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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케인 하면 아마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의 알프레드 집사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4)의 수장 아서 역으로도 많이들 기억하시겠고요. <프레스티지>(2006),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 등 노년의 그는 주로 근엄한 영국 신사의 모습으로 정장을 입고 스크린에 등장했습니다. <유스>(2015)의 세계적 지휘자 프레드 역할 역시 그의 이런 이미지 덕분에 반전 허당 매력이 가능했던 캐릭터였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특히 애정해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케인이 등장하죠.



케인은 1933년 런던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모리스 미클화이트. 그는 18세 때인 1952년 영국 육군에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험도 있습니다. 제대 후 그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며 지방 유랑 극단에서 단역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56년부터 여러 영국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습니다만 무명 생활은 10년 동안 이어집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영화는 <줄루>(1964)와 <알피>(1966)입니다. 이후 <겟 카터>(1971)의 카터, <머나먼 다리>(1977)의 반델러 대령, <리타 길들이기>(1983)의 프랭크 박사 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할리우드의 전천후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주조연을 넘나들며 가장 바쁜 배우 중 한 명인 그는 <한나와 그 자매들>(1986)의 엘리엇 역, <사이더 하우스>(1999)의 윌버 박사 역으로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2회 수상했습니다. <알피>, <탐정>(1972), <리타 길들이기>로 3번 후보에 오른 끝에 이루어낸 성과입니다. 연기생활 60여년 동안 1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습니다.


1990년 마이클 케인은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책의 제목은 [마이클 케인의 연기 수업](바다출판사, 원제는 Acting in Film: An Actor’s Take on Movie Making by Michael Caine). 30여년 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연기 실전서입니다. 그가 알려주는 영화 연기의 방법과 자세는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삶의 지침서로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그가 강조한 내용을 9가지 레슨으로 정리했습니다.



1.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오디션이라 생각하라

- 배우들이 탄 트레일러 앞에 할리우드 관광버스 한 대가 주차한 적 있다. 버스기사가 승객을 위해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배우들은 대부분 승객을 피해 트레일러를 빠져나갔지만, 나는 버스기사의 체면을 세워주고 싶어 승객 모두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버스기사가 <쥬라기 공원> 등의 기획자 마이클 오비츠였다.

- 바에서 술을 마시며 바텐더와 대화할 때도 항상 배우로서 매력을 잃지 말라. 바텐더의 다른 손님 중 메이크업 담당자가 있어 내 이야기를 그에게 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알피>


2.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철저하게 준비하라

- 현장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다. 수십, 수백 명의 스태프들이 모두 배우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대비만이 현장에서 긴장감을 줄여준다.

- 대사가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때까지 암기하라. 입속으로만 외우지 말고 큰 소리로 말하라. 스스로 확신이 들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

- 촬영이 끝나면 곧바로 트레일러로 들어가 다른 일을 하는 배우들이 있다. 대본을 쓰거나 뉴욕 증시에 열을 올리거나. 하지만 영화배우로서 제대로 해내면 그들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나는 트레일러 안에서 항상 어떤 장면을 반복해서 연습한다.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대사에 대한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겟 카터>


3. 당신 때문에 촬영이 지체되지 않게 하라

- 현장에 도착하면 조감독에게 인사해 출석을 알리고, 분장실과 대기실 위치를 파악하라. 항상 대기상태를 유지해 언제든 부르면 곧장 촬영할 수 있도록 하라.

- 분장할 때 주름이나 뾰루지가 신경 쓰이면 딱 집어서 그렇다고 말하라. 메이크업으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나중에 그것 때문에 신경 쓰느라 연기를 망치지 말라.

- 세트장이 해당 배역의 집이나 사무실이라면 미리 세트장에 들어가 구조를 익혀두라. 연기하다가 아주 잠깐이라도 문 앞에서 머뭇거리면 정말 당신의 집이라고 믿을 관객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세트장이 배역에게 낯선 장소라면 세트장에 들어가지 말라. 그때는 뭐든 처음 대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머나먼 다리>


4. 장면의 연속성을 생각하라

- 분장을 받고 나면 그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라. 옷에 음료수를 흘리거나 덥다고 단추를 풀면 재촬영해야 한다.

- 쓸데없는 동작을 만들어서 스크립터를 괴롭히지 말라. 가령 긴 장면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분할 촬영이 힘들어진다. 담배를 얼마만큼 태웠는지 길이를 일일이 재야하기 때문이다.

- 마스터숏과 클로즈업에서 동작 허용 범위를 파악하라. 마스터숏에선 움직임을 크게 하고, 클로즈업에서는 움직임을 자제하라.

- 맡은 배역의 습관적 행동이 몸에 배도록 하라. 각 숏에 맞춰서 정확하게 똑같은 동작을 반복할 수 있어야 한다.


