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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간격으로 나란히 개봉한 멜 깁슨 감독의 <핵소 고지>(2월 22일 개봉)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2월 28일 개봉)에는 같은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 역으로 친숙한 앤드류 가필드다.


<핵소 고지>에서 그는 실존인물 데스먼드 도스를 연기해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사일런스>에선 로드리게스 신부 역으로 런던 영화평론가협회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하며 호평받았다. 곱상한 프랜차이즈 스타로만 여겨졌던 그는 어떻게 두 거장의 선택을 받으며 연기파 배우의 반열에 올라서게 됐을까?


<핵소 고지>(왼쪽), <사일런스>(오른쪽)


벌써 데뷔 10년차 배우


1983년생으로 올해 34세인 가필드는 데뷔 10년차 배우다.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을 영국에서 보내 양국 시민권을 모두 갖고 있는 그는 어릴 때부터 무대를 동경해 데뷔 전 영국 극단에서 연기 경험을 쌓으며 기본기를 다졌다. 어느날 반짝하며 뜬 스타가 아닌, 차곡차곡 쌓아온 배우였던 셈. 영화 데뷔작은 존 크라울리 감독의 <보이 A>(2007)로 그는 살인죄로 14년간 복역후 과거를 숨기고 사는 청년을 연기해 극찬받았다.


<보이 A>


그가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작품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2010)다. 마크 저커버그의 하버드 동창이자 페이스북 공동창립자인 에두아르도 세이버린 역할로 그는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한다.


<소셜 네트워크>


가필드는 그해 카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각색한 고풍스런 SF 영화 <네버 렛미고>(2010)에서 감성적인 복제인간 역으로 캐리 멀리건과 함께 청춘스타로서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리부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의 캐스팅으로 이어진다.


<네버 렛미고>


스파이더맨은 가필드 커리어의 첫 번째 분기점이다. 영화 흥행과 함께 세계적 스타로 거듭난 그는 촬영장에서 사귄 엠마 스톤과 데이트 할 때마다 가십성 할리우드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두 사람은 2015년 결별하고 친구로 남았지만 이후 두 사람이 만날 때마다 재결합설이 무성하게 나돌고 있기도 하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으로 슈퍼히어로가 된 이후 그의 행보는 여느 프랜차이즈 스타들과 달랐다. 그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했다. 2012년 그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브로드웨이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의 상대역으로 출연해 대배우에 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토니상 후보에 올랐다.


스스로 또래보다 성숙해 디지털 세대와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다. 영국과 미국 어디에도 집이 없는 자유인으로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물건을 창고에 보관해놓고 마음 가는대로 대서양을 오가며 연기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가필드를 눈여겨 본 두 거장, 멜 깁슨과 마틴 스콜세지는 2014년 그를 나란히 차기작에 캐스팅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남자가 일본에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라는 점이 닮았다. 가필드는 실제 무신론자에 가깝지만 <핵소 고지>에선 제2차 세계대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집총을 거부한 기독교 신자, <사일런스>에선 17세기 선교를 위해 일본으로 간 포르투갈인 예수회 신부를 연기했다.


가필드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깁슨은 "전형적인 히어로 같지 않은 이미지에 끌렸다"고 말했고, 스콜세지는 "처음 봤을 때 번개에 맞은 듯 내가 상상하던 신부의 화신처럼 보였다"고 밝혔다. 앳돼 보이는 외모에서 느껴지는 선입견과 달리 캐릭터에 몰입하는 진중함이 그가 선택받은 이유다.


멜 깁슨과 앤드류 가필드


마틴 스콜세지와 앤드류 가필드


<핵소 고지>와 <사일런스>는 어떤 영화?


<핵소 고지>는 제7의날 재림 교회라는 한 기독교 분파의 신자 데스먼드 도스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보여준 영웅적인 활약상을 재현한 전쟁영화다. 어릴적 트라우마로 무기를 손에 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국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오키나와 전투에 의무병으로 참전해 부상병 75명을 구출해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실제 도스의 생존 당시 영상이 꽤 길게 삽입돼 있기도 하다.


<핵소 고지>


영화는 음주운전과 인종차별 발언으로 할리우드를 떠났던 멜 깁슨이 <아포칼립토>(2006) 이후 10년 만에 감독 복귀한 작품이다. 촬영은 2015년 9월부터 59일간 일본이 아닌 호주에서 이뤄졌다. 가필드는 외유내강형 군인으로 가슴에 품고 있던 집념을 후반부에 폭발하듯 토해내는 열연을 펼쳐보인다.


<사일런스>


<사일런스>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1966)을 각색한 작품으로 17세기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신부 페레이라가 에도 막부 시대 일본으로 갔다가 선불교로 개종한 충격적인 실화를 뼈대로 그 위에 이야기를 덧입혔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성은 <지옥의 묵시록>(1979)을 떠오르게 한다. 주인공인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페 신부(아담 드라이버)는 소문으로만 떠도는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를 직접 만나기 위해 가톨릭 박해가 극에 달한 일본을 찾아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다.


스콜세지는 이 작품을 당초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의 속편으로 기획했지만 제작이 계속 미뤄지다가 거의 30년만에 빛을 보게 됐다. 가필드는 고통받는 일본 신자들과 응답하지 않는 신 사이에서 고뇌하는 신부의 모습을 애절하게 표현한다. 촬영은 2015년 1월부터 4개월간 역시 일본이 아닌 대만에서 진행됐는데 가필드는 하루 3시간만 자는 강행군으로 산을 오르고 태풍을 견딘 끝에 몸무게가 18kg나 빠졌다고 한다.


<핵소 고지>


<사일런스>


연기 잘 하는 배우로 거듭난 가필드


<핵소 고지>와 <사일런스>는 가필드 커리어의 두 번째 분기점이 될 듯하다. 두 거장의 연출력 속에서 빛난 깊이 있는 내면 연기로 그는 연기 잘 하는 배우로 거듭났다. 장난꾸러기 스파이더맨이 연상되던 그의 마스크에선 이제 집념 강한 군인과 고뇌에 찬 가톨릭 신부로서 남자 냄새가 물씬 풍긴다.


2017년 가필드의 행보는 또 한 번 연극 도전으로 시작한다. 그는 토니 쿠쉬너의 퓰리처상 수상 희곡 <미국의 천사>에서 에이즈 환자 뉴요커 역을 맡아 런던 국립극장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영화 차기작은 골룸, 킹콩 등 얼굴없는 배우로 유명한 앤디 서키스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브레스>로 그는 이 영화에서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더 크라운>의 클레어 포이와 호흡을 맞춘다.


>> 은근히 닮은 두 영화 <핵소 고지> vs <사일런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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