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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어느 날 홍대 예술거리, 저녁노을이 내리쬐는 베란다에서 손을 맞잡은 커플을 만났다. 두 사람은 예술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남자는 미디어아트를, 여자는 설치미술을 한다고 했다.
예술은 박물관에서밖에 본 적 없는 필자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들이 말하는 예술이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예술가로 생업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그래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 전 워밍업 시간까지 합하면 장장 3시간에 걸친 대화였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여자 신단비와 컴퓨터를 좋아하는 남자 이석이 만나 ‘신단비이석’이라는 이름의 커플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와 그들의 꿈에 대해 들어봤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무디고 획일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들과 나눈 대화는 신선한 청량제처럼 산뜻했다.
- 두 사람은 ‘신단비이석’이라는 이름의 커플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언제부터 커플이 됐나?
신단비: 2015년 2월 초에 만났으니 이제 6개월 정도 됐다.
이석: 만나자마자 뜻이 통해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남자 신단비', '여자 이석'이라고 부를 정도로 잘 맞는다. (웃음)
- 첫 만남은 어디서였나?
이석: 나는 ‘맨퍼스트 에듀케이션’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미디어아트 강의를 하고 있다. 그때 수강생으로 단비 씨가 왔다. 유독 예쁘기도 했고, (웃음)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해서 끌렸다.
신단비: 사실 내가 먼저 반했다. (웃음) 디자인은 상업적이고, 예술은 비상업적이라는 데 고민이 많았다. 나는 둘 다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석 선생님이 첫날 이런 말을 하는 거다. “나는 디자인과 예술의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그때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이거구나! 하고 말이다.
이석: 사람들은 돈이 안 되는 디자인도, 돈이 되는 예술도 싫어하지 않나. 나는 그런 경계를 두고 싶지 않다.
- 누가 먼저 대시했나?
신단비: 나다. (웃음) 너무 좋아서 놓치면 안 되겠더라. 그래서 계속 질문하면서 티를 많이 냈다.
이석: 통하는 게 많았다. 두 사람이 대화하면 다음날 바로 작품으로 나왔다.
- 두 사람이 함께 처음 만든 작품은 뭔가?
이석: ‘찬란’이라는 작품이다. 강남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 전시했다. 반사되는 물체가 빛을 만났을 때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인간은 누구나 찬란함을 갖고 있다. 우리가 그 찬란함을 찾아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신단비: 찬란은 물체가 작품이 아니라 공간을 채우는 빛이 작품이다.
- 두 사람에게 가장 찬란한 순간은 언제였나?
신단비: 오글거릴 지도 모르지만 이석 씨를 만난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빛나는 게 느껴진다. 함께 작업하는 게 행복하다.
이석: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미술을 전공하고 예술 활동의 길을 택한 뒤부터가 찬란한 순간인 것 같다. 지금도 찬란하고 앞으로도 찬란할 거라고 생각한다.
신단비이석作 '찬란'
- 두 사람이 만난 이후 예술 활동에 변화가 있나?
이석: 확실히 있다. 나는 그 전까지는 로맨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데 함께 하게 되니 작품에 사랑이 섞이더라. 사랑을 오브제로 표현하는 게 너무 즐겁다.
- 사랑에 관한 어떤 오브제를 썼나?
이석: 단비 씨는 나를 보면 항상 반짝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빛을 염두에 두고 오브제를 준비한다. 거울, 미러볼, 색깔 있는 형광등을 활용한다.
신단비: 오브제는 내가 많이 정하는 편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추상적인 것들을 그때그때 메모한다. 어느 날 이석 씨가 나에게 하얀 우주라고 했을 때 감명 깊었다. 거기서 무한한 가능성이 보였고 그걸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석: 단비 씨가 구상하면 내가 그걸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신단비: 내가 퍼포먼스를 직접 한 적도 있다. ‘하얀 우주’에서도 내가 모델로 나섰다.
- ‘하얀 우주’에는 누드 작업도 있었다. 어려움은 없었나?
