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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수 씨는 블록체인 카지노에서 게임을 할 때 다른 카지노에서보다 더 공평하다고 느낀다. 억울한 수수료를 뜯기지 않아도 되고, 장부를 나눠 갖고 있으니 사기꾼이 발붙이기 힘들 거라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카지노에 대한 신뢰가 생기니 왠지 게임도 더 잘 되는 듯하다. 블록체인 카지노의 원리를 다른 곳에 적용해 보자. 블록체인 도입으로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1. 공급자와 소비자 직접 거래
블록체인의 가장 큰 장점은 불필요한 중개 과정을 생략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세상이 되면 그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중개자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대표적인 중개기관들이 바로 정부, 지자체, 금융기관(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유통기관(소매상), 법률 서비스(로펌, 공증, 공인중개사), 각종 대행업체 등이다. 규격화된 일을 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모든 업종들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농산물을 예로 들어보자.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가와 서울의 가정을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었다. 농산물을 직판하는 온라인 쇼핑몰도 이미 여러 곳 있다. 문제는 신뢰다. 원산지가 제대로 적힌 게 맞는지, 불량품이 섞여 있지 않은지 등 문제점이 지적될 때마다 소비자들은 다시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곤 했다.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한 번 입력된 농산물 산지와 유통 정보를 변경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신뢰도를 향상시켜 본격적인 산지 직판 시대를 열 것이다.
신뢰가 약한 분야일수록 블록체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카지노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사기꾼이 많은 곳이 중고차 시장이다. 사고내역 조작, 주행기록 조작, 침수차 조작 등 온갖 조작이 판친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도입되면 사고내역 변경이 불가능하기에 중고차 거래에 투명성이 확보된다. 마찬가지로 가짜 의료정보, 가짜 약, 가짜 제품 등 몰라서 당하는 거래들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홍보 대행사, 광고 대행사, 분양 대행사 등 아예 중개를 목적으로 설립된 업체들의 경우 이들의 업무에 스마트 컨트랙트를 얼마나 도입할 수 있느냐에 따라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기사 한 꼭지가 발행될 때마다 암호화폐를 얼마나 지급할지(홍보), 유저가 광고를 본 횟수당 암호화폐를 얼마나 지급할지(광고) 등을 스마트 컨트랙트로 묶어 놓으면 미들맨이 개입할 여지는 점점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계에선 이미 아티스트가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작품 발표 갤러리로 쓰는 음악가, 작가, 웹툰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직접적인 수입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미들맨들의 역할은 사라질 것이다. 아티스트가 자신이 만든 노래, 그림, 영상, 글 등으로 직접 자신의 팬들과 금전적인 거래를 하도록 도와주는 플랫폼도 있다. MyCelia, Ujo Music 등의 서비스는 암호화폐로 이런 방식의 직거래를 주선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2. 계약과정 간소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만들어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서류 속에서 존재가 증명되는 존재다. 출생신고서, 은행계좌 신청서, 졸업증명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 결혼신고서, 경력증명서, 부동산 거래 계약서, 등기부등본, 토지대장, 지적재산권 출원서, 연금신청서, 사망신고서 등 각종 공공문서를 작성하며 보내는 시간만 해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차지할 것이다.
블록체인 세상에선 각종 서류가 사라지거나 간소화된다. 국가 시스템에 블록체인 기술이 도입되면 데이터의 위조나 변조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신원 확인, 거래 확인 등의 절차가 간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2017년 6월 블록체인을 이용한 부동산 등록 시스템을 도입했고, 일본은 농지와 산림 지역까지 포함한 토지대장을 블록체인 원장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한국의 국토교통부도 지난해 '부동산거래 전자계약 시스템'을 시범 오픈하며 블록체인 도입 걸음마를 뗐다.
