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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하 박근혜)이 대통령의 자질이나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간의 미디어 노출 등을 통해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사리분별까지 못하며 살아왔을 줄은 청와대와 여권쪽에 있는 소수의 부역자들을 제외하곤 아마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박근혜는 틈만나면 하극상, 국기문란, 정직하지 못함, 나쁜 사람 같은 용어들을 써왔습니다. 어리둥절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그런데 최근 밝혀지고 있는 진실은 추악합니다. 저 단어들은 모두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함이었습니다.


거짓말을 계속 하다보면 내 말이 진실처럼 느껴지고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습니다. 박근혜는 평생 최태민, 정윤회, 최순실을 감추며 살았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어떤 기자가 용기 있게 최태민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핏대를 세우며 흥분하더라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렇게 자꾸만 감추려다보면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합니다. 거짓말을 자꾸 하다보면 그것이 진짜인 줄 착각하게 됩니다. 진짜가 오히려 거짓말이라고 생각될 거고요.


역대 최악의 대통령을 넘어서 단군 이래 모든 왕조를 통털어도 이런 리더는 없습니다. 자기 의지가 아닌 남의 의지로 섭정을 당한 왕들은 어리고 힘이 없어 그렇게 했었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사이비 종교인의 딸에게 넘겨준 적은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것이 죄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바보라고 안쓰럽기나 하지 박근혜는 이것이 죄임을 알기에 덮어줄 수 있는 사람들만 가까이에 두고 끝까지 보호했습니다. 박근혜는 최씨 일가만이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들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죄다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웠습니다.


2016년 10월 25일은 사실상 박근혜의 임기가 끝난 날입니다. 이날 박근혜는 처음으로 최순실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며 연설문 유출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모두가 의심하던 그 일이 진실로 밝혀지기 시작한 날입니다. 빙하처럼 겉으로 드러난 사실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했고 지난 40년 세월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한겨레, JTBC, 조선일보가 좌우합작으로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박근혜는 지금이든 아니든 내려오게 될 것이고 다음 행선지는 반드시 감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뉴스타파의 ‘최순실+박근혜 40년 우정 동영상 발굴’ 영상 캡처. 1979년 6월10일 한양대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촬영된 영상으로 당시 박근혜 27세, 최순실 23세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임기 4년이 지난 후에야 박근혜가 사실은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순실과 정윤회가 대기업에서 돈 뜯어내고 강남이니 평창이니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려 했다면 소문이 났어도 벌써 났어야 합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검찰이나 경찰이 진즉에 수사했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대통령이나 권력자를 빙자한 사기극이 꽤 많고 이들은 하나같이 구속됩니다. 하지만 최순실에 대해서는 모두들 침묵했습니다. 도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한 번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면 결국은 엉뚱한 곳에 닿는 것처럼, 범죄에도 그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조력자가 있습니다. 멀쩡한 법치국가의 한복판에서 대낮에 사기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면 우선 범인을 잡아서 가두고 그 다음 도대체 왜 그 사건이 벌어졌는지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안심을 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번에 더 큰 광대가 나타나서 나라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최근 전여옥 씨의 말에 따르면 박근혜는 대선후보 당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 의존도가 너무 심해 최순실은 대통령을 일일이 챙겨주는 것을 귀찮아했다고까지 합니다. 그렇게 전해 들은 메시지를 박근혜가 발표하면 언론들은 받아쓰기에 바빴고, 교수들은 분석하기에 바빴습니다.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발표만 하고 질문은 받지 않는다" "역대 최악의 불통정부다"라는 말들은 많았지만 불만 표출은 잠시일 뿐 다들 저마다 그 메시지대로 다음 계획을 짜고 행동했습니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쉬운 통치는 없었을 겁니다. 한 마디 하면 알아서 행동하는데 말이죠.


1977년 3월 16일 새마음 궐기대회에 참석한 박근혜와 최태민.


박근혜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때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린이회관을 아시나요? 육영재단이 운영하는 곳으로 어린이대공원 앞에 있습니다. 매년 5월이면 어린이회관은 잔디밭에서 사생대회를 엽니다. 당시만 해도 사생대회는 주목도가 높았습니다. 전국의 유치원생 몇 천 명이 참여할 정도로 규모도 컸죠.


