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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내게 말했다. “사랑해”

난 네게 말했다. “기다려”

난 이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날 데려가”

넌 이렇게 말했지. “가버려”


영화는 잔느 모로의 내레이션 위로 흐르는 조르쥬 들르뤼의 경쾌한 음악으로 시작한다.


짐, 카트린, 쥴


영화의 배경은 1912년 파리, 금발의 오스트리아인 쥴(오스카 베르너)은 키 큰 프랑스인 짐(앙리 세르)과 단짝 친구가 된다. 돈보다는 예술을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데서 성향이 비슷하다고 느낀 두 사람은 매일 붙어다닌다. 그러다가 여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기 시작한다. 쥴과 짐은 담배연기로 기차를 만드는 경험 많은 여자 테레즈(마리 뒤부아), 헌신적인 질베르(바나 우르비노) 등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여행길에 우연히 본 매혹적인 조각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어느 날, 쥴과 짐은 그 조각상과 꼭 닮은 신비로운 여인 카트린(잔느 모로)을 만난다. 두 사람은 동시에 사랑에 빠지지만 먼저 대시하는 것은 쥴이다. 짐은 우정을 위해 사랑을 참는다. 쥴은 결국 카트린과 결혼에 이르지만 카트린은 한 남자가 소유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뜨거운 사랑을 원하고 그렇지 않은 삶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짐과 쥴의 우정은 킥복싱으로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쥴과 짐은 각자의 나라로 징집된다. 두 사람은 모두 카트린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내용은 서로를 죽이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전쟁 중 카트린은 딸 사빈느(사빈느 오드팽)를 낳는다.


전쟁이 끝나고 갈 곳 없는 짐은 쥴과 카트린이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집으로 찾아온다.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고 카트린은 짐에게 쥘과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고백하며 그를 유혹한다. 이미 카트린이 기타를 치는 알베르(보리스 바시악)와 바람피운 것을 알고 있는 쥴은 그녀가 떠나는 것이 두려워 짐에게 카트린과의 사랑을 허락한다.


소유와 집착은 파멸로 이어진다.


카트린은 짐과 쥴을 오간다. 두 남자 사이의 깊은 우정 사이로 점점 질투와 의심이 번져간다. 사랑의 노예가 된 쥴은 카트린이 무슨 짓을 해도 거부하지 못하고, 짐은 카트린과 쥴이 같은 방에 있을 때마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분노를 느낀다. 두 남자는 예전같지 않지만 그래도 우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카트린은 완벽하게 자신의 남자가 되지 않는 짐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어느날 정리할 것이 있다며 파리로 떠난 짐이 보낸 편지를 꼼꼼히 읽으면서 그가 다른 여자(질베르)와 관계를 끝내지 못했다는 것을 행간으로 짐작하게 된 카트린은 짐이 도착하자 그를 태우고 차를 몰아 강물에 빠져 죽는다. 쥴은 카트린과 짐의 장례식을 치러준다. 그가 묘지를 걸어서 내려오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쥴 앤 짐>은 팬시 화보같은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결코 그렇게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쥴, 짐, 카트린이라는 세 인물은 사랑의 극단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연애로 시작한 영화는 소유와 집착을 지나 절망적인 비극으로 마무리한다.


영화에는 쥴과 짐이 만나는 세 여성이 등장한다. 테레즈, 질베르, 그리고 카트린이다.


담배 연기로 기차 흉내를 내는 테레즈는 이 남자 저 남자 바꿔가며 기분 내키는대로 사는 여성이다. 그녀는 젊은 나이에 풍부한 경험을 하고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회고록으로 낼 정도로 자유분방한 삶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누군가 방탕하다고 손가락질해도 그녀는 굴하지 않는다.


