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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한 것은 8월 26일. 7박 9일의 일정으로 떠난 여름휴가다.


모스크바 하면 붉은 광장과 크렘린. 20세기 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떠나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그런데 아뿔싸! 하필 내가 도착한 시기가 세계 군악제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광장에 대형 무대를 설치해 놓았다. ㅠㅠ 드넓은 광장을 달리는 상상을 하고 왔는데 막상 광장은 꽉 막혀 있고 그마저 검문 검색 때문에 제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 이렇게 억울할 수가!


붉은 광장을 제대로 못 누렸지만 붉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유수한 건축물들마저 지나칠 수는 없지. 광장을 돌아서 걸어가며 하나씩 구경했다. 동쪽에는 성 바실리 대성당과 처형장인 로브노예 자리, 남쪽에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미라가 보존된 영묘와 대통령 관저, 서쪽에는 국립 역사박물관, 북쪽에는 종합백화점 굼, 크렘린 등이 있다. 부지런히 발품 팔면 하루에 다 볼 수 있는 코스다.


(러시아 여행기는 현지에서 쓴 여행기와 정보로 구성됩니다.)



모스크바의 역사


모스크바는 러시아 최대의 도시이자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도시,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입니다(2014년 인구 1200만명). 모스크바라는 이름은 모스크바강에서 따왔는데 도시가 처음 알려진 시기는 대략 12세기로 추정됩니다.


1156년 로스토프의 왕자가 목재로 처음 크렘린을 지었지만 1237년 몽골족의 침략으로 도시가 불에 타버립니다. 모스크바는 볼가 강과 오카 강 사이에 있어 요충지였기에 폐허로 남겨지진 않았습니다. 이후 모스크바는 1327년 회복해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이후 모스크바 대공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모스크바의 번영은 18세기 초까지 계속됩니다. 모스크바 대공국은 러시아 전역에서 많은 난민들을 끌어모았습니다. 18세기초 표트르 대제가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기면서 잠시 수도 지위를 상실했으나 혁명 이후 1918년 러시아의 수도가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왔고, 1922년 소련의 탄생과 함께 소련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에는 다시 러시아의 수도로 남았습니다.



아쉽지만 붉은 광장.



겨울에 왔다면 이 모자를 샀겠지요.


세계 군악제를 알리는 포스터.


세계 군악제 기간이라 저녁에 붉은 광장에 들어가려면 티켓을 들고 검문을 받아야 합니다.


붉은 광장


이 광장은 17세기부터 '끄라스나야'라는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이 단어는 ‘모든 아름다운 것’이라는 뜻의 슬라브어가 어원으로 현대 러시아에서는 ‘붉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곳의 이름이 '붉은 광장'입니다.


줄곧 장터로 사용돼온 이 광장은 러시아 역사의 중대한 사건들이 전개된 중심지입니다. 처형·시위·폭동·열병·연설 등의 무대가 되어왔습니다. 5월 1일 노동절과 11월 7일 10월 혁명 기념일의 연례 행렬은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가장 유명한 행사입니다.


성 바실리 대성당.


성 바실리 대성당 내부.


성 바실리 대성당 내부.


성 바실리 대성당


모스크바 대공국의 황제 이반 4세가 카잔 한국(汗國)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1560년에 세운 성당입니다. 이 승리로 인해 모스크바 주변의 러시아 영토가 통합되었습니다. 성 바실리 대성당은 9개의 교회로 구성되는데 그 중 8개가 나머지 1개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러시아 양식과 비잔틴 양식이 혼합되어 있고, 47미터나 되는 팔각형의 첨탑을 중앙으로 하여 주변에 8개의 양파 모양의 지붕들, 9개의 탑이 솟아 있습니다. 존경받던 예언자 바실리는 1588년 그는 ‘성인’이 돼 이 대성당의 북서쪽 모퉁이 근처에 매장되었습니다.


워낙 아름답고 독특한 건축물이라 건축을 담당한 바르마와 보스토니크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이반 4세가 그들의 눈을 멀게 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보스토니크가 이후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는군요.


유명한 테트리스 게임 배경에 나오는 건물이 바로 이 성 바실리 대성당입니다.



