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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면 카메라는 극장의 관객들을 비춘다. <아무르>와 비슷한 오프닝인데 차이점이라면 <아무르>의 관객들이 조용히 앞으로 펼쳐질 공연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면 <홀리 모터스>의 관객들은 죽은 듯이 조용하다. 잠들어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마치 좀비처럼 보인다. 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영화가 무척 지루하거나 혹은 이미 죽어버린 영화에 전염됐기 때문일 것이다. 관객은 거기 있지만 봐주지 않는 영화를 계속 상영해야 할까? 이때 감독 자신이 등장해 무대 뒤로 사라진다. 마치 무대 뒤에는 뭔가 새로운 게 있으니 관객을 잠에서 깨울 수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드니 라방이 손가락 열쇠로 잠금장치를 열고 문 안으로 들어간다. 이제 관객들은 지금껏 보지 못한 독특한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본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중요하다. 이 영화에는 제대로 설명할 만한 플롯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는 것'의 쾌감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를 이해하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기에 '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이 자네를 지탱해주나?"

"행위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은 눈 속에 있지"

"만약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극중 미셸 피꼴리와 드니 라방의 대사)


배우의 연기를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이상 연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그저 또다른 삶의 형태일 수 있다. 레오 카락스는 <홀리 모터스>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의 경험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오스카 역을 맡은 드니 라방이 1인 11역을 하며 9개의 인생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는 대기업 회장, 아름다운 여자 모델을 납치하는 광인, 왕따당하는 딸을 집에 태워주는 아빠, 딸 옆에서 죽어가는 아버지, 옛 연인와 재회하는 남자, 총을 들고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모션캡처 배우가 된다. 이런 다양한 역할극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현실과 다른 사이버 세상에서 여러 개의 아바타를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우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장르를 표현한 영화 역사에 대한 상징적 압축처럼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상황극이 한 배우가 평생동안 연기할 수 있는 다양한 언어처럼 보였다. 한 배우의 인생이 여러가지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9개의 극은 9개의 언어이다. 하나의 언어로 통역할 수는 있겠지만 언어의 원래 맛은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진짜 그인가. 그는 언어와 언어 사이, 즉, 리무진 안에 있을 때만 그 자신의 모습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중간에 휴식 파트가 있다는 것이다. 오페라 공연에나 있을 법한 공연 중 휴식은 옛날 대작 영화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벤허> 같은 영화에서 중간에 Intermediate가 있어서 화장실에 다녀오곤 했었다. 아무튼 <홀리 모터스>의 휴식 파트에선 오스카가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앞으로 걸어오면서 사람들이 점점 합세하고 연주 규모가 커지는 이 장면의 박진감은 악기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배가 되는데 연주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황홀한 장면이다.


영화의 제목이 지칭하는 '신성한 모터'는 오스카가 타고 다니는 리무진일 것이다. 길다란 하얀색 리무진은 부와 특별한 날의 상징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점점 찾는 사람이 없는 퇴물처럼 그려졌다. 엔딩에서 리무진들이 백램프를 키며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의 익살은 마치 퇴역 군인이나 원로 배우들이 왕년을 추억하며 나누는 대화 같다. 기계들만 나오는 대화장면이라는 점에서 <미지와의 조우>에서 외계인과 음악램프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토이 스토리>에서 인간이 잠들자 갑자기 깨어나는 장난감들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올림푸스 산에 모인 그리스 로마신화의 신들이 신화의 몰락을 한탄하며 대책회의를 하는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리무진 외에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또하나의 모터가 있다. 바로 카메라다. 이 영화를 감독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관한 영화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어쩌면 리무진조차도 카메라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리무진의 덩치가 그렇게 큰 이유는 옛날 필름 영화 카메라들의 덩치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내 몸보다 크던 카메라는 내 머리보다 작아지더니 사라져 버렸어. 더이상 뭘 찍는지 모르겠고, 더이상 사람들은 영상 안의 진실을 믿지 않아." 미셸 피콜리와 드니 라방이 나누는 대화에 함축적으로 드러나 있듯 감독은 디지털 시대에 사망한 옛 필름 영화를 추억한다. 그래서 모션캡처 배우들의 실제 모습을 지루하리만치 보여준다. 모션캡처 배우들이 총을 들고 달리고 섹스하는 모습은 앙상하고 낯설다. 특수효과로 범벅한 수많은 현대영화들의 '생얼'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이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요즘 영화의 실체라고 조롱한다. 또 철거를 앞둔 사마리탄 백화점이 보여주는 기괴한 스펙터클은 과거 영화를 누리던 영화의 모습과 닮았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백화점에 물건들은 남아 있지 않고 마네킹만 덩그러니 쓰러져 있다. 오스카의 옛 연인 에바로 분한 카일리 미노그는 백화점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과거의 영화는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다.



