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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의 한 장면. 만주에서 염석진(이정재)을 만난 안옥윤(전지현)은 경성으로 가면 뭘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커피라는 것도 마셔보고 싶고 연애도 하고 싶고."



그녀는 상하이에서 실제로 커피도 마시고 연애도 한다. 그리고 경성에 도착해서는 쌍둥이 언니 미츠코(전지현) 대신이지만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짜 신부가 되기까지 한다. 비록 친정아버지와 예비 시아버지를 모두 죽여야 하는 임무를 안고 있지만 말이다.


그녀의 결혼식이 열리는 장소는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지점 2층이다. 그런데 이곳은 그녀가 가짜 신부가 되기 전 안경을 구입하기 위해 들른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그녀는 미츠코와 마주친다. 두 사람은 어떻게 그곳에 동시에 있게 된 것일까?


안옥윤(위)과 미츠코.


영화의 배경인 1933년으로 돌아가 보자.


한일병합 이후 23년이 지났다. 1910년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면 스물셋의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진지 오래고, 경성은 제2의 도쿄처럼 되어가고 있다.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이 일본을 경유해 밀물처럼 쏟아진다. 축음기, 재즈, 서양영화, 서양패션 등이 정신을 쏙 빼놓는다.


1920년대 말부터는 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 초가집은 물론 기와집마저 구식으로 보인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경성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늘어 1920년 20여만명에서 1935년 40만명으로 두 배가 된다.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을까? 자신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고층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경성 시내 모습.


일제의 총칼 협박과 회유 앞에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죽을 각오로 독립군이 된 친구를 따라가야하나 갈등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도 신식 문물과 휘황찬란한 도시를 보면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 세대와 달리 이들에겐 나라를 빼앗긴 직접적인 죄가 없다. 또 생활방식 자체도 전혀 다르다. 부모 세대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면 이들은 월급쟁이로 살며 문화생활을 즐긴다. 이들이 모두 독립군이 되지 않았다고해서 누구를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민족에 대한 고민과 별개로 이들은 스스로를 수식하는 단어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던'이었다. '모던보이' '모던걸' 등이 이들의 이름이었다.


모던보이는 양복에 반짝이는 백구두, 모던걸은 퍼머넌트웨이브를 한 단발머리 차림에 짧은 치마를 입고 뾰족구두를 신은 채 거리를 활보했다. 이들은 개성을 중시해 유행에 민감했고 타인의 시선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라듸오 데이즈>의 모던걸과 모던보이.


이같은 '모던'의 시대는 나에게 신기루처럼 다가온다. 이 시대는 한국전쟁 이전 시대다. 한국전쟁 하면 떠오르는 것은 모든 것이 파괴된 도로, 허허벌판, 초가집 등이다. 한국전쟁 관련 사진을 보면 마치 옛날 시골 사진을 보는 것처럼 거기서 현대문명의 흔적을 느낄 수 없다.


그런데 폐허 이전 모던의 시대가 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초고대문명을 떠올리듯, 잿더미가 불타버리기 전 영화를 상상해야만 닿을 수 있는 시대다. 현대문명이 기틀을 잡아가던 이 시대엔 극장이 있고, 영화잡지가 있고, 택시, 주부잡지, 탐정소설, 콩트가 있고, 젊어지는 법, 3분 연애, 뽀-키, 토-키, 짧은 스커트, 나팔바지, 안경, 레부-걸, 재즈, 라디오, 카페, 바, 선술집, 우동집, 전당포, 댄스, 자동은행원, 전차, 자동차, 자전거, 간판, 네온사인이 있었다.


모던걸을 풍자한 만평.


정치적 격변의 시기인 만큼 문화적 격변의 시기이기도 했던 당시엔 모든 것이 모던이었다. 모던대신, 모던왕자, 모던철학, 모던과학, 모던종교, 모던예술, 모던자살, 모던극장, 모던스타일, 모던순사, 모던도적놈, 모던잡지, 모던연애, 모던건축, 모던상점, 모던기생... '모던'만 붙이면 마법처럼 신선해 보여 다들 입만 열면 ‘모던’을 갖다붙였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모던걸과 모던보이였다.



