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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세 편을 소개합니다. 1월 11일과 17일 개봉작 중 ‘다운사이징’, ‘그것만이 내 세상’,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입니다. 어떤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고요? 지금부터 한 편씩 살펴볼까요?



<다운사이징> 작아진 남자의 마지막 소원


영화 ‘마션’ 기억하시죠? 화성에서 꿋꿋하게 살아 돌아온 우리의 주인공 맷 데이먼이 이번엔 소인국으로 갑니다. 이번에도 그는 혼자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는데요. 그녀는 소인이 되기 위한 시술실에서 갑작스럽게 변심을 합니다. 그 변심의 이유라는 게 조금 웃겨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쓰지 않고 남겨둡니다.


아, 그런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냐고요? ‘다운사이징’이 일상화된 가상의 근미래입니다. 다운사이징이 뭐냐고요? 노르웨이의 한 과학자가 발명한 기술인데요. 살아있는 동물의 크기를 줄이는 것입니다. 인간은 부피가 0.0364%로, 무게는 2744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고 하네요. 키는 12.7cm로 거의 14분의 1 수준으로 작아집니다. 일부 어류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물에서 부작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줄어드는 게 대체 왜 필요할까요? 키가 커지고 싶은 사람은 많이 봤어도 작아지고 싶은 사람은 거의 못 봤거든요. 키가 그렇게 확 줄어들면 당장 벌레한테 잡아먹힐 것 같은데 이런 위험한 짓을 대체 왜 할까요?


영화가 제시하는 명목적인 이유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환경을 오염시킨 탓에 자원은 고갈되고, 지구는 황폐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인류는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노아의 방주’처럼 다운사이징이 인류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죠.



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작아지면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크기가 줄어들면 더 적은 공간에서 더 적게 먹으면서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럭셔리한 시설을 갖춘 소인국 ‘레저랜드’의 상담사는 폴(맷 데이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선 1억원이 120억원의 가치가 있어요. 부자로 평생 즐기면서 살 수 있습니다.”


폴은 이 말에 혹합니다. 외과의사가 꿈이었지만 실패하고 치료사로 일하는 그는 사람들이 자꾸만 다운사이징하면서 생산 인구가 줄자 소비가 줄고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이 견디기 힘듭니다. 은행에서는 신용도가 떨어져 대출 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연락이 오고요.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해도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현실에 그는 아내를 설득해 결심을 합니다. 소인이 되기로요.


하지만 막상 소인이 되고 나니 이곳은 마냥 유토피아는 아닙니다. 여기에도 불법 밀수가 있고 인종차별이 있네요. 빈부 격차와 슬럼도 있고요. 이기적인 사람은 소인이 되어도 이기적이고, 한 번 발생한 갈등은 잘 극복되지 않습니다.



낙심한 순간, 폴은 한 여자를 만납니다. 베트남에서 온 녹 란 트란(홍 차우)입니다. 스스로 다운사이징을 택한 폴과 달리 녹 란은 베트남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강제로 작아진 여성입니다. 그녀는 TV 상자의 모서리에 숨어 몰래 미국으로 들어온 난민으로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한쪽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슬럼에서 더 외로운 다른 환자들을 돌보는데 열심입니다. 폴은 누구보다 강인하고 이타적인 그녀와 사랑에 빠집니다.


영화는 후반부에 전반부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류 최후의 생존자가 될 것인가, 사랑을 택할 것인가. 폴은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요. 그는 녹 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외과의사가 못 되고, 대출을 못 받아 집을 못 사고,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하고… 그렇게 난 여기까지 왔어요. 이건 나에게 숙명이에요. 지금 이걸 안하면 대체 난 누구죠?” 폴의 선택은 과연 무엇일까요?