리무진 운행의 하루 일과를 마친 오스카는 퇴근한다. 그렇다면 그는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인건가? 다음 장면은 이런 궁금증에 한 방을 날린다. 집에는 침팬지 가족이 기다리고 있다. 침팬지 가족은 오스카에게 유일한 안식처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종의 기원'인 침팬지들이 또다른 언어로 연기하고 있는 삶의 확장판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스카는 결국 그가 연기했던 다양한 삶들의 기원으로 돌아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운전사였던 셀린느(에디스 스콥) 역시 가면을 쓰고 퇴근하는데 그 가면은 에디스 스콥이 52년 전 <얼굴 없는 눈>에서 썼던 가면이다. 그녀 역시 자신의 기원으로 돌아간 것이다. 영화 중간에 가끔씩 마술하는 손이나 달리는 사람들을 찍은 초창기 영화들이 등장하는데 그 영화들의 메시지도 비슷하다. 영화의 처음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영화의 기원으로 돌아가는 것.


결국 <홀리 모터스>는 플롯이 등장하기 전의 초창기 영화들처럼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긴 영화다. 그 의도는 드니 라방이라는 온몸을 사용하는 매혹적인 배우를 통해 9개의 삶으로 표현된다. 9개의 서로 다른 장르의 삶은 언어와 같아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지만 리무진이 파리 시내를 계속 돌면서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이 사람들에게 보여진다. 보고, 보여지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다가 결국 삶(영화)의 기원에서 죽어버린 삶(영화)를 살려낼 묘안을 찾는다.


영화 속에 많은 영화들의 오마주나 영감받은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홀리 모터스>는 황홀한 오리지널리티를 창조해냈다. 이미지가 너무 생생해서 기억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을 영화다. 스물 네 살에 영화를 공부한 적 없이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만들었던 천재 감독은 1999년 <폴라 X> 이후 재능이 녹슬었다는 평가를 남긴 채 잊혀지는 듯싶었지만 쉬흔 두 살이 되어 전혀 새로운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PS) 한쪽 눈이 멀고 빨간색 머리카락에 긴 수염을 흩날린 채 지팡이를 집고 괴팍하게 걸으며 꽃을 먹고 묘지를 활보하는 광인은 단연 눈에띠는 캐릭터다. 에바 멘데스를 칭송하던 카메라를 돌려세울 정도로 기괴하고 이상하다. 옴니버스 영화 <도쿄!>에도 등장했던 이 광인 캐릭터는 레오 카락스가 그의 무산된 런던 프로젝트에서도 등장시키려고 준비하던 캐릭터였다. 그러나 사실 이 광인은 장 르느와르의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에서 파리의 방랑자 부뒤 역할을 맡은 미셸 시몽에게 영감 받은 캐릭터다. 레오 카락스는 드니 라방의 완벽한 연기를 칭송하면서 이 역할을 할 배우는 드니를 빼놓고는 찰리 채플린, 미셸 시몽 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광인이 모델을 납치해 동굴에 들어가서는 그녀의 옷을 찢어 성모 마리아처럼 만든다. 그리고는 스스로 발가벗고 발기한 채로 그녀 옆에 눕는데, 수염이 길어서인지 마치 예수처럼 보인다. 신성모독을 노렸을 수도 있겠는데 그 의도야 감독만이 알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 장면 때문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었고, 광인의 발기된 성기를 블러 처리한 후에야 정식 개봉할 수 있게 됐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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