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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만에 내놓은 [기사단장 죽이기]는 1200쪽에 달하는 대작입니다. 600쪽짜리 양장본 2권으로 되어 있어 부담스럽지만 페이지는 술술 넘어갑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첫 느낌은 이것은 ‘창작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남들이 의뢰한 초상화를 그려주며 살던 주인공이 삶의 풍파를 겪은 뒤 나만의 작품을 그리기 위해 자신의 깊은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 말입니다. 현현하는 이데아와 전이하는 메타포는 노골적으로 이것이 창작 과정임을 주지시킵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침투해 생각을 잡아먹는다는 ‘이중 메타포’는 아마도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마다 느끼는 끊임없는 불안감을 상징화한 것일 테고요.
주인공인 나는 아사다 도모히코라는 거장의 비밀스런 내면을 오랫동안 탐구한 끝에 그의 창작혼을 불태우게 했던 이데아와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주인공인 나는 자신이 동일본을 여행할 때 본 남자를 그린 작품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에 대해 “이것은 어쩌면 나의 ‘기사단장 죽이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두 그림은 같은 화재로 소실됩니다.
후반부에 이데아가 "아버지를 찔러 죽이듯 자신을 찌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아버지 세대의 작품을 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 우뚝 설 수 있는 예술의 세계를 상징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를 예로 들면, 1962년 독일 젊은 영화인들이 오버하우젠에서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라고 선언하며 '뉴 저먼 시네마'의 시작을 알린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물론 한 가지 관점만으로 이 대작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겠죠. 기본적으로 이 소설은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보이는 것을 자신의 감각에 따라 해석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되고 그로 인해 인생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입니다. 주인공인 나는 이렇게 말하죠. "이 세계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믿을 수는 있어."
또다른 한편으로 이 책은 ‘한 남자의 성적인 자신감 찾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아내와 잠자리를 거부당하고 결국 이혼까지 한, 성적인 자신감이 부족한 남자인 주인공이 가슴 크기에 집착하는 소녀를 만나게 되고 그 소녀와 비밀을 공유합니다. 주인공은 여성의 자궁처럼 보이는 굴 속으로 들어가 영원의 시간을 상징하는 강을 건너 동굴을 지나 아주 작은 횡혈을 통과해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는데 이후 주인공은 헤어진 아내가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맞든 아니든 상관없이 키우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역사의 영적인 승화 과정’으로 보입니다. 주인공이 8개월간 거주하게 되는 집은 일본화의 대가인 아마다 도모히코가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곳인데 도모히코는 6세기 아스카 시대의 그림을 주로 그려온 화가로 묘사됩니다. (물론 하루키가 창조해낸 가상의 화가죠.) 주인공이 발견하는 도모히코의 미공개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는 아스카 시대의 풍속화지만 이 그림은 14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뛰어 1938년 안슐루스, 크리스탈나흐트, 난징 대학살 등 비극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동생을 잃은 도모히코의 구구절절한 심정이 담긴 그림이죠.
이 엄청난 그림은 다시 70여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주인공인 나에게로 계승됩니다. 주인공은 이 그림을 꼼꼼하게 감상하며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가고 결국 도모히코를 파괴적으로 계승할 만한 자질을 갖추게 됩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라는 역작입니다. 하지만 두 그림은 모두 한 순간 화마에 사라져버려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죠. 비록 누군가 죽고, 물에 휩쓸리고, 불타는 시간의 긴 흐름 속에 ‘실체’는 사라졌지만, 한 사람의 정신만은 계승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건보다는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가 다양하게 많고, 또 줄거리보다는 분위기가 말을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죠. 언제나 비슷한 분위기의 고독하게 인생을 즐기는 30대 남자가 주인공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는 클래식과 재즈 음악 애호가에 잘 생기진 않았지만 봐줄 만한 외모로 여성 한두명에게 호감을 사고 음식을 손수 만들고 조직생활보다는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직업을 갖고 있죠.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이런 ‘하루키 월드’의 남자가 주인공입니다. 무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 줄거리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책을 읽으실 분들은 스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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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받은 초상화를 그려주며 살던 나는 아내 유즈로부터 이혼하자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짐을 싸 도쿄 북쪽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몇 달간 여행하고 돌아와 갈 곳이 없던 나는 미대 동창생의 도움으로 아마다 도모히코의 산속 저택에서 무상으로 살게 된다. 일본화 대가인 도모히코는 심한 치매로 요양원 입원해 있다.
