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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SF영화로 평가받는 <블레이드 러너>.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해서 몇몇 대사들은 거의 외울 정도인데요.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개봉을 앞두고 최근 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 또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모아 10가지 포인트로 만들어 봤습니다.



1. <블레이드 러너>에는 7가지 버전이 있다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한 1982년, 영화의 엔딩이 감독의 의도와 달리 스튜디오의 강요에 의해 바뀐 것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때 스튜디오는 한 개의 버전만 만든 게 아닙니다. 1982년 개봉을 앞두고 무려 다섯 개의 버전이 만들어졌습니다. 프로토타입 버전, 샌디에고 프리뷰 버전, 미국 극장판, 미국 방송판, 국제 극장판 등이죠.


이후 199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은 감독판을 내놓으며 원래 자신의 의도를 공개했고 이 감독판 덕분에 영화는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습니다. 2007년 워너브라더스는 스콧에게 전권을 주며 이 영화를 재편집해줄 것을 제안합니다. 그렇게 감독의 뜻이 온전히 반영된 파이널컷이 세상에 나오며 <블레이드 러너>의 여러 판본을 둘러싼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젠 ‘파이널컷’ 하나만 보면 되는 거죠.


감독판과 파이널컷에는 데커드가 ‘유니콘’을 꿈꾸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가 레플리컨트일 수도 있다는 아주 중요한 암시가 담긴 장면입니다. 해리슨 포드는 데커드가 인간이라고 믿고 연기했지만, 스콧은 데커드가 레플리컨트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처리하고 싶었다고 밝힌 적 있습니다.


해리슨 포드와 리들리 스콧


2. 해리슨 포드와 리들리 스콧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92년 해리슨 포드는 리들리 스콧 감독과 촬영기간 내내 갈등을 빚었다고 폭로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죠. 포드는 스콧을 죽이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스콧 역시 포드를 싫어했습니다. 2006년 스콧은 “누가 가장 함께 작업하기 고통스러운 파트너였습니까?” 라는 질문에 주저없이 해리슨 포드라고 답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영국 출신으로 영국에서 작업해온 스콧 감독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미국인 스태프와 찍은 영화입니다. 당연히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죠. 당시 포드는 <스타워즈>와 <레이더스>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당대 최고의 핫가이였고요. 두 사람의 갈등은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드는 이 영화가 밤 촬영이 많다며 투덜거렸습니다. 그가 특히 싫어했던 것은 이 영화에 나레이션을 집어넣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는 2006년 인터뷰에서 “내가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50여 회차의 밤 촬영에서 겪었던 고통보다는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이었다. 나는 그 광대짓을 강요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완성된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을 뿐더러 나레이션을 특히 더 싫어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이 기획되던 2011년 8월, 리들리 스콧은 자신이 직접 속편을 연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포드는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스콧은 포드를 빼고 완전히 새로운 캐스트로 영화를 기획했지만 한동안 이 프로젝트는 표류합니다. 2015년 2월 스콧이 총괄 프로듀서 역할로 자리를 옮기고 드니 빌뇌브가 합류하자 포드가 돌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상대방을 거장으로 추켜 세우며 화해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이 들어서 화해하기가 어디 쉽나요?


레이첼과 데커드


3. 당초 이 영화는 마틴 스콜세지가 만들려 했다


필립 K. 딕이 단편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발표한 것은 1968년입니다. 1970년대 초 마틴 스콜세지는 이 소설을 읽고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프로듀서 허브 자페가 나섰죠. 하지만 원작자인 딕은 자페의 아들이 쓴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결국 프로젝트가 무산됐습니다.


1977년 다시 이 영화가 기획됐고, 배우로 활동하던 햄튼 팬처가 각본을 썼습니다. <에이리언>을 만들고 있던 리들리 스콧에게 연출 제안이 갔습니다. 스콜세지는 생애 첫 뮤지컬 영화 <뉴욕 뉴욕>을 준비 중이었거든요. 하지만 스콧은 첫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프랭크 허버트의 SF 대작 [듄]을 영화화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듄> 제작은 난항을 겪고 있었고 엎친데덮친 격으로 큰형이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자 커다란 상실감을 치유하기 위해 스콧은 빨리 찍을 수 있는 영화를 찾게 됩니다. 결국 스콧은 1980년 2월 21일 <블레이드 러너>에 합류했습니다.


윌리엄 버로우즈의 '블레이드 러너' 트리트먼트


4. ‘블레이드 러너’라는 제목은 윌리엄 버로우즈가 지은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 엔드 크레딧에는 비트 세대의 대표작가이자 환락소설의 대가인 윌리엄 버로우즈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영화 제목을 사용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문구와 함께죠.


