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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에 숙소를 나섰습니다. 숙소가 외곽이어서 에든버러 기차역까지 40분가량 걸립니다. 오늘은 에든버러를 떠나 런던으로 가는 날입니다. 런던으로 가는 고속철이 떠나는 웨이버리 기차역에 도착해 우리 일행과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비행기, 기차 등 각자의 방식으로 런던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어차피 런던에서 다시 만나겠지만 잠깐 동안 안녕입니다. 우리는 스코틀랜드 여행을 기념하는 의미로 웨이버리역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웨이버리 기차역
제 기차는 오전 10시 30분에 떠납니다. 1시간 남짓 시간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첫 날부터 보고 싶던 에든버러인데 1시간이라도 허투루 보낼 수 없습니다. 저는 무려 캐리어를 끌고(!) 에든버러 시내 탐방에 나섰습니다. 웨이버리역에서 에든버러 캐슬까지 올라갔다가 로얄마일로 내려와 스코티쉬 내셔널 갤러리를 거쳐 프린스 스트리트를 따라 다시 웨이버리역으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아, 가기 전에 이 코스를 정해 놓고 간 것은 아니고요. 나중에 돌아보니 이렇게 갔더라고요. 이렇게 걸으면 딱 1시간이 걸립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에 에든버러 캐슬은 들어가지 못했고(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카메라 옵스큐라, 작가들의 박물관, 스코티쉬 내셔널 갤러리 등도 밖에서 구경만 하고 돌아서야 했다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에든버러는 꼭 다시 오고 싶은 도시입니다. 제가 웬만한 유럽 도시에 대해서는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로망이 없는데요. 에든버러는 보자마자 첫 눈에 반했습니다. 정말 세련되게 고풍스럽습니다. 클래식한 품격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날씨가 좋아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스코틀랜드 제2의 도시 글래스고는 에든버러와는 전혀 달리 모던한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에든버러와 글래스고가 전혀 느낌이 다른 도시가 된 이유는 역사와 산업적 기반과 관련이 있습입니다. 글래스고는 돈을 벌어주는 공업도시로 성장해온 반면,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 수도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도시거든요. 한때 글래스고에는 중공업과 조선업이 발달했습니다. 지금은 조선업이 경쟁력을 잃었고, 금융업과 서비스업이 주요 산업입니다. 어쨌든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에서 비교적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한 도시이기에 스코틀랜드 독립을 이야기할 때도 가장 적극적입니다.
2014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가 있었습니다. 이때 반대표가 10% 가량 더 많아 결국 독립은 무산되었는데요. 독립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도시가 바로 글래스고였습니다. 에든버러만 해도 시민들은 독립 반대에 더 많이 투표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왜 끊임없이 영국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하고 있을까요? 9세기 켈트족이 스코틀랜드 왕국을 건설한 이래 이웃나라 잉글랜드의 계속된 지배 야욕과 억압에 저항해온 역사 때문입니다. 11세기 잉글랜드 윌리엄 1세의 첫 침공부터 시작해 13세기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 내 정치적 혼란을 틈타 왕권을 접수했는데 이에 스코틀랜드인들은 독립투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무력전투 과정에서 윌리엄 월리스라는 인물이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1297년의 스털링 브릿지 전투에서 열세의 전력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뒀고, 1314년의 배녹번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월리스는 스코틀랜드의 영웅으로 떠올랐고요. 이 과정은 영화 ‘브레이브하트’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죠.
이후 스코틀랜드가 다시 잉글랜드에 복속된 것은 17세기부터입니다. 1692년 잉글랜드의 왕 윌리엄 3세가 저지른 글렌코 학살은 스코틀랜드의 잉글랜드에 대한 적개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국제사회 패권으로 떠오른 대영제국의 위세를 변방의 스코틀랜드가 홀로 대항해 맞서기엔 역부족이었고, 또 경제적으로도 영국연방에 속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으므로 3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스코틀랜드인들은 영국 연방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든버러 캐슬
에든버러 캐슬은 중세 시대 스코틀랜드의 독립 의지를 상징하는 성입니다. 바위로 만든 산 캐슬 록(Castle Rock) 위에 자리잡은 이곳은 에든버러 시내 어디서나 보이고 또 성 안에서 시내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견고하고 단단해서 300여년 동안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성 안에 들어가면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의 감시 아래 살다가 참수당한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유품이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없는 저는 성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로얄 마일
에든버러 캐슬을 내려오면 성 앞 도로에 ‘로열 마일(Royal Mile)’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름 휴양지 홀리루드 궁전까지의 옛길을 말하는데요. 예전엔 귀족들만 다닐 수 있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총 길이가 1.6km인데 길이 단위 ‘마일’의 유래가 된 곳이 바로 이 길입니다.
스코티쉬 내셔널 갤러리가 보이는 풍경
스코티쉬 내셔널 갤러리
로열 마일을 내려와 스코티쉬 내셔널 갤러리를 지나 걸었습니다. 날씨는 화창했고 공기는 파랬습니다. 떠나기가 너무나 싫었습니다. 걷다보니 동화속에 나올 법한 고색창연한 건축물이 눈에 띕니다. 스코틀랜드가 자랑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월터 스콧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스콧 기념탑입니다. 역사소설의 창시자인 스콧의 대표작이 바로 ‘웨이버리(Waverly)’입니다. 에든버러 기차역의 이름이기도 하죠.
스콧 기념탑
월터 스콧 경
스콧 기념탑이 서 있는 프린스 스트리트를 기준으로 구시가와 신시가지가 나뉩니다. 아쉽게도 저는 신시가지 쪽은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웨이버리 기차역에서 런던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거든요. 언젠가 다음이 있겠죠. 여행이란 항상 떠날 때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죠. 다음에 다시 만날 그때까지 에든버러와는 잠시 안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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