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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은 인터넷이 애초 구현하려 했던 네트워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기술이다. 국가, 기업, 이익집단 등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 정보와 자본 등에 대한 접근권을 구성원들에게 배분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나눈다. 모든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며 소수의 이익을 위한 조작은 불가능하다. 기술과 아이디어를 투자한 만큼 생산이 늘어난다는 '수확체증의 법칙'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네트워크에 연결될수록 효용은 더 커진다.


블록체인 세상에선 인터넷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국경의 의미가 사라진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A국가의 나와 B국가의 당신이 서로 신뢰하도록 묶어주는 것이 블록체인이다. "모든 경계에서 꽃이 핀다"는 함민복 시인의 시어처럼 이질적인 세계들이 만나면 그 무수한 '경계들'에서 예전보다 더 많은 꽃이 피어 오를 것이다. 블록체인 참가자들이 활발하게 가치를 창출할수록 이때 창출된 가치는 혁신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기술은 없다. '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의 유명한 경구처럼 "우리는 언제나 '도중'에 있다. 어떤 세상도 완벽하지 않다." 블록체인의 원리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우리를 유토피아로 데려다 주기엔 여러 한계점들이 눈에 보인다('유토피아'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존재하지 않는(ou) 땅(topia)이라는 뜻이다). 다만 블록체인이 제시하는 방향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세상이 블록체인을 필요로 하고 있을 뿐이다.



동전의 양면, 블록체인 열풍에 가려진 것들


블록체인의 근본 취지인 탈중앙화와 분산화는 인간을 더 평등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지만 동시에 기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우려도 공존한다.


인간의 역사는 분산보다는 통일의 역사다. 아프리카에서 호모사피엔스가 탄생한 이래 여러 대륙으로 흩어졌던 인류는 각 지역에서 세를 규합해 왕국을 세우고 살아왔다. 로마, 이집트, 진나라, 아즈텍 등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국가일수록 오래 지속됐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국론분열을 통일하고 중앙집권화를 이룬 왕들을 흔히 '대왕'이라 부르며 칭송해 왔는데 왕위지상권을 확립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태종의 왕권 강화 덕분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 일본의 통일을 이룬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은 중앙집권화의 수혜자들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중앙집권화를 역사 발전으로 기록해왔다. 권력 분산을 역사 발전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고작 200여 년밖에 되지 않는데 그동안 수많은 부침이 있었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려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한국만 해도 그동안 많은 권력분산이 이뤄지긴 했지만 여전히 서울, 대기업, 대통령 등 권력이 중앙에 집중된 국가다. 인터넷 권력도 대형 포털이 가져갔다. 이처럼 중앙집중화된 시스템이 갑자기 여러 블록체인 네트워크로 쪼개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중앙권력의 공백을 틈타 무한경쟁,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질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프라이버시 침해다. 블록체인은 '낙장불입'이다. 한 번 기록되면 그 특성상 영원히 삭제할 수 없다.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영상 데이터가 급증하는 시대에 어쩌면 익명성은 허울뿐인 방어막인지도 모른다. 투명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오히려 인간을 24시간 감시당하게 하는 체제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세상은 한 번 실수하면 영원히 낙인찍혀 죽을 때까지 벌을 받아야 하는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수시로 터지는 블록체인 주변의 해킹 사건도 문제다. 암호화폐 거래 규모가 웬만한 증시 규모를 능가할 정도로 커지면서 특히 거래소 해킹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마운트곡스(일본, 2014년), 비트스탬프(슬로베니아, 2015년), 비트파이넥스(홍콩, 2016년), 유빗(옛 야피존, 한국, 2017년), 빗썸(한국, 2017년) 등 매년 굵직한 해킹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 거래소는 대부분 사설인데다가 중앙서버형으로 운영되다 보니 보안에 취약하다. 정부는 일단 신규 거래소 설립을 막고 거래실명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트레저(Trezor), 레저(Ledger) 같은 하드웨어 지갑을 도입하거나 거래소 운영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등 기술적인 해결책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지금은 비단 거래소 자체의 문제지만 나중에 암호화폐가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하면 환전 문제도 도마에 오를 것이다. 이미 발행된 암호화폐만 수만 종에 달하다 보니 국가별 환전이 아니라 암호화폐 종류별 환전이 필요하게 되면 환전소만 우후죽순 활개 칠 수도 있다.


