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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은 1987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갱스터 영화입니다. 케빈 코스트너, 로버트 드니로, 앤디 가르시아, 숀 코너리, 찰스 마틴 스미스 등 화려한 캐스팅에 시카고 유니언 기차역 계단 장면의 몽타주 액션 신으로 유명한 영화죠. 어릴때 재미있게 본 영화인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봤습니다. 지금부터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앤디 가르시아, 숀 코너리, 케빈 코스트너, 찰스 마틴 스미스(왼쪽부터).
실화를 기반으로 한 '언터처블'
영화는 금주부 연방 수사관이었던 엘리엇 네스와 유나이티드 프레스의 기자 오스카 프레일리가 1957년에 출판한 동명의 논픽션 책을 원작으로 합니다. 1959년 TV시리즈 [언터처블]로도 만들어진 적 있었습니다.
1959~1963년 방영된 TV시리즈 [언터처블]의 주연 배우들. 왼쪽부터 로버트 스택, 폴 피세르니, 스티브 런던, 아벨 페르난데즈, 니콜라스 조르지아드.
각본은 데이비드 마멧이 썼습니다. 시카고 출신인만큼 시카고 배경에 시카고 로케이션 촬영이 대부분이었던 이 영화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적임자였죠. 그는 이전까지 연극에서 커리어를 쌓았고 영화로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1981) <폴 뉴먼의 평결>(1982) 등을 쓴 적 있었습니다. <언터처블>의 성공 후 그의 커리어는 탄탄대로로 이후 <글렌게리 글렌로즈>(1992), <한니발>(2001) 등의 대표작을 남겼고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연극 대본을 스크린으로 옮긴 <올레나>(1994)가 그의 연출작입니다.
<언터처블>은 카포네를 잡는 계기가 된 결정적인 두 사건을 중점적으로 그립니다. 캐나다 국경에서 밀수원과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과 시카고 기차역에서 카포네의 회계담당자를 생포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 앞 뒤로 네 명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두 명이 죽음을 맞고, 법정에서 카포네와 공방을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언터처블> 포스터.
카포네를 키운 금주법 시대
영화의 배경은 금주법이 한창 시행중이던 1930년 시카고입니다. 1919년 미국 의회는 금주법(National Prohibition Act)을 통과시킵니다. 술의 제조, 판매, 유통을 금지하는 획기적인 법안이죠. 세상에 술을 금지하다니 중세시대 정교일치 사회에서나 나올 법한 법이 실제 미국에서 탄생한 겁니다. 이 황당한 법을 통과시킨 이유가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제1차 세계대전의 적국인 독일 맥주에 대한 반감, 전쟁 후 각계에서 목소리가 커진 여성계의 요구, 사회적 불만이 팽배했던 가난한 이민자들의 모임 차단 등의 목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당연히 이 법은 실효성이 없었는데 지금도 술을 금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 뻔합니다. 술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나겠죠. 당시에 대통령마저 밀주를 찾을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습니다. 영화에서 엘리엇 네스(케빈 코스트너)가 경찰관들에게 술을 끊어 솔선수범을 보이라고 명령할 정도로 경찰관들 역시 몰래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경찰관인 말론(숀 코너리) 역시 집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죠. 법의 집행자들이지만 그 법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1930년대 마피아가 맹위를 떨친 시카고.
금주법은 한쪽을 막으면 다른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로 부작용을 양산합니다. 캐나다와 멕시코 국경을 넘어 술이 밀수되고 가정들은 증류기를 지하실에 들여 놓고 술을 직접 제조해 마셨다고 합니다. 또 마피아는 금주법 덕분에 확고하게 세력을 키웁니다. <언터처블>의 알 카포네가 가장 대표적인 수혜자죠.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술을 단번에 없애려고 한 무모한 시도는 결국 1933년 막을 내립니다. 대공황 시절 루즈벨트 대통령이 세수 확보를 명분으로 금주법을 폐지한 것입니다.
오데사 계단과 유니언 기차역 계단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편집과 음악입니다.
먼저 이 영화를 역사에 남게 해준 유니언 계단 시퀀스를 살펴봅시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1925년작 <전함 포템킨>의 오마주입니다. 유모차와 선원이 명백하고도 중요하게 등장하죠. 이 장면의 컷 하나하나는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장면.
