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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비닐봉지를 얼굴에 뒤집어 쓰고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가쁜 호흡을 내쉬던 남자는 결국 비닐을 벗는다. 그의 옆에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모가 있다.


남자의 이름은 조, 폭력이 익숙한 청부업자다. 하지만 스스로를 죽이지는 못하는 나약한 청부업자다. 가정폭력(아버지의 학대)과 국가폭력(이라크전 참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조는 자주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상원의원이 유괴된 딸 니나를 구출해 달라고 요청해오고 조는 망치를 들고 매음굴로 쳐들어간다. 하지만 그가 찾아낸 니나는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폭력에 익숙한 듯 마음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아이였다. 깊은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사는 자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를 알아보는 법이어서 조는 한눈에 범상치 않은 니나를 알아본다. 하지만 마침 경찰이 들이닥치고 조는 유괴범으로 몰린다.


엄마와 아들의 엇갈린 관계가 무차별적 폭력으로 치닫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영화 '케빈에 대하여'로 큰 찬사를 받은 린 램지 감독은 6년만에 내놓은 신작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선 전작과 반대로 폭력의 상흔이 남자의 영혼을 어떻게 파멸시켜 왔는지를 묘사한다.



전작에서 아들이 엄마를 일방적으로 갈망함에도 불구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소통이 아들을 견딜 수 없게 해 끝내 파국으로 이어졌다면, 이번 작품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남자가 어린 소녀를 만나 삶의 이유를 되찾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전작과 대구를 이룬다. 전작처럼 어둡고 상징적인 장면들로 가득 찬 영화지만 메시지는 더 밝고 희망적이다.


폭력적인 남자가 어린 소녀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공유한다는 설정은 영화 '레옹' '택시 드라이버' 등을 떠올리게 하지만, 스토리 전달보다 조라는 인물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바다 속에 가라앉은 조가 니나의 환영을 보고 떠오르는 장면, 망치를 들고 모텔로 침입한 조를 CCTV로 중계하는 장면, 식당에서 마침내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 등 영화는 대사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상의 끝에서 의외의 희망을 만난 조라는 인물의 심리에 빠져들수록 충격적인 장면들도 먹먹하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는 조나단 아메스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린 램지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영화가 미완성된 채로 출품됐는데 린 램지가 각본상, 호아킨 피닉스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술에 취해 사는 사진작가(마스터), 약물에 절어 사는 사설탐정(인히어런트 바이스), 운명 앞에 괴로워 하는 나사렛 예수(막달라 마리아), 서부시대 돈 받고 사람 죽이는 건맨(시스터즈 형제) 등 그동안 날이 바짝 선 연기를 해온 호아킨 피닉스는 조 역할을 위해 살을 급격하게 찌우며 잔혹하면서도 나약한 킬러 이미지를 만들려 했다. 삶이 괴로워 매번 자살을 시도하면서도, 죽은 뒤 부활해 다시 고통받아야 할까봐 괴로워하는 조라는 인물은 피닉스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스크린에 등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 ★★★☆

이미지로 인물의 심리 묘사, 린 램지는 천부적이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3563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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