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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추천 사이트 '왓차'의 아마추어 영화평론가 모집에 2천 명이 지원했다. 혜택이라고는 고작 한 달에 한 번 극장 티켓을 주는 게 전부인데도 말이다. 그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는 뜻이겠다. 실제로 네이버 영화 리뷰나 각종 블로그에는 전문가를 능가하는 수준 높은 글들이 많다. 그들은 '컷 바이 컷'으로 영화 장면을 분석하기도 하고, 각종 관련 영화를 끌어오며 비교하기도 한다. 그들이 들인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은 오직 추천과 방문자 수 뿐인데도 말이다.



  2. 소셜 시대다. 아니, 소셜 시대라고들 한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에는 지금도 초단위로 새로운 콘텐츠가 올라온다. 정보가 되는 글이나 인사이트가 담긴 글들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신변잡기다. 어디서 뭘 먹었고 누구와 함께 있었고 무엇을 봤는지에 대한 잡담. 그래서 소셜 별거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래서 소셜을 이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궁금한 것이다.

  3. 나와 친한 사람이라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주기도 하지만 서먹한 관계라면 그냥 지나친다. 올리는 글에 '좋아요'가 많이 달리는 사람은 '소셜 지수'가 높은 사람이다. 즉, 어떻게 소통해야하는 지를 아는 사람이다. 현실에서 그 사람이 정말로 친밀도가 높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혹은 현실에선 외톨이지만 소셜 서비스의 '글'로 풀어가는 관계에는 더 잘 적응된 사람일 수도 있다.

  4. 기계의 발전이 전문가의 영역을 침범하는 시대다. 15년 전만해도 영화감독, 언론사주, 기자, PD, 교사, 사진작가, 작곡가, 출판업자 등은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고퀄리티 카메라와 인터넷과 소셜서비스의 등장은 이 전문가들의 영역을 하나씩 혁파해갔다. 물론 지금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격증이나 자본의 규모에 따른 차이일 뿐이다. 좋은 장비를 얻으면 아마추어 작가도 프로 못지 않은 영상을 만들 수 있고, 고급 정보를 얻으면 아마추어 기자도 더 고급 기사를 쓸 수 있다.

  5. 그렇다면 기득권을 가졌던 전문가들은 어떻게 됐을까? "기술이 진보했으니 어쩔 수 없지" 라고 체념하며 뛰어난 아마추어들에게 자리를 내주었을까? 아, 물론 이 부분은 한국과 서양세계의 현실이 다르다. 미국의 대형 언론사들은 빠르게 붕괴해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사라지며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신생 언론사가 생겨나기도 했지만, 한국의 언론산업은 여전히 기득권을 탄탄하게 움켜쥐고 있다. 이것이 한국 언론이 변화하는 시대에 더 빠르게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본을 움켜쥔 '그들만의 카르텔'이 언론산업의 붕괴를 지연시키고 있을 뿐이니까. 보수정권-재벌-언론사-포털로 이어지는 카르텔 말이다. 일례로, 이제 막 유수 언론사에 입사한 1~2년차 기자의 기사는 포털 메인에 노출되지만, 그 분야에서 십여 년간 전문성을 쌓은 한 블로거(그는 전직 기자일 수도 있다)의 글은 한참을 검색해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 전문가가 사라지는 시대에 한국사회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은 이처럼 '개인'이 아닌 그 개인이 속한 '조직'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 언론인들도 뜨악해 했다는 포털에서 기사를 노출하는 관련법의 비밀이다.

  6. 영화리뷰에 적기도 했지만, 영화 <엘리시움>의 만능 의료기계를 보면서 전문가라는 것이 언젠간 결국 허울만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그 기계가 먼 미래에 실제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약 DNA 구조가 완전히 해석돼 DNA 염기서열 지도가 만들어지고 인체의 숨겨진 기능에 대한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면, 그땐 정말 스캐닝 한 번으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 3D 프린터가 하는 것처럼 인체의 조직도 프린팅해서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지금 절대적인 전문가의 영역 중 하나인 의료도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의사들은 아마추어 공대생들과 경쟁해야 할 것이다. 그때도 의사 자격증이 지금처럼 값비싼 절대반지가 될까?

  7. 의사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전문가 영역이 또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 즉, 법률가들이다. 로스쿨이 등장하면서 문호가 조금 넓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로스쿨 등록금은 커다란 진입장벽이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없이 경쟁해야 하고 그렇게 거머쥔 자격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이익단체, 즉, 변호사협회는 자꾸만 높은 벽을 세우고 있다. 왜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법률용어를 아직도 고치지 않고 있으며 법전에는 이해하기 힘든 한자어가 난무하는 것일까? 여기 아마추어가 진입할 방법은 없을까? 생각해보면 방법은 단순하다. 모든 법전을 쉬운 한국어로 번역한다. 모든 판례들을 쉬운 한국어로 번역한다. 그리고 구글의 검색 알고리듬을 차용해 법전과 판례를 분석해 케이스에 맞는 해석을 내놓는 서비스를 만든다. 구글의 알고리듬은 A=B라는 단순 치환이 아니라 검색결과를 분석, 응용해서 더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이 서비스를 개인이나 기업이 만들 수 있겠냐고? 물론 아니다. 개인이 혼자 만들기엔 힘에 부치고, 기업이 하기엔 돈이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은 소셜 시대다. 여기에 답이 있다. 함께 만들어 가면 된다. 언젠가는 법의 영역에서도 결국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다. 비싼 법률 서비스 대신 검색 한 번에 무료 변호사가 판례를 분석해주고, 애플의 'SIRI'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가 무료변호를 대신해주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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