1986년 사생대회 입상자가 발표되고 나서 초이학원이라는 곳에서 전화가 옵니다. 왜 우리 학원 학생 성적이 좋지 않은지 항의하는 전화였습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 어린이회관 미술담당 부장 이하 직원이 전부 교체되고 그 자리에 초이학원 교사들이 입사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초이학원은 최순실이 1985년부터 운영한 사설학원이었습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직원들이 항의하고 문제가 커지자 최순실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뜻에서 건의해 시작한 일이었다.” 박근혜는 1990년 육영재단 이사장을 사퇴하며 이렇게 해명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30년이 흘렀습니다. 어린이회관은 청와대가 됐고, 유치원생은 국민이 됐고, 초이학원 교사들은 청와대 비서와 여당 친박이 됐습니다.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여전히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박근혜 사퇴 이후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갈등이 심화돼 5촌 조카 간 살인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콘트리트 지지율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박근혜는 업적이 있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아닙니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혈통이 그 자리에 오르도록 했을 뿐입니다.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는 민주정권이 키웠습니다. '민주정권 10년' 해봤지만 신자유주의만 강화되고 별로 새로울 게 없더라는 푸념이 독재자 박정희의 경제개발 시대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대구, 포항 할 것 없이 곳곳에 박정희 동상이 만들어지고 생가가 복원됐습니다.


죽었던 박정희가 부활하자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성적 논의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TV토론을 해도 박근혜가 더 잘했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으니까요. 이명박 정권의 부정부패는 이상하게도 박근혜에게 득이 됐습니다. 박근혜는 자식이 없으니 깨끗할 거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도 최태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최태민과의 불륜설을 비롯해 박근혜가 최태민을 신적 존재로 여긴다는 증언까지 나왔지만 다 허황된 이야기이고 상대 진영의 음해라며 무시됐습니다. 보이는 것을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본 셈입니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청와대를 유치원으로 만드는 동안 검찰은 알아서 기었고, 언론은 침묵했고, 국민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취임 초 TV조선이 ‘형광등 100개를 켠 아우라’라는 제목으로 박근혜를 칭송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지금의 사태는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도록 아무도 손 쓸 수 없던 것일까요?

어떤 시스템이 동작하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 어떤 시스템이 동작해도 믿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견고하게 꽉 막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번 사태가 지금 이렇게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저는 조선일보의 변심을 꼽고 싶습니다. 4년전 박근혜 당선의 혁혁한 공로자였던 조선일보는 지금 누구보다 가장 먼저 박근혜를 식물 대통령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박근혜 이후의 거국내각 플랜을 제시하고, 군과 경제팀이 중립을 지켜 이 상황을 관리하라는 사설을 내기도 했습니다. 만약 조선일보가 몇 달 전 박근혜 정부에게 ‘부패세력’으로 낙인 찍혀 세무조사를 받는 처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마도 물타기 방법을 찾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역대 보수정권의 뒤에는 항상 조선일보가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막강한 영향력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프레임을 짰습니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를 편들어줄 언론 혹은 알아서 침묵해줄 언론은 세계일보와 KBS, MBC 정도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앞다퉈 박근혜를 공격하는 상황은 4년 전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입니다.


조선일보에게 다른 노림수가 있는지는 지금으로선 상상이 불가능합니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박근혜는 더 이상 보수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보수주의자도 박근혜를 옹호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보수주의는 뇌사 상태에 빠졌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미천합니다. 1987년 체제를 기원으로 하면 이제 만 3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민의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간 적도 있고 이를 역류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전형적인 ‘민주주의 독재’의 폐단을 드러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이 발명한 정치제도 중 가장 나은 제도라고 알려진 민주주의의 단점 중 하나는 다수에 의한 횡포와 그로 인한 소수 의견 무시입니다. 히틀러도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점은 민주주의의 폐해를 이야기할 때 항상 회자됩니다. ‘민주주의 독재’라는 단어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박근혜-최순실이 보여준 국정운영은 그 비밀스러운 관계 뿐만 아니라 정책이 만들어지고 배포되고 실행되는 운영 방식도 독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병우와 안종범을 끝까지 고집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친박은 철저하게 보호하며 돌려 쓰는 고집불통의 인사정책도 독재와 다름 없습니다. 여기에 민의가 끼어들 여지는 애초에 차단됐습니다.


우리는 왜 그동안 박근혜의 진짜 실체를 몰랐을까요?

이 질문은 이제 반대로 다시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박근혜가 누구인지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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