<전함 포템킨>은 영화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영화이고, 오데사 계단 장면은 몽타주 문법을 다룬 책에 고정적으로 등장합니다. 오마주를 바친 작품 역시 <언터처블>이 처음은 아닙니다. 에이젠슈테인만큼 몽타주로 서스펜스에 일가견을 이룬 앨프리드 히치콕이 <해외 특파원>(1940), <싸이코>(1960)에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대부>에서 비슷한 계단 장면을 만든 적 있습니다. 하지만 드팔마는 대놓고 이 장면을 거의 흡사하게 만들었습니다. <드레스드 투 킬>(1980)에서 히치콕의 <싸이코>를 오마주하고, <필사의 추적>(1981)으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1966)을 오마주하며 '오마주 작가주의'를 구축해온 드팔마 감독이기에 가능한 장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원래 데이비드 마멧의 오리지널 스크립트에는 이 장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네스와 스톤(앤디 가르시아)이 열차 안에서 만나 총격전을 벌이는 시나리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파라마운트는 기차 세트를 지으려면 예산이 초과되는 것을 걱정했고 이에 드팔마 감독은 시카고 기차역 로케이션으로 찍을 수 있는 이 시퀀스를 계획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돈도 아끼고, 1980년대 영화 역사에 길이남을 명장면의 탄생이라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었죠. 때론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역사가 바뀌기도 합니다.
<언터처블>의 유니언 기차역 계단 장면.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 장면과 <언터처블>의 유니언 기차역 시퀀스는 자주 비교되는데요. 기술적인 것보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와 엄마가 살아남느냐 여부입니다. 오데사 장면에서 아이와 엄마는 결국 총에 맞아 죽습니다. 하지만 유니언 기차역에서는 둘다 살아남죠. 오데사 계단 장면은 아이와 엄마가 살해되며 전쟁의 포악함을 보여주는 효과를 극대화했지만, 유니언 기차역 장면은 아이를 살려내며 경찰관들의 용기를 드러내는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같은 장면을 정반대 효과를 위해 사용한 것인데요. 결국 어떤 기술이든 어느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캐나다 국경에서 밀수꾼을 생포한 언터처블.
엔니오 모리꼬네의 드라마틱한 음악
<언터처블>을 다시 보면서 가장 특이하게 느낀 것은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입니다.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은 유명한 테마음악이야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해 기억에 남습니다만 첫 장면부터 계속해서 드라마틱한 음악이 흘러나와서 놀랐습니다. 요즘 영화들은 음악이 영상보다 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1980년대는 영상을 더 웅장하게 보이게 만들도록 드라마틱한 음악을 사용하던 시기였습니다. <언터처블> 역시 매 장면 영상을 압도할 정도로 과한 음악이 삽입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귀에 거슬립니다. 음악이 먼저 등장해 관객의 감정선을 유도하고 있다고 할까요? 슬픈 연기를 앞둔 배우가 장면 시작도 하기 전에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뭐, 조르지오 모로도, 방겔리스 등 당시 맹활약하던 영화음악 거장들이 대부분 이런 영화음악을 남겼으니 이 영화 역시 당대의 스타일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터처블>의 몇몇 음악은 듀크 엘링턴의 곡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법정에서 마주친 카포네와 네스.
운이 좋은 캐스팅, 케빈 코스트너
이제 배우 이야기를 해봅시다. 먼저 원작자이자 언터처블의 리더인 엘리엇 네스 역을 맡은 당시 32살의 케빈 코스트너입니다.
<판당고>(1985), <실버라도>(1985) 등의 영화로 이제 막 주연배우로 올라선 케빈 코스트너가 네스 역을 맡은 것은 행운이 따라주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역을 먼저 제안받은 배우들 중엔 쟁쟁한 스타들이 많았거든요. 마이클 더글러스, 돈 존슨, 멜 깁슨, 해리슨 포드, 톰 베린저, 닉 놀티, 잭, 니콜스, 윌리암, 허트, 미키 루크 등입니다. 이들이 모두 거절한 뒤 결국 드팔마는 코스트너를 택합니다.
당시 <보디 히트> <나인 하프 위크> 등으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섹스 심벌 이미지가 강했던 미키 루크에게까지 시나리오가 간 것을 보면 드팔마 감독이 꽤나 급했나 봅니다. 미키 루크 입장에선 연기 변신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대신 출연한 <엔젤 하트> <바플라이>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였으니 그가 1990년대 들어 추락한 것이 꼭 <언터처블> 거절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영웅, 남편, 아빠 이미지를 동시에 얻은 케빈 코스트너.
케빈 코스트너는 이 영화로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올라섭니다. <언터처블>로 미국을 구한 영웅, 가정적인 아빠이자 남편으로서의 이미지를 동시에 얻은 덕분이죠. 실제 엘리엇 네스는 세 번 결혼했고 입양한 아들을 두었다고 합니다만 영화는 그를 가정적인 남자로 포장했습니다. 카포네에게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아내와 두 아이를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줘 일과 가정 모두에서 모범적인 남성상을 제시한 것입니다.
<언터처블>의 성공 이후 코스트너는 <꿈의 구장>(1989), <늑대와 춤을>(1990), <로빈 후드>(1991), 'JFK'(1991), <보디가드>(1992), <퍼펙트 월드>(1993)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톰 행크스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국민배우로 우뚝 섭니다. 톰 행크스가 익살스럽고 친숙한 이미지로 미국의 얼굴을 대표했다면, 시원하게 뻗은 콧날과 훤칠한 이마가 트레이드마크인 케빈 코스트너는 잘 생기고 능력있는 미국을 상징했습니다.
