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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연극, 영화, 창극, 스포츠행사까지...
글 쓰고 연출하는 장유정 감독
창작뮤지컬로 이름을 알렸다. 만드는 뮤지컬마다 객석을 가득 채웠다. 상이란 상은 싹쓸이했고 배우들의 신뢰를 받는 극작가 1위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라이선스 뮤지컬, 연극, 영화, 창극, 심지어 전국체전 개막식 이벤트까지 이야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무대를 꾸몄다. 창작뮤지컬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남의 인생 망치지 않을 정도는 됐다." 작가이자 연출자인 장유정 이야기다.
작은 체구에서 단단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를 서울 중구의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그는 8월 23일 대학로 홍대 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창작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를 비롯해 내년 국립극장 무대에 올릴 창극 <흥부가>(가제)를 준비하며 시간을 쪼개 살고 있었다. 그는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다 못 만들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가 무대에 미처 올리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뮤지컬로 성공했으면서도 다양한 분야에 도전중이다. 부담은 없나?
"궁금한 게 많아서 그렇다. "이 정도면 됐잖아"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 나름대로의 원칙이다. 부담은 있다. 새로운 분야로 가면 그쪽 사람들이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저 사람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말이다. 그러면 나는 그들의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 나를 보고 누구나 "넌 잘 할 거야"라고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그러면 나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
- 만약 실패하면 상실감이 클 텐데?
"맞다. 그래서 처음부터 무모하게 욕심 부리면 안 된다. 평소 관심 있던 분야에 준비를 잘 해서 가야 한다. 그쪽에서도 내가 처음 만드는 영화가 1000만 관객이 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만큼 망하면 곤란하겠지. (웃음) (편집자 주: 그가 2010년에 만든 영화 데뷔작 <김종욱 찾기>는 관객 110만 명을 동원했다.) 따라서 도전하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 장르를 충분히 공부한 뒤 많은 전문가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작품을 자주 만들지는 못 한다. 결과적으로 남는 결과물이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야만 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는 인생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글을 금방 쓴다고 들었다. 창작뮤지컬 <김종욱 찾기>는 3일 만에 썼다던데?
"20대 때는 3일 만에도 쓰고 5일 만에도 썼다. '당사빠'였다. '당장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 하하. 딱 보고 저돌적으로, 동물적으로 확 썼다. 하지만 (마흔이 된) 지금은 그러지 못 한다. 감정만 갖고 덤비기엔 무서운 게 많아졌다. 첫사랑에 빠질 땐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계속 질주할 수 있지만, (사랑에) 한 번 데이고 나면 주저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두세 번 데이면 웬만하면 시집 안 가려고 하지 않나? (웃음) 요즘 나는 예전처럼 빨리 쓰지는 못한다."
- 연극원에서 연극을 전공했지만 뮤지컬로 데뷔했다. 언제부터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원래 연극을 할 생각이었지만 뮤지컬의 매력에 흠뻑 빠진 계기가 있었다. 1997년에 1년간 영국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 등을 저렴한 티켓 사서 보고 또 보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그런 걸 할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1999년엔 인도에 갔는데 거기서 또 뮤지컬의 새로운 맛을 알았다. 인도 영화에는 뜬금없는 뮤지컬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 않나?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 힌디어라서 못 알아들었지만 몇 번을 봤다. 보면서 샤룩 칸과 사랑에 빠졌다. (편집자 주: 샤룩 칸은 인도의 국민배우로 한국엔 <옴 샨티 옴>, <내 이름은 칸> 등이 소개됐다.) 그때만 해도 인도 영화는 샤룩 칸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나뉘었다. (웃음) 열심히 보면서 뮤지컬 영화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구나 생각했다. 노래하고 춤추는 게 참 재미있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그러다가 연극원에 입학했고, 수업 시간에 만든 뮤지컬을 키워 데뷔하게 됐다."
- 인도영화 속 뮤지컬 느낌이 장 감독의 작품에 들어 있나?
"초기작엔 (인도 뮤지컬처럼) 가끔 뜬금없는 장면이 있긴 하다. 갑자기 창문 열고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 같은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대극장 작품을 쓰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 한다."
