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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마이클 섀넌)는 매일 악몽을 꾼다. 폭풍이 몰려오고, 엔진오일이 비가 되어 내리고, 개가 팔을 물어 뜯고, 좀비가 된 사람들이 차 안에 갇힌 자신과 딸을 공격하며, 급기야 아내가 흠뻑 젖은 채 자신을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사람들은 커티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가 미쳤다고 수군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보는 것은 환영일까 아니면 어떤 예시일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남자. 유령을 보는 <샤이닝>과 <식스 센스>의 아이도 떠오르고, 예지력과 부러지지 않는 육체를 동시에 지닌 <언브레이커블>의 브루스 윌리스, 코마에서 깨어난 뒤 손만 잡으면 상대방의 미래를 볼 수 있게 된 <데드 존>의 크로스토퍼 월켄, 끔찍한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나비효과>의 애쉬튼 커처, 가깝게는 지구 종말을 예감한 <멜랑콜리아>의 커스틴 던스트도 떠오른다. <테이크 쉘터>는 이런 기본 이야기 뼈대에 지극히 현실적인 은유법의 살을 입힌 영화다.


우선 미국인 노동자 계층의 삶이 캐릭터와 배경으로 들어갔다. 영화의 배경은 2010년. 전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의 여파가 계속되던 때다. 중산층의 삶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간 시기, 그 몰락의 공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언제 닥칠지 모를 해고와 파산의 두려움은 영화에서 CG로 그려진 거대한 폭풍우 만큼이나 무시무시하다. "치료비가 없어서 병원에 갈 수 없다" "신용카드는 절대 쓰지 말라"는 대사는 직접적으로 그 어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커티스는 대피소를 짓기 위해 이미 담보 잡힌 집에서 추가 융자를 받고, 사만다(제시카 차스테인)는 아이의 수술비를 보험에서 지급받지 못할까봐 안절부절한다. 당장 폭풍이 몰아치는 것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파산의 공포다. 이 영화에서 '집이 날아간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의 물리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재난이다.


커티스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미국으로 확장시켜 보면, 새떼는 미국의 몰락 징조, 폭풍은 미국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공포다. 미국이라는 신화는 몰락하고 있지만 정작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미국인은 많지 않다. 폭풍이 지나가면 그저 나뭇가지를 줍고 집을 수리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폭풍이 집이 아닌 마을 전체를 날려버릴 만큼 거대하다면? 아마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인들은 점점 더 이러한 예감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미국이 점점 몰락하고 있다는 것은 달러화의 가치 추락, 미국 내에서 계속되는 테러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특히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사회의 안전신화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 몰락의 징조와 이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공포를 상징적으로 건드린다.


마지막으로 조현병이라는 정신병이 맥거핀처럼 플롯에 서스펜스를 입혔다. 커티스의 엄마가 36세부터 조현병을 앓았다는 가족력이 밝혀지면서 이제 36세가 된 커티스는 자신이 같은 병을 앓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그래서 점점 더 스스로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환청, 망상, 이상행동이 이 병의 증상인데 유전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환경적인 요인이 더 크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는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에 이 병을 영리하게 사용했다. 커티스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예지력을 갖게 된 것인지 시종일관 궁금하게 만든다. 커티스를 제외하면 그의 딸이 가장 먼저 폭풍을 예감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것은 또다른 능력의 유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능력의 유전이라는 점에서 <나비효과>와 맥이 닿아 있는데 <테이크 쉘터>는 좀더 의뭉스럽게 이것을 능력인지 병인지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 전략을 택했다.



<테이크 쉘터>는 집과 컨테이너, 그리고 라이온스 클럽 모임이 열리는 작은 마을이 주요 무대이고, 전반적으로 매우 잔잔한 영상에 음악도 거의 사용되지 않은 영화이지만, 커티스의 꿈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사용된 점점 커지면서 웅웅거리는 음향효과 덕분에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제프 니콜스 감독의 장기는 이렇게 상징적인 소재를 부드럽게 터치하는 것과 안락해 보이는 상황에서의 갑작스런 긴장감 조성에 있는 것 같다. 여러 영화에서 조연을 맡아 왔던 마이클 섀넌은 제프 니콜스 감독 덕분에 주연배우로 올라섰는데 보통의 미국인 같은 평범한 얼굴에 가끔씩 비치는 광기를 통해 이중적인 매력을 보여준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영화를 고르는 눈이 참 좋은 것 같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 중 뛰어나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다. <테이크 쉘터>에서도 그녀는 끝까지 가정을 지키는 아내와 엄마 역할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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