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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에서 찰리의 아빠는 치약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는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하루 종일 치약 뚜껑 닫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 작업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면서 아빠는 실직하고 찰리의 가정은 더 가난해진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 장면을 70년 전 영화인 <모던 타임즈>(1936)와 비교해보면 그때와 지금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그 영화에서 채플린은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쉴 새 없이 나사를 조이는 비인간적인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찰리의 아빠는 그마저 할 수 없게 된다. 기계의 등장으로 기계처럼 일하기를 요구 받던 인간은 기계가 똑똑해지자 이제 기계에게 아예 자리를 내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모던 타임즈>


최근 미국과학진흥협회는 향후 30년 동안 기계가 인류의 절반 이상을 실직 상태로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이는 2013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이 인공지능의 발달로 20년 안에 인간의 직업 중 47%가 사라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은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속도는 조절되고 있지만 방향은 일제히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인공지능이 현재 인간이 하고 있는 일을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 말이다.


불길한 예감은 잘 들어맞는다는 속담처럼 인공지능의 인간 직업 대체는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자율주행트럭이 고속도로 시험운행에 돌입하며 300만 명 이상이 속한 트럭운전사 직업군을 위협하기 시작했고, 인공지능 기자, 인공지능 펀드매니저, 인공지능 바둑기사, 아이돌보미 로봇, 바리스타 로봇, 인공지능 전화상담원 등이 지구촌 곳곳에서 활동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사회가 변화할 때 영화는 늘 한 발 앞서 미래상을 제시해왔다.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고 또 사람들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미래일수록 창작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불안감 역시 수십 년 전부터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블레이드 러너>(1982), <매트릭스>(1999) 등 걸작도 많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이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독자적 상상력의 자양분으로 삼아왔다면 최근 제작된 영화들은 보다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등장시킨다. <빅 히어로>(2014)의 힐링 로봇, <월-E>(2008)의 폐기물 수거 로봇, <그녀>(2013)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등 그들은 정해진 영역 내에서 인간이 못 하는 일을 하고, 인간과 감정적으로 교류한다.


그중 가장 최신작인 <패신저스>(2016)와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2016)에는 기존 인간 직업의 대체자로 보기에 충분한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이 글에서는 두 편의 영화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현실과 비교해 보려 한다.


<패신저스>


<패신저스>의 바텐더와 의사 로봇


SF 영화 <패신저스>는 100여 년 이상 가야 도달할 수 있는 제2의 지구를 향해 운항중인 우주선을 배경으로 한다. 이곳에 탑승한 모든 인간들은 냉동 수면 중인데 유일하게 24시간 깨어 있는 존재가 있으니 그는 바로 인공지능 바텐더 로봇 아서(마이클 쉰)다.


인간을 꼭 닮은 상반신을 가진 아서는 바에 앉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로봇이다. 그는 술잔을 닦으며 불운하게 냉동 수면에서 깨어난 짐(크리스 프랫)이 하는 말을 듣고 위로해주고 때론 조언도 해준다. 인간의 특기인 남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재주도 있어 남녀 주인공을 갈라놓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 '카페X'의 바리스타 로봇

샌프란시스코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패티 굽는 로봇 'Flippy'


아서 같은 바텐더 로봇은 결코 먼 미래의 우주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홍콩에서는 종업원과 바리스타를 모두 인공지능으로 대체한 무인 커피숍 '카페 X(Cafe X)'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선 자리에 앉아 터치스크린에 주문을 입력하면 로봇 팔이 1분 이내 커피를 만들어 가져다준다. 이 바리스타 로봇은 시간당 120잔의 커피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조만간 다른 커피숍에서도 로봇을 채용할 지 모르겠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패스트푸드점은 햄버거 패티를 굽는 로봇 '플리피(Flippy)'를 도입했다. 미소 로보틱스라는 스타트업이 만든 이 로봇은 패티가 타지 않게 정확한 온도로 구워내는 것이 장점이다. 버거뿐만 아니라 치킨, 감자튀김도 구울 수 있고 햄버거 빵의 앞뒤를 구분해 플레이팅까지 해낸다고 하니 향후 학습을 통해 레스토랑 셰프의 자리까지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패신저스>


영화 <패신저스>에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바텐더 로봇에 이어 의료업을 수행하는 기계도 등장한다. 오로라(제니퍼 로렌스)는 우주에서 산소부족에 노출된 짐을 겨우 구출해 캡슐 모양의 기계에 집어넣는데 이 기계는 인간 신체와 정신 건강의 이상을 정확하게 발견해 치료하는 만능 의료장치다. 기계는 짐에게서 수십 개의 질병을 감지해내고, 오로라는 기계가 제시한 처방 중 하나를 캡슐에 입력한다.


