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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의 하이라이트 바라나시입니다. 가장 인도다운 인도를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바라나시에서 세 번 놀랐습니다. 첫번째는 너무 지저분해서, 두번째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세번째는 갠지스강이 너무 고요해서입니다. 인도를 가기 전에 바라나시를 제일 걱정했었고 그 걱정만큼 역시 쉽지 않은 곳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라나시는 인생을 다시 생각해보는 곳이라지만 저는 너무 거창한 생각까지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들도 이렇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저는 잠깐 거리를 활보했을 뿐이죠.


가방을 앞으로 메고 카메라 목에 걸고 얼굴은 마스크로 가리고 누가봐도 관광객 티나게 다녔고, 일제히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1달러 동냥을 위해 100미터 이상 따라오는 아이 안은 여자들, 끊임없이 호객하는 릭샤왈라(기사)들,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경적 소리들, 오토릭샤, 자전거, 싸이클릭샤, 자동차, 우마차는 물론 지나가는 소까지 끼어들어 거리는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전에 현대차에서 클랙슨을 울리기 어렵게 만든 차를 인도에 내놨다가 안 팔려서 다시 클랙슨 누르기 쉬운 차로 원상복구해 팔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왜 그랬는지 절감할 수 있겠더라고요. 인도에서 클랙슨은 운전과 동의어입니다다. 길을 비키라고도 누르고 반갑다고도 누릅니다. 습관적으로 눌러요. 시끄러운 것은 신경 안쓰나봐요.


완전히 새로운, 낯선 나라에 뚝 떨어진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은 곳입니다. 거리에서 앞만 보고 모두 함께 질주하는 사람들 보면서는 혹시 여기가 <매드맥스>의 무대는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릭샤를 타고 달리는 건 신났지만 먼지를 하도 마셨더니 목이 막히네요. 팁을 생각 이상으로 줬는데도 인력거 아저씨 표정은 밍숭밍숭해서 당황했습니다. 미로도시에선 소똥을 피해 요리조리 피해다녔고요.


마침내 나타난 갠지스강 가트(계단). 매일 저녁 행해진다는 힌두교 의식을 배 위에서 지켜봤습니다. 이곳에선 신자들이 모여서 다함께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드립니다. 종교가 곧 삶인 이들은 이곳 강물에 머리를 담그면 죄를 씻는다고 믿는다죠. 제 눈엔 그저 더러운 강물일 뿐이지만 그들에겐 성수입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믿는대로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라나시는 '바라나스'+'아시'의 합성어입니다. '아시'는 산스크리트어로 80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요. 80이라는 숫자는 갠지스강에 있는 가트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힌두교인들은 이곳에 모여서 기도하고 의식을 치르죠. 또 80은 인도에서 힌두교 신자의 비중이 80%인 것을 떠오르게도 하네요.



이제 바라나시의 역사를 살펴볼까요?


바라나시는 갠지스 강 지류인 야무나 강 서쪽의 우다르프라데시(UP)주에 속한 인구 120만명의 도시입니다.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바라나시 대신 ‘베나레스’라는 지명으로 표시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라나시는 산스크리트어 이름이고 이 도시를 부르는 힌디어 이름은 ‘베나레스’ 혹은 ‘카시’라고 합니다. (그래도 왠지 ‘바라나시’가 더 발음하기 좋아서 이 이름으로 계속 부르겠습니다.)



바라나시는 역사가 최소 4000년 이상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2000년경엔 종교, 철학, 상업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한때 카시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카시 왕국의 왕자 고타마 싯타르타가 출가한 뒤 6년의 고행과 7일간의 좌선으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후 처음으로 설법을 전한 ‘사르나트' 녹야원도 이곳에 있습니다.


바라나시는 12세기 이슬람교도에 의해 힌두사원이 파괴되면서 쇠퇴의 길을 걷다가 18세기 독립왕국으로 변신하기도 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대엔 이슬람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하니 지금 이 도시가 힌두교의 성지로 불리는 것에 비하면 참 뜬금없는 과거일 수도 있겠네요. 외부세력은 이렇게 그 땅의 역사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행정을 해버리곤 합니다.



인도 전역에서 매년 100만명 이상의 힌두교 신자들이 바라나시를 찾습니다. 죄를 씻기 위해 강물에 머리를 담글 수 있는 계단(가트)은 갠지스 강변을 따라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있는데 하류 쪽에는 화장터가 있어 삶과 죽음이 교차합니다. 신앙심 깊은 힌두교인들은 죽은 뒤 이곳 화장터에서 최후를 맞기를 소망한다죠.