이제 초상화가 아닌 나만의 작품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작업실에서 이젤을 펴지만 그리고 싶은 대상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날 붙박이장 천장에서 비밀통로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도모히코가 숨겨놓은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을 발견한다. 그와 나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 그림은 아스카 시대 풍속화로 한 젊은이가 노년의 기사단장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나는 도모히코에 대해 더 조사해 그가 젊은 시절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갔다가 1938년 갑자기 귀국해 서양화 전공에서 일본화로 변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쟁 중 산속에서 갈고닦은 일본화로 그는 전후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어느날 초상화 의뢰가 들어온다. 더 이상 초상화를 그리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뜻밖의 거액 제안에 마지막으로 일을 맡기로 한다. 찾아온 남자는 산 꼭대기 흰색 대저택에 거주하는 백발의 신사 면시키 씨.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자신의 신상을 털어놓는데 그에게는 딸이라고 믿는 한 소녀가 있다. 평생 독신을 유지해온 그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의 정액을 받아가 낳았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딸이다. 그 딸의 이름은 아키가와 마리에. 면시키는 마리에를 훔쳐보기 위해 산꼭대기 대저택을 매입해 군사용 망원경까지 구입할 정도로 철두철미한 사람이자 고급 자동차를 4대나 소유한 갑부다.
그림을 그리다가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깬 어느 밤, 산속에서 방울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 그곳엔 돌무덤이 있다. 다음날 면시키와 함께 인부들을 동원해 돌무덤을 들어올려보니 그곳엔 커다란 구덩이가 있고 구덩이 안에는 방울이 들어 있다. 방울을 집으로 가져온 뒤 어느날 이데아가 나타난다. 정확히는 자신을 이데아라고 소개하는 키 작은 기사단장이다. 그림 속 기사단장의 모습 그대로다. 그날 이후 진도가 안 나가던 면시키의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가 그동안 그려왔던 초상화와 전혀 다른 종류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림에 만족한 면시키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 애초부터 이러려고 나에게 접근한 것인지 혼란스럽지만 나는 미술학원에서 강사와 학생으로 만난 13살 마리에를 자세히 보면서 그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마리에가 어린 시절 병에 걸려 죽은 여동생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마리에는 고모 아키가와 쇼코와 함께 집으로 찾아오고 나는 마리에를 그리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어느날 마리에가 실종된다. 기사단장이 나타나 마리에를 찾을 수 있는 힌트를 준다. 그 힌트를 따라 나는 도모히코의 요양병원을 찾아간다. 치매에 걸린 도모히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사단장은 자신을 그림에서처럼 찔러 죽이라고 말한다. 머뭇거리던 내가 결심하고 그를 찔러 죽이자 도모히코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와 동시에 그림에서처럼 구석 바닥에서 작은 문이 열리며 머리 긴 남자가 올라온다. 그는 자신을 메타포라고 소개한다.
나는 메타포를 협박해 그가 올라온 구멍 속으로 내려간다. 한참을 걸어가자 강이 나온다. 강을 건너주는 뱃사공은 얼굴이 없는 남자다. 마리에가 남기고 간 부적인 펭귄 모양 휴대폰 고리로 뱃삯을 치르고 강을 건너자 ‘기사단장 죽이기’ 그림에 등장한 여성 돈나 안나가 나타나 길을 안내한다. 그녀는 내가 어디로 가든 길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굴 속을 기어간다. 길이 접접 좁아져 폐쇄공포에 빠지지만 꾸역꾸역 몸을 밀어넣는다. 결국 횡혈을 통과해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곳은 산 속에 파놓은 구덩이 안이다. 면시키의 도움으로 나는 구덩이 밖으로 빠져나온다.
