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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다 보면 낭떠러지가 나올텐데 겁 먹지 마시고 그대로 달리세요.”


보호장비를 점검하던 조종사가 말했다. 나는 “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막막했다. 그냥 달리라니... 그러다가 바닥으로 구르면 어디까지 떨어지게 될까? 그때 내 몸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짧은 순간 머릿속에 최악의 경우가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조종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안전장비가 이상이 있거나 연결장치 하나를 안 채웠거나 하는 재수 없는 가능성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준비 됐나요?”


조종사가 큰 소리로 물었다. 준비가 됐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네!”라고 소리쳤다.


“화이팅 하고 출발하세요.”


나는 오른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는 “화이팅” 기합을 넣고 달리기 시작했다. 몸에 하네스를 부착하고 등에 무언가를 잔뜩 매달아 놓은 탓에 앞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잘 하고 있어요. 계속 달리세요.”


조종사가 뒤에서 내 등을 밀었다. 나는 힘껏 발을 뻗었다. 조금씩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무게중심이 넘어오는 게 느껴졌다. 내 몸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한 곳부터 낭떠러지가 있는 곳까지는 채 50미터도 되지 않았다. 금세 눈앞에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절벽 사이로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내 몸은 본능적으로 멈칫했다. 하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어 있어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낭떠러지에서 마지막 도움닫기를 하고 멀리뛰기를 하는 것처럼 높이 뛰어올랐다.


양방산에 위치한 카페 산


이곳은 해발 664미터 양방산(양백산)의 정상 가까운 곳.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이다. 주위에는 ‘산’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어서 사람들은 카페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륙하는 패러글라이더들을 바라본다. 짙은 녹색의 숲과 단양군 읍내가 헤링본 모양의 무늬처럼 펼쳐져 있고 선선한 가을 공기가 청명하다. 오전에 안개가 자욱히 끼었지만 해가 솟아오르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걷혔다.


태백과 소백의 기운을 한꺼번에 받는 산이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양방산은 패러글라이딩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경사가 급하면서도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단양 읍내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오르내리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열린 개천절 휴일을 맞아 예약을 하고 올라가 보니 패러글라이딩 업체 사무실 5~6곳이 경쟁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비용은 10분 탑승에 8만원, 10~15분 13만원 정도다. 2만원을 별도로 지불하면 고프로를 이용해서 촬영도 해준다.



“생각보다 간단하죠?”


조종사가 하늘에서 물었다. 우리는 단양 상공을 날고 있었다. 발 아래로 마을과 숲이 한눈에 보였다. 비행기에서 보던 것보다는 커보였지만, 이륙하기 전 산에서 보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각도였다.


“이렇게 안정적일 줄 몰랐어요.”


나는 조종사에게 말했다. 이륙하기 전 무겁게 메고 있던 커다란 배낭 같은 것이 하늘에선 푹신한 의자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나는 한손으로 라이더 줄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고프로 촬영을 이어갔다. 그동안 막연하게 패러글라이딩은 하늘 위에서 불안정한 상태를 견디면서 비행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안정감에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한국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면서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연주했다는 한 외국인의 영상을 뉴스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상태에서라면 바이올린 뿐만 아니라 노트북 들고 글도 쓸 수 있겠다.


“프로 선수들은 도시락 들고 타서 2시간씩 비행하면서 여기서 밥 먹기도 해요.”


역시 인간의 적응력은 놀랍다. 그런데 하늘 위에서 먹을 만한 메뉴는 뭐가 있을까. 김밥? 초밥? 햄버거? 비빔밥? 비행기 안에서 먹는 음식을 기내식이라고 한다면 이건 기외식이라고 불러야 할까? 단양의 명물 쏘가리나 마늘떡갈비를 여기서 먹어도 좋을 것 같다.



띠띠띠. 아까부터 계속해서 귓가에 맴도는 기계음이 있다. 조종사에 따르면 기계가 상승기류를 찾는 소리라고 한다. 캐노피는 바람에 저항하면서 계속해서 하강하기 때문에 오래 타려면 상승기류를 찾는 것이 필수다. 그래서 상승기류를 만나면 기계가 신호를 보내준다.