영화의 제목이 안드로이드도, 전기양도, 레플리컨트도, 넥서스도 아닌 '블레이드 러너'가 된 것은 각본을 쓴 팬처가 우연히 한 영화사에서 발견한 트리트먼트 때문이었습니다. 알란 E. 너스의 소설을 윌리엄 버로우즈가 각색한 이 트리트먼트에는 ‘블레이드 러너’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팬처는 스콧에게 이를 말했고, 스콧 역시 이 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프로듀서 마이클 딜리가 제목의 권리를 사와 '블레이드 러너'는 윌리엄 버로우즈의 영화가 아닌, 리들리 스콧 영화의 제목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타이렐 코퍼레이션


<메트로폴리스>


뫼비우스 작품


에드워드 후퍼의 'Nighthawks'


5. 메트로폴리스, 에드워드 후퍼, 뫼비우스에게 영향받았다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를 만들 때 프리츠 랑 감독의 독일 고전영화 <메트로폴리스>를 참조했습니다. 미니어처 빌딩을 제작할 땐 미술 스태프들이 <메트로폴리스>를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꽉 찬 마천루, 거대한 빌딩, 도시 노동자 등 <메트로폴리스>의 ‘슈타드크로네 타워’와 <블레이드 러너>의 ‘타이렐 빌딩’ 컨셉트는 유사합니다.


스콧은 에드워드 후퍼의 그림 ‘Nighthawks'와 프랑스 SF 코믹 매거진 'Metal Hurlant'에 실린 뫼비우스의 작품도 참고했습니다. 비주얼 스타일은 이탈리아 미래파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 그는 비오고 우중충한 날의 홍콩, 그의 고향인 영국 북동부의 공업지대를 스케치해 세트 디자인에 활용했습니다.


뫼비우스는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스콧으로부터 합류를 제안받았으나 당시 르네 랄루의 애니메이션 <타임 마스터>(1982)에 참여하느라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이 결정을 후회했다고 하네요.


시드 미드가 컨셉트 아티스트로 합류했고, 로렌스 폴이 프로덕션 디자인, 데이비드 스나이더가 아트 디렉터, 더글라스 트럼벨과 리차드 유리치치가 특수효과를 맡았습니다. 모두 지금은 전설적인 거장이 된 이름들입니다.


필립 K. 딕


6. 필립 K. 딕은 영화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영화 엔드 크레딧의 맨 마지막에는 “이 영화를 필립 K. 딕과의 추억에 바친다”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할리우드의 첫 영화입니다. 이 영화 이후 할리우드에선 그의 소설이 거의 전부 영화화됐지만 이때만 해도 그는 검증되지 않은 원작자에 불과했죠.


게다가 그는 까칠한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써오는 시나리오마다 퇴짜를 놨거든요. 하지만 그는 마음에 들 땐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딕은 팬처가 써온 시나리오를 싫어했지만 나중에 합류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피플스가 다시 쓴 시나리오는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이 시나리오는 원작 소설의 아이디어 중 일부를 아주 러프하게 담아낸 것이었습니다. 팬처의 시나리오가 인간성이나 종교적인 부분은 적게 다룬 대신 환경적인 요소에 집중한 반면, 피플스는 철학적인 내용을 상당히 가미했습니다. 딕은 이 점을 좋아했습니다.



딕은 피플스의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설을 먼저 본 사람이 영화를 봐도, 영화를 먼저 본 사람이 소설을 봐도 만족할 것이다.”


영화사는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다르니 영화를 위해 ‘블레이드 러너’라는 소설을 써달라며 딕에게 제안했습니다. 원고료로 40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지만 딕은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나는 12살짜리 관객에게 보여줄 싸구려 소설을 쓰라는 제안을 받았다"라며 공개적으로 푸념하기도 했죠. 이 결정 덕분에 <블레이드 러너> 포스터의 하단에는 원작 소설의 제목이 프린트되며 길이 남을 수 있었습니다.


딕은 더글라스 트럼벨의 특수효과를 보고는 “내가 상상한 그대로”라며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딕은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에 사망해 결국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딕에게 바쳐진 이유입니다.


로이와 타이렐


7. 로이의 대사는 룻거 하우어가 직접 바꿨다


<블레이드 러너>의 매력은 마지막 20분 로이의 맹활약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전까지 영화가 데커드 형사를 중심으로 한 복제인간 추적극이었다면 로이와 맞대결이 시작된 순간부터 철학적인 이야기로 바뀝니다.


조이와 프리스의 죽음 이후 혼자 남은 로이는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그는 데커드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음에도 살려두죠. 로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벌써 포기할 거야? 그럼 내가 죽일 수밖에 없어.” 로이를 잡으려던 데커드는 이제 로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쩔쩔 맵니다.


로이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복제인간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삶을 갈구했으나 그의 창조주는 그의 삶을 4년으로 제한했습니다. 무책임한 신을 살해한 그는 구원을 얻으려는 예수처럼 근육 경련이 일어난 손에 스스로 못을 박고 죽음을 기다립니다. 데커드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진 로이는 추락하는 데커드의 손을 못박은 손으로 잡아 끌어올림으로써 살리는 쪽을 택합니다. 창조주는 죽였지만 자신을 쫓던 경찰은 살리는 이 판단은 무척 기독교적이죠.


로이


죽음을 앞둔 로이는 데커드 앞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토로합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난 네가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봤어. 그 모든 기억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말이야. 이제 죽을 시간이야.”


