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뤽 베송 감독의 1988년 작품 ‘그랑블루’는 전설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전설적인 이유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에 카페에 가면 이 영화의 포스터가 꼭 걸려 있었습니다. 또 라디오를 틀면 영화음악 시간에 에릭 세라가 작곡한 영화의 몽롱한 사운드트랙이 자주 흘러나왔습니다.


1990년대 카페 어디에나 걸려 있던 '그랑블루' 포스터


한국에서 이 영화는 1990년작 ‘니키타’보다 뒤늦은 1993년에 개봉했습니다. 1991년 개봉한 ‘니키타’가 인기를 끌자 감독의 전작이 뒤늦게 수입된 경우인데요. 아무래도 당시에는 액션영화인 ‘니키타’보다 잔잔하고 스타도 나오지 않고 사건도 없는 ‘그랑블루’가 비상업적이라고 판단했었나 봅니다.


처음에 개봉한 버전은 커팅된 2시간 버전이었습니다. 나중에 1995년 개봉한 ‘레옹’의 대히트로 뤽 베송 감독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그랑블루’도 한국에서 재평가받았고요. 이후 168분짜리 ‘그랑블루’ 감독판이 비디오로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감독판이 극장에 정식으로 걸린 것은 2013년 7월의 일입니다.



저는 예전에 ‘그랑블루’를 좋아했지만 한편으로는 좋아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영화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곧바로 푸른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훌륭한 시그니처 음악이니까요.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자크가 침대에 누워 바다의 환각을 보는 장면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문학에서 ‘환유’라고 하는 기법을 영화에선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장면의 훌륭한 예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자크가 바다의 환각을 보는 장면


그런데 한편으로는 영화의 후반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크는 왜 임신한 여자친구를 두고 바다로 떠나가는 걸까요? 그에게는 죽은 친구와의 우정이 더 소중하기 때문일까요? 혹은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그에게 인생을 던진 로잔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녀는 이렇게 버림받아도 괜찮은 걸까요? 결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저는 이 영화를 무작정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아름답지만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저는 뤽 베송 감독의 전작 ‘서브웨이’의 생기발랄한 허무맹랑함을 더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그랑블루'부터 뤽 베송 감독은 영어로 영화를 만드는데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이 굳이 영어로 대화하는 설정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만난 조안나, 엔조, 자크


한참의 시간이 흘러 정말 오랜만에 ‘그랑블루’ 감독판을 다시 봤습니다. 마치 영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몇몇 장면은 전혀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또 어떤 장면은 예전에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제가 떠오를 만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옛날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어떤 영화에는 나이테가 새겨져 있어서 그 영화를 보는 것은 곧 제가 살아온 시간 중 어느 한 순간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금보다 푸릇푸릇하게 젊고 어린 제가 분명히 영화 속 어느 순간에 보였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자 어린 저 역시 엔드크레딧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의 엔조(가운데), 그를 지켜보는 자크(왼쪽)


영화는 흑백 화면으로 시작합니다. 1960년대 그리스의 한 섬에, 지는 것을 싫어하는 골목대장 엔조와 경쟁에는 관심 없이 바다를 사랑하는 자크라는 소년이 살고 있습니다. 자크는 잠수부였던 아버지가 바다 속에서 사고로 죽자 이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트라우마로 갖게 됩니다.


차분하게 두 소년을 소개한 영화는 시공간을 건너 뛰어 1980년대 이탈리아 시실리로 갑니다. 여기서부터는 컬러 화면으로 전환돼 감독은 본격적인 프렌치 뉴웨이브 ‘시네마 뒤 룩’ 스타일로 시각적인 스토리텔링을 시작합니다. 세계잠수대회 챔피언이 된 엔조(장 르노)와 세상살이에 서툰 자크(장 마르 바)의 우정, 자크에게 첫 눈에 반해 그를 뜨겁게 사랑하는 조안나(로잔나 아퀘트)의 관계가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엔조는 자크를 유일한 친구로 여기면서도 그와의 잠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전의를 불태우고, 자크는 조안나가 떠나자 괴로워하면서도 바다와 돌고래를 자신의 유일한 고향이자 가족으로 생각합니다. 누구도 악하지 않고 누구도 치사하지 않고 누구도 공격적이지 않습니다.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이들은 우정과 사랑을 나누고 또 질투하고 원망하고 그리워합니다. 아마도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경쟁과 이상적인 우정이 이 영화를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한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크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는 엔조


