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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는 오우삼 스타일의 1980년대 홍콩누아르와 아벨 페라라 스타일의 미국 B급 영화를 무대만 한국으로 옮긴 듯한 영화다. 이는 새로울 게 없다는 점에서는 혹평이고, 1980년대 홍콩과 미국 인디 신에서 꽤 완성도 높은 수작들이 탄생했다는 점에서는 호평이다. 영화는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서 순항하고 있지만 6점대에 불과한 포털의 관객 평점이 보여주듯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영화를 싫어하는 관객들은 뛰어난 배우들을 데려다가 욕설 가득한 대사에 지나치게 잔인하고 암울한 전개를 보여준다며 불만을 늘어놓는다. 확실히 ‘아수라’는 팝콘 먹으면서 데이트용으로 보기에 적합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잔인하다는 이유로 눈감아버릴 범작도 아니다. ‘아수라’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감독의 야심을 끝까지 밀어부친 영화다. ‘아수라’가 기존 한국영화와 어떻게 다른지, 이 영화를 위한 세 가지 변명을 준비했다.


(이 글에는 영화의 후반부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1. 판타지 없는 ‘리얼 헬조선’


‘아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뒷모습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를 리얼한 액션으로 재현하는 영화다. “세상은 늘 지옥이었다”는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영화 속에는 죄다 나쁜 놈들만 등장한다. 민선시장, 검사, 경찰, 조폭 등이 부패, 재개발, 조중동 같은 단어를 들먹이는데 이는 ‘헬조선’에서 지겹게 보아온 모습이다.


‘아수라’를 볼 때 연상되는 영화는 ‘내부자들’‘신세계’다. ‘내부자들’처럼 국가의 녹을 먹는 부패한 자들이 서로를 잡기 위해 대결하고, ‘신세계’처럼 장례식장에서 역사가 바뀐다.



그러나 ‘아수라’는 ‘내부자들’과 ‘신세계’의 익숙한 길을 가지 않는다. 현실에 과연 있을지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내부자의 각성이라는 판타지(‘내부자들’)는 ‘아수라’엔 없다. ‘내부자들’ ‘베테랑’에서처럼 나쁜 놈들이 통쾌하게 몰락하는 카타르시스를 기대했다면 '아수라'는 그런 달콤한 상상은 “좆이나 뱅뱅”이라고 말한다.


또 ‘신세계’처럼 멋진 수트 입고 폼나게 걷는 스타도 없다. 정우성이 맡은 한도경 형사는 시종일관 욕을 입에 달고 살고, 분을 참지 못하는 천하의 건달이다.



버나드 쇼는 “지상의 나쁜 일은 모두 명예, 의무, 정의 같은 명목 하에 행해진다”고 했다. 영화 속 가장 강력한 악인인 박성배 시장(황정민)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고, 김차인 검사(곽도원)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장면에서 김차인 검사가 180도 변하는 모습은 영화가 ‘내부자들’ 같은 판타지에는 관심 없음을 드러내며 극으로 치닫는다.


‘내부자들’ ‘신세계’ ‘베테랑’ 같은 판타지가 아닌 진짜 ‘리얼 헬조선’을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아수라’다.



2. 세상에 없던 정우성


김성수 감독은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무사’(2001)로 한때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불렸던 감독이다. 세 영화 모두 정우성이 주연이었다. 말하자면 정우성은 김성수의 페르소나다.


‘비트’에서 10대 아웃사이더 싸움꾼이던 정우성은 ‘태양은 없다’에선 양아치와 어울리는 20대의 한물간 복서였고, ‘무사’에선 공주를 놓고 갈등하는 호위무사였다. ‘무사’가 개봉한 것이 2001년이니 벌써 15년 전 이야기다. 그동안 ‘영어완전정복’(2003)과 ‘감기’(2013)를 제외하곤 이렇다할 작품이 없던 김성수 감독은 15년만에 정우성을 다시 만나 그를 중년의 방황하는 형사로 만들었다.