레플리컨트를 판별하는데 사용하는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무색케 하는 이 멋진 대사의 일부는 룻거 하우어가 직접 바꿔 쓴 것입니다. 그는 대사를 연습하다가 수정하고 싶은 부분을 스콧에게 보여줬고 스콧이 이를 승낙했습니다.


포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스콧은 룻거 하우어만큼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스콧은 폴 버호벤 감독의 <터키쉬 딜라이트> 등에서 하우어를 보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보지도 않고 로이 역할에 캐스팅했다고 하네요.



8. 팬들에겐 숭배의 대상, 기업에겐 데스노트였다


<블레이드 러너>는 SF영화로는 최초로 컬트영화에 등극했습니다. 수많은 광팬들을 양산했고, <공각기동대>, <배틀스타 갈락티카> 등 디스토피아 미래사회를 그린 SF 영화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또 이 영화에 영향받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네오누아르, 사이버펑크 등 각종 사조의 원조가 되었고, 게임, 애니메이션, TV 등 다른 분야에서도 아류작이 이어졌습니다.


2004년 가디언이 60명의 세계 과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최고의 SF영화 1위로 <블레이드 러너>를 꼽기도 했습니다. 과학자들마저 인정한 SF영화인 셈이죠.


한편 기업들에게 이 영화는 저주였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기업 로고들 중 지금까지 건재한 기업은 코카콜라 뿐입니다. 아타리, TDK, 벨, 퀴진아트, 팬암 등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사세가 위축됐거든요.


레이첼


9. 복제인간을 예측했으면서도 휴대폰은 나오지 않는다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2019년 로스앤젤레스입니다. 당시로선 37년 후의 먼 미래였지만 지금으로선 고작 2년밖에 남지 않은 근미래죠.


이 영화가 예측한 미래사회는 얼마나 현실이 되었을까요? 일단 공중전화나 카폰으로 화상통화를 하는 장면은 오래 전에 실현됐습니다. 또 사진을 컴퓨터로 읽은 뒤 말로 명령해 조작하는 시스템 역시 구현된 기술입니다.


개퍼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날아다니는 차 '스피너'는 평소엔 지상으로 다니지만 제트엔진 추진을 하면 수직으로 이륙할 수 있습니다. 스피너에는 내연기관, 제트엔진, 반중력 등 세 가지 엔진이 있습니다. 규제가 있어서 아무나 소유할 수는 없고 경찰 순찰용으로만 사용됩니다.


스피너의 디자인은 시드 미드가 맡았는데 문이 수직으로 열리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영화가 나온 이후 스포츠카에서 차용했습니다. 미드는 이 차를 '에어로다인'이라 불렀습니다. 공기를 아래로 밀어내 위로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영화 촬영용으로 쓰인 스피너는 시애틀 SF박물관에 영구 전시돼 있습니다.



무엇보다 <블레이드 러너>가 한 세대만큼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주목받는 이유는 인간과 구분하기 힘든 복제인간이 등장할 미래를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는 보이트-캄프 머신 테스트가 나오는데 이는 질문을 던진 뒤 대답하는 과정에서 호흡, 얼굴 붉힘, 심장박동, 홍채 동작 등 신체 기능을 측정해 감정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거짓말 테스트를 변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질문은 가상의 스토리에 기반합니다. 허구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죠.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인간만이 허구의 스토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번영했다고 한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원작 소설에선 6~7개의 질문을 던졌지만 영화에서 블레이드 러너는 20~30개의 질문을 던집니다. 타이렐은 최신 레플리컨트인 레이첼의 경우 100개 이상의 질문을 던져야 했다고 말하죠. 질문이 많아질수록 이 테스트는 점점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는 뜻일 겁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복제인간 이슈를 예측했으면서도 영화는 휴대폰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영화에는 휴대폰이 전혀 나오지 않네요.


데커드


10. 데커드는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할 뻔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 팬처는 데커드 역에 로버트 미첨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대사도 미첨을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본격적인 제작 과정에 접어들었을 때 스콧은 더스틴 호프먼을 데커드 역으로 낙점했습니다. 실제로 그와 몇 달 동안이나 함께 작업하며 캐릭터를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호프먼은 영화에 대한 비전 차이를 이유로 프로젝트를 떠났습니다.


이후 데커드 역의 캐스팅은 난관이었습니다. 진 해크먼, 숀 코너리, 잭 니콜슨, 폴 뉴먼, 클린트 이스트우드, 토미 리 존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알 파치노, 버트 레이놀즈 등 당대 쟁쟁한 남자배우들이 후보에 올랐죠.


해리슨 포드가 이 영화를 승락한 이유는 <스타워즈>와 <레이더스>의 성공 이후 연기 변신을 꾀할 수 있는, 드라마적 깊이가 있는 배역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80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된 <블레이드 러너>는 펀딩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촬영을 앞두고 '필름웨이'가 투자를 철회해 제작진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프로듀서 마이클 딜리는 부랴부랴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했고 당시 홍콩에서 잘나가던 런런쇼가 운영하는 래드 컴퍼니가 대타로 들어와 큰 돈을 댔습니다. 덕분에 래드 컴퍼니는 영화의 맨앞에 회사의 로고를 큼지막하게 박아넣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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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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