영화를 만든 알렉산더 페인 감독은 ‘디센던트’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 등 그동안 진짜 인생을 찾아가는 중년 남자의 여정을 소재로 한 영화를 주로 만들어 왔는데요. ‘다운사이징’은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주제는 비슷합니다. 그것은 지금의 삶이 힘들어도 도망치지 말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 갑자기 동생이 생긴 형


한물간 전직 복서 조하(이병헌)는 변변한 직업 없이 전단지 돌리는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는 친구와 밥 먹으러 갔다가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엄마(윤여정)와 우연히 만납니다. 엄마는 17년 전 조하가 중학생일 때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갔죠. 이후 조하는 고아처럼 홀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조하에게 집으로 들어오라고 말합니다. 엄마라는 호칭이 낯설지만 조하는 무료 숙식에 밥까지 준다는 말에 마음이 동합니다. 쭈뼛쭈뼛 거리다가 집으로 들어갔는데 거기 다 큰 정신지체 남자가 하나 있네요. 묻는 말마다 “네~”라고만 답하는 이 청년의 이름은 진태(박정민). 엄마는 진태가 조하의 동생이라고 말합니다. 난생 처음 봤는데 동생이라고요? 그렇게 조하와 진태의 불편한 동거생활이 시작됩니다.



서번트 증후군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자폐증 등 뇌 기능 장애를 갖고 있지만 비장애인과 다른 천재성을 동시에 갖는 현상을 말합니다. 영화 ‘레인맨’의 실제 모델 킴 픽은 암산과 암기에 천부적 재능이 있었고, 영국 작가 대니얼 태멧은 10개 국어를 구사하며 원주율의 소수점 이하 숫자를 2만 2514자리까지 암기하는 괴력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신비한 능력 덕분에 서번트 증후군은 종종 영화의 소재가 되는데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톰 행크스는 달리기와 탁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아이 엠 샘'의 숀 펜은 비틀즈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죠. 드라마 '굿 닥터'의 주원은 자폐 3급이지만 특유의 공감각적 지각 능력으로 인해 의사로서 천재성을 드러냈고,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한효주 동생으로 출연한 연준석은 음악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자폐아였습니다. 이밖에 영화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 등도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소년이 주인공이죠.


'그것만이 내 세상'의 자폐 청년 진태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분야는 피아노입니다. 피아노 치는 동생과 복싱하는 형이라니 왠지 어색하죠? 진태는 형이 무섭습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뒤로는 매일 밤 머리에 헤드기어를 쓰고 잡니다. 조하는 이런 상황이 우스꽝스러워 한숨만 나오지만 그렇다고 따로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엄마는 한 달 동안 부산에 갈 일이 있다면서 조하에게 진태를 맡깁니다. 마침 그 기간 동안 진태의 피아노 콩쿠르 참가가 예정돼 있습니다. 조하는 진태와 친해질 수 있을까요? 또 진태는 콩쿠르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처음엔 서먹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하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가족이라는 게 그런 건가 봅니다. 다시 보기 싫을 정도로 밉다가도 금세 다시 정이 드는 그런 관계 말이죠. 뭐든 혼자가 익숙했던 조하는 이제 피아노가 그려진 티셔츠를 보면 동생 사다 주고 싶고, 동네에서 엄마와 아이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부산에 있을 엄마 생각이 납니다. '꿈에 그리던 가족'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17년 만에 처음 입에 올려보는 엄마, 동생, 가족 이런 단어가 그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서번트 증후군 음악 천재, 배다른 형제의 우애, 시한부 인생 등 영화의 줄거리는 예측을 벗어나지 않습니다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뭉클한 순간들이 종종 있습니다.


강인한 듯 보이지만 이내 눈시울이 금세 빨개지는 이병헌의 연기는 명불허전이고,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청년을 연기한 박정민의 천진난만한 표정 연기도 일품입니다. 박정민은 영화 속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눈부신 피아노 솜씨를 보여주는데 그가 연주하는 쇼팽을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즐겁습니다.