레닌 묘 입구. 뒤에는 크렘린 궁.


레닌 묘로 들어가기 위해 선 줄. 30분 동안 기다렸습니다.


추억하는 꽃.


스탈린 묘.


레닌 묘 입구. 들어가면 어두운 실내 가운데 레닌 시신이 있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가운데 불은 절대 꺼지지 않는 용사의 영혼이라고 합니다. 근위병이 양 옆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레닌 묘


블라디미르 레닌의 방부처리된 미라를 보존해놓은 영묘입니다. 1930년에 완공된 곳입니다. 레닌의 실물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계속 걸으며 봐야 합니다. 중간에 멈춰 서서 보는 것은 허가되지 않습니다. 저는 잘 모르고 옆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가 경비 서고 있는 군인이 어깨를 치며 가라고 하는 바람에 이동해야 했습니다.


레닌 묘 주위의 다른 묘들은 크렘린 성벽 측면에 맞닿아 있습니다.


레닌 묘의 영향을 받아 일부 사회주의 국가 등에서 지도자의 시신이 영구 보존 처리되어 안치하는 무덤이 만들어지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 중국 마오쩌둥,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도 시신을 방부 처리해 영구 보존하고 있습니다.


금수산태양궁전의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 유지 및 관리는 러시아의 기관이 담당하고 있다고 하죠. 비용이 8억 9천만달러가 들었다고 하네요.


이밖에도 방부처리된 묘들이 더 있었는데 철거된 경우도 많습니다. 몽골의 수흐바타르 묘는 2004년, 불가리아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묘는 199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클레멘트 고트발트 묘는 1962년에 철거됐습니다.



국립역사박물관


1881년 건립된 국립역사박물관입니다. 저도 들어가보진 못했습니다.


낮의 굼 백화점.


밤의 굼 백화점.


굼 백화점 내부는 웅장합니다.


굼 백화점 한가운데 수박 분수.


굼 백화점 한가운데 수박 분수.


수박 분수 앞에서 수박을 팔고 있어요.


굼 백화점


굼(러시아어: ГУМ, GUM)은 붉은 광장 북쪽에 위치한 백화점입니다. 러시아어로 ‘굼’은 종합 백화점을 뜻하는 글라이니 우니베르살니 마가진(러시아어: Главный универсальный магазин)의 약자입니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굼 백화점은 제정 러시아 시대인 1893년에 완공되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1200개 점포가 입점해 있었다고 하죠. 혁명 이후 굼은 소련 정권에 의해 국유화됐지만, 개인 상점은 한동안 영업권을 인정받았습니다. 1928년 스탈린 독재 체제 하에서 1차 5개년 계획이 시작될 때 굼의 모든 점포도 국영화되었습니다. 이후 굼은 모스크바의 소비 중심이자 소련 경제의 쇼윈도 역할을 했습니다.


1985년 고르바초프 정권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따라 굼에서 개인 상점이 부활했고, 서방 자본주의 국가 기업과 합작한 상점이 진출했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 1993년 예고르 가이다르 등에 의한 급진적인 경제개혁에 따라 굼도 민영화되었습니다. 이때 기존의 '국영 백화점'에서 '종합 백화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나, 러시아어로 국영과 종합 모두 ‘G’로 시작하기 때문에 GUM이라는 약어가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2005년에는 러시아의 명품 유통그룹이 대주주가 된 이래 현재까지 경영권을 쥐고 있습니다. 현재 점포는 200개가량이라고 합니다.





니꼴스까야 울리짜


카잔성당 정면과 굼 백화점 사이의 길입니다. 모스크바에서 꽤 번화가에 속하는 길입니다. 알룐카 매장도 이곳에 있습니다. 길 끝에 트로이츠카야 망루의 붉은 별이 보입니다.






마네쥐 광장 앞에서 군악대가 드럼을 치고 있습니다. 세계 군악제 기간이라서 볼 수 있는 광경이죠. 붉은 광장을 막아놓은 것은 아쉬웠지만 대신 이런 모습으로 모스크바를 기억할 수 있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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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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