또 지적되는 문제는 블록체인과 기존 시스템의 융합 과정에서 오는 데이터 검증 문제다. 예컨대 농산물 원산지 추적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면 디지털화된 데이터는 투명하게 관리되겠지만 디지털화되지 않은 정보는 확인할 길이 없다. 데이터상에 기록된 딸기가 실제로 싱싱한지 혹은 썩었는지, 최상위 품종 박스에 그렇지 않은 하나가 섞여 들어 있지 않은지 등은 여전히 눈으로 직접 판별해야 한다. 또 블록체인 기술이 중앙서버에 보관된 데이터를 참조할 때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상청의 날씨 정보 데이터를 공유하는 블록체인을 구성하면, 이때 날씨 데이터는 중앙서버에 보관된 것이기 때문에 데이터 무결성을 보장할 수 없다. 블록체인으로만 구성된 네트워크보다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것이다.


블록체인이 분산해 저장하는 데이터는 암호화된 텍스트 정보다. 서비스 파일은 여전히 클라우드에 저장한다. 이때 파일을 어디에 저장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가 만족하는 장소를 찾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술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인간


블록체인은 장점이 많은 기술이지만 만능 해결사는 아니다. 서로 다른 가치체계를 가진 개인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직접 주고받는다는 이상은 그럴듯하지만 과연 이상대로 실현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을 떠올려 보면 어쩌면 이상과 전혀 다른 현실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스위스, 에스토니아처럼 블록체인을 적극 받아들이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중국, 러시아처럼 문을 닫아걸고 있는 국가도 있다. 미국에서도 델라웨어주(블록체인 기록물 저장소 운영), 네바다주(블록체인 거래 면세 혜택)처럼 적극적인 주가 있는 반면 다른 지역들은 머뭇거리고 있다. 누군가는 용기 있게 뛰어가고, 누군가는 돌다리를 두드리며 간다(한국은 최근 규제 조치 등을 볼 때 팔짱 끼는 대열에 합류한 듯하다).



하지만 실행력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눈여겨보며 그들 나름대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대기업, 금융권, 정부 등 잃을 게 많은 집단일수록 유능한 두뇌를 확보하고 블록체인 연구에 더 매진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가져올 세상의 변화가 기대되는가? 혹은 두려운가? 만약 두려움이 더 크다면 스티브 잡스의 이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테크놀로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선하고 똑똑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인간은 기술을 아름답게 쓸 것이다."


언제나 그러했듯 변화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다. 암호화폐 광풍이 가져올 부작용에 혀를 끌끌차기만 하고 있다면 이젠 그 이후의 세상을 머릿속에 그려볼 때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던 오대수 씨도 오늘은 블록체인 카지노를 나와 블록체인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블록체인, 도대체 누구냐 넌?


시리즈 몰아보기: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1) 블록체인 누구냐 넌?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2) 막강 기술 스마트 컨트랙트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3) 왜 암호화폐로 시작했나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4)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차이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5) 일곱 가지 변화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6) 누구나 코인을 만들 수 있다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7) 완벽한 기술은 없다



참고자료:

돈 탭스콧.알렉스 탭스콧(2016/2017), [블록체인 혁명], 박지훈 옮김, 을유문화사

박영숙.제롬 글렌(2016), [유엔미래보고서 2050], 이영래 옮김, 교보문고

오세현.김종승(2017), [블록체인노믹스], 한국경제신문

윌리암 무가야(2016/2017), [비즈니스 블록체인], 박지훈.류희원 옮김, 한빛미디어

표철민(2017), "중개인 없는 직접 거래, 블록체인이 인터넷의 미래다", MediaX

Christopher Cannucciari(2016), "Banking on Bitcoin in Open-Source We Trust", Netflix



유창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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