참, 영화의 제목으로 쓰인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은 극중 엄마가 평생 좋아해온 노래로 나옵니다. 노래를 통해 엄마와 두 아들은 연결되는데요. 이 노래의 가사도 엄마의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 아마 난 세상을 모르나 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 봐. (...) 하지만 후횐 없어. 찾아 헤맨 모든 꿈. 그것만이 내 세상.”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 친구 구하러 악의 소굴로


영문도 모른 채 미로 속에 갇혀 몸부림치던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 ‘메이즈 러너’의 마지막 편입니다. 2편 ‘스코치 트라이얼’에서 미로를 설계한 것은 생체실험을 일삼는 사악한 집단 위키드라는 것이 밝혀졌고, 영화 속 세계가 좀비 비슷한 광기를 유발하는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도 알려졌죠. 이제 3편에선 소년, 소녀들이 본격적으로 위키드에 맞설 차례입니다.


영화는 전편에서 트리사(카라 스코델라리오)의 배신으로 위키드에 붙잡힌 민호(이기홍)를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와 친구들이 구출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빠른 속도감과 액션 신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분명히 열차 밖에서 민호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작전이 끝나고 보니 민호가 없습니다. 이에 친구들은 포기하지 않고 민호를 찾아 이번에는 도시로 잠입합니다. 그렇게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던 위키드의 본거지로 자발적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오직 우정을 위해서요. 이처럼 ‘메이즈 러너’ 시리즈는 우정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사랑도 계략도 음모도 배신도 우정 앞에선 무용지물입니다.



도시에서 토마스와 뉴트(토마스 브로디생스터)는 우연히 트리사를 만납니다. 그들은 트리사를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트리사에게도 사정은 있습니다. 그녀가 위키드에 남아 있던 이유는 오로지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반복되는 탈출과 추적은 사태를 지연시키기만 할 뿐, 백신을 개발해 전염병을 치료해야만 이 사태를 끝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트리사는 전염병에 면역력을 가진 소년, 소녀들 중 토마스에게 병을 치료하는 항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래서 토마스에게 백신을 만들기 위해 위키드에 남을 것을 제안합니다. 토마스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민호를 찾아 떠난 친구들은 무사히 민호를 구출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를 보려면 가급적 1,2편을 복습하고 가는 게 좋습니다. 전편에서 연결되는 상황들이 전반부에 가득하거든요. 토마스와 뉴트는 왜 갤리(윌 폴터)를 보고 놀라는지, 트리사의 사연은 무엇인지, 전염병에 감염된 크랭크들은 왜 반란을 일으키는지, 브렌다(로사 살라자르)와 호르헤(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는 어떤 관계인지 등은 1,2편에서 던져놓은 떡밥을 3편에서 회수하는 것입니다.



‘메이즈 러너’ 1,2편의 인기 비결은 짐작도 하기 힘든 미로를 탈출해 진실을 밝혀가는 추리 구조에서 비롯됐습니다. 이와 반대로 3편은 탈출이 아니라 구출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스릴을 뽑아냅니다. 그래서 기존 ‘메이즈 러너’ 특유의 무지에서 오는 긴장감은 덜한 편입니다만, 여느 액션 블록버스터처럼 스케일에서 오는 재미는 있습니다. 특히 대형 크레인으로 버스를 들어 올리는 장면의 쾌감은 상당합니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토마스는 커다란 비석에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씩 새깁니다. ‘데스 큐어’를 통해 완결된 ‘메이즈 러너’ 3부작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친구’라는 것을 강조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단지 우정 때문에 위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쳐다보기도 싫었던 위키드와 마주합니다. 한국계 민호뿐만 아니라 주요 배역을 맡은 소년, 소녀들이 다인종에 걸쳐있는 것도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1월에 개봉한 세 편의 영화 ‘다운사이징’, ‘그것만이 내 세상’,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폴은 소인이 되고, 조하는 서번트 증후군 동생과 함께 살며, 토마스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위키드로 들어갑니다. 이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소중한 가치를 깨닫습니다. 폴에게 그것은 사랑이고, 조하에겐 가족이며, 토마스에겐 우정입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한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그 어떤 세상의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SK하이닉스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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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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