망가진 정우성이 예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곽경택 감독의 ‘똥개’(2003)에서 정우성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모자란 청춘을 연기했다. 하지만 ‘아수라’는 ‘똥개’와 전혀 다르다. ‘똥개’가 머리는 나쁘지만 정의감은 살아 있는 차철민에 대한 연민을 깔고 시작했다면 ‘아수라’에는 그런 자비 따위는 없다. ‘아수라’에서 다혈질의 정우성은 거들먹거리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데 그 죄를 작대기(김원해)에게 뒤집어 씌우고는 “운이 없다”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이처럼 악랄한 정우성을 보는 것은 처음인데 그는 자신이 정우성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려는 듯 마치 ‘비트’의 이민처럼 자신의 감정을 내레이션으로 읊조린다.


방황하는 청춘의 아이콘 '비트'의 정우성


‘비트’에서 꿈이 없던 10대 싸움꾼이 만약 형사라는 직업을 택해 40대에 접어들었다면 어쩌면 그가 바로 ‘아수라’의 한도경일 지도 모른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그는 어느새 돈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됐고 누군가에게 맞으면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달려가서 똑같이 때려줘야 하는 성질 더러운 싸움꾼이 됐다. 그러면서도 그에게는 삶의 목표 없이 방황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다.


과거 정우성을 반항의 아이콘으로 만들어준 이가 바로 김성수 감독이다. 그만큼 정우성의 이미지를 잘 써먹는 감독도 없었다. 김성수 감독은 그동안 반듯하고 말끔한 이미지로 변신한 정우성에게서 다시 예전처럼 날것 그대로의 건달 같은 기질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아수라’는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정우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다.



3. 끝까지 가는 폭력미학


폭력에도 미학이 있다. ‘폭력의 피카소’라 불리는 샘 페킨파 감독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깔끔하거나 간단하지 않다. 실제로 그것은 피가 흥건하고 끔찍한 일이다. 영화는 그것을 단지 놀이가 아니라 제대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페킨파 영화 속 인물들은 실제로 그랬을 법한 행동을 한다. 누가 선한지 누가 악한지 구분하기 힘들고 해피엔딩도 거의 없다. 총이 발사되면 스크린은 피로 물든다.


‘아수라’도 그렇다. 페킨파 감독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김성수 감독은 때리고 맞고 총 쏘고 총 맞는 장면을 기존 영화와 다르게 그렸다. 일반적인 영화들이 때리는 사람의 뒤에서 맞는 사람의 표정을 보여줬다면 ‘아수라’는 맞는 사람의 입장에서 때리는 사람을 보여준다. 관객은 마치 자신이 맞고 있는 듯 더 고통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수라’에서 최고의 장면은 단연 비오는 밤의 카체이스다. 정우성이 악에 북받쳐 핸들을 꺾을 때 ‘타락천사’의 스텝 프린팅 기법을 사용한 화면은 뭉그러지고 어둠과 빛이 맞부딪히면서 엄청난 속도감을 낸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 장면은 당분간 다시 보기 힘든 한국영화의 기념비적인 기술적 성취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등장인물들을 죄다 장례식장에 모아놓고 혈전을 벌인다. 영화는 이 시퀀스에서도 겉멋을 부리는 대신 진짜 폭력에 집중하는데 가령 정우성은 쌍권총을 들고 멋지게 자신보다 더 나쁜 악당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얼떨결에 동생처럼 아끼던 후배 문선모(주지훈)를 죽이고 열에 받쳐 박성배를 향해 총알을 마구 뿜어댄다.



안남시라는 실제 있기에는 너무 지독한, 마치 고담시처럼 음울한 가상의 도시와 그 속의 꽉 막힌 장례식장은 그로테스크한 댓구를 이루고, 그 안에 갇힌 속이 시커먼 인물들은 서로를 낫으로 찍고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쏴 죽이는데 그 모습이 아주 리얼한 폭력 미학 속에 담겨 있다.


영화의 제목인 ‘아수라’는 고대 인도 신화에서 증오심이 가득해 싸우기를 좋아하는 전신(戰神)의 이름이었다. 이들이 전쟁을 벌여 그 시체가 산처럼 쌓인 장면을 ‘아수라장’이라고 불렀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증오심 가득한 시장, 검사, 경찰 등의 시체를 늘어놓고 어원 그대로의 ‘아수라장’을 보여준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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