그러나 바라나시에서 화장되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돈이 있어야 합니다. 돈 없는 사람들의 시신은 거리에 버려집니다. 이곳에선 나무가 귀해서 시신과 함께 태울 나무를 자신이 직접 마련해야 하는데 이 돈이 만만치 않습니다. 나무가 모자르면 화장하다가 자신의 몸이 다 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죽음마저도 돈이 지배하는 냉혹한 곳이 바라나시입니다.


바라나시에는 곳곳에 수백 개가 넘는 사원이 있는데요. 이들 중 시바 신을 모신 비슈바나타 사원과 원숭이 신 하누만을 모신 산카트모차나 사원, 바나라스힌두대학교 내에 자리잡은 툴라시마나스 사원 등이 유명합니다. 힌두교에서는 모든 동물이 다 신이 될 수 있어요. 그중 코끼리를 가장 숭배한다죠. 소도 마찬가지고요. 집안에 일이 생기면 동물들에게 소원을 빕니다.


힌두교의 3대 신 하면 창조의 신 브라마, 유지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를 꼽는데요. 이를 농담처럼 G.O.D라고 합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창조=Generator, 유지=Operator, 파괴=Destroyer를 줄여서 G.O.D로 부르는 거죠. 꽤 그럴 듯한 작명 아닌가요?



매일 저녁 해질 무렵 갠지스 강변에선 힌두교 제사의식 ‘뿌자’가 1시간 가량 거행됩니다. 만트라를 외고 춤을 추는 이 의식은 화려하고 경건해서 전세계에서 이국적인 광경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듭니다.


바라나시에는 1916년에 세워진 바나라스힌두대학교도 있습니다. 이 대학은 산스크리트어 학문에서 최고의 학교로 전국에서 학생들이 유학을 온다고 하네요. 미술, 공예품, 나무 장신구, 상아, 놋쇠, 비단 등 특산품을 파는 가게도 곳곳에 보이고요.


사진을 보면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뒤 설법한 곳 사르나트입니다.

뒤에 큰 원으로 되어 있는 곳에 부처가 앉고

앞쪽 작은 원형 자리에 다섯 제자들이 앉아서 부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죠.



멀리 보이는 동그란 건물은 다멕 스투파라고 하는데 부처의 사리를 모신 곳입니다.

부처의 곱슬머리 모양을 본따 아소카왕이 만들었습니다.



다멕 스투파 주위를 많은 중생들이 빙빙 돌고 있습니다.

저도 함께 돌아봤습니다.



허벌나무가 우거진 사르나트에 한 승려가 여유롭게 책을 보고 있네요.

그 아래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개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입니다.



거리에서 저를 끈질기게 따라오던 릭샤왈라 아저씨입니다.

"갠지스강에 일몰 보러 갈 거면 5시 30분까지 꼭 오세요."

"네네, 그때 다시 올게요."



계속 걷는데 외줄타기를 하는 소녀가 있더라고요.

한쪽에는 호객하는 남자가 따로 있었고요.

사진을 찍었더니 얼른 돈을 내라고 해서 돈통에 넣고 왔습니다.



바라나시 시내에는 중앙선이 없는 곳이 많습니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 오토릭샤, 싸이클릭샤, 우마차 등등

여기에 소들과 개들도 끼어들죠.

각종 움직이는 것들로 꽉 차 있어 정신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운전 잘할 수 있다면 베스트 드라이버로 인정.



갠지스강으로 가기 위해 인력거를 탔습니다.

아까 그 아저씨가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하고 다른 차를...



갠지스강 일몰 보러 가는 사람들로 도로가 꽉 막혔습니다.

그래도 직진, 직진.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온갖 탈것들.

큰 차, 작은 차, 짐 많은 차, 승려들, 거지들, 아기 안고 달려오는 여자들...

소음과 먼지가 뒤죽박죽, 비현실적인 공간을 계속 달립니다.



이 와중에 서점도 있습니다.

무슨 책을 파는 지 궁금하네요.



힌두교 제사의식 '뿌자'에 쓰이는 물건을 머리 위에 이고 가는 사람들이 보이네요.



드디어 도착한 갠지스강 입구의 모습입니다.



힌두교의 신들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넝마를 걸친 할아버지가 지나가고 옆에서는 구걸이 계속되고...

갠지스 강의 푸른색은 뭔가 더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푸른색입니다.



해가 저물어 가고 이곳에선 힌두교식 제사의식이 진행되려 하고 있습니다.