3. 국경없는 암호화폐
환전이나 해외 송금할 때 어김없이 거쳐야 하는 곳이 은행이다. 은행은 국경에서 길을 막고 수수료를 떼어간다. 똑같은 10달러짜리 지폐도 살 때와 팔 때 가격이 다르다. 이 가격 차이 때문에 기분 나빴던 경험은 다들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해외 송금 때 자주 이용하는 방식은 웨스턴 유니언이다. 166년의 역사를 가진 이 미국 금융회사를 이용하면 100달러를 송금할 때 수수료를 10달러가량이나 내야 한다. 보내는 국가의 은행과 받는 국가의 은행에서 이중으로 수수료를 떼어가기 때문이다. 한 번 거래에 걸리는 시간도 25초가량으로 길다. 이에 비해 비트코인은 거래 시간을 7초로 단축했고, 수수료도 0.01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싸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에는 국경이 없다. 암호화폐는 국가가 아니라 화폐의 종류로 구분된다. 따라서 만약 암호화폐가 실생활에서 널리 쓰이기만 한다면 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환전할 필요가 없다. 더 이상 은행에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특히 아프리카, 중동, 남미 국가들 중에는 환율이 불안정하거나 은행이 없는 곳이 많고, 은행이 있어도 엄청난 수수료를 떼어가는 경우가 흔한데 이들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암호화폐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혜택을 제공해줄 것이다.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촌에서 이더리움 기반 원조를 실시한 세계식량기구
4. 투명한 기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부한 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대한적십자에서 아이티 피해자를 위해 모은 성금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거나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의 전 사무총장이 기부금을 개인 용도로 착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면 기부하려는 마음이 싹 달아나기도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되고 있는 인도적 대북 지원 논란도 마찬가지다. 과연 그 돈이 실제 북한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는 데 쓰이는지 모르기 때문에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블록체인을 이용하면 기부 절차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내가 기부한 암호화폐가 어딘가로 이동할 때마다 거래 내역이 남기 때문에 나는 그 화폐를 추적함으로써 기부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세계식량기구는 2017년 5월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 1만500명을 대상으로 구호활동을 펼치면서 실물화폐 대신 140만달러 상당의 음식료품 쿠폰을 전달했다. 이 쿠폰은 난민캠프 내에 위치한 슈퍼마켓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음식료품을 사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쿠폰 발행으로 기부 목적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쿠폰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회계 처리에는 블록체인 방식을 도입했다. 이더리움의 오픈소스를 수정해 개발한 '포크'는 요르단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원조 활동을 펼칠 때도 활용된다.
5. 원아이디로 모든 웹사이트 이용
오랜만에 방문한 웹사이트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골치 아팠던 경험 다들 있을 것이다. 또 대부분의 웹사이트에서 자꾸만 비밀번호를 바꾸라고 강요해 억지로 비밀번호를 생각해내고 또 금세 잊어버린 적도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이 범용화되면 이런 짜증나는 일들로부터 해방이다. 하나의 아이디로 모든 웹사이트 이용이 가능해지기에 웹사이트에 방문할 때마다 내 개인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페이스북 로그인' '네이버 로그인' '카카오 로그인' 등으로 다른 웹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사기업의 서비스는 해당 회사가 망하면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고, 또 개인정보를 거대 사기업의 서버에 보관한다는 것도 부담스럽다(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유난히 많은 한국에서라면 더 그렇다).
이에 비해 '블록체인 로그인'은 암호화된 개인정보가 블록체인에 보관돼 사라질 염려가 없고, 보안 문제는 유저에게 일회용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식으로 해결 가능하다.
현재 금융회사들이 제공하고 있는 공인인증서 없이 앱카드와 지문인증을 이용한 인증 방식은 낮은 단계의 블록체인 로그인 운영 사례다.
스위스는 인구 3만명의 작은 마을 추크(Zug)를 2016년 크립토밸리로 선포하고 모든 시민들에게 블록체인 디지털 아이덴티티를 발급했다. 이더리움 기반으로 구축된 시민들의 디지털 ID는 일종의 디지털 패스포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6. 직접 민주주의 구현
현재 투표 시스템은 사람들이 투표소를 직접 방문해 신분증으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친 뒤 투표 용지를 발급받아 마킹하고 투표함에 넣은 후 수작업 개표하는 방식이다. 이 모든 과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한다. 하지만 개표 과정에서 내 표가 제대로 집계됐는지 누락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은 투표와 집계 사이의 절차를 투명하게 해준다. 나의 투표가 집계에 포함됐는지 확인 가능하고, 투표 이력은 영구 보존된다. 이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은 사실상 필요 없어진다.
