필렛(code fillet), 포크벨리, 관자에 화이트 와인으로 식사를 했는데 입 안에서 녹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감탄사를 연발했어요. 최고의 식재료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어요. 혹시 포트리에 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꼭 이 식당에 가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스카이섬의 숙소는 피나클 리지(Pinnacle Ridge)라는 곳이었는데요. 한적한 초원 위에 유유자적하게 놓여져 있는 네모난 모양의 집입니다. 현관문은 열려 있고 집 안에 아무도 없어서 당황했습니다만 이렇게 외진 곳에서 문을 걸어잠그고 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겠다 싶었어요. 우리는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집 밖의 초원에는 철조망 뒤편으로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요. 그중 엄마와 새끼로 보이는 두 마리가 철망을 사이에 놓고 마주보고 있더라고요.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는데 둘을 떨어뜨려 놓았나봐요. 새끼가 낑낑거리며 철망을 입으로 물어 보지만 철망은 꿈쩍도 안합니다. 제가 다가갔더니 두 마리 모두 뒤쪽으로 도망가네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요.


돌아와서 집 앞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아까 그 엄마 양이 집 근처로 올라왔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만져볼 수 있을까 싶어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뒷걸음질치며 도망가는 거예요. 오기가 생겨서 잡으려고 전력질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양이 저보다 훨씬 빠르네요. 와! 양이 그렇게 빠른 동물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스카이섬에 위치한 두번째 숙소입니다.

숙소가 있는 곳의 이름은 피나클 리지.

양 한 마리가 초원을 떠돌고 있네요.


찬바람을 맞았더니 휴식이 필요합니다. 집에는 큼지막한 거실이 있어서 우리는 가져온 로즈 와인과 과일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어요. 마루에는 벽난로가 있어서 불을 피웠고요. 거실에 모노폴리 게임과 구슬이 있었는데 누군가 바닥에 앉아 구슬로 공기 놀이를 시작해서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공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꺽기에 콩콩까지. 막상 구슬을 손에 쥐니까 어린 시절에 했던 기억이 떠오르더라고요. 머리와 손이 따로 놀아서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10시가 넘어 해가 저물자 집주인의 차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드디어 집주인을 만날 수 있게 됐어요. 집주인을 볼 수 없어서 그동안 무단침입한 것처럼 불안한 마음이 있었거든요. 거실에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저는 집주인이 나이 많은 부부일 거라고 예측했었어요. 피아노가 있는데 조율이 안돼 있더라고요. 이는 피아노 칠 사람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어쩌면 자식이 떠나고 방치된 채 남겨 놓은 것일 수도 있고요. 또 거실 구석에는 지팡이가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이렇게 한적하고 인적이 드문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외로움에 익숙한 노인일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숙소에 큼직한 거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집주인을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나 젊어 보이는 백인 부부였습니다. 대화를 통해 알게 됐지만 서른 두 살의 스코티시 남자와 동유럽 악센트를 가진 여자였습니다. 남자는 인상이 참 선해 보였고, 여자는 잘 챙겨주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남자는 호텔에서 일하고 퇴근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이 집은 2년 전에 구입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호텔에서 일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집을 둘러보니 호텔 같은 느낌이 있더라고요.


와인이 다 떨어질 때까지 남은 이야기꽃을 피운 뒤 밤 11시쯤 잠들었습니다. 여행이 계속되면서 다들 피곤한 것 같았습니다. 저도 이날은 일찍 잠들고 싶었어요. 내일은 에든버러로 돌아가기 위해 8시간 이상 차를 타야 하거든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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