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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국민가수 레너드 코헨을 기억하시죠? I'm Your Man의 읊조리는 저음이 매력적이죠. 그 노래가 1988년에 나온 노래인데 같은 음반에 Take This Waltz라는 곡이 있습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라는 스페인 시인의 시를 코헨이 노래로 만든 것이죠. 캐나다인 배우이자 감독인 사라 폴리가 만든 이 영화의 제목이 바로 그 노래에서 가져온 Take This Waltz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봤는데 비엔나에서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왈츠를 추는 것 같은 비장미가 물씬 풍기네요.


영화가 시작하면 마고(미셸 윌리암스)가 요리를 하고 있습니다. 근사한 옆모습이 나오고 서성거리는 그녀의 발이 나옵니다. 행복한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되지만 곧 그녀는 오븐 옆에 주저 앉습니다. 그리고 흐릿한 화면에 남자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대체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와 그녀는 몬트리올의 한 유적지에서 만났습니다. 간통죄로 처벌을 받는 것을 재현하는 상황극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그녀는 우연히 참여자가 되어 죄수를 채찍으로 때리게 됩니다. 그때 관객 중 한 명이던 그 남자가 외치죠. "똑바로 좀 해봐요." 재미있는 것은 채찍으로 때리는 여자가 결국 영화의 후반부에는 바로 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너무 끼워맞춘 것 같은 설정인가요? 하지만 이런 디테일이 잔재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첫 만남은 밉상이었지만 만날수록 끌리는 이 남자. 그녀는 그에게 자신이 비행기를 탈 때 느끼는 공포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의 두려움. 붕 떠 있는 것 같고 어중간한 상태에 놓인 두려움.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을 정정해줍니다. 당신은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고. 비행기 에피소드는 이후 여자의 심리상태와 계속해서 연결됩니다.


그와 그녀는 서로에게 끌렸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그녀에게는 아주 자상한 곰같은 남편이 있었고, 그는 그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위기의 주부들]에 찾아온 예술가 독신남의 출현이랄까요. 그러나 영화는 수다를 떠는 대신 그녀의 심리를 감성적으로 묘사합니다. 5년간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랑하는 남편이 바로 옆에 있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은 허전합니다. 그때마다 그 남자가 나타납니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저 기다립니다. 그래서 그녀가 먼저 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후에 다시 만나면 그때 너에게 키스해줄게.


<러브 어페어>가 나오던 시절의 영화였다면 아마도 30년을 기다리는 장면에서 끝냈을테지만 <우리도 사랑일까>는 여자의 선택을 밀어부칩니다. 결국 남자가 떠나가고 나서야 여자는 깨닫습니다. 비행기를 환승하기 위해 휠체어를 탈 것이 아니라 두 발로 더 당당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남편은 그녀를 놓아줍니다. 괴롭지만 사랑의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정이랄까요. 참고로 이런 남편 같은 캐릭터는 노라 에프론의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에서도 나왔습니다. 빌 풀먼이 순순히 멕 라이언을 톰 행크스에게 떠나 보냈죠. 여성 감독들의 판타지인가요? 여자의 외도가 들키면 대판 싸움부터 벌어지는 한국영화의 정서와 확실히 다르긴 합니다.


남편을 떠나 마음이 끌리는 남자를 찾아 나선 마고는 그래서 멕 라이언처럼 행복했을까요? 그러나 그녀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제시되었던 것처럼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여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외로운 그녀는 어느 곳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입니다. 사랑을 타인에게서 갈구하기만 할 뿐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여자이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다시 영화의 첫 장면이 반복됩니다. 그녀는 그 남자를 위해 요리를 준비하다가 오븐 앞에서 주저 앉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어려운 주제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입니다. 살며시 흔들리는 카메라가 마고의 심리를 그대로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놀이기구에 올라탄 마고는 불이 꺼지고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흘러나오자 머리를 정신없이 흔들어댑니다. 음악에 흠뻑 취해 있습니다. 그러나 마고는 갑자기 불이 켜지고 노래가 끝나자 당황합니다. 꿈속의 판타지가 끝나고 눈을 뜬 현실세계는 시시합니다. 다시 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무척 두렵습니다. 하지만 불타오른 것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이죠. 이 영화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 두려움을 공감하고 있지 않은지 묻습니다.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적 있던 미셸 윌리엄스는 이 영화에서도 참 연기를 잘하네요. 마냥 행복해보이는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배우입니다. 어떨땐 아주 예쁜 소녀같다가 어떨땐 그저 평범한 아줌마처럼도 보입니다. 히스 레저와의 사이에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왠지 인생의 굴곡이 많을 것 같은 여자입니다. 두 남자는 모두 캐나다 배우가 캐스팅됐는데 남편은 코미디영화에 주로 나왔던 세스 로겐, 새 남자는 루크 커비가 연기했습니다. 둘다 전형적으로 배역에 잘 어울렸습니다. 전형적이라는 말은 남편 루의 직업은 치킨 요리사, 그리고 새 남자의 직업은 화가이자 인력거꾼이기 때문입니다. 요리사와 화가라는 설정 만큼 이런 영화에서 식상한 직업은 없을 겁니다. 그나마 인력거는 색다르네요. 영화의 배경이 토론토의 Little Portugal이라는데 그곳에 인력거를 끄는 예술가 훈남이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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