신단비: 촬영을 위해 몇 시간 동안 가만히 있어야 하는 과정이 엄청 힘들었다.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나중엔 봉으로 허리를 받치고 찍었다. 또 지금은 8kg 정도 찐 상태인데 당시엔 작품을 위해 다이어트를 열심히 했다. (웃음)
신단비이석作 '하얀 우주'
신단비이석作 '하얀 우주'
- 그렇게 힘들게 작업한 예술 활동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건 뭔가?
이석: 사람들에게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예술이라고 하면 어려워하는 시선을 바꾸고 싶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면 좋겠다.
- 자신의 작품 중 하나만 소개해야 한다면?
이석: 지금까지 했던 작품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알리고 싶다.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비주얼 아트로 소리를 보여주는 일명 ‘노이즈 프로젝트’다. 나는 사람과 음악에서 영감을 얻는다. 어느 날 음악을 듣다가 문득 음악을 듣지 못 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들에게 음악을 즐기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를 한참 고민했다. 그렇게 떠올린 것이 소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자연의 소리, 파도 소리, 비가 사물에 부딪쳐 내는 소리, 바람 소리 등을 그래픽 아트로 만들어 보여주면 그들도 소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소리를 눈으로 보는 예술이라니 어떤 방식일지 궁금하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이석: 올 가을 청각장애인 학교에 가서 팝업 형태로 설치할 예정이고, 온라인으로도 공개할 것이다.
신단비: 나는 9월 뉴욕에 갈 예정이어서 이석 씨와 함께 참여하지는 못한다.
- 그밖에 작품 하나씩 더 소개해 달라.
신단비: 이석 씨를 만나기 전에 ‘DB多 스페이스’ 일러스트를 그렸다. ‘12지신’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새롭게 만든 것이다. 유니콘, 사슴, 거북 등 12개의 동물과 다이아몬드 우유 등 판타스틱한 오브제를 가미해 스토리를 만들었다. 나중에 영화로 만들 테니 지켜봐 달라.
이석: 난 프로젝션 맵핑을 했다. (편집자 주: 프로젝션 맵핑은 건물 등 대상물의 표면에 영상을 투사하는 기술이다. 그중 건물 외벽에 투사하는 것을 미디어 파사드라고 한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했던 미디어 파사드는 김영철 영상감독에게 의뢰받아 참여했는데, 디지털 아트와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픽셀아트를 컨셉트로 잡았다. 밝고 화려한 키치적인 분위기로 게임 속을 구현한 작품이었다.
신단비作 'DB多 스페이스'
- 지금부터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예술 활동을 하고 싶어도 현실적인 이유로 포기한다. 어떻게 예술 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나? 원래 집안이 부유했나?
이석: 그렇지 않다. 힘든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나도 그랬다. 어릴 때는 성인 두 명 누우면 꽉 차는 3평정도 되는 단칸방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고등학생이 되자 난 다 큰 남자인데 여자들과 함께 지내려니 서로 힘들더라. 그래서 밤에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일했다. 바텐더, 신문 배달, 우유 배달, 택배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어린 놈이 열심히 일한다며 주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신단비: 나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넉넉한 환경은 아니었다. 대학교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예술의 길로 뛰어들었다.
- 언제 예술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나?
이석: 중3때 어머니와 여동생이 좁은 방에서 자는 것을 본 순간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디자인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갔더니 디자인이 너무 재미있더라. 그림 그리는 건 어릴 때부터 워낙 좋아하기도 했다. 잘 하니까 성적이 잘 나오고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공을 살려 대학교까지 가게 됐다. 대학을 갔어도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학원 강사를 했다. 그런데 강의를 하다가 또 소질을 발견했다. 강의가 너무 재미있는 거다. 그래서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2014년 초에 미디어 교육업체를 차렸다. 또 기업 관련 브랜딩 디자인도 하고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예술 활동을 한다.
