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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만 해도 등에 땀이 나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덥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집이 최고라고요? 글쎄요. 흐흐. 여름 하면 떠오르는 공포영화들은 이런 심리를 역이용합니다. 집이 가장 무서운 곳이라고 말합니다. 집에 귀신이 들리고, 이상한 가족이 살고 있고, 이유 없이 사람이 죽어 있습니다. 소름 돋나요? 아니, 재미있겠다고요? 우리 집은 작아서 귀신 나올 곳도 마땅치 않다고요? 안심은 되겠지만 왠지 슬프네요. 최근 만들어진 공포영화 3편을 통해 집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여자친구의 집에 가지 마라 <겟 아웃>
흑인 크리스(다니엘 칼루유야)와 백인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엄스)는 뜨겁게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어느날 로즈가 제안합니다.
"주말에 우리 집에 가자."
그러자 크리스가 묻습니다.
"음, 너네 집에 내가 흑인이라는 거 얘기했어?"
로즈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합니다.
"우리 부모님 개념 있는 분들이야."
크리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합니다.
"그래도 당황하실 수 있으니까 얘기하는 게 좋을텐데."
로즈는 웃으며 답합니다.
"걱정 마."
두 사람은 차를 타고 로즈의 집으로 갑니다. 전원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대저택이네요. 로즈의 부모님은 웃으며 크리스를 맞아줍니다. 외과의사인 아버지는 크리스에게 "오바마를 세 번이라도 찍고 싶다"고 말하며 친근감을 표시합니다.
그런데요. 집을 둘러볼수록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저택에는 흑인 가정부와 집사가 함께 살고 있는데 이들은 크리스를 보고 시종일관 억지스러운 미소를 짓습니다. 또 로즈의 엄마 미시(캐서린 키너)는 자꾸만 크리스에게 최면을 걸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파티가 열립니다. 손님들은 나이 든 백인 일색인데 죄다 크리스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해진 크리스는 집에서 빠져나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로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붙잡네요. "오빠, 나 버리고 갈 거야?" 크리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크리스를 향해 미시가 진짜 최면을 겁니다. 크리스는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듣고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후 스토리는 자제할게요. 영화는 영리하게 인종문제를 하우스 공포 장르 속에 녹였습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는데 영화는 흑인들이 백인 주류 사회에서 느끼는 공포심을 이용합니다. 나이 든 백인들 사이에 선 크리스는 마치 노예시장에 팔려온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21세기 문명사회에 노예 매매라니 황당하다고요? 그만큼 크리스에겐 로즈의 집이 공포 그 자체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독특한 상상력에 박수를 치게 됩니다.
제작비 450만달러가 투입된 영화 <겟 아웃>은 북미에서 2억4100만달러 수입을 올려 무려 55배의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무명이던 배우들은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올랐는데요. 특히 로즈 역의 앨리슨 윌리엄스의 섬뜩한 표정 연기는 쉽게 잊혀지지 않네요.
#2. 25년마다 열리는 비밀의 방 <시간위의 집>
이번에는 시간 여행을 하는 집으로 찾아가 보겠습니다. 미희(김윤진)가 남편, 두 아들과 함께 사는 2층짜리 주택입니다. 남편 철중(조재윤)은 마침 누군가 헐값에 집을 내놓는 바람에 싸게 사게 됐다며 좋아하는군요. 하지만 집값이 싼데는 이유가 있겠죠? 저당이 잡혀 있다든지,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든지 혹은 귀신이 붙은 집이라든지 등등이요. 참, 이번 글은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스포일러 없이는 중반부까지도 쓰기 힘들거든요. 그러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때는 1992년의 어느날 밤입니다. 미희는 집 안에 누군가 있다고 느낍니다. 밤에 혼자 있을 때 왠지 모르게 인기척이 느껴질 때가 있죠? 알고 보면 별거 아닌데 바람 소리 같은 것이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 영화에선 단순히 인기척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고까지 합니다. 미희는 무서워서 숨 죽이고 있다가 용기를 내 방문을 열어봅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네요. 미희는 참았던 숨을 내쉽니다만, 공포영화는 이럴 때가 제일 무서운 법입니다. 주인공이 안심하고 있는 순간에 확 들이닥치니까요. 방 문틈으로 손이 쑥 튀어나오고 미희는 놀라서 빠져나옵니다.