마침 상승기류를 찾았다. 기계음이 요란하게 바뀌더니 패러글라이더가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나는 이카루스가 된 것처럼 태양을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어서 하늘이 투명하게 보인다. 저 멀리 흐릿하게 달의 형체까지 드러난다. 오전에 자욱하게 끼었던 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곳 사람들 말로는 안개가 깨진다고 표현하던데 깨졌다면 그 파편이 남아 있어야 하겠지만 주위는 선명하기만 하다.



“재미있게 해볼까요?”


조종사가 왼쪽 라이더 줄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몸이 왼쪽으로 기울이 시작한다. 잠시 후 오른쪽 줄을 잡아당기자 이번엔 몸이 오른쪽으로 기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몸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한가롭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몸이 곡예비행을 하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비행을 시작하기 전에 안전수칙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길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고 있지 않았다. 보조 낙하산이 있을텐데 그걸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낯선 조종사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있자니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다행히 조종사는 왼쪽 오른쪽 놀이를 멈췄고 패러글라이더는 다시 안정을 찾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전보다 고도가 낮아져 있다. 이제 서서히 하강하는 중이었다.


하늘에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내리고 나서 보니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안정적이라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순간이 시간을 늘어뜨렸나보다.



오래 전 산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바람을 맞던 누군가는 이 바람을 따라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을테고 그 상상이 오늘날 패러글라이딩이라는 레포츠로 자리잡는 시초가 되었을 것이다. 누구나 상상을 하지만 그 상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남다른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패러글라이딩을 처음 만든 사람은 프랑스 등산가 장 마르크 쿠오뱅이라고 한다. 그는 1984년 스카이다이빙용 낙하산을 개량해 산의 경사면을 이용해 활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패러글라이더는 행글라이더에 비해 크기가 작고 가볍고 비행 조작도 간단하다. 경사면을 날아오른다는 뜻을 강조해 미국에선 패러글라이딩을 '슬로프 소어링(slope soaring)'이라고 한다.



패러글라이딩은 25도 정도의 경사가 있고, 시속 10~15km의 맞바람이 부는 곳에서만 할 수 있다. 주변에 높은 산이나 건물이 있으면 안 된다. 또 충분히 뛸 수 있을 만큼 평탄한 이륙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충북 단양, 청주, 경기 양평, 용인, 부평, 강원 영월, 평창, 경북 문경, 청도, 고령, 경남 남해, 전북 익산, 전남 여수, 담양, 제주 등에서 할 수 있다.



패러글라이딩은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어서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정밀착륙 부문과 크로스컨트리 부문이 있는데 정밀착륙은 목표지점에 가장 가깝게 착륙하는 것이 목표인 경기이고, 크로스컨트리는 목표지점 몇 곳을 정확하고 가장 빨리 도는 순으로 순위를 가리는 종목이다. 팀당 5번 비행하는데 세 명의 선수가 출전해 두 개의 높은 점수만 합산한다.


한국은 아시아 패러글라이딩 강국이어서 총 6개 부문 중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를 따냈다. 크로스컨트리 남자 단체전을 제외하고 모든 부문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메달을 딴 선수들은 모두 일반인들이다. 주부도 있고 강사도 있다. 강사들은 동호인들에게 패러글라이딩 강습을 하는데 하루에 많으면 100만원을 벌기도 한다. 스포츠 하면 엘리트 위주 선발이 당연시 되는 한국에서 패러글라이딩이 한국의 메달밭이 되었다는 것은 한국 레포츠의 위상과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패러글라이딩은 생각보다 안전한 레포츠지만, 한 번 사고가 나면 후유증이 크다. 내가 간 날인 10월 3일 오후 2시경, 50대 체험객이 이륙에 실패해 낭떠러지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또 지난 9월 16일에는 40대 조종사와 체험객이 남한강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인데 난기류를 만나는 등의 기후변화 혹은 안전벨트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장비가 노후화된 것 등의 인재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지난 9월 사고의 경우, 장비가 낡았음에도 계속해서 사용해오던 업체의 부주의가 원인으로 지목됐을 만큼 안전불감증은 패러글라이딩 업계에도 만연하다.


이처럼 안전 대비는 아직 완벽하지 않고, 단속과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니 패러글라이딩을 안전하게 즐기고 싶다면 예약 전에 사고경험 유무를 반드시 체크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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