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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베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 그는 책에서 학교로 이어지는 단순한 삶을 살고 있는 중년의 남자입니다. 비가 오는 어느날 그는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는 젊은 여자를 구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빨간색 코트만 남겨둔 채 홀연히 사라집니다. 빨간색 코트 안에는 포르투갈어로 된 책 한 권과 기차 티켓이 들어 있습니다. 동네 서점에서 물어보니 한 여자가 이 책을 사갔다고 말하는군요. 책 제목은 [언어의 연금술사]로 한 남자의 자서전적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기차 티켓을 살펴보니 행선지는 리스본, 열차가 출발하기 15분 전입니다. 남자는 베른역으로 달려가서 여자를 찾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얼떨결에 남자는 기차에 올라탑니다. 리스본으로 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은 것입니다. 아무 짐도 없이, 아무 연고도 없이, 가르쳐야 할 학생들을 남겨둔 채, 작고 낡은 책 한 권과 이 책을 들고 있던 젊은 여자의 마법과도 같은 바람에 이끌려 리스본으로 떠나게 됩니다.
자살하려다가 홀연히 사라진 그 여자는 누구였을까요? 딱 100권만 출간했다는 작은 책의 저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영화는 그레고리우스가 리스본에 도착한 뒤 1973년과 현재를 오갑니다. 1973년은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1974년 4월 25일)이 있기 1년 전이자 살라자르 40년 독재에 지친 시민들이 저항군을 조직하고, 젊은 장교들까지 조직을 결성해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1968년 살라자르 사후 카에타누 총리가 독재정권을 이어갔는데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처럼 1973년은 한국의 1978년 혹은 1986년처럼 암흑 속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이 간간히 벌어지던 시기입니다. 그 속에 세 남녀 아마데우 프라도(잭 휴스턴), 조르주 오켈리(아우구스트 디엘), 에스테파니아(멜라니 로랑)가 있었습니다. 절친이던 아마데우와 조르주는 에스테파니아를 사이에 놓고 갈등하게 되고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오해로 인해 영영 헤어지고 맙니다. 그레고리우스가 들고 있던 책은 요절한 아마데우가 자신의 삶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삶을 추적해가면서 그가 남긴 깊이 있는 글과 그의 열정적인 삶에 빠져듭니다. 평범했던 자신의 삶에 비하면 아마데우의 짧은 생애는 참으로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강단 있는 인물이었던 아마데우는 부친이 판사인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서도 독재에 저항해 레지스탕스에 들어갑니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사람이 다쳐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의사가 됩니다. 그리곤 틈틈이 글을 썼는데 영화는 그가 쓴 인생에 관한 글을 해변가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등치시키고 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낯선 포르투갈에서 안경점을 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스위스의 학교에서는 복귀할지 말지를 결정하라며 전화가 오지만 그레고리우스는 리스본에서의 호기심을 놓을 수 없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왕복티켓이 아니라 편도티켓이었던 셈이죠.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했던 여자의 정체는 누구냐고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말씀드릴 수 없는데 영화 중반에 밝혀집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한 지식인이 과거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의 영화라는 점에서 한국영화 <화려한 휴가>나 <오래된 정원> 혹은 <꽃잎> 등을 떠오르게 합니다. 한국에서는 더이상 지식인이 등장해 어두운 시절을 회고하는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주인공이 지식인일수록 자의식이 지나치게 묻어나기 때문이겠죠. <리스본행 야간열차> 역시 그런 맥락에서 다소 올드한 영화처럼 보이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영화는 아마데우의 행적을 쫓는 미스터리 구조로 진행되는데 배우들의 2인 1역 연기를 통해 1973년과 현재의 모습이 교차됩니다. 포르투갈 혁명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혁명이 추억거리로 전락한 것이 안쓰러울 수도 있을 텐데 아마데우는 그런 사람들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아마데우는 혁명이 터진 그날 지병으로 죽습니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혁명을 보지 못한 인물이기도 한데 이는 혁명이 포르투갈을 독재에서 해방시켜주었음과 동시에 더이상 현대인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박제된 모습으로 남아 있음을 뜻하기도 할 것입니다. 현재까지 살아남은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 하나같이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조르주(브루노 간츠)는 밤마다 약국 불을 켜놓으며 그날을 잊지 못하고, 손을 다친 후앙(톰 커트니)은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살고 있으며, 에스테파니아(레나 올린)는 스페인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고 있고, 아마데우의 여동생 아드리아나(샤를로트 램플링)는 여전히 오빠가 살아 있다고 믿으면서도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데우가 죽은 후 박제된 인간들처럼 보입니다. 혁명 이후의 달콤함은 찾아볼 수 없는 인간 군상들이라는 점에서 그 시절 그들에게 혁명은 사랑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아니었나봅니다.
아마데우가 쓴 글귀처럼,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날 때 뭔가를 뒤에 남기고 가는 것이어서 우리의 무언가는 거기에 계속 머뭅니다. 그 무언가는 그곳에 다시 가야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어느날 우연히 자기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단 한 장의 편도 티켓입니다. 그는 이제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짧은 지는 상관없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난 후 호기심에 베른에서 리스본으로 가는 열차를 검색해봤는데 해당 노선은 존재하지 않는군요. 원작에서 그레고리우스는 독일 김나지움의 교사였는데 영화는 이를 스위스 베른으로 바꾸었습니다. 베른은 원작 소설의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가 태어나 고등학교를 다닌 곳이죠. 원작에서 독일에서 포르투갈로 가는 두 파시스트 국가의 열차 노선을 스위스로 바꾼 것은 관찰자인 주인공에게 중립적인 시각을 부여하려는 의도인 듯합니다. 그런데 막상 해당 열차 노선이 없다는 검색결과를 마주하고 보니 좀더 몽환적인 느낌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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