신단비: 이석 씨를 처음 만났을 땐 이런 스토리가 있는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 그래서 이석 씨가 더 멋있어 보인다. 이석 씨가 성공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 비즈니스와 예술 활동을 함께 하면 예술 작업에 지장을 받지 않나? 둘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석: 비즈니스를 할 때도 예술과 융합하려고 한다. 예술 활동이 우선이지만 예술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비즈니스도 열심히 해야 한다. 통장에 잔고가 꽂히는 행위도 하나의 예술이다.
- 통장에 돈이 꽂히는 것도 예술이라니 재미있다.
신단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니 예술 아닌가. 프로젝션 맵핑을 예로 들면, 이것을 예술로 접근하면 미디어아트지만, 기업에서 의뢰해 참여하면 비즈니스가 된다. 기업 입장에선 DB를 분석해 우리에게 의뢰할 테고, 관객은 즐거움을 얻을 테니 거기서 금전적 가치가 매겨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다.
이석: 현대 미술은 이처럼 영역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 두 사람은 올해 초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주최 청년예술가 간담회에 미디어융합 아티스트 자격으로 초청받아 참석했다. 거기선 어떤 일이 있었나?
신단비: 두 번 갔었다. 처음엔 나 혼자, 두 번째는 이석 씨와 함께 갔다. 왜 내가 초청 받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마땅한 사람이 없었나? (웃음) KT 서울 광화문지사 건물에 있는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사무실로 갔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석: 박 대통령이 예술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더라. 형식적으로 '이런 자리입니다' 소개만 하고 가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계셨다.
- 그 자리에서 어떤 말이 나왔나?
신단비: 정부에서 예술인 지원 사업 계획을 발표했는데 되게 좋아서 놀랐다. 이렇게 좋은 사업들이 많은데 왜 그렇게 홍보를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술, 공연 등에 대한 지원 사업이 많았고, 대여해주는 공간도 좋았다. 예술가들이 꼭 찾아가서 활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 또 그때 나온 말들 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나?
신단비: 예술이 대중에게 다가가려면 대중이 변해야 하는지, 예술가가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나는 예술가들이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은 대중이 없으면 안 되지 않나. 대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예종 음악원의 교수님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국 첼리스트들의 목표는 3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고. 그 음악적인 감성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절실하다고 말이다. 그 말씀에 동의가 되더라. 예술가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더라도 세상과 만날 접점 하나쯤은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
- 예술 활동을 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달라.
이석: 고민하지 말고 그냥 실행해라. 현대 미술은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다. 하는 순간 예술이 되고, 해야지 하는 순간은 아무 것도 없는 것과 같다. 어떤 형태로든 했으면 좋겠다. 나도 무지 바쁘다. 미팅 다니고 시간에 쫓겨 산다. 하지만 밤잠을 줄여서라도 작업을 한다. 일단 하고, 그것을 했다고 이야기할 줄 아는 것이 현대 미술이다.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말들이 많다. 이건 이래서 잘못됐고 저건 저래서 별로야, 이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실행하는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다.
신단비: “저거 나도 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하세요” 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이야기하라. 자존감이 결여된 사람들은 주저하고 망설이는데 그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그것이 예술이고 예술가가 되는 과정이다. 아직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것이 무엇이든 실행했으면 한다.
-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꿈은 무엇인가?
이석: 예술학교를 세워 예술교육을 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부터 성인이 된 친구들까지 가르치는 공간을 마련해 이사장이 아닌 교장선생님이 되고 싶다. 단비 씨도 그게 꿈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더 반했다.
신단비: 처음 만났을 때 대화하다가 깜짝 놀랐다. 우리 두 사람의 꿈이 똑같은 거다. 나는 예술학교 세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고등학생 때부터 했다. 담임선생님은 허무맹랑하다고 하셨다. 그때 속으로 다짐했다. 예술학교를 세우는 그날 선생님을 가장 먼저 부르겠다고 말이다. (웃음) 나는 꿈을 빨리 찾은 편이지만 그 과정에서 부딪친 난관들이 있었다. 내가 학교를 세워 그런 문제를 상담해준다면 학생들은 나보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신단비이석예술 홈페이지 http://www.shinli-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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