영화에는 감정을 소비하게 만드는 드라마가 없는 대신, 바다에 대한 경외감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영화가 바다를 표현하는 태도에는 신비로움, 존경심, 사랑 같은 감정이 묻어납니다. 바다 깊숙한 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자크는 그래서 더 놀랍게 보입니다. 엔조와 자크가 나누는 대화에서 ‘인어’라는 단어가 마치 이상향처럼 자주 언급되는데 인어가 꼭 여자라는 법은 없겠죠. 엔딩에서 돌고래를 따라간 자크는 아마도 인어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돌고래와 하나가 된 자크


요즘 관객들이 ‘리틀 포레스트’ 같은 영화에서 편안함을 발견한다면 ‘그랑블루’는 30년 전 사람들에게 ‘리틀 포레스트’와 비슷한 기능을 했던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돌고래가 튀어 오를 때마다 스크린 속에 풍덩 빠져들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니까요.


아쉬운 점은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만듦새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후반부 들어 초반부의 유려한 리듬을 잃고 뚝뚝 끊어지는 편집으로 매끄럽지 못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반부를 급하게 찍었거나 혹은 편집 과정에서 콘티상 컷 몇 개가 누락되었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에 빠진 조안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방황합니다.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예전에 가졌던 의문이 해소되었냐고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조안나는 여전히 소비되는 캐릭터처럼 보입니다. 우정을 강조하기 위해 희생당하는 가엾은 여주인공으로 애초에 설계된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아무도 이 여자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저도 장 르노와 장 마르 바는 너무 친숙한데 조안나 역할을 로잔나 아퀘트가 했다는 것은 그동안 잊고 있었으니까요.


스페인어를 못하면서도 페루에 가고, 또 이탈리아어를 못하면서도 마피아가 보험 사기를 쳤다는 조작 사건을 만들어 시실리로 갈 정도로 조안나는 꽤 진취적인 캐릭터입니다만 어느 순간 지나치게 사랑에 빠져 방향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자크가 바다 속으로 들어갈 때 조안나는 자크와 연결된 끈을 잡고만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토록 눈을 멀게 하는 것입니다만 그래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조안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뤽 베송 감독은 조안나에게만은 너무나 잔인하네요.


친구이자 라이벌인 엔조와 자크


참, 영화 속 우정은 실화를 기반으로 합니다. 자크와 엔조는 실제 프리다이버로 유명했던 프랑스의 자크 마욜과 이탈리아의 엔조 마이오르카가 모델입니다. 뤽 베송 감독이 직접 자크 마욜을 찾아가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각본을 썼는데 이때 그는 자크에게서 진심으로 바다를 대하는 태도와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감각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고 싶었던 베송은 스토리보다는 영상 위주의 영화를 구상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친구였고 다이빙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는 설정을 제외하고, 조안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스토리는 영화적 창작의 결과물입니다. 자크의 최고 기록은 1983년 세운 344피트(105미터)로 영화에서처럼 400피트에 도달한 적은 없습니다. 또 엔조는 대회 도중 바다에서 죽지 않고 2016년 85세까지 장수했습니다. 1988년 101미터의 최고기록을 세운 뒤 정계 입문해 1994년 보수당의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엔조 마이오르카(왼쪽)와 자크 마욜(오른쪽)


실제 자크는 영화 속 자크처럼 바다가 인생의 전부인 남자였습니다. 그는 요가와 무호흡법을 통해 바다 속에서 평온을 찾을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1955년 미국 마이애미 플로리다 아쿠아리움에서 다이버로 일하던 중 돌고래를 처음 만났는데 클라운이라는 이 암컷 돌고래에게 푹 빠져들었습니다. 물 속에서 숨을 오래 참는 법, 물 속에서 행동하는 법 등을 클라운으로부터 배웠다고 합니다. 그는 인간 안에 돌고래가 있다는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켜 '호모 델피누스'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자크는 인간 세상에는 그리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그랑블루’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대히트하면서 더 유명해졌지만 우울증에 시달려오다가 2001년 이탈리아 엘바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 74세였습니다. 당시 그와 이름이 같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그랑블루'를 통해 프랑스의 상징이 된 그를 기리는 성명을 발표했고, 그의 유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투스카니 해안가에 뿌려졌습니다.


그랑블루 ★★★☆

모두의 마음 속에 깊은 바다를 남긴 영화.


"영화는 누구의 인생도 구하지 못한다. 영화는 처방약이 아니다. 영화는 그저 아스피린일 뿐이다." - 뤽 베송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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