알 카포네가 면도하는 영화의 첫 장면.
14kg을 찌운 로버트 드니로
영화는 알 카포네가 면도하는 장면을 부감으로 촬영한 화면으로 시작합니다. 전설적인 마피아 두목 카포네는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했습니다. 메소드 연기의 1인자였던 드니로는 이 영화를 위해 카포네를 세심하게 연구했습니다. 몸무게를 14kg 찌웠을 뿐만 아니라 얼굴선을 실제 카포네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당시에 살아있던 카포네의 재단사를 찾아가 그가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만들어 입기까지 했습니다.
드팔마 감독에게 드니로는 단연 첫번째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감독은 드니로가 바쁜 스케줄로 인해 거절할 것을 대비해 플랜B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밥 호스킨스를 만나서 만약 드니로가 거절하면 카포네 역을 맡아주겠냐고 물었습니다. 호스킨스는 '예스'라고 답했고요. 이후 드니로가 역할을 맡겠다고 승낙했고 호스킨스는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 드팔마는 그에게 2만 파운드에 달하는 수표를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돈을 받은 호스킨스는 드팔마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내가 출연 안해도 되는 다른 영화 더 없냐고 물어봤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알 카포네 연기를 위해 머리숱을 줄이고 살을 찌운 로버트 드니로.
드팔마는 영화를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에서 촬영했습니다. 법정이나 경찰서 등이 그런 곳입니다. 영화에서 카포네가 야구방망이로 부하 한 명의 머리를 내리 쳐서 죽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 역시 실화에 기반한 설정입니다. 카포네는 부하 두 명이 자신을 암살하고 갱단을 차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이에 1929년 5월 7일 카포네는 부하들을 모두 불러모아 파티를 엽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영화에서처럼 야구방망이로 두 명의 머리를 박살내고 총으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평론가 로버 이버트는 드팔마의 연기를 혹평했습니다.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것이죠. 그 대신 숀 코너리는 극찬했습니다. 특히 말론이 죽는 장면의 절제된 비장미는 코너리 연기의 절정이었습니다.
"총싸움에 칼을 가져오다니..." 침입자를 발견한 말론.
카포네 부하가 말론의 집에 침입한 장면은 1인칭 시점의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있습니다. 이미 드팔마가 <필사의 추적>에서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수법이죠. 들킬까 말까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사하는 신인데 이 장면이 이전 영화들과 다른 것은 관객이 훔쳐보는 사람이 아니라 피사체에 감정이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발 카메라가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던 관객은 말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총을 들고 돌아설 때 되레 안도감을 느낍니다. 숀 코너리는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유일하게 트로피를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피의 맹세를 맺는 말론과 네스. 이 장면은 숀 코너리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자신만만하고 강렬한 에너지
25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인 <언터처블>은 전세계에서 1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서 성공했고, 유니언 계단 시퀀스는 영화사에 기록될 정도의 명장면으로 남았습니다. 다만 영화 전반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전반적인 평은 "수박 겉핥기식이지만 예술같은 감독의 터치가 빛나는 영화"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로저 이버트는 액션 시퀀스를 훌륭하지만 데이비드 마멧의 각본과 브라이언 드팔마의 연출은 평가절하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할 힌슨은 "드팔마의 스토리텔링 본능은 시각매체로서의 영화로만 완벽하다. 그의 관심사는 스타일뿐이다"라며 절반의 지지만을 보냈죠. 하지만 타임지의 리처드 쉬켈은 "마멧의 우아하고 효과적인 각본은 단어 하나 낭비하지 않고, 드팔마는 한 장면도 낭비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자신만만하고 강렬한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으로 남았다"라고 극찬을 했습니다.
'언터처블'이 리메이크된다면?
개인적으로도 <언터처블>이 완벽한 영화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단조롭고 드라마가 평면적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점을 가릴 장점이 더 많은 영화입니다.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서스펜스가 살아 있고, 모든 액션 신이 아름답습니다. 중정모를 쓴 채 장총을 들고 달리는 추격전은 우아하고, <현기증>(1958)의 오마주인 법정 옥상에 매달린 범인을 내려다보는 장면도 기품이 있습니다.
아마 지금 <언터처블>을 리메이크한다면 1987년 영화와 전혀 다른 영화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좀더 날카로운 무기들이 사용되고, 과장하지 않는 사실적인 묘사가 주를 이룰 것이며, 음악도 잔잔하게 흐르겠죠. 확실히 이 영화보다는 좀더 겸손하면서 사생활에서는 실수도 많은 영웅을 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미국이 처한 상황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1980년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엔 이들이 스크린에서 미국을 지키는 슈퍼히어로였고, 그래서 이 영화가 인기를 얻은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슈퍼히어로들이 메타휴먼이나 외계 괴물들과 싸우며 세계 평화를 지키는 요즘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가 바로 1987년 <언터처블>이 등장한 세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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