- 작품의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나?
"여행에서 많이 얻었다. 인도를 다녀와서 쓴 게 <김종욱 찾기>다. 2002년 슬로바키아에서 한국까지 러시아를 횡단해 온 적 있었다. 그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외로우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쉽게 자기 얘기를 하게 되더라.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우리는 가끔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은 판타지로 채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김종욱 찾기>로 이어졌다."
- 요즘도 여행을 자주 다니나?
"매년 간다. 올해는 쿠바와 멕시코를 다녀왔다. 호텔에만 있어도 글이 잘 써진다. 낯선 환경을 좋아한다."
- 작품을 쓰기 위해 취재를 많이 다니는 편인가?
"예전엔 그랬다. 그땐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으니 일일이 찾아다니며 물어봐야 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꼭 필요한 취재는 한다. 예를 들어 <그날들>을 준비할 때 청와대 경호관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면 경호관들은 보안이 최우선이라 가급적 말을 안 하려고 한다. 나는 말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니 초조해진다. 그런데 예상 못한 재미있는 질문을 갑작스럽게 던지면 그들도 얼떨결에 대답을 해준다. 예를 들면 "청와대에도 쥐가 나옵니까?" 이런 거다. (웃음) 경호관의 대답은 "여기도 사람 사는 데고, 산 밑이라 더 많이 나옵니다"였다. 그래서 그 말을 <그날들>에 가져다 썼다."
- 그 대사 기억난다. 사람들이 많이 웃더라. <그날들>은 김광석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인데 지금 공연 중인 <형제는 용감했다>도 그 시작은 김광석이었다고 하더라.
"맞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그날들> 이전에 김광석 노래로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려다 나온 작품이다. 사실 애초 PMC프러덕션의 송승환 회장이 준 미션은 '이승철 뮤지컬'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이승철 노래로 극본을 다 썼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를 풀지 못해 무산됐다. 그 뒤에 박진영으로 바꿔서 하려고 했는데 안됐고, 이문세로 바꿨는데 또 안됐다. 그렇게 결국 다 안 됐다. 다들 이쯤에서 포기하라고 했는데 나는 포기를 못 하겠더라. 그래서 송 회장에게 돈 안줘도 좋으니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으로 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나온 게 <형제는 용감했다>이다."
- 하지만 <형제는 용감했다>에 김광석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역시 당시에 저작권 문제를 풀지 못해 그렇다. <그날들>이 나오기 전엔 김광석 음악 저작권이 좀 힘들었다. (웃음) 사이가 나쁜 형제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모처럼 만나 아버지의 유산과 미모의 여인을 놓고 티격태격한다는 게 중심 이야기인데 원래 거기 김광석 노래가 들어 있었다. 그렇게 극본을 다 썼는데 송 회장이 이번에도 김광석 측과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더라. 좌절하고 있는데 (송 회장이) 써놓은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새로운 곡을 작곡해서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이야기를 더 보강해 새로운 뮤지컬로 완성했다."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여섯번째 무대 올려
- 뮤지컬로써는 드물게 안동 종갓집이 무대다.
"아버지와 아들의 세대갈등 뿐만 아니라 전통을 지키는 노인과 전통에 맞서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함께 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종갓집이 떠올랐다. 외갓집이 종갓집이어서 지금도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다. 명절 때마다 음식을 정말 많이 했는데 그걸 나눠주는 방식에도 체계가 있는 게 신기했다. 손님들이 오면 신발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걸 정리하는 건 아이들의 몫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자식 세대가 서로 원망하며 살지만 사실 다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지 않나.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사연들을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접근하기 쉬웠다."
- 송승환 회장은 "<난타>는 돈 벌어온 자식이고, <형제는 용감했다>는 귀한 자식"이라고 했다. 그만큼 <형제는 용감했다>는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독보적인 이야기다.
"지금은 그렇지만 처음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웃음) 이 작품을 다 쓰고 난 후 투자자에게 대본을 가져가면 다들 "이것 말고 다른 것 없어요?"라며 돌려보냈다. 의상이 한복이고, 무대는 안동 종갓집의 장례식인 뮤지컬이 다들 생소했던 거다. 그러다가 송 회장이 하고 싶은 거 하라며 밀어줬다. 첫 번째 소극장 공연 때 좋은 평을 많이 받았고, 그해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던 것 같다."
