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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클라라는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 가만히 서 있다. 바닥에는 사선이 빼곡하다. "이번엔 꽤 어려워보이는구나" 루카스는 잠시 망설이더니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안아 집 안으로 들여보내준다. 두 사람 사이의 금지된 거리는 곧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장면2: 사슴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숲속으로 사냥을 나선 주민들. 사냥꾼들은 이리저리 희생양을 찾아 헤맨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슴 한 마리가 가만히 서 있다가 총에 맞아 즉사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있던 그 한 마리는 영문도 모른채 죽어간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 루카스가 초반부의 그 사슴과 똑같은 포즈로 가만히 서 있다가 총에 맞을 뻔한다. 그러나 총알은 루카스를 피해갔다. 루카스는 도망가는 대신 똑바로 서서 사냥꾼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본다.


한 아이의 거짓말이 한 남자를 파국으로 이끈다. 오해가 낳은 집단 따돌림은 15세기 마녀사냥과 1950년대 매카시즘을 연상시키는데, 요즘이라면 학교에서의 왕따나 '타블로 사태'처럼 네티즌들의 맹목적인 집단불신을 떠올리게도 한다. 한 개인이 집단에 의해 파멸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의 주제와 닮았는데 라스 폰 트리에가 주민들을 다 죽여버리면서 화끈한 복수를 한다면, 토마스 빈터베르크는 복수 대신 화해를 택한다. 그러나 그 화해는 여전히 불신 속에 놓여 있는 불안한 동거 같은 화해다. 믿음은 곱게 빚은 도자기와 같아서 한번 깨진 신뢰는 아무리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깨지기 전처럼 완벽하게 회복되지 못한다. 그저 그릇으로서의 기능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루카스라는 인물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전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그리워하고 동료 여교사와 사랑을 나누고 친구들과 유쾌하게 술을 마시는 남자. 초반부에 설명되는 루카스라는 캐릭터는 성추행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유치원 교사인 그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도 그를 따른다. 다만 클라라라는 아이는 루카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학생이 선생을 짝사랑하는 단계를 넘어 루카스가 선물을 거부하자 그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어른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버림받은 마음이 억울해 악의의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영화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클라라는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 같다가도 한편으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는 아이처럼 보인다. 그리고 나중엔 자신이 한 말을 다 부정한다.


결국 사건을 키우는 것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믿음이 한 남자를 파멸로 몰고 간다. 원장부터 시작해 동료 교사들, 학부모들, 슈퍼마켓 직원들까지 모두 루카스를 의심한다. 영화가 초반부에 루카스라는 인물의 일상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것이 진실인지 의심했을 것이다. 혹시 루카스가 정말 성추행을 하지 않았을지 나중에 뒤통수를 치지 않을지 고민하면서 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가"를 묻는 영화가 아니다. 그래서 영화는 경찰이 루카스를 취조하는 장면도 보여주지 않는다. 쓸데없는 의심에 러닝타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대신 이 영화는 집단이 한 개인을 어떻게 핍박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관객이 루카스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루카스역 매즈 미켈슨의 약해보이면서도 강인한 표정연기는 이 영화가 설득력을 얻게 된 거의 모든 것이다.



영화는 11월,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그리고 다음해 10월. 이렇게 네 가지의 시간을 기점으로 전개된다. 낙엽이 지는 11월에 평온한 일상을 보여주고, 눈이 내리는 12월에 루카스는 고립된다. 루카스를 믿어주는 것은 그의 아들과 친척 뿐이다. 집단 왕따에 의해 슈퍼마켓에서는 출입금지당하고 개도 잔인하게 살해된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인 크리스마스 이브. 교회에서 8시간 동안 촬영했다는 그 장면에서 드디어 루카스의 분노가 폭발한다. 억울하지만 피할 것인가,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도망갈 것인가, 루카스는 아마도 수없이 고민했을 것이다. 관객들도 그 전까지는 차라리 그 마을을 떠나라고 소리쳤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루카스는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남자다. 자신의 친척들과 옛 친구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곳에서 도망칠 수 없는 남자다. 현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피한다면 결국 갈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을 것이다. 슈퍼마켓에서 기어이 장을 보고 온 루카스는 교회에서 옛 친구이자 클라라의 아빠 테오를 쳐다본다. 그리고 그를 원망한다. 왜 자신을 믿어주지 않느냐고. 그 장면에서 전달된 루카스의 진심이 결국 사건을 푸는 열쇠가 된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미장센과 북유럽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접합된 이 영화의 에필로그는 이듬해 10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온 루카스의 일상이다. 마을 주민들은 루카스 부자와 다시 잘 지낸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신뢰는 결코 원상회복될 수 없다. 앞서 본 '장면1'에서처럼 루카스는 클라라에게 다가갈 수 있을 만큼 용기를 얻었지만, 클라라는 이제 자신이 이 남자를 힘들게 할 수 있는 무기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거짓은 언제라도 희생양을 찾는다. 순진한 사슴일수록 표적이 되기 쉽다. 루카스는 낙엽이 가득한 숲 속에서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자신이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몸을 떤다. 그러나 이내 다시 정면으로 사냥꾼이 있던 자리를 마주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집단폭력에 대응하는 한 억울한 개인을 위한 매뉴얼이자 최면에 빠진 집단을 향한 거울 같은 영화다. 거짓이 증폭되어 그로 인한 자극적인 불신에 감염되는 것은 쉽지만 그 속에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바늘구멍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문제는 애초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 감염됐다면 진실은 다른 곳에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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