<리타 길들이기>


5. 카메라는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 사소한 움직임도 카메라에 다 찍힌다. 가급적 눈 깜빡이지 말고 시선을 바꾸지 말라. 나는 촬영 스태프 중 한 명이 내 시선 앞으로 지나가면 즉시 다시 찍자고 한다. 카메라는 필시 내 시선 끝자락의 실낱같은 흔들림을 담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 클로즈업은 미세한 부정확함도 확대한다. "차 한잔 하실래요?" "네." 이런 대화에서 상대방이 '차' 라는 단어를 말할 때 당신의 반응인 '네'는 당신의 태도와 억양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차보다는 커피를 더 좋아한다는 느낌을 표현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술을 끊게 하기 위해 억지로 차를 권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카메라는 그런 미묘한 변화까지 잡아낸다.


<한나와 그 자매들>


6.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된다

- 당신이 맡은 배역은 실제에 바탕을 두어야지, 실제가 어떨 거라는 영화배우다운 기억에 바탕을 두면 안 된다. 예측된 연기는 날 것의 감흥, 자연스러운 즉흥성을 무너뜨린다.

- 리얼리티를 스스로 만들어 내라. 숨 찬 상황이라면 실제로 달려서 숨이 차게 하라. 불안을 느끼는 장면이라면 불안한 상황을 만들라. 나는 커피를 대여섯잔 마시면 불안한 표정이 된다.

- 리허설에선 전력을 다하지 말라. 영화 연기는 위험이 관건이다. 연습한 위험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다. "액션" 소리가 들리면 실제 놀라움을 안겨줄 궁극적 위험을 선택해야 한다.

-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해 있고 연기가 진실되면, 느긋하게 있어도 카메라가 알아서 매 순간을 담아낼 것이다.



<해리 브라운>


7. 영화 연기는 상대 배우와의 경쟁이 아니다

- 다른 배우의 연기에 도움을 받건 방해를 받건, 설사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영화배우라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대역이 정확하게 해준 듯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 촬영한 분량을 보지 않고서는 현장에선 배우의 연기가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없다. 만약 상대 배우 연기가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른 배우를 상상하며 연기하라. 대신 그렇게 하고 있다는 티는 내지 말라.

- 대사가 적다고 비중이 작은 것이 아니다. 리액션이 더 중요한 연기가 있다. 가령 <리타 길들이기>는 리타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프랭크의 리액션이 필수적인 영화다. 사람들은 제목이 '프랭크 길들이기'가 아닌데 왜 출연하냐고 했지만, 결국 나는 프랭크 역할로 커리어가 더 탄탄해졌고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 당신이 지금까지 했던 것들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마음가짐을 놓치지 말라. 현장에선 모두 당신 편이고 당신이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끄고 느긋해져라. 모든 것은 당신이 제대로 하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다크 나이트>


8. 스스로를 창조하라

- 스타가 되려면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소속사가 없던 무명 시절 안경을 쓰고 시가를 피우며 눈에 띌 만한 곳이면 어디든 얼쩡거렸다. 또 얌전하고 순종적으로 행동했다. 그랬더니 머지 않아 "안경 쓰고 시가 피우며 노동자 역할을 맡는, 함께 일하기 쉬운 배우"로 인식되었다. 이런 이미지는 내가 의도적으로 은밀히 만든 것이다. 주요 스튜디오들이 소속 배우들을 위해 폈던 전략을 나는 독자적으로 내 자신을 위해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 필요하다면 다른 배우의 재능을 훔쳐라. 단, 최고의 배우에게서 훔쳐라. 비비안 리, 말런 브랜도, 로버트 드니로, 메릴 스트립에게서 훔쳐라. 그들 역시 어디선가 훔쳐온 것일테니 상관없다.

- 다른 사람의 역할을 대신 하지 말라. 기술 스태프가 하는 일을 괜히 도와주지 말라. 그들은 프로다. 스턴트맨이 해야 할 일을 억지로 하지 말라. 스턴트맨의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다. 결국 당신 자신이 당신의 상품이다. 당신의 몸과 얼굴이 당신에겐 전부임을 명심하라.


<인셉션>


9. 현장에선 언제나 영화가 최우선이다

- 영화 연기는 정신적, 육체적 소모를 요구한다. 숙면을 취하라. 현장으로 움직일 교통편을 확실하게 준비하라. 배고파도 참아라. 당신을 일부러 굶기는 사람은 없다. 현장에선 언제나 영화가 최우선이다.

- 감독이 즉흥 연기를 요구할 때, 그 요구가 무리가 아닌 이상 지시를 따르라. 감독은 엄청난 과제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직업이다. 만약 감독이 그 모든 것들을 다 내던지고 즉흥적으로 촬영하고 싶어하면 그럴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 러브신에서 나는 직업적으로 다가간다. 어색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상대 여배우에게 거침없이 농담한다. 감독이 "컷!"을 외치는 순간, 실제로 어떤 감정이입도 없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또다시 농담한다.

- 영화는 촬영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편집이 끝나야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따라서 매일 촬영 분량의 편집용 프린트를 보는 것은 의미없다. 사람들은 자기 분야에 국한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듣기 어렵다. 나는 '컷!' 소리가 무섭게 촬영장을 떠나기 때문에 '칼퇴근 마이크'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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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영화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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