면시키는 내가 3일간 실종돼 있었다고 알려준다. 마리에도 비슷한 시각에 돌아와 있다. 나는 마리에와 대화를 나눈다. 마리에는 그동안 호기심에 면시키의 집 안에 몰래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 역시 기사단장을 만났고 덕분에 면시키에게 들키지 않고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와 마리에는 3일간 있었던 서로의 행적을 교환하곤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그날 이후 나는 달라졌다. 나는 마리에의 미완성 초상화를 마리에에게 건네주고는 유즈를 만나 재결합하자고 말한다. 유즈 역시 흔쾌히 받아들인다. 임신 중인 유즈의 아이는 꼭 나의 아이처럼 느껴진다. 임신이 예상되는 그 시점에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날 나는 동일본 지역을 여행하다가 유즈와 관계하는 아주 사실적인 꿈을 꾸었다. 어쩌면 이데아나 메타포가 동원된 임신일 지도 모른다. 어차피 확실한 건 없다. 믿는 대로 사는 게 중요하다.
나는 도모히코 집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유즈의 집으로 돌아간다. 3년 후 딸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다시 의뢰받은 초상화를 그리며 살고 있다. 고등학생이 된 마리에와는 가끔 통화하는 사이다. 마리에의 고모는 면시키와 결혼까지 생각하는 사이가 됐다. 어쩌면 마리에가 면시키와 함께 살게 될 지도 모른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고, 비슷한 시기에 도모히코의 저택에 불이 나 전소돼 버린다. 도모히코의 미발표 걸작 '기사단장 죽이기'는 잿더미가 됐고, 나의 '기사단장 죽이기'인 역작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 역시 그 집에서 불타버렸다. TV 화면에 등장한 동일본 대지진 현장 속에서 나는 동일본을 여행하며 본 흰색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를 얼핏 본 것 같다. 하지만 그 남자가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 다만 내가 그렇게 믿을 뿐이다.
이제 '기사단장 죽이기'를 기억해줄 사람은 나와 마리에 외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기사단장은 분명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딸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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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하루키의 전작들만큼 놀랍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만 완숙미랄까요,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기존의 하루키 소설이 묘사를 장황하게 하면서 여유를 한껏 즐기는 스타일이었다면, [기사단장 죽이기]는 촘촘하게 직조해둔, 완벽한 그물 속을 계속해서 탐험하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만큼 짜임새가 있다고 해야겠죠. 굉장히 초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 짜임새가 필요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색깔을 면하다’는 뜻의 희한한 이름을 가진 ‘면시키’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개츠비를 연상시킵니다. 하루키 본인도 개츠비에 오마주를 바친 캐릭터라고 인정했죠. 엄청나게 부유한데 고독을 즐기고, 딸 아이로 추정되는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산 속에 홀로 사는 인물입니다. 예의 바르면서도 철두철미하고, 그러면서도 생사에 초연한 인물입니다. 훗날 제가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시 떠올린다면 분명 면시키라는 캐릭터가 소환될 것 같습니다. 그만큼 강렬하게 인상에 남는 캐릭터입니다.
소설에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이야기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비해 결론이 용두사미라는 것입니다. 소설은 떡밥을 던지고 분위기를 띄운 뒤 나중에 그 떡밥들을 하나하나 회수하는데, 어떤 것은 끝까지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어떤 것은 흐지부지 추상적으로 마무리합니다. 마리에가 붙박이장에 들어갔을 때 서 있던 남자는 대체 누구였을까요? 얼굴없는 남자의 초상화는 어떻게 그려졌을까요? 책을 덮고 나서도 저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책 속의 이 문장이 이런 모호함의 면죄부가 되려나요?
“완성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모든 사람은 언제까지나 미완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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