정말로 관리자 없는 투명한 투표 혁명이 가능할까? 한 가지 전제가 있다. 투표부터 개표에 이르는 모든 절차를 블록체인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처럼 종이로 투표하고 손으로 개표하게 되면 오프라인 데이터를 블록체인 시스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미들맨이 필요해지고 이는 여전히 신뢰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덴마크의 자유동맹당과 스페인 신생 정당 포데모스는 블록체인 기반의 전자투표 시스템을 처음으로 가동했다. 하지만 완벽한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을 도입한 곳은 아직까지 없다.
향후 블록체인 투표 시대가 오면 두 가지 변화를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선거의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특히 부정부패가 만연한 정치 후진국에 블록체인 투표가 도입되면 그 파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아마도 독재국가들은 도입을 꺼려할 것이다). 둘째, 투표 절차가 간소해지고 관리 비용과 시간이 줄어들면서 간접 민주주의가 아닌 직접 민주주의가 확산될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사안마다 국민투표하는 스위스처럼 되어갈 것이다.
DAO(탈중앙화 자율조직)을 최초로 시도했으나 실패한 'The DAO'
7. 탈중앙화된 기업의 등장
인터넷 시대에는 디지털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기존 전통 산업을 장악했다. 아마존, 넷플릭스 등은 공룡처럼 재래식 기업들을 먹어치웠다.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기업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블록체인 시대에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탈중앙화와 권력 분산에 성공하는 기업들만 살아남고 이 과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기업들은 또다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블록체인 혁명'의 저자 돈 탭스콧은 "블록체인 시대엔 임원들의 급여와 그들이 기여한 가치 사이에 막대한 갭이 존재한다면 주주들이 곧바로 알 수 있다"며 "경영자들은 극단적으로 투명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조직과 전혀 다른, 아예 새로운 형태의 탈중앙화 조직도 탄생할 것이다. 이미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s, 탈중앙화 자율 조직)라는 새로운 조직 형태가 시도되고 있다. DAO에는 CEO나 이사회가 없다. 누구나 익명으로 조직원이 될 수 있고, 조직원들의 다수결 의사결정에 의해 운영되며, 자체 알고리즘이 경영에 관한 판단을 내리고 수익도 분배한다. 2016년 출범한 최초의 DAO인 '더다오(The DAO)'는 보안 유지에 실패하며 몇 달만에 문을 닫았다. 하지만 DAO는 향후 시행착오를 거치며 진화해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중앙화와 분권화의 경계에 있는 비즈니스의 경우 방향성을 분명히 하기를 요구받을 것이다. 예컨대 공유경제를 구현하고 있는 우버, 에어비앤비 등은 기존 자원을 고루 배분하는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공유경제 데이터를 여전히 중앙 서버에 저장해 관리한다는 한계가 있다. 이들이 중앙서버를 포기하지 않으면 블록체인으로 무장한 새로운 기업의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미국 텍사스 기반의 스타트업 '아케이드 시티(Arcade City)'는 우버와 차별화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 서비스는 블록체인으로 기사와 손님을 직접 연결하고, 중앙에서 요금을 통제하는 대신 기사와 손님이 협의해 운임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페이스북에 대항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소셜미디어도 등장했다. 스팀잇(Steemit), 아카샤(Akasha), 시네레오(Synereo) 등은 분산 서버 시스템을 사용한다. 중앙 서버가 없기 때문에 노드가 하나라도 유효하면 영원히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는다. '스팀잇'은 글을 올린 뒤 추천을 받은 횟수에 따라 자체적으로 발급하는 암호화폐인 '스팀코인'을 유저에게 보상으로 지급하는데 일주일에 200만 개의 스팀코인을 추천받은 수에 따라 분배한다. 사용자가 글을 쓰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더리움 기반의 '아카샤'는 스팀잇과 정반대로 사람들이 글을 올리거나 수정, 삭제할 때마다 '가스 수수료(Gas fee)'를 걷는데 이 비용으로 플랫폼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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