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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다. 하는 일 없는 한량이면서 딸이 모아놓은 돈을 몰래 훔쳐 나가 노름판에 껴서 돈을 잃고는 판을 엎어버린다. 동네 사람들 모두 그를 싫어한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유일하게 그 마을에서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떨까? 아무도 진실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홀로 악의 정체를 파악하고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당신은 누구를 택할 것인가? 나쁜 아버지를 택할 것인가 혹은 감언이설로 속삭이는 악마의 혓바닥을 택할 것인가?
<사이비>의 배경은 작은 시골마을이다. 마을을 저수지로 매립하기 위해 주민들에게 보상금이 주어졌고 이에 돈을 노린 사기꾼이 교회로 위장해 마을로 들어왔다. 헌금 명목으로 돈을 내면 영생을 얻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가난한 마을 주민들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린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고, 영생수를 먹으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에 혹시 늦게 죽어서 천국에 빈 자리가 없을까봐 안절부절한다. 경찰이 사기꾼을 잡으러 와도 도리어 신고한 아버지를 사탄이라며 욕한다.
영화는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하는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삼아 포장된 거짓과 날것 그대로의 진실 사이에서 무엇을 택할 것인지 관객에게 묻는다. 믿음이란 게 이처럼 허무한 이유는 인간이 애초부터 불완전한 존재인 까닭이다. 거짓은 사고하지 않는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에 기생하는 반면, 진실은 가까이할수록 위험한 것이어서 무지하거나 영리한 사람들은 진실을 인정하며 위험하게 사는 것보다 차라리 거짓 세상 속에서 눈감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택하려 한다. 영화 속에서 마을 주민들이 그랬고, 동네 바보가 그랬으며, 심지어 심약한 목사마저도 그랬다.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사이비 세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홀로 고군분투하며 진실을 밝혀낸 아버지는 마을 주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병든 마을에 한때나마 행복감을 선물했던 사기꾼은 오래 기억되고 아버지는 쓸쓸하게 잊혀질 것이다. 그것이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할아버지가 되어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가 자신만의 종교에 빠지게 된 이유 아니었을까.
<사이비>의 연상욱 감독의 메시지는 <돼지의 왕> 만큼이나 강렬하다. 양익준, 오정세, 박희본 등 <돼지의 왕>의 성우들이 권해효와 함께 <사이비>에도 참여했는데 <돼지의 왕> 때보다 목소리 연기가 월등히 좋아졌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사이비>는 <돼지의 왕>에 비해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밋밋한 이야기를 만회하기 위한 반전에 치중하느라 설득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물들의 얼굴형을 표현한 선 굵은 그림체는 실제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얼굴형과 아주 흡사해 마치 실화를 보는 듯 서늘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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