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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국영화 중 이렇게 리얼하게 촬영 현장을 보여준 영화는 없었다. 그 어떤 영화의 메이킹 다큐멘터리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다. 14명의 배우들과 감독들, 기자들의 출연 덕분에 영화 현장이 풍성해졌다. 윤여정, 박희순, 강혜정, 오정세, 김민희, 김옥빈, 류덕환, 이하늬, 김남진, 최화정, 김C, 정은채, 이솜, 김기방, 하정우, 이재용 감독, 이준익 감독, 임필성 감독, 김지운 감독, 류승완 감독, 정정훈 촬영감독, 조상경 의상감독, 그리고 씨네21 기자들까지. 실제로 이렇게 많은 유명인들이 모인 영화 현장도 아마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극중 이재용 감독은 새로운 영화를 찍으려고 한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를 찍는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감독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고 화상으로만 연출하는 것. 영화 속 영화는 10분짜리 단편영화를 의뢰받은 하정우 감독이 스튜어디스 정은채와 하와이로 밀월여행을 떠나고 화상통화만으로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이재용 감독은 이 촬영과정을 담은 영화를 그 자신도 LA에서 화상으로 통화하면서 연출한다. 즉, 액자구성으로 영화 속 영화가 있는 셈인데, 결국 <뒷담화 : 감독이 미쳤어요>(이하 <뒷담화>)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는 영화다. (응?)


구성이 꽤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액자구성 속 영화도 메이킹 영화이기 때문이다. 메이킹 영화 속에 또다른 메이킹 영화가 있는 셈인데 그러나 실제로 영화는 그렇게 복잡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출연한 배우들이 워낙 유명하기에 그 사람에 대한 확실한 인지도가 그 배우를 영화 속 영화의 스탭이라기 보다는 그저 '스탭을 연기하는 배우'로만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후반부로 가면서 배우가 또다른 배우처럼 연기할 때 영화가 조금 복잡하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 역시 그들이 기존에 워낙 유명한 배우들이기 때문이다. 즉, 이 영화는 배우들의 인지도가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을 이야기다.


예를 들어, 김옥빈이 영화 속 영화에서 스크립트로 나오는데 후반부에서는 갑자기 감독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영화의 마지막 대사를 막내인 이솜에게 주었다며 토라진다. 감독은 옥빈이가 삐졌다며 상처받지만 그 장면에서 관객은 김옥빈이 스크립트인지 배우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김옥빈은 스크립트역을 맡은 배우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든다. 이야기의 뼈대는 다큐멘터리인데 서스펜스도 있고 극적갈등도 있다. 감독이 정말 LA에 있는지 아닌지를 놓고 배우와 스탭들 사이에 내기가 벌어지고 박희순과 오정세를 선두로 배우들과 제작자가 합심해 몰래카메라도 찍는다. 감독이 정말 LA에 있는 걸까. 박찬욱 김지운이 헐리우드에 갔으니 나도 헐리우드에 영화 찍으러 왔다고 너스레를 떠는 이재용 감독은 이 영화의 훌륭한 맥거핀*이다. 이 서스펜스가 시종일관 유지됐기에 <뒷담화>는 불균질한 역할분담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올해 가장 독창적인 한국영화 중 한 편이 이렇게 많은 영화인들에 의해 탄생했다. 애초 기획의도는 사랑과 영화 사이에서 고민하던 감독이 인터넷으로 연출을 한다는 스토리의 삼성전자 갤럭시노트용 단편영화 <십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 준비하다가 그 촬영현장도 감독 없이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 영화가 탄생했다고 한다. 엄청난 분량을 편집해 지금의 영화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감독이 없는 현장은 결국 후반작업에서 중노동을 예고한 것 아니었을까 싶다.



* 맥거핀: 영화에서 긴장을 높이려고 사용하는 플롯의 한 장치.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관객이 영화에 집중하게 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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