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메리칸 그래피티> <아웃사이더> <세인트 엘모의 열정> <청춘스케치> <클럽 싱글즈> <트레인스포팅> <올모스트 페이머스> <몽상가들> 등 걸작 청춘영화들의 계보를 이을 또하나의 영화가 탄생했다.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작가인 스티븐 크보스키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월플라워>. 원제는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월플라워가 되면 좋은 것들>.


월플라워는 파티에서 파트너가 없는 여자를 가리키는 단어다. 존재감 없이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이 꽃무늬 벽지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찰리(로건 러먼)는 첫날부터 그날이 졸업식이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날짜를 세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1385일이나 남아 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죽은 이후 그에게는 친구가 없다. 또 영화속에서 암시만 되어 있는 이모와 얽힌 불행한 과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부끄러움 많고 인기없는 남자, 그러나 그에게는 글재주가 있다. 그 재능을 알아본 문학선생이 찰리를 부른다. 그러나 찰리는 자신이 친구를 사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오늘 학교에서 대화한 사람이 선생님 뿐이어선 안 돼요."


샘(엠마 왓슨)과 패트릭(에즈라 밀러)은 마치 연인 같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이복남매다. 패트릭은 언제 어디서나 튀고 싶어하는 장난꾸러기이고, 샘은 올드 팝을 좋아하는 엉뚱한 소녀다. 찰리는 이들과 함께 어울린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찰리는 이들이 과연 나와 어울려줄까 고민하며 소심하게 다가간다. 그러나 샘과 패트릭 모두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다. 샘은 성적 학대를 당해왔고, 패트릭은 동성애자라는 것이 밝혀질까봐 두려워한다. 찰리는 이들의 과거를 감싸주면서 그들과 점점 가까워진다. 월플라워들의 모임에 들어간 월플라워. 셋이 모이면 꽃들은 더이상 외롭지 않다. 샘이 찰리에게 말한다. "부적응자의 섬에 온걸 환영해. Welcome to the island of misfit toys."



어쩌면 이 영화는 <몽상가들>의 청소년 버전이다. 내성적인 미소년이 자유분방한 남매와 함께 어울리는 설정이 비슷하다. <몽상가들>의 남매가 사회격변기에 집안에 숨어서 역할 놀이를 하며 버림받은 청춘을 탐닉했다면, <월플라워>의 남매는 정형화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남들과 다른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만의 클럽을 만든다. 그것은 바로 뮤지컬 [록키 호러 픽쳐 쇼]를 공연하는 것. 영화의 배경이 1991년인데 이때까지도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대단한 인기였나보다. 그들은 이 공연을 통해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든다. 처음엔 쑥쓰러워하던 찰리도 나중엔 적극적으로 양성애자 역할을 해낸다.


또 믹스테잎을 주고받는 것이 일종의 고백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다. 당시 한국에서도 유행했던 이러한 고백 방식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한 테잎을 건네주면서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다. 쑥스럽지만 좋아하는 노래가 비슷하다는 것은 아주 큰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것은 바로 너와 나는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는 유대감. 찰리와 샘이 공유하는 노래들은 더 스미스, 크래커, 소닉 유스, 그리고 비틀즈 등이다. 아, 물론 데이빗 보위의 Heroes는 아주 중요한 장면에서 주제곡처럼 흘러나온다.


찰리는 처음부터 샘에게 반했다. 그러나 그녀는 모든 남학생들이 좋아할 예쁘고 매력적인 여학생이어서 그에게는 용기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변변치 못한 남자와 만나는 것 같다. 찰리는 문학 선생에게 묻는다. "왜 사람들은 자기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걸까요? Why do I and everyone I love pick people who treat us like we're nothing?" 이에 대한 선생의 대답은 찰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만큼만 사랑받아. We accept the love we think we deserve." 이 대답을 찰리는 패트릭에게도 그대로 해준다.


찰리는 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못한다. 엉뚱하게도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메리 엘리자베스(메이 휘트먼)와 사귄다. 그 이유가 걸작이다. 그녀가 그를 필요로했기 때문이다. 찰리는 수동적이다. 샘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진학할 대학이 전해지고 나서 뿔뿔이 헤어지기 전날, 샘이 찰리에게 묻는다. 왜 한 번도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두 사람은 뒤늦게 키스한다. 샘이 찰리의 허벅지를 문지른다. 그러자 찰리는 이모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샘도 비슷한 과거를 갖고 있다. 샘은 찰리에게 말한다. "구석에 가만히 앉아 너의 인생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앞세우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그들은 이제 어두운 과거의 터널을 빠져나와야 한다.



어리숙하기 때문에 청춘이다. 불안하기 때문에 사랑이다. 완벽하다면 그것은 청춘도 사랑도 아니다. 찰리와 샘은 아직 거쳐야 할 것이 많은 나이를 살고 있다. 그들은 언젠가 취향보다 더 다양한 소통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은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큰 일이고, 또 더 큰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들만의 긴 터널을 이제 막 빠져나오려 하고 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샘과 찰리가 각각 달리는 차 위에 서서 두 팔 벌려 온몸으로 속도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바람을 마주한 채 그들은 팔을 뻗는다. 바람과 나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 찰리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더이상 두려움 없는 고등학생이 된 그 자신을 향한 근사한 마침표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무한하다고 느꼈다.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


로건 러먼, 엠마 왓슨, 에즈라 밀러는 너무나 적확한 캐스팅이다. 댄디한 찰리, 모호한 샘, 엉뚱한 패트릭, 그 인물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에즈라 밀러는 <케빈에 대하여>에서 강렬했던 것만큼이나 <월플라워>에서도 아주 인상적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궁금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