다음날 미희는 무당을 부릅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니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한 거죠. 그런데 무당이 집에 오더니 눈이 뒤집어집니다. 넓은 집 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꽤 많은 유령들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쯤되면 당연히 이사를 가고 싶어지겠죠? 하지만 미희가 이사를 가기 전에 사단이 나고 맙니다. 둘째 아들 지원(고우림)이 사고로 죽고 이에 분개한 남편과 실랑이가 벌어지다가 남편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 와중에 큰 아들 효제(박상훈)는 실종됩니다. 두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미희는 남편 살해범으로 순순히 검거됩니다. 그렇게 25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미희는 할머니가 돼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릴적 효제의 친구였던 최신부(옥택연)가 미희를 찾아와 왜 굳이 폐허가 된 집에서 살기를 고집하는지 묻습니다. 미희는 실종된 효제가 언젠가 집을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효제의 실종사건에 호기심을 참을 수 없던 최신부는 이 집의 역사를 연구해 놀라운 비밀을 밝혀냅니다. 그것은 이 집에서 살던 사람들이 25년마다 실종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정확히 25년째 되는 날입니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시간위의 집>은 베네수엘라 영화 <하우스 오브 디 엔드 타임스>를 원작으로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이 각본을 쓰고, <스승의 은혜>의 임대웅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여러 시간을 집이라는 한 공간에서 교차시키는 설정이 꽤 복잡해 보이지만 <나비효과>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합니다. 타임슬립을 장착한 공포영화라고 할까요? 연출, 연기 등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스토리만큼은 흥미진진합니다. 앞뒤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분해하고 조립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3. 경매로 산 집을 조심하라 <컨저링>
무서운 장면이 없어도 무서운 영화라고 소개된 공포영화죠. 속편, 스핀오프 등이 연이어 나올 정도로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제작비 2천만 달러를 들여 3억1800만달러를 벌어들였으니 놀라운 수완이네요. 덕분에 아시아계 미국 감독 제임스 완은 공포영화계의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영화 <컨저링>의 배경은 1971년 미국의 시골 마을입니다. 페론 가족은 꿈에 그리던 집으로 이사합니다. 경매로 집을 구입한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꿈에 그리던 집이 마침 경매로 나오다니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원래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집이 다들 이상한 편이긴 하지만 이 경우는 더 의심이 갑니다. 얼마나 집이 안 팔리면 경매로까지 나올까요?
여기서 잠깐 상식 공부 좀 하고 갈게요. 영화의 배경인 1971년은 미국에서 경제위기가 가속화돼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된 시기입니다. 브레튼우즈 체제가 뭐냐고요? 한 마디로 달러를 기축통화로 설정한 체제죠. 그런데 베트남전의 후유증으로 달러가 고갈된 미국이 더 이상 금을 달러로 못바꿔 주겠다고 선언해버리고 세계 경제는 혼란에 휩싸입니다. 1971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산업도 아시아에 점점 밀리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1971년은 미국에서 꽤 중요한 해입니다. 아시아계 제임스 완 감독이 하필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것도 우연은 아닐 것 같지 않나요?
주제에서 벗어났으니 다시 영화로 돌아올게요. 내 집 장만에 성공한 페론 가족은 들떠 있습니다. 그런데요. 개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짖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못 보는 뭔가를 본 걸까요? 다음날 개는 죽어 있고 집의 시계들이 모두 3시 7분에 멈춰 있습니다. 시계를 다시 가게 해놓아도 다음 날 시계는 또 3시 7분에 멈춥니다. 불길하죠? 대체 3시 7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저 같으면 당장 집에서 뛰쳐나왔을 것 같지만 페론 가족은 담력이 끝내줍니다.
딸 아이의 몸에 이상한 멍이 들고, 벽에 걸어놓은 액자가 깨지고, 잠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리를 잡아당기고... 계속해서 집 안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엄마는 그제서야 불길한 예감에 초자연적인 연구가 전공인 워렌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두 사람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음험한 기운이 집을 휘감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알고보니 그것은 100여년 전인 1863년, 그러니까 링컨 대통령이 게티스버그에서 노예 해방을 선언한 그 해, 이 집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과 관련돼 있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소녀의 영혼이 집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영화는 악령을 퇴치하기 위한 엑소시즘으로 치닫습니다.
영화 <컨저링>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실화가 되는 부분은 페론 가족이 자기네 집에 유령이 나온다고 여러 번 말했다더라 하는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다 허구의 이야기죠. 아무렴요! 이게 실화면 어떻게 살겠어요. 그런데요. 영화가 히트한 후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된 집에 사는 주인이 영화 제작진을 상대로 고소를 합니다. 자기들은 1987년에 집을 구입한 뒤 평화롭게 아무 일 없이 살고 있었는데 영화를 찍은 뒤에 자꾸만 흉흉한 일이 벌어진다면서요. 혹시 영화를 찍던 도중 진짜 악령이 그 집으로 들어간 것일까요? 으으. 영화보다 더 오싹하네요.
지금까지 최신 공포영화 속 집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겟 아웃>의 집에는 패밀리 비즈니스를 하는 이상한 백인들이 살고 있고, <시간위의 집>의 저택 지하실에는 25년마다 이상한 세계로 갈 수 있는 문이 있으며, <컨저링>의 집에는 저주받은 유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보통 집 하면 느껴지는 편안한 분위기와 전혀 거리가 멉니다. 저런 곳에서는 하루도 못 견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궁금하다고요? 더위를 잊게해줄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그 집들을 찾아 영화 속으로 떠나보세요.
(SK하이닉스 하이라이트 블로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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