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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한 행위가 아닐까 하고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은 감독의 전작처럼 우주를 바라보는 소년 소녀로 시작합니다.
도쿄의 서로 다른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소년 소녀.
그들은 성장해갈 동안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자랐습니다만 그들에겐 운명처럼 인연의 끈이 묶여져 있었습니다.
'무수비'라고 하는 그 끈은 일본 무속신앙에서 시간을 뜻한다고 합니다.
무수비, 끈, 시간... 영화는 시간을 매개로 소년 소녀가 서로를 인지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설정이 재미있습니다.
일본영화 '전학생'(1982), 한국영화 '체인지'(1997) 혹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2011)처럼 소년 소녀의 몸이 바뀌어 있는 겁니다.
소녀 미츠하는 소년 타키로, 소년 타키는 소녀 미츠하로 전혀 낯선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꿈에서 깨고 나면 그 하루는 기억에 남지 않고 사라져 버립니다.
영화는 추리 서사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초반부는 몸이 바뀌는 소년 소녀로 코믹하게 시작하지만
중반부로 가면서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게 되면서 타키는 미츠하를 찾아 나섭니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는 미츠하가 사는 곳은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지금 폐쇄된 공간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영화에는 궁금증이 감탄사로 바뀌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탁 트인 하늘과 함께 찾아옵니다.
개와 늑대의 시간, 혹은 황혼의 시간, 혹은 카타와레 도키...
그 짧은 순간 3년이라는 시간의 유격을 두고 소년 소녀는 만납니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서로의 이름을 묻습니다.
다시 만나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대형 재난사고가 벌어질 것을 미리 알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피난시켜야 할까요?
혼자의 힘으로 사람들을 구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요?
자연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파괴가 이루어지고 난 뒤 그 자리에는 새로운 웅덩이가 생기고 빛이 드리워지고 황혼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시간이 흐릅니다.
그녀의 이름은 지워져서 기억에서 가물가물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 있습니다.
복잡한 도쿄 시내에서라도 지금 당장 그녀와 마주친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향해 영화는 결정적인 부분을 생략하고 소년 소녀의 감정에 집중합니다.
서로를 향해 뛰고 굴렀던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그래서 마침내 지하철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때 미츠하와 타키는 서로에게 묻습니다.
너의 이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도 재난은 끊이지 않고 예고없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우리는 재난을 통해 가족, 친구, 동료를 잃은 사람들의 사연을 보면서 슬퍼합니다.
그러나 '너의 이름은'은 가족, 친구, 동료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무수비'라는 시간의 끈으로 연결된 생면부지의 소년을 통해 희생자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냅니다.
소년은 멀리서 혜성이 연출하는 거대한 우주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년의 첫 반응은 "와, 이렇게 멋있는 걸 보다니 행운이야"였지요.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미칩니다. 저기에 사는 사람들은 괜찮을까?
이제 이야기는 가족, 친구, 동료에 한정되어 있을 때보다 더 큰 이야기로 뻗어나갑니다.
소년과 소녀가 한 몸이 되는 꿈, 마을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
소년과 소녀가 광활한 우주를 올려다볼 때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더 큰 연대감으로 이어집니다.
감수성이라는 것은 단지 감성적인 대사나 상황을 집어넣는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감정이입을 통해 공감을 끌어내야만 제3자인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는 아무 관련이 없는 소년 소녀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서 관객이 재난을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두 사람이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때 재앙의 결말을 현실을 통해 알고 있는 관객은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또 소년 소녀가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치유의 힘을 얻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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