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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없는 현대인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하루를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시작해 끄는 것으로 마감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 컴퓨터는 더욱 우리 삶과 가까워졌다. 윈도, iOS, 안드로이드 등 컴퓨터 운영체제 로고를 우리는 연인보다 더 자주 마주보며 산다. 그런데 만약 이들이 정말 우리에게 연인이 되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의 주인공인 테오도르(호아퀸 피닉스)는 `손글씨편지닷컴'의 작가다. 그는 의뢰인을 대신해 맞춤형 편지를 써주는데 때론 막 시작하는 연인을 위해, 때론 오래된 부부를 위해 편지를 쓰는 `감성 메신저'다. 이런 감성 영역은 컴퓨터가 따라할 수 없는 인간만의 특성으로 여겨져 왔지만 영화는 이에 의문을 제기한다. 테오도르가 새롭게 구입해 설치한 운영체제(OS)가 그의 감성을 깨운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그녀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유머러스하고, 때론 수줍어하고, 고민을 들어주고, 한 남자를 사랑하고, 그만큼 다른 여자를 질투하기도 하고, 심지어 섹스도 한다. 또 노래를 작곡하고, 글을 편집하고, 그림을 그리고, 이메일을 읽어주고, 퀴즈를 내기도 하고,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남자와 게임을 하기도 한다. 테오도르에게 완벽한 여자친구인 사만다는 바로 새로운 운영체제의 이름이다.
하루종일 남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테오도르는 삶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뭐가 결핍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죽마고우인 에이미(에이미 아담스)가 있지만 두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진화한 적은 없다. 사랑은 친밀한 것과는 다른 또다른 감정이기 때문이다.
모바일 시대에 사만다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그녀는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세상을 본다. 자신의 존재감을 질량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불안해 하지만 그대신 영생을 얻었다며 즐거워한다. 자신의 생이 OS 업데이트 주기와 함께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채 그녀는 테오도르와 함께 세상구경을 한다. 그러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그들은 신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함께 있을 때조차 서로를 채워주지 못하는 거죠?"
인간은 서로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 하기에 편지를 대필해주는 테오도르가 필요하게 됐고 사만다 같은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게 됐다. 테오도르의 대필 편지를 받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을 의뢰인의 연인처럼, 테오도르 역시 사만다로 인해 가슴이 뛴다. 그러나 어느날 테오도르는 자신만 모르고 있던 사만다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에게 그녀는 유일한 연인이었지만 그녀에게 그는 수많은 유저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5월 22일 개봉하는 <그녀>는 이처럼 기발한 아이디어로 계속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사랑의 대상이 실체가 없이 목소리만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스칼렛 요한슨의 섹시하고 허스키한 보이스는 신비감을 더한다. 한국에서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테드 창의 SF 소설 [소프트웨어 생애의 객체주기]의 로맨틱 코미디 버전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익숙한 장르구조 때문인지 소재는 낯설지만 이야기 자체는 어색하지 않다.
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존 말코비치 되기>로 데뷔한 이래 독특한 아이디어의 샘물로 머리를 감는 듯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왔는데 마침내 <그녀>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다만, 영화는 경쾌했던 초반부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멜랑콜리한 분위기로 무거워져 후반부의 러닝타임을 조금 줄였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애플의 시리, 구글의 나우, MS의 코타나 등은 아마도 사만다의 초기 버전쯤 될 것이다. 아직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묻는 말에 따라 검색결과를 표시해주는 정도지만 이 서비스들이 `음성 비서'를 넘어 `음성 연인' 역할을 하는 순간, 언젠가 그녀 혹은 그와 정말로 사랑에 빠질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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