영화 속 만능 의료기계의 초기 버전쯤 되는 인공지능 의사는 현재 부분적으로 병원에서 활동 중이다. IBM의 암 치료용 인공지능 ‘왓슨’을 도입한 국내 한 병원은 작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200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왓슨은 의학 전문지와 교과서 1500만 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연구 자료를 분석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하루 평균 122건씩 새로 발표되는 암 논문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제시한다. 이 병원에서 왓슨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9.5점을 기록할 정도로 높다. 심지어 인간 의사와 왓슨의 치료법이 엇갈릴 때 환자들은 대부분 왓슨의 제안을 따랐다고 하니 인간 의사들은 일자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더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의 가정교사 로봇


화성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간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하이틴 로맨스 영화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에는 소년의 가정교사이자 단짝 친구로 켄타우로스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말인 괴물에서 이름을 따온 이 로봇은 깡통을 여러 개 붙여놓은 듯 친숙한 생김새를 갖고 있는데 16살인 가드너(에이사 버터필드)와 함께 살며 그를 교육시키고 또 고민을 들어준다. 켄타우로스의 머리에는 지구의 교육과정과 싱크로되는 갖가지 지식이 담겨 있어 가드너는 비록 화성에 고립돼 있지만 누구보다 똑똑하게 자란다.


켄타우로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인공지능 가정교사는 현실에서 이미 활동 중이다. 미국 과학자 벤 고르첼은 에티오피아에서 태블릿을 이용해 아이들을 원격으로 교육하는 인공지능 가정교사 프로젝트인 ‘야네투(YaNetu)’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수학, 문학, 영어, 자연과학 등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교육 과정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야네투는 교사 수와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인재를 길러낼 대안으로 꼽힌다.


XPRIZE의 인공지능 가정교사 프로젝트 'YaNetu'를 통해 공부하는 아이들


인공지능 교사가 아프리카 아이들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영국 런던의 페이크먼(Pakeman) 초등학교는 인공지능 수학 교사의 수업을 정규 교과과정에 도입했다. 기존에 컴퓨터 등 기계를 이용한 학습이 일방향 주입식으로 이루어졌던데 반해 이 교사 로봇은 학생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쌍방향식 수업을 한다. 가령 “91 안에 7이 몇 개 들어있을까?”라고 문제를 낸 뒤 학생이 질문하면 로봇은 가상현실 속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러 캐릭터를 등장시켜 원리와 예시를 알기 쉽게 설명하며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서드 스페이스 러닝(Third Space Learning)이란 회사가 과학자들과 함께 10만여 건의 교습법을 분석해 만든 이 프로그램은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교사로 기록될 예정이라고 한다.



<바이센테니얼 맨>


인공지능이 대체 못할 인간만의 장점은?


인공지능의 급부상을 이야기할 때 그동안 로봇이 대체할 직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제조업이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만 해도 로봇이 하는 일은 치약 뚜껑 닫는 일 같은 단순 업무였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은 고도의 두뇌와 다양한 사례를 필요로 하는 의료, 인간과 친밀하게 교감해야 하는 서비스와 교육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인간 직업을 대체하고 있다. 미국의 법조계에선 판례를 분석해주는 변호사 로봇이 등장했고, 일부 대기업에선 CEO 업무 중 20% 가량을 인공지능에 맡겼다고 하니 그동안 고소득이 보장됐던 직업들 역시 인공지능의 위협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 마디로 대체 불가능한 직업을 찾기 힘들 정도로 인공지능은 전 방위에서 능력을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의 반작용으로 시작된 러다이트 운동 이래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불안감은 늘 있어왔지만 그때마다 인간은 할 일을 찾았고 다양한 새 직업들이 생겨났다. 기계로 인해 제조업의 생산성이 늘어나면서 서비스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 그 예다. 컴퓨터의 대중화가 만들어낸 직종만 수만 가지는 될 것이고, 영상 매체의 발달은 영화배우, 방송인, 아나운서 등 기존에 없던 독특한 직업군을 만들어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기계에게 밀린 찰리의 아빠가 실직한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의 아빠는 로봇을 수리하는 일로 직업을 바꿔 새롭게 일자리를 얻는다. 이 장면에서 힌트를 얻자면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일은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올해 세계경제포럼은 컴퓨터·데이터과학 분야를 향후 유망한 직업군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때 영화 속 인공지능은 막연한 절대 악의 배역을 맡았으나 최근 영화들에서는 인간 능력의 보완장치이자 인간과 상호 교류하는 존재로 역할이 바뀌어가고 있다. 현실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직업을 대체하고 있다고 막연히 두려움에 휩싸일 것이 아니라 지금은 인간인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진지하게 살펴보고 고민해볼 때가 아닐까 싶다.


인간만이 가진 장점과 가치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결국 공존의 길을 찾을 것이다. 가령 인간은 정보를 처리하는 일보다는 두 발로 뛰며 신체를 쓰는 일을 더 잘 한다던가, 인간을 설득하는 일을 더 잘한다던가, 크리에이티브하게 창작하는 일을 더 잘 한다던가, 예술적인 심미안으로 다른 사람을 웃게 하거나 감동시키는 일을 더 잘 한다던가 등등 말이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70년 전 <모던 타임즈>가 비판한 과거를 떠올리게 했던 것처럼 지금으로부터 70년 후 영화는 어떤 내용으로 현재 우리 모습을 소환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혹시 미래의 인간은 인공지능이 여러 로봇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만든 영화를 보면서 가혹한 별점평가를 내리고 있진 않을까?


* [BBB]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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