당시 월간지 <신민> 1931년 6월호에 실린 오석천의 [모더니즘화론]이라는 글에는 '모던'에 대한 이런 문장이 있다.


"모보(모던보이)모거(모던걸)의 양식은 쟈스(재즈), 땐스, 스피드, 스포츠이요. 그것의 표현은 애로, 그로, 넌센스, 잇트이다. 모보모거의 근거지는 유한계급의 지역이다. 그들의 출산자는 현대자본벌이다. 모보모거의 생활환경은 기계문명이다. 모보모거의 지도원리는 아메리카니즘이다."



당시 모던보이, 모던걸은 1990년대 ‘오렌지족’처럼 약간 경멸하는 투의 단어였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과거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이들은 부모의 중매로 강제결혼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자유로운 데이트를 즐겼다. 전차를 타고 창경원에서 벚꽃놀이를 하고, 본정통(충무로)에서 '파피스'를 한 잔 먹고, 희락관이나 대정관 같은 활동사진관에서 영화를 구경한 뒤 양식을 먹었다. 80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이트 코스다.



영화에서 안옥윤과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이 처음 만나는 장소인 상하이 카페도 경성에 상륙해 유행처럼 늘어갔다. 카페는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사교의 장이었다.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그레타 가르보, 클라크 게이블 같은 서양영화의 주인공을 화젯거리로 올렸다.


속속 들어서는 고층빌딩은 모던보이와 모던걸의 소비를 자극했다. 1920년대말 일제가 경성에 지은 건물들(조선총독부, 경성부청, 경성역, 조선은행, 경성제대병원)이 정치적 지배를 위한 것이었다면 1930년대부터는 경제적 지배를 위한 건물들이 올라갔다. 경성상공장려관, 미나카이 백화점, 히라다 백화점, 조지아 백화점, 미쓰코시 백화점 등은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1931년 완공됐다가 불타버린 후 1937년에 다시 지어진 화신백화점(종로네거리에 조선인 사업가 박흥식이 지었다)은 지상 6층 지하 1층에 에스컬레이터까지 있어 구경거리 노릇을 톡톡히 했다.


1937년 재개장한 화신백화점. 당시 경성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영화 속에서 안옥윤이 쑥대밭을 만들어버린 미쓰코시 백화점은 지금의 명동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있었다. 명동과 충무로 일대는 당시 진고개라고 불렸는데 일본인들의 거주지였다. 영사관, 경찰서, 우편전신국, 숙소, 수비대, 제일은행, 삼정물산회사 등 일본의 핵심시설들이 몰려 있었다. 돈과 권력에 신문물까지 모였으니 당연히 조선에서 제일 가는 멋쟁이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발간된 잡지 [별건곤] 1929년 9월호에 실린 [진고개]라는 글에서 정수일은 이곳을 이렇게 묘사했다.


“천만촉의 휘황한 전등불과 아울러 불야성을 이룬 별천지다.”


1929년 완공된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


안옥윤이 안경을 맞춘 그 시간, 안옥윤의 쌍둥이 언니인 미츠코도 그곳에서 약혼자인 카와구치(박병은)와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퍼머넌트웨이브를 준 단발머리 위에 클로슈를 쓰고 핸드백을 든 미츠코는 코트 한 벌을 입어보고는 가격이 도쿄에 비해 두 배나 된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여기서 두 여성, 즉 안옥윤과 미츠코의 외모를 비교해 보자. 청산리 전투에서 엄마를 잃고 만주에서 힘겹게 투쟁하는 삶을 살아온 안옥윤은 소박한 옷차림에 긴 머리를 하고 있지만 모던걸의 생활을 동경하고 있다. 반면 미츠코는 최고급 옷을 빼입고 머리까지 단발로 자른 모던걸의 형색이다.