쥴과 테레즈


질베르는 한 남자만을 바라보는 여성이다. 그녀는 파리에서 짐을 기다린다. 전쟁이 터지자 짐은 떠나고 이후 짐이 카트린과 사랑에 빠진 후에도 질베르는 거기에 그대로 있다. 욕망덩어리 카트린에게 놀라 허겁지겁 파리로 도피한 짐을 받아준 여성이 바로 질베르다. 하지만 기다림의 끝은 허무하다. 그녀는 짐을 잃을 뿐더러 누구도 그녀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카트린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고 소유되지 않는 여성이다. 그녀는 질베르는 물론 테레즈와도 다르다. 그녀에게 사랑은 늘 현재진행형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남자를 증오하고 사랑이란 언제나 진실해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녀는 불같이 뜨거운 여자이면서 또한 물처럼 차가운 여자다. 그녀가 전 남자친구들의 연서를 불태울 때 치마에 불이 옮겨붙는 장면, 그녀가 돌연 센느강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그녀의 극단적인 성격을 보여준다.


누구의 여자도 아닌 카트린


카트린은 여신 중의 여신이자 남신들을 압도했던, 성의 해방을 부르짖은 여신 아프로디테를 떠올리게 한다. 마침 쥴과 짐은 그녀가 오래된 조각상을 닮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빠져든다. 사랑의 팜므 파탈 카트린은 자신이 사랑을 준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그녀도 바람을 피운다.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남자가 자신에게 소홀하면 그녀는 그를 떠나는 것으로 응징한다. 자신을 갈망했던 남자가 변심하면 그녀는 그를 데리고 함께 죽어버린다. 쥴은 이미 그녀의 노예가 됐고, 짐은 그녀를 감당할 수 없다.


쥴과 짐이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자 카트린은 센느강에 뛰어든다.


“이번엔 안돼, 짐 (Pas celle-là, Jim)”


쥴은 짐에게 카트린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는 카트린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쥴의 욕망을 드러낸다. 과연 쥴은 카트린과 결혼에 성공한다. 둘 사이에는 사빈느라는 딸도 태어난다. 하지만 쥴에게 카트린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그는 소유할 수 없는 카트린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전까지 쥴에게 사랑은 이번 아니면 다음에 만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트린은 이번이 아닌 사랑을 용납하지 않았고, 쥴은 카트린의 이번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


쥴이 카트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짐과의 우정에도 균열이 생긴다. 결국 카트린은 사랑과 우정을 모두 끝장내 버린다. 홀로 남은 쥴은 아프로디테의 남편이면서도 그녀를 소유하지 못했던 헤파이스토스를 떠올리게 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아프로디테가 아레스와 바람 피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가엾은 신이다. 헤파이스토스는 불의 신인데 마침 카트린은 물에 빠져 죽는다. 카트린에겐 불도 힘을 쓸 수 없다.


짐, 쥴, 카트린. 해변에서 즐거운 한때.


짐은 쥴과 마찬가지로 카트린을 처음 본 순간 반했지만, 우정을 위해 그녀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트린은 쥴과의 결혼생활이 권태기에 접어들자 짐에게 추파를 던진다. 짐은 그녀의 유혹에 견딜 수 없을 만큼 흔들리는데 그때 쥴이 그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를 위해서 그녀를 사랑해주게, 짐. 그녀가 떠나가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고통이야. 자네 곁에서라도 그녀를 볼 수 있게 해줘.”


짐은 카트린과 쥴이 침대에 있을 때 질투한다.


그날 짐은 카트린과 사랑을 나누고 그렇게 세 사람의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카트린은 쥴과 짐을 오가고, 짐은 쥴에게 질투를 느낀다. 질투를 느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질투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카트린과 쥴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짐을 그리스신화에 비유하자면 잘생긴 목동 아도니스다. 그는 아프로디테의 선택을 받고 연인이 되지만 멧돼지(아레스의 현현)에 받혀 즉사한다.


짐은 카트린을 떠나 질베르에게 정착하는 듯했지만 그가 카트린과 사랑에 빠진 순간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은 것은 결국 파멸한다. 파멸의 순간은 갑작스럽지만, 갑작스러운 것은 오래 기억된다. 쥴과 짐, 그리고 카트린의 사랑과 파멸은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쥴 앤 짐>은 누벨바그를 주창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1962년작이다. 누벨바그는 기존 영화 관습에 반기를 들고 감독이 작가가 되고, 실존적인 인물이 등장하고, 혁신적 촬영 기법을 사용하고, 논리보다 생략을 강조하고, 구성은 느슨하고, 주제는 당돌한 영화를 지향하는 사조다. <쥴 앤 짐>은 트뤼포의 이런 시도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대표작이다.


