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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잭슨의 단편소설 '제비뽑기(The Lottery)'는 일상이 된 악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매년 제비뽑기를 하는 연례행사가 열린다. 모든 사람이 강제적으로 참가해 한 명을 뽑는다. 뽑힌 사람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한다.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기 위해 희생자를 둘러싸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영화 '킬링 디어'는 '제비뽑기'를 연상시킨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을이 아니라 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제비뽑기다. 스티븐(콜린 파렐)은 아들, 딸, 아내 애나(니콜 키드먼)의 눈을 가린 뒤 자신도 얼굴을 가리고는 소총을 들고 빙글빙글 돈다. 마치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누구를 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아쇠를 당긴다. 누군가 총에 맞을 때까지 반복한다. 그렇게 셋 중 한 사람은 제물이 된다.



영화는 심장을 클로즈업한 자극적인 영상을 서서히 줌아웃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수술 중인 외과의사의 손이 분주히 오가며 살을 꿰맨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을 건너 뛴다. 외과의사 스티븐은 그때 의료사고로 죽은 환자의 아들 마틴(배리 케오간)을 만난다. 스티븐은 16살 마틴에게 호감을 느껴 집으로 초대한다. 마틴은 답례로 스티븐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더니 이후 부담스러울 정도로 집요하게 스티븐에게 연락해온다. 스티븐이 마틴을 멀리하려 하자 마틴은 이렇게 경고한다. "첫 단계는 사지가 마비되고, 두번째는 거식증에 걸리고, 세번째는 눈에서 피가 나고, 네번째는 죽게 될 것이다. 네 식구 다 죽기 전에 한 사람을 선택하라." 과학을 신봉하는 스티븐은 마틴의 말을 믿지 않지만 이후 차례로 아들과 딸의 다리가 마비되면서 마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는 '더 랍스터'를 만든 그리스 뉴웨이브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이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더 랍스터'가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는 독특한 설정을 기반으로 한 스릴러 영화였다면, '킬링 디어'는 종교적 색채가 가득한 복수극이다.


감독은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영화의 제목인 'The Killing of a Sacred Deer'는 이피게네이아의 아버지인 아가멤돈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였다는 이유로 저주에 걸리고 이를 풀기 위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송곳니' '더 랍스터' 등에서도 그랬지만 '킬링 디어'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차갑고 기괴하다. 귀를 뜯는 듯한 사운드가 계속되는 가운데 인물들은 감정이 거세된 듯한 대사를 쏟아낸다. 보통의 경우라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하겠지만 스티븐의 가족은 그렇지 않다. 스티븐은 자신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임에도 의료사고 가능성을 일축하고는 학교를 찾아가 교사에게 아들과 딸 중 누가 더 가치있는지 물어본다. 애나는 자식은 시험관 아기를 통해서라도 또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딸은 마틴과 함께 도망치려 하고, 아들은 뒤늦게 아빠가 자르라고 했던 머리카락을 손수 잘라낸 뒤 아빠처럼 외과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충격적이다. 한 사람이 사라지고 세 명의 가족이 남았지만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다. 세 사람은 식당에 앉아 밥을 먹다가 마틴이 들어오자 눈을 마주친다. 마틴은 영화 속에서 절대자처럼 그려진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고 스티븐의 가족을 저주에 걸리게 할 수도 있고 풀어줄 수도 있다. 그는 스티븐에게 납치돼 고난을 받으면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끝까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신념을 실천한다. 애나가 마틴의 발에 입맞추는 장면은 예수의 발에 입 맞추던 막달라 마리아를 연상시킨다.



영화 '킬링 디어'는 '제비뽑기'의 주제인 악의 평범성을 가족 안으로 범위를 좁힌 작품이다. 스티븐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명분 아래 이기심 가득한 선택을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스티븐과 그의 가족은 불행해질까?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들은 식구 한 명이 줄었다는 것을 잊고 다시 예전처럼 평범하게 살아갈지 모른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틴을 만나면 잊혀진 아들의 존재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제비뽑기'의 마을 주민들이 한 사람을 돌팔매질로 죽이고는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닫연 돋보이는 배우는 마틴 역을 맡은 배리 케오간이다. '덩케르크'에 출연해 얼굴이 낯익은 그는 이 영화에서 선과 악이 공존하는 듯한 마스크로 신비로운 매력을 뿜어낸다.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스티븐을 스토킹하며 애나에게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아 모두가 그의 말을 믿게 만든다. 그는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시종일관 궁금증을 유발한다.


킬링 디어 ★★★★

종교적 메타포 가득한 복수극. 악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유창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댓글
  • 프로필사진 윤이사 내용이나 담겨진 속뜻을 잘못 해석하신 듯 하네요. 이영화는 악에 대한 것이 아닌 운명이나 숙명에 대한 인간의 불가항력적인 저항을 이야기 하는 듯 합니다. 즉 삶에서 겪에되는 일들 특히 불행은 인과 응보의 논리가 적용돼지는 않고 일어나죠. 아무리 악행을 많이 한 사람도 평탄하게 그리고 나름의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기도 하고 아무리 착하게 산 이라도 스스로는 모르겠지만 삼자의 눈으로 보면 불행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누구나 잘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이는 없을겁니다. 선택 당한 이가 빌 게이츠가 돼고 버락 오마바가 돼고 스티브 잡스가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물론 그들은 노력했겠죠.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누구나 노력합니다. 그 노력에 대한 평가? 글쎄요. 2018.07.23 11:57 신고
  • 프로필사진 Youchang 상당히 시니컬한 분석이군요. 하지만 주인공은 어쨌든 수술 중 잘못을 저질렀고 그 잘못으로 인해 벌을 받는 것이잖아요. 그것을 단지 운명으로만 제한하기에는 베리 케오간이 너무 섬뜩하게 연기를 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2018.07.23 12:30 신고
  • 프로필사진 뿅뿅 저도 윤이사님 판단에 동의 하는편입니다. 인간은 어떤 사건을 실존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의미와 가치와 인과관계를 부여해서, 각자 자신의 취향과 기준에 맞게 재가공한 후 받아들이려는 습성이 있는것 같아요. 때문에 확증편향이나 인지부조화같은 일상적인 오류들을 빈번하게 범하게 되는거죠.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신화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로 만들어진 이야기임과 동시에 신(대자연, 대우주)과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명확히 구분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의료사고가 명확하게 악의에 의한 죄임이 밝혀지지 않았고 절대자 아이도 또한 주인공의 잘잘못이나 악의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것을 볼때, 불완전한 인간의 실수정도의 실존적 의미로라도 단지 댓가가 따를뿐이라는 신화안에서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더 방점이 찍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2018.08.03 10:36 신고
  • 프로필사진 Youchang 뿅뿅님 의견을 읽고보니 인과관계는 맥거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제가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겠네요.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08.03 21: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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