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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몇 자에 나의 꽃다운 30대가 훌쩍 가버리다니..."
지난 12일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가 이명박 정부 당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82명의 명단을 공개하자 배우 김규리(38)는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이렇게 탄식했다. 명단에는 김규리의 예전 이름인 김민선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왜 블랙리스트에 올랐을까.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 김규리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에 감염된 쇠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는 게 낫겠다"는 글을 올렸고 당시 이 문장은 '청산가리'라는 표현의 강렬함 때문에 급속도로 확산됐다.
수십 만명의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세종로에 차벽이 설치되는 첨예한 긴장의 시대에 그는 이 한 마디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 등 당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 속에서 김규리는 그전까지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적 없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컸다.
당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김민선의 청산가리 발언'이 쇠고기 소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는 질문에 15.8%가 "그렇다"고 답했을 만큼 그의 발언은 파장이 상당했다(리얼미터 2009년 8월 12일 조사). 네티즌들로부터는 '개념배우'란 별명을 얻었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들은 그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2010년 2월 1심 판결에서 김규리가 승소했고, 이후 2심 진행 중 원고가 소송을 취하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바꾼 건 2009년말이다. 당시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개명 사유를 "어릴 적부터 집안에서 불려온 이름으로 바꾸기 위해서"라고 말했지만 1999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10년간 구축해온 커리어가 무너질 위험을 감수할 만큼 그에게 '청산가리 사건'은 빠져나오고 싶은 부담이었다.
개명 이후 그는 독해졌다. 상업영화 출연이 쉽지 않아지자 그는 홍상수와 김기덕 감독의 저예산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며 영화계에 김규리로서 복귀 신고식을 치렀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는 이번 블랙리스트 명단에 함께 오른 유준상, 문소리 등과 함께 한 가벼운 소품이었고, 김기덕 감독이 제작자로 나선 <풍산개>는 극강의 추위 속에서 발톱이 빠지는 투혼까지 발휘하며 찍은 작품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 노개런티로 출연하며 그야말로 '올인'했다. 다행히 <풍산개>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과를 거둬 이전까지 모호한 포지션의 배우였던 김규리는 연기 잘 하는 배우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가 독해졌다는 것을 보여준 또하나의 사례는 MBC의 연예인 댄스스포츠 경연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였다. 그는 생전 처음 해보는 댄스스포츠를 다리에 멍이 들 정도로 연습했다. 본인 표현에 의하면 "정말 미친 듯이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 프로그램의 최대 수혜자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그전까지 자신이 개명했다는 사실을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하고 다니던 그는 이 프로그램 이후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후 큰 작품, 작은 작품 가리지 않고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배우 인생 2막을 살고 있다. 정치적 소신을 드러내는 영화(<또 하나의 약속>)에 출연하기도 하고, 아프리카 오지 봉사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블랙리스트의 원조 격인 1950년대 매카시즘의 희생자인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달턴 트럼보는 이렇게 말했다. "블랙리스트에는 영웅도 악당도 없다. 오직 희생자만 있을 뿐이다."
김규리는 블랙리스트의 희생자이지만 이후 그의 커리어는 이름까지 바꾼 그가 신인의 자세로 다시 시작해 오롯이 그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기에 놀랍다. 개명하던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김민선이란 인물이 인생의 1막을 살았다면 김규리는 2막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시작한다는 의미예요. 욕도 많이 먹었지만 당당히 맞서면서 저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그는 그의 말대로 했다. 그의 30대는 단지 '훌쩍 가버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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