핸드헬드 카메라, 화면 멈춤, 점프 컷, 스위시팬, 와이프, 마스킹, 돌리 숏 등 신선한 촬영기법을 활용하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뉴스릴 화면을 삽입하고,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등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실험을 거듭한다. 그러면서도 트뤼포 영화 특유의 서정성을 잃지 않는다.


장뤽 고다르와 주로 작업해온 라울 쿠타르 촬영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가벼운 최신 기종 카메라를 들고 최대한 자유롭게 촬영에 임했다. 전쟁신 이후의 몇몇 장면은 자전거에 카메라를 매달고 찍었다고 한다.


앙리 피에르 로쉐의 [쥴 앤 짐]


영화에는 원작소설이 있다. 앙리 피에르 로쉐가 1953년 74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집필한 동명의 반자전적인 소설이다. 소설은 로쉐와 그의 친구인 작가 프란츠 헤셀, 그리고 헤셀과 결혼한 헬렌 그룬트의 이야기다.


트뤼포는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 시절엔 문학작품 각색에 반대하며 감독이 직접 각본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감독이 되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21살에 센느강 근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나서 이 소설을 반드시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했고, 30살에 실행에 옮겼다. 로쉐는 이 젊은 감독과 서신을 교환하며 각색에 도움을 주었다. 트뤼포의 1971년작 <두 영국 소녀> 역시 로쉐의 두 번째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쥴 앤 짐> 포스터


엠파이어 매거진은 2010년 <쥴 앤 짐>을 세계 100대 영화 중 46위에 선정했고, 타임 매거진은 조르주 들르뤼의 음악을 '최고의 사운드트랙 10'으로 꼽았다.


극중 카트린이 부르고 알베르가 기타 연주하는 주제곡 ‘Le Tourbillon(회오리바람)’은 당시 히트곡이 되었다. 알베르 역을 맡은 보리스 바시악은 실제 기타리스트로 이 노래의 작곡가이다.



촬영 현장에서의 트뤼포 감독과 잔느 모로. 두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다.


<쥴 앤 짐>이 영화사에 끼친 영향력은 엄청나다. 삼각관계가 등장하는 대부분의 현대 영화들은 이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조지 로이 힐 감독의 <내일을 향해 쏴라>(1969), 앤드류 플레밍 감독의 <판도라의 상자>(1994),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이 투 마마>(2001),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몽상가들>(2003), 자비에 돌란 감독의 <하트비트>(2010) 등이 대표적이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좋은 친구들>(1990)을 만들 때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스톱 프레임, 빠른 편집 등의 기법을 차용했다고 밝혔고,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은 <아멜리에>(2001)를 만들 때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을 참고했다고 고백했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바닐라 스카이>(2001)에서 두 남자가 동시에 한 여자에게 빠진 뒤 관계에 균열이 발생한다는 설정, 여자 주인공이 연인과 함께 낭떠러지로 차를 몰고 가는 장면을 그대로 만들었다. 마지막 몽타주 장면에는 잔느 모로의 영상도 삽입해 오마쥬를 바치기도 했다.


한국에서 <쥴 앤 짐>은 1980~90년대 사설 시네마테크들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1997년 백두대간이 수입해 정식 개봉했고, 2016년 3월 재개봉했다.


쥴 앤 짐 ★★★★☆

자유로운 연애, 소유와 집착, 그리고 파멸의 삼각관계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


“남자와 여자 두 사람만으로는 아무런 드라마가 없다. 열차의 탈선과 같은 놀라움이 드라마에는 필요하다. 탈선과 전환이 없으면 영화가 되지 않는다.” - 프랑수아 트뤼포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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