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코틀랜드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동안 유럽여행은 주로 영국에서 바다를 건너 유럽대륙으로 가는 쪽을 택했지 위로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일정이 짧은 탓에 올라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요. 그래서 이번에 런던에 머무는 기간에는 무조건 스코틀랜드를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매년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리는 에든버러에는 (페스티벌 기간은 아니지만) 꼭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다행히 저희 일행들 중 여섯 명이 동행해주어서 정말 재미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초 제 계획은 에든버러와 글래스고를 다녀오는 거였는데요. 일행 중 누군가가 자동차를 빌려서 일주를 하자고 제안했고, 저는 대중교통이 아닌 차를 몰고 가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겠다 싶었습니다. 7명이 상의한 끝에 4일이라는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 전역을 일주하는 것은 무리한 일정이니 스카이섬을 왕복하는 루트로 수정해서 가보자는 식으로 중재가 모아졌습니다. 스카이섬은 에든버러에서 북서쪽으로 8시간 정도 운전하면 갈 수 있는데요. 가는 길에 로흐 로몬드, 글렌코, 포트 윌리엄 등에 들리는 것으로 여행 일정을 짰습니다. 7명의 집단지성이 모이니까 여행 계획도 혼자서 갈 때보다 훨씬 알차게 짤 수 있더라고요.


런던 시티공항은 캐너리 워프 인근에 있어서 도시 접근성이 아주 좋아요.

flybe 비행기는 프로펠러가 달렸네요. 도로나 철도보다 빠르다고 써있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는 비행기와 기차 등 각자의 방식으로 비슷한 시간에 에든버러에 도착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항공팀이 에든버러 공항에서 7인승 자동차를 빌렸고요. 그 차를 타고 에든버러 기차역에서 다른 일행을 태우고 드디어 스코틀랜드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운전석이 한국과 달리 오른쪽에 있고, 세단이 아닌 푸조 트래블러 승합차는 다들 처음 몰아보는 거였기 때문에 풀옵션 보험을 들었는데 이 금액이 상당히 비싸더라고요(다행히 여행 도중 사고는 한 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오고 싶던 에든버러에 도착하자마자 떠나는 것은 아쉬웠지만 여행의 목적지를 도시보다는 자연으로 정한 이상 어쩔 수 없지요. 스코틀랜드에서의 마지막날 에든버러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도로를 빠져나갔습니다. 참, 길찾기는 구글 내비게이션이 열일을 했습니다. 애플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정확하더라고요. 가끔 두 내비게이션이 서로 다른 루트를 알려줄 때가 있는데 모두 구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자동차의 USB에 아이폰을 연결하면 모니터에 애플 지도만 표시되어서 어쩔 수 없이 애플 내비게이션을 주로 썼지만 헛갈릴 때는 항상 구글 지도를 참조했습니다.


에든버러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로 들어갑니다.

에든버러 시내의 여유로운 풍경


에든버러를 떠나 처음 들른 곳은 세인스버리 대형마트였습니다. 저녁에 산장에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미리 장을 본 것이죠. 빵, 과자, 음료수, 과일, 맥주 등을 사고, 스코틀랜드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글렌피딕 위스키도 샀습니다.


로몬드 호수에서 배를 탔습니다.

배 뒤에 스코틀랜드 국기 모양의 조형물이 있네요.


다시 차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로몬드 호수(Loch Lomond)입니다. 배를 타고 호수를 30분 정도 돌아봤는데요. 숀 코너리가 태어나 자란 곳이 여기라고 하더라고요. 또 오래전 전투가 벌어진 평원지대는 '배틀필드'라고 불리고 있고요. 지금은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하기만 합니다.


틴드럼의 피시앤칩스 맛집 'Delicious'

딜리셔스는 현지 언론에 계속 소개되는 곳이네요.


배에서 바람을 실컷 맞느라 머리가 얼얼해졌어요. 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가 휴게소에 잠깐 멈췄습니다. 커피나 한 잔 하려고 'Delicious'라고 써 있는 곳에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고요. 곳곳에 상 받은 트로피 같은 게 있고, 또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 전시해놓은 곳도 있어요. '피시 앤 칩스' 맛집으로 몇 년 전부터 선정된 식당이래요. 이 근처에 식당이 별로 없어서 그냥 돌아가면서 상을 주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살짝 해보기도 했지만, 일단 맛이라도 보고 가자는 심정으로 피시 앤 칩스를 주문했습니다. 결과는? 제 인생 최고의 피시 앤 칩스를 여기서 맛봤습니다.


튀긴 '피시'는 속 안이 가득 차서 정말 부드러웠고요. '칩스'는 쇼트닝을 쓰지 않아 뒷맛이 깔끔했습니다. 이래서 영국 사람들이 피시 앤 칩스를 먹는구나, 세상에는 피시 앤 칩스라는 모두들 알고 있는 단순한 요리로 정면승부를 펼쳐서 이렇게 최상의 맛을 내는 식당도 있구나... 여행 첫날부터 진짜 맛집을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녹색, 그리고 파란 하늘

갈대도 녹색이에요.

우리 일행은 이러고 놀았답니다.

태양을 등진 남자.

거침없이 하이킥.

다시 길을 떠납니다. 기분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요.