이마에 붉은 점(빈디)을 찍은 아이도 갠지스 강으로 나왔네요.

힌두교에서 빈디는 '제3의 눈'을 의미해요.

에너지의 중심을 미간 사이에 모아 온몸을 통제한다는 의미죠.

전통적으로는 붉은 점은 기혼 여성, 검은 점은 이혼 여성을 뜻하기도 했습니다만

여기선 그런 의미는 없는 듯해요.

어쨌거나 저도 붉은 점을 미간에 찍어봤습니다.



해는 벌써 저물었고 저는 보트를 탔습니다.

소음의 해방구랄까 여기 나오니 신기하게도 참 고요하네요.

갠지스 강은 수심이 40미터나 될 정도로 깊어요.

히말라야에서부터 내려와 영험하다고 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서 몸을 씻고 그 물은 화장터로 흘러들어갑니다.



80개의 가트 중 한 곳입니다.

이날 살짝 낀 안개가 붉은색 영험한 기운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힌두교 의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믿을 수 없이 고요해요.



모자도 보트를 타고 뿌자를 기다리고 있네요.



제사의식이 시작됐습니다. 경건하면서도 꽤 신납니다.

강가에 모인 사람들 중엔 신자들도 있고 저처럼 관광객들도 있죠.

가운데 보이는 맨살을 드러낸 7명의 브라만 제사장들이 주도합니다.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읊다가 기도하고 노래하고 춤추는데요.

저도 덩달아 손뼉을 쳤습니다.


"Har Har Gange!"

"갠지스 강의 신이시여, 고통을 거둬가시고 소원을 이뤄주소서."



일과 기도가 인생인 사람들.

죽어서 극락 가기를 바라며 현재의 삶을 희생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바라나시는 어떤 의미일까요?



밤이 깊어가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다시 싸이클릭샤를 탔어요.

거리는 여전히 정신없고 시끄럽습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갠지스강을 다시 찾아 보트를 탔습니다.

6시 30분, 갠지스강에 해가 떠오르고 있네요.



소원을 이뤄준다는 ‘디아’를 파는 소년입니다.

1달러를 주면 4개를 줍니다.

1달러씩이 모여서 소년은 학교를 갈 수 있다고 하는군요.

디아는 띄운 사람뿐만 아니라 소년의 소원을 이뤄주는 역할도 하나 봅니다.



저도 디아를 띄웠습니다.



어느새 해가 저만치 올라왔네요.



갠지스강 상류에선 사람들이 목욕하고 하류 쪽엔 화장터가 있습니다.

죽은 자의 장남 혹은 막내 아들이 시신을 모시고 이리로 옵니다.

13일간의 장례 의식을 지낸다고 하는군요.



화장터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아빠가 죽으면 큰 아들이 삭발하고, 엄마가 죽으면 막내 아들이 삭발한다고 해요.

완전히 깍는 게 아니라 머리카락을 뒤에 조금 남겨놓는데

이는 죽은 자의 영혼과 연결하는 의미라고요.

13일이 지난 후엔 완전히 삭발합니다.



화장할 땐 완전히 다 태우는 게 아니라

남자 시신은 가슴, 여자 시신은 허리 부위를 남겨놓고 태운다고 하네요.



죽은 나무들, 전통 의상을 입은 시신들, 타고 남은 재들, 먹을 것 찾아온 개들, 흰 옷 입은 인부들...

산 사람들이 목욕하고 죽은 자들이 떠내려 가는 곳.

힌두교의 성지 갠지스 강입니다.



아침을 맞았으니 짜이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해야죠.

"자 줄을 서세요."

짜이는 물, 설탕, 우유, 생강을 넣고 5~10분 끓여 만드는 인도 전통 차입니다.

모디 총리도 한때는 짜이를 팔던 청년이었습니다.



대형 솥에 끓인 음식은 누가 먹게 될까요?



싸이클릭샤에 앉은 아이들이 조잘거리고 있습니다.



바나라스힌두대학교(BHU) 내에 있는 힌두교 사원입니다.

캠퍼스 안에 사원이 있다니 특이하죠.

시바신을 모신 곳으로 19세기에 지어진 곳입니다.



인도에선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보관료도 따로 받아요.



사원 안에선 이렇게 시바신을 위한 의식이 진행 중이에요.



대학 내 상점 아저씨들이 아침부터 신문을 보고 있네요.



모디 총리는 최근 바라나시를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지하철 공사를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공항 근처에서 공사 현장을 볼 수 있더라고요.

앞으로 갠지스 강을 공항에서 지하철로 가는 날이 과연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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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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