무용가 최승희의 단발머리.


모던걸들의 단발머리는 당시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조선인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변화였다. 단발머리 여성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수군거리고 침을 뱉었다. 여성 해방을 부르짖은 인텔리 여성들이 가장 먼저 단발을 감행했는데 일부는 사회주의 운동과도 관련 있었다. 허정숙, 주세죽, 심은숙, 강아그니아 등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어김없이 단발로 머리를 잘랐다. 급진적인 여성들의 유행 선도와 더불어 서양영화의 여주인공들인 릴리언 기시 등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하고 싶은 모던걸들 역시 긴 머리를 잘라냈다.


영화 <암살> 속 미쓰코시 백화점 내부 모습.

아네모네 바에서 사교댄스를 추는 안옥윤.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관습이 한 순간에 무너질만큼 격변의 시기였다. 사람들이 가슴 속에 숨겨온 욕망을 분출하고, 불합리한 것에 저항하고, 자본주의를 삶의 형태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였다. 그러나 소비에 대한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자리잡기 전이었기 때문에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모던한 생활을 누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조선인들은 빌리면 갚아야 한다는 것을 모른 채 돈을 썼다. 전당포의 폭리가 사회문제가 됐고, 영화배우, 유한마담 등으로 진출하며 유행을 선도한 기생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며, 빈부격차가 극심해져 부자들이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소비생활을 하는 동안 도시빈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이런 와중에 두 쌍둥이 여성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둘다 20대의, 나라를 빼앗긴 부모 세대의 원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다. 역사의 비극은 두 사람을 갈라놓았지만 모던걸이 되고 싶은 욕망까지는 갈라놓지 못했다. 모던걸이 되고 싶은 안옥윤이 모던걸의 워너비인 미츠코를 마주칠 장소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백화점이 제격이다. 백화점이야말로 크고 작은 욕망들이 서로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뒤에 이어질 스토리상 안옥윤은 미츠코가 되어야 한다. 미츠코처럼 올림머리를 하고 보라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클로슈를 쓰고 핸드백을 든 모던걸이 되어야 한다.


클로슈와 보라색 트렌치 코트를 입고 모던걸이 된 안옥윤.


그녀는 미츠코의 집으로 들어간 뒤 이 모든 신문물들에 익숙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잘 차려 입는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안옥윤 역시 모던걸이 되고 싶은 욕망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커피도 마시고 싶고 연애도 해보고 싶은 욕망 말이다. 지금의 가치로는 지극히 평범한 욕망이지만, 당시의 모던걸들은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했다.


결국 만주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투쟁하던 와중에도 가슴 한켠에 간직해온 모던걸이 되고 싶은 욕망이 안옥윤을 모던걸들의 핫플레이스인 미쓰코시 백화점으로 이끈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안옥윤과 미츠코.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안옥윤과 미츠코가 미쓰코시 백화점 1층에서 엇갈리는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은 안옥윤도 미츠코도 아닌 배우 전지현이었다는 사실이다. 전지현이야말로 화려한 백화점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많은 광고를 통해 소비지향적 이미지를 구축해온 21세기의 모던걸이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보면 이 캐스팅은 신의 한 수다. 영화의 배경인 1933년으로부터 8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소비문화의 최전선에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돈으로 차별하는 백화점의 포장지를 가장 완벽한 얼굴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백화점을 폭파하고 쑥대밭으로 만드는 사람 역시 안옥윤 또는 전지현이라는 사실은 80년간 강화돼온 소비주의에 대한 모던걸의 경고로 더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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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 프로필사진 123 글 잘 봤습니다 ^^ 당시 시대로의 통찰이 잘 드러나 있어서, 글을 읽는 동안 당시의 서울을 정말 다녀온듯 한 느낌을 받을 정도네요. 2018.06.18 00: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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