먹구름이 끼는 듯하더니 다시 해가 나오기 시작하네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나봐요. 인터넷 연결도 잘 안 되기 시작합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올 만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2시간을 더 달려 하이랜드(Highland) 초입부의 글렌코(Glencoe)에 도착했습니다. 레븐 호수를 마주보고 포트 윌리엄 가는 길에 있는 도시입니다. 영화 '007 스카이폴'의 촬영지이기도 하죠. 1692년 글렌코는 '글렌코 학살'이라 불리는 비극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새로운 왕 윌리엄 3세가 자신에게 충성을 거부한 스코틀랜드의 맥도널드 가문 사람들을 몰살시킨 사건입니다. 스코틀랜드인들의 잉글랜드에 대한 적개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면적은 잉글랜드의 60% 수준인데 인구는 10%밖에 되지 않아요. 사람이 살지 않는 거친 자연이 많다는 뜻이죠. 오염되지 않은 땅이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에든버러나 글래스고처럼 사람들이 몰려사는 도시가 있는 로우랜드에 비해 글렌코를 기준으로 위쪽인 하이랜드에는 인적이 드물어요. 그러니 글렌코를 통과하고 나면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대자연을 보게 됩니다.


글렌코의 'Signal Rock Cottage'라는 숙소는 에어비앤비에서 예약했는데 인터넷도 안 되는 외진 곳이어서 숲속을 헤매다가 겨우 발견할 수 있었어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잠들 수 있는 나무로 만든 집입니다. 단 하룻밤이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지낼 수 있다니... 우리는 들떴습니다.


*글렌코, 글렌피넌, 글렌피딕 등 스코틀랜드의 고유명사에 쓰이는 접두어 글렌(glen)에는 '계곡'이라는 뜻이 있어요.


호수에 반사된 노을진 산 색깔 보세요.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어요. 일단 첫날 런던에서 출발해 에든버러를 거쳐 글렌코 숙소까지 오는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자유시간입니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인근 식당 겸 바로 갔습니다. 시간이 늦어서 식사는 더 이상 팔지 않았고요. 그래서 우리는 흑맥주와 위스키를 마셨어요.


아, 흑맥주는 막연히 아일랜드라고만 생각했는데 이 바에서 만든 흑맥주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흑맥주가 쓰지 않고 무려 달아요. 거품이 크림처럼 느껴져요. 어쩌면 이토록 놀라운 맥주 맛이 가능할까요. 흑맥주 뿐만 아니라 이 바에서 직접 만든다는 위스키 역시 깔끔하고 순수한 느낌이 일품입니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만이 위스키를 맛볼 수 있는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바 안에는 동양인이 우리 뿐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서로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습니다. 아무렴 이 바는 외진 곳에서 유일하게 영업중인 곳이니까 여기에 산다면 이 시간에 이 바 외에는 갈 곳이 없겠죠. 우리 테이블로 몇몇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찾아왔고, 저는 그들과 술잔을 부딪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할아버지는 자기는 뉴스에서 사우스 코리아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 한국 사람은 처음 본다며 굉장히 흥분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던진 첫 질문이 남한은 정말 'Americanised' 되어 있느냐는 거였어요. 저는 어안이 벙벙해서 뭐라고 할까 하다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북미정상회담 소식이 영국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돼서 잘 알고 있더라고요. 사실 남북관계 개선을 궁금해하는 시선은 런던에서도 많이 들었는데요. 이렇게 외딴 곳에서까지 정치 이슈를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숙소를 나와서 인근의 식당 겸 바로 갔습니다.

시간이 늦었다고 식사는 끝났대요. 그러면 할 수 없죠. 술을 마시는 수밖에요.

내부는 이렇게 생겼어요. 당구대도 있고 자유로운 동네 술집입니다. 저희 빼고 다들 아는 사람들 같았어요.

커다란 개를 안아봤습니다. 이름이 '발루'라고 하는데 정말 순둥이입니다.

흑맥주로 건배. 흑맥주가 이렇게 달달하다니요.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맨체스터에 산다는 한 아저씨는 큰 개 '발루'와 함께 놀러왔다며 발루를 마음껏 데리고 놀아도 좋다고 허락해주었습니다. 그 옆에는 두 청년이 있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라는 이유로 발루의 주인 아저씨와 응원가를 부르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맨유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 가본 적 있는 저 역시 잠깐 동안 그들의 회합에 합세했습니다. 두 청년 역시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DMZ를 꼭 가보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이들에게 한국은 머나먼 나라일텐데 꽤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국내뉴스보다 국제뉴스에 훨씬 더 관심이 많은 미디어를 가진 사람들다워요.


11시가 되자 바는 문을 닫을 준비를 했고, 우리는 모두 밖으로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아쉬운지 자꾸만 저를 비롯한 일행들에게 수다를 떨면서 내일도 오라고 했는데요. 하지만 글렌코에서 지내는 것은 오늘밤이 마지막입니다. 내일 우리는 아침 일찍 글렌코를 떠나 스카이섬으로 가야 하거든요.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낮에 마트에서 사온 음식과 글렌피딕, 그리고 런던에서 사온 라면으로 야식을 즐기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왜 낯선 외국에서, 특히 낯선 외국의 자연 속에서 먹는 라면은 더 맛있는 걸까요? 우리는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가 하나둘 방으로 들어가 잠들었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