- <형제는 용감했다>가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여섯번째다. 정준하와 김동욱이 6년 만에 사이 나쁜 형제로 재회한다. 그 외 이번 공연은 어떻게 바뀌었나?
"<형제는 용감했다>는 2013년 일본 공연이 가장 최근이었고 한국에선 2012년이 마지막이었으니 3년 만에 다시 올리는 거다. 크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관객들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조금씩은 바뀌었다. 코믹한 부분은 동시대와 함께 가야하기에 꼭 바꿔준다. 예를 들어 요즘 인기 있는 셰프를 대사로 집어넣는다든지 하는 식이다. 재공연을 할 때마다 다양한 수를 둬본다. 이번엔 안동이 아닌 서울을 무대로 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걸 바꾸면 안 되겠더라. (웃음) 이렇게 여러 가지를 시도해본 결과물이 지금 공연이다."
- 우리 사회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형제는 용감했다>가 처음 만들어진 2008년과 지금을 비교하면 또 다를 것이다. 이 이야기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지면 좋을까?
"시대는 바뀌었지만 나는 가족에 대한 관점은 크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카인과 아벨> 시대부터 형제는 태어나자마자 경쟁하고 질투한다. 오히려 ‘형제들끼리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 한다’는 명제가 명확해서 형제들이 더 부담스러워하지 않나? (인류의 탄생 이래) 가족은 조금씩 변형되어 왔지만 어느 시대나 (그 원형은) 비슷하다고 본다."
- <형제는 용감했다>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영화화는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나?
"<김종욱 찾기>에 이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드는 두번째 시도다. <김종욱 찾기>를 영화로 만들 때 느꼈는데 뮤지컬과 영화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달라야겠더라. 그래서 이번 영화 시나리오는 내가 쓰지 않고 전문 시나리오 작가에게 맡겨놓은 상태다."
- 캐스팅을 염두에 둔 배우가 있나?
"누구든 출연해준다면야 좋지. (웃음) 예전엔 어떤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적도 있는데 막상 바뀌면 적응하기 힘들어서 이젠 미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 창작뮤지컬에 이어 라이선스 뮤지컬, 연극, 영화, 창극, 전국체전 개막식행사 등을 해봤다. 다음 도전 분야는 어디인가?
"지금까지 해봤던 걸 한 번씩 더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만 해도 10년은 지나갈 것 같다. (웃음) 한 번씩 다시 해보면 "아, 그땐 이런 부분이 부족했구나"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런 깨달음을 얻고 싶다."
- 꼭 만들어보고 싶은 작품은 뭔가?
"너무 많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뭐 할래?” 이렇게 묻는다면 난 작품 쓸 거라고 대답한다. 더 써야한다. 쓰고 싶은 소재도 많고 써놨는데 마음에 안 들어 접어놓은 것도 있다. 마무리 못하는 게으른 나에게 많이 섭섭하고 속상하다. 노는 것도 아니고 매일 뭔가를 하고 있는데도 글 쓰는 시간이 늘 턱없이 부족하다."
- 구상하고 있는 많은 작품 중 딱 하나만 해야 한다면?
"판타지다. 에로 코믹 판타지. (웃음) 이야기는 대충 잡아놨고, 트리트먼트까지 써 놨다. 음악감독도 오케이 했다. 그런데 아직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묵혔다가 공개하겠다. 섣불리 했다가 (작품에 참여한) 남의 인생 망치면 안 되지 않나? (웃음)"
(매일경제에 실린 기사의 원문입니다.)
장유정 프로필
1976년생. 극작가·연출가 겸 영화감독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 더 뮤지컬 어워즈 극본상, 창작뮤지컬상 등 다수 수상
[대표작]
창작뮤지컬: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형제는 용감했다, 그날들 (극본, 연출)
라이선스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 (연출)
연극: 멜로드라마 (극본, 연출), 버자이너 모놀로그 (연